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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 흥신소-158화 (158/190)

제158화

서울 외곽의 한 축구 경기장.

악령의 표적이 된 세 사람이 축구장 한가운데 모여 있다.

“괜찮겠죠?”

“그렇지 않을까요? 정인호? 그 사람이 이런 일에 전문가라고 하잖아요.”

여자가 말을 하는 악령의 친구를 쏘아본다.

“그쪽 친구 때문에 이러는 거잖아요.”

“오프라인 모임에 나온 것은 개인 의사잖아요. 그걸 제 책임이라고 말하면 안 되죠. 제 잘못이라면 그런 미친 새끼인 줄 모르고 친구로 지낸 것뿐입니다.”

“아, 몰라요. 그나저나 그 사람은 어디 있는 거예요?”

세 사람이 주변을 살핀다. 조금 전까지 보였던 인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설마 무서워서 도망친 건 아니겠죠?”

“아니, 그래도 검사님이 추천해준 사람이 그러려고요.”

말을 하면서도 불안한 모습이다.

그런 세 사람이 보이는 그늘진 곳에 인호가 서 있다.

인호의 옆에 뚱보가 불안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넌 저승사자라는 놈이 왜 그러냐?”

“내가 뭘?”

“잔뜩 쫄아 있잖아. 악령들을 지옥으로 끌고 가야 할 저승사자가 그러면 되겠냐? 확 네 선배 사자님한테 다 일러버린다.”

“우씨. 나도 저승사자 되고 싶어서 된 거 아니거든.”

뚱보가 손에 든 붕어빵을 통째로 입에 넣고 우물거린다.

“주변을 돌다 느껴지는 게 있으면 바로 신호 보내.”

“알겠어.”

뚱보가 사라진다.

인호는 마지막 점검을 위해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황동호에게 도움을 받아 경기장 주변에 결계를 펼쳐 두었다. 작은 공간이라면 인호 스스로도 결계를 칠 수 있지만 축구 경기장은 너무 넓었다.

박주완의 도움도 받았다. 혹시 악마와 관련이 있을지 몰라서 지난번처럼 성수를 받아왔다. 박주완은 성수가 편의점에서 파는 생수인 줄 아냐며 타박했지만 결국 성수를 내주었다.

점검을 마친 인호는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어디 다녀오신 겁니까?”

“그 녀석이 이곳에 오면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조치를 해 뒀습니다.”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고요? 그러면 우리도 위험해지는 거 아닌가요?”

“그놈이 도망치면 여러분은 결국 모두 죽게 될 겁니다. 기회는 단 한 번뿐입니다. 그러니 제 말 들으세요. 약속하셨잖아요. 제 지시를 무조건 따른다고.”

인호가 말을 하며 검지로 검은 문양을 푹 찌른다.

“꺄악-.”

손가락이 팔을 뚫고 들어가자 여자가 뾰족한 비명을 토해낸다. 인호의 손가락이 검게 물든다. 인호가 세 사람 주위를 천천히 돌기 시작한다.

검게 변한 검지에서 검은 액체가 흘러내린다. 인호는 그 기운으로 세 사람 주변에 둥근 원을 그린 후 결계를 펼친다. 결계가 잠시 빛난 후 사라진다.

“지금 보신 원 밖으로 절대 나가면 안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뭘 하신 거죠?”

“그놈이 여러분을 해칠 수 없도록 조치한 겁니다. 제 생각보다 그 녀석이 강하면 소용없겠지만 적어도 몇 번은 여러분을 지켜 줄 겁니다.”

“조금 전에 하신 건 마술인가요? 어떻게 손가락이 팔을 뚫고 들어가죠?”

“네, 뭐. 그런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인호는 대답하고 미리 가져다 둔 접이식 의자에 앉는다. 이제 악령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바짝 긴장한 세 사람에게 인호가 말한다.

“휴대폰이라도 보고 계세요. 언제 올지 모르니까요.”

* * *

한 남자가 웃으며 걷고 있다.

“꽤 재미있는 짓을 벌였구나. 정 가 성을 쓰는 인호야.”

남자가 갑자기 자세를 낮춘다. 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맞은 편에서 걸어오고 있다.

“얘야.”

남자가 아이가 들고 있는 사탕을 냉큼 뺏는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아이 엄마가 따지듯 외친다. 남자는 엄마는 보지 않고 아이와 눈을 맞춘 채 웃으며 말한다.

“이런 거 많이 먹으면 이빨 썩어. 그러니까 먹지 마. 알겠지?”

아이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엄마가 아이 손을 잡고 걸어가려 할 때였다.

“곧 찾아갈 거야. 그때 오늘 한 네 실수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게 되겠지.”

말을 마친 남자가 걸음을 옮긴다.

와작-

남자가 사탕을 입에 넣고 깨문다.

“다네.”

목적지가 보이자 남자가 씨익 웃는다.

“나름 좋은 곳을 골랐네. 잔디도 잘 깔려 있고. 묫자리로 쓰기 딱 좋은 곳이야.”

남자가 걸음을 멈춘 채 한 곳을 응시한다.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아무도 발견할 수 없었다.

“뭔가 수작을 부려둔 거 같은데?”

남자가 축구 경기장 안으로 들어간다. 알 수 없는 기이한 느낌에 볼을 긁적인다. 하지만 이내 다시 환하게 웃는다.

“아무렴 어때. 크크, 다 죽여버리면 되잖아.”

* * *

“오래 기다렸어? 정 가 성을 쓰는 인호야.”

“아니. 조금 전에 왔어.”

“그런 것치고는 여러 가지 개수작을 부려둔 것 같은데.”

“그런 걸 느낄 수도 있나 보네. 생각했던 거보다 대단한 악령인가?”

“나를 악령 따위라고 생각한 거야? 미안하지만 나는 악령 따위가 아니야.”

인호가 피식 웃는다.

“설마 악마라도 된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얼마 전에 내가 진짜 악마를 만나 봤거든. 혹시 마르바스라고 들어봤어?”

악령이 눈을 가늘게 뜬다.

“마르바스? 그분의 이름을 어떻게 알지?”

“말했잖아. 얼마 전에 만났다고. 그리고 친절하게 지옥으로 돌려보내 주기까지 했는데.”

“느껴졌던 기운. 내가 잘못 느낀 것이 아니었군. 감히 위대하신 분에게 대적하다니!”

“설마 마르바스를 소환하기 위해 제물을 받치려고 한 거야? 아이고. 미안해라. 이번에 힘깨나 쓰고 들어가서 당분간 인간 세상에 나오기 힘들 텐데.”

악령에게서 강력한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그 기운은 폭풍처럼 인호를 휩쓴다.

“제법이네.”

악령이 히죽 웃는다. 그의 시선은 인호의 뒤쪽에 고정되어 있다.

“일일이 찾아다닐 필요 없게 모두 모아놨네? 상수야. 반가워. 우리 오랜만이지?”

“개새끼야. 내 이름 부르지도 마.”

“이거 굉장히 서운하네. 너 친구 나밖에 없잖아. 하나뿐인 친구인데 너무 야박한 거 아니야?”

악령의 친구 박상수가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몸을 들썩인다. 인호는 뒤를 쳐다보지 않은 채 말한다.

“그 원을 넘지 말라고 했습니다. 원 밖으로 나간 후에 발생하는 일에는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박상수가 몸을 움찔한다.

“대화를 들어서 알겠지만, 여러분을 노리는 저 녀석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면 뭡니까?”

“추악한 존재가 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끊은 미친 새끼죠. 안 그래?”

악령이 어깨를 으쓱한다.

“내가 스스로 목숨은 끊진 않았어. 그러면 얻을 수 있는 힘이 많지 않거든. 일단 한 사람을 살인자로 만들었지. 어떻게? 날 죽일 수밖에 없게 했거든. 아주 평범했던 스시집 사장이 졸지에 살인자가 되어 버린 거야. 그 사람은 지금도 감옥에서 날 원망하고 있을 거야.”

“선량한 사람의 원한을 원한 거구나.”

“빙고.”

“축하해. 네가 소멸되어야 할 이유가 하나 추가된 거야.”

“이유가 몇 가지나 되는지 모르지만 네가 죽어야 할 이유보다는 적을 거야.”

인호가 궁금하다는 듯 묻는다.

“도대체 날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

“몰랐어? 너 굉장히 유명해. 네 눈을 피해 서울에서 떠난 악령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지?”

“네가 말하는 위대한 대업이 뭐지?”

“우리 같은 존재들의 꿈은 언제나 하나뿐이야. 이 세상을 우리들을 위한 세상으로 바꾸는 거지. 오로지 순수한 악만이 존재하는 세상.”

악령이 말하는 세상은 악마들이 원하는 세상이다. 악만이 존재하는 세상을 만들어 모든 사람들이 지옥에 빠지길 원한다.

악령이 인호의 뒤에 모여 있는 세 사람을 보며 말한다.

“위대한 지옥의 왕이 강림하실 것이다. 너희들의 목숨은 위대한 일을 위한 것이니 영광인 줄 알아라.”

“미친 사이코패스 새끼야 닥쳐.”

여자의 외침에 악령의 입매가 뒤틀린다.

“그래. 그런 악에 받친 모습을 원한 거야. 네가 죽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벌써부터 궁금한데? 참고로 세 번째로 죽은 친구는 제발 살려달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지. 하지만 결국 자기가 죽을 것을 알자 나를 저주했지. 웃기지 않아? 자기의 저주가 나를 더욱 강하게 하는 것을 알았을까?”

인호가 천천히 몸을 돌린다.

“대꾸해 주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 안 하는 편이 좋을 거예요. 당신들의 공포와 분노가 저 녀석을 더 강하게 하니까. 차라리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세요.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다시 몸을 돌린 인호가 악령에게 말한다.

“이제 그만 떠들고 시작하자. 네가 원하는 제물들도 모아놨잖아. 참고로 말하지만 여길 나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능력이 아주 대단한 형님이 강력한 결계를 펼쳐 뒀거든.”

“토룡을 말하는 건가? 토룡의 도력이 대단하긴 하지.”

인호가 눈살을 찌푸린다.

“나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네.”

“너뿐만 아니라 너 아버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지.”

“반가운 말이네. 아버지를 기억하는 이가 있다니 말이야. 너 같은 쓰레기 악령이라서 문제지만.”

인호가 고개를 좌우로 비틀며 주먹을 말아쥔다.

“신명 나게 놀아보자.”

말을 마치며 땅을 박찬다. 악령과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악령은 인호의 주먹을 어렵지 않게 피해냈다. 악령의 반격이 시작된다.

빠각-

악령의 주먹을 피했다고 느끼는 순간 안면에 강렬한 통증이 느껴진다. 갑자기 악령의 팔이 쭈욱 늘어난 것이다. 인호의 몸이 휘청인다.

“짜릿하네. 퉤.”

인호가 입에 고인 피를 뱉어낸다.

“더 짜릿하게 해 줄게.”

악령이 달려든다. 인호도 물러서지 않고 악령을 향해 달린다. 악령의 주먹을 머리 위로 흘리며 배에 주먹을 꽂아 넣는다. 인호의 주먹에 파란 기운이 모여든다. 배를 가격당한 악령이 뒤로 주르륵 밀려난다.

“짜릿하네.”

조금 전 인호가 한 말을 따라 한 악령이 괴기스럽게 웃는다. 악령의 눈이 당장이라도 피가 뚝뚝 흘러내릴 것처럼 붉게 변한다.

악령의 몸이 흐릿해진다. 인호가 상체를 뒤로 젖힌다. 길게 자란 악령의 손톱이 허공을 긁고 지나간다. 인호가 악령의 손목을 낚아채 끌어당기며 얼굴에 주먹을 꽂는다.

악령의 얼굴이 터져나간다. 인호가 악령을 집어던진다. 머리가 없는 악령이 몸을 일으킨다. 목에서 지렁이 같은 것들이 꿈틀거리며 자라 뭉친다. 얼굴을 재생한 악령이 죽일 듯 인호를 쏘아본다.

“이번 건 진짜 짜릿했어.”

악령이 목을 비틀며 환하게 웃는다.

“니가 준비한 것처럼 나도 준비해온 게 있거든. 잘 보라고.”

악령이 자신의 상의를 찢어 버린다.

“꺄악-!”

여자가 공포에 가득한 비명을 토해낸다.

악령의 상체에 고통으로 일그러진 사람의 얼굴이 박혀 있다. 얼굴은 모두 세 개다. 인호가 그 얼굴들을 보며 묻는다.

“네가 죽인 사람들인가?”

“내 일부가 되었지. 어때? 아름답지?”

악령이 빨갛게 변한 눈으로 인호를 쏘아본다.

“마이 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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