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21화 (121/190)

제121화

결국 통화 버튼을 누른다.

- 처음에는 연결음 한 번 울리고 끊어.

친구가 말해 준대로 통화연결음이 한 번 울리고 끊는다.

“그냥 평범한 통화연결음 같은데 기분이 이상하네. 다음은 두 번 울리고 끊으라고 했지?”

똑같은 번호로 전화를 걸고 통화연결음이 두 번 울리고 끊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세 번 울리고 끊으면 상대가 전화를 한다고 했지?”

통화연결음 한 번, 두 번이 울리고 세 번째 연결음이 울린다.

“응? 조금 더 긴데?”

세 번의 통화연결음을 모두 듣고 전화를 끊었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천사가 전화를 한다고 했다.

“천사는 개뿔.”

쿠션을 등에 대고 앉아 휴대폰을 쳐다본다. 이선정이 깜짝 놀라 휴대폰을 떨어트린다. 조금 전 걸었던 번호로 휴대폰에 전화가 온 것이다.

“진짜 왔네.”

조심스럽게 통화 버튼을 누른 후 귀에 휴대폰을 가져간다.

“여보세요?”

- …….

“천사님이신가요?”

- 질문은?

여자의 음성이 들린다. 친구도 여자가 전화를 한다고 했다.

이선정은 어떤 질문을 할까 잠시 생각해 본다.

친구는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 할 수 있냐?’고 물었고, 또 다른 친구는 ‘멋진 남자를 어떻게 만날 수 있냐?’는 질문을 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선정은 그런 질문을 할 생각이 없었다.

이선정이 피식 웃는다.

지금 자신이 떠올린 질문에도 상대가 대답해 줄 수 있을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난 언제 죽어요?”

- …….

역시 대답 못 할 줄 알았다며 전화를 끊으려 할 때 상대의 음성이 들린다.

- 지금!

* * *

- 최근 ‘천사 전화’라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천사 전화를 통해 천사에게 자신이 알고 싶은 것에 대해 질문을 하면 그 대답을 들을 수 있는 것인데요.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천사 전화로 인해 많은 학생들이 병원을 찾고 있습니다. 대부분 학생들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더하고 있습니다. 많은 제보들 중에는 천사 전화를 걸었다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인호가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선다.

“검사님. 식사는 하셨어요?”

“인호 씨. 어서 오세요. 저희는 방금 중식 시켜 먹었습니다. 인호 씨는 식사하셨어요?”

“오늘 뭔가 통했나 보네요. 저도 사무실에서 민정이 하고 중식 시켜 먹고 왔습니다.”

“커피 한 잔 드릴까요?”

“감사하죠.”

인호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묻는다.

“뭐 안 좋은 일 있나요?”

“안 좋은 일이긴 한데 조금 허황된 이야기라 인호 씨를 모셨습니다. 혹시 천사 전화라고 들어보셨어요?”

“민정이가 하는 말을 듣기는 했습니다. 천사에게 전화를 걸면 무엇이든 질문에 대답해 준다고 그러던데요.”

“네, 맞습니다. 요즘 고등학생들 사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죠.”

“설마 그게 진짜란 말인가요?”

인호의 물음에 정재훈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네, 심각한 수준입니다. 그 천사 전화라는 것에 전화를 건 후 정신과 진료를 받는 아이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무슨 이유로 정신과 진료를 받죠?”

“전화가 걸려 오면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벌벌 떨고 비명을 내지른답니다.”

“그렇게 심각한데 그걸 하는 애들이 있다고요?”

“요즘 고등학생들 아시잖아요.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또 다른 친구들 다 하는데 자기만 안 하면 바보 취급당할 것 같고.”

“하, 하하. 위험한 것을 뻔히 알면서 하는 게 더 바보 같은 짓 아닌가요?”

정재훈이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흔든다.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뭘 도와 드리면 될까요?”

“이쪽도 이제 막 수사를 시작하는 시점입니다. 우선 그 천사 전화라는 것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정재훈이 유 형사를 바라본다.

“천사 전화를 거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이 번호로 전화를 걸어서 통화연결음이 한 번 울리고 끊고, 다음은 두 번, 마지막은 세 번 울리고 끊으면 상대가 전화를 겁니다. 그 전화를 받고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된다고 합니다.”

“유 형사가 한 번 걸어봐.”

유 형사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제가 직접 하는 것보다 녹음시켜 놓은 것이 있으니 그걸 듣죠. 일단 통화 연결음 먼저 들으시고 그 다음은 자칭 천사라는 존재가 전화한 녹음 파일을 들으시면 됩니다.”

유 형사가 컴퓨터를 조작한다.

“들으시면 아시겠지만 처음과 두 번째 통화연결음은 같은데 세 번째 통화연결음은 앞선 두 번 보다 조금 깁니다. 평범한 통화연결음 같은데 이상하게 듣고 있으면 오싹해집니다.”

인호가 눈을 가늘게 뜬다.

“다시 틀어봐.”

유 형사가 다시 녹음 파일을 재생시킨다. 그때 인호의 눈에 푸른빛이 어른거린다. 인호가 푸른 기운을 흘려내는 손을 컴퓨터에 가져다 댄다.

그러자 놀랍게도 조금 전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려온다.

- 분신사바 분신사바 오잇떼 쿠다사이

정재훈과 유 형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분신사바네요. 이게 조금 전 통화연결음 맞아요?”

유 형사의 물음에 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악령이 통화연결음에 자신의 음성을 씌운 거야. 상대가 전화를 걸면 저절로 분신사바의 주문을 외우는 효과가 나타나게 되는 거지.”

“하, 거참. 이제 악령들도 범죄지능이 높아지고 있다는 뜻입니까?”

정재훈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인호를 바라본다.

인호가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곧장 천사 전화라 알려진 번호로 전화를 건다.

- 분신사바

통화연결음이 한 번 울린 후 끊는다.

- 분신사바 분신사바

두 번 울리고 끊는다.

- 분신사바 분신사바 오잇떼 쿠다사이

세 번째 통화연결음이 울리고 끊고는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정재훈과 유 형사가 긴장 어린 눈빛으로 휴대폰을 바라본다.

인호의 휴대폰이 거칠게 몸을 떤다. 번호를 확인하니 천사 전화가 맞았다. 인호가 1초의 망설임 없이 전화를 받는다.

“너 누구니?”

- 키키키키키.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 너도 궁금한 게 있어서 전화한 거야?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에 인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 인. 호. 야.

상대가 전화를 끊는다.

“악령이 소장님을 알고 있네요.”

인호가 볼을 긁적인다.

“그러게. 나를 알고 있다?”

자신을 알고 있는 악령들은 모두 소멸되거나 저승으로 끌려갔다.

“그냥 악령이라서 소장님 이름을 알고 있는 것 아닐까요? 왜, 귀신들은 막 남들 과거도 알고 그러잖아요.”

인호가 고개를 흔든다.

“내가 태어나고 아버지는 악령들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내 이름에 한 가지 조치를 해 두셨어. 이유를 설명해 줄 수는 없지만, 그것 때문에 악령들은 내 이름을 입에 담지도 못해.”

“악령이 아니라는 뜻인가요?”

“목소리 자체에 악한 기운이 가득해.”

“그러면 어떻게 된 거죠?”

인호가 씨익 웃는다.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간만에 불타오르는데.”

* * *

“뭐 짚이는 거 없어요?”

인호의 물음에 영감이 생각에 잠긴다.

“네 이름을 알고, 이름을 부르는 악령이라. 일단 떠오르는 게 있기는 해.”

“그게 뭔데요?”

“일단 나도 네 아버지한테 들은 말이야. 네 아버지가 해결하지 못한 일이 세 가지 있어. 그 중 두 가지는 해결 할 수 있는데도 안 한 거고, 한 가지는 해결할 수 없어서 못 한 거야.”

“그런 일이 있었다고요?”

인호는 아버지가 남긴 기록을 모두 보았다. 하지만 기록 어디에도 해결하지 못한 일이 있다는 말은 없었다.

“은호가 이렇게 말했지.”

은호는 인호 아버지의 이름이다. 인호의 집안은 대대로 ‘호’자를 돌림자로 사용했다.

- 악령과 싸우다 탈진해 정신을 잃었다. 깨어보니 악령은 보이지 않았다. 악령이 소멸된 것인지 나처럼 모든 힘을 사용한 후 몸을 피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날 이후로 그 악령을 본 사람은 없었다.

“그 악령이 어떤 악령입니까?”

“용인에 사는 손말명.”

손말명이란 처녀귀신을 뜻하는 말이다.

“예전에 아주 유명했지. 무슨 한이 깊어 악령이 된 건지는 모르지만 망령들까지 소멸시키는 나쁜 악령이었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그래서 은호가 그 손말명을 없애기 위해 용인으로 내려가서 싸웠지. 그게 아마 인호 너가 네 살 때쯤인가 그랬을 거야.”

“그런 일이 있었군요. 아버지가 소멸시키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악령이 있었다니 놀랍네요.”

인호의 기억 속 아버지 정은호는 정말 강한 남자였다.

아버지가 상대했던 손말명이 천사 전화 속 악령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어떻게 보면 아버지가 남겨 주신 유산 같은 거네요. 확실히 접수했습니다.”

* * *

정재훈의 검사실에 여학생 한 명이 앉아 있다. 뭐가 그리 불안한지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실 때는 휴대폰을 끄셔야 합니다.”

“네?”

“휴대폰을 굉장히 두려워하고 있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인호가 여학생이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안녕.”

여학생은 인호를 힐끔 본 후 고개를 숙인다.

“나는 정인호라고 하는데. 검사님의 심령 자문 역할을 하는 사람이지. 천사 전화인가를 했다고?”

여학생이 몸을 부르르 떤다.

“무슨 일이 있었지? 다른 학생들은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만으로 공황 상태가 된다고 하던데.”

“전화하면 전화가 와요. 질문을 하면 답변을 해 줘요. 질문을 한 다음 대가를 요구해요.”

“어떤 대가를 요구했지?”

“화장실.”

“응?”

여학생이 다시 몸을 부르르 떤다.

“화장실에 가라고 해요. 화장실에 가서 불을 끄고 거울 앞에 1분만 서 있으라고 해요.”

“화장실 거울 앞에 서 있으면 거울에 비친 니 모습에 그것이 나타나는구나. 그렇지?”

여학생이 고개를 끄덕인다.

망령들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때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다.

“어떤 존재였지? 너희들 말대로 천사 같았어?”

“너무 예쁜 여자예요. 그런데 보고 있으면…… 꺄악-!”

그때가 떠오른 것인지 여학생이 머리를 감싸 쥐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여학생의 부모님이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와서는 인호를 무서운 눈빛으로 쏘아본다. 인호는 무슨 말을 해 봐야 변명이 될 것이 뻔하기에 조용히 있었다.

“인혜야, 가자. 오는 게 아니었는데 엄마가 미안해. 집에 가자.”

여학생과 함께 나가던 어머니가 정재훈을 보며 쏘아붙인다.

“다시는 이런 일로 부르지 마세요.”

막 문밖으로 나가려던 여학생이 인호를 돌아본다.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뗀다.

“가영이. 가영이가 죽었어요.”

“응?”

인호가 되물었지만 이미 여학생은 부모님과 함께 방을 나간 후였다.

“유 형사.”

“네, 소장님.”

“방금 나간 학생 주변에 가영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친구가 있는지 확인하고 정말 죽었는지도 확인해.”

“네, 알겠습니다.”

인호가 정재훈에게 말한다.

“사람이 죽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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