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2화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호가 앞에 선 중년 여자에게 꾸벅 인사한다.
죽은 서가영이라는 여학생의 어머니다. 서가영의 시신은 내일이면 화장하게 될 것이다.
인호는 유 형사를 통해 서가영의 부모님과 연락해 시신을 확인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서가영의 부모님 역시 딸의 죽음에 의문을 가지고 있기에 허락해 준 것이다.
“따님의 마지막 모습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침대에 기대앉은 채 그렇게 됐어요. 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있었고요.”
“네, 그렇군요.”
인호는 서가영 어머니의 허락을 구하고 영안실로 향했다.
“소장님.”
“말해.”
“시신은 왜 보려고 하시는 거예요?”
“정말 악령에게 죽은 것인지 확인하려고.”
“그걸 시신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유 형사가 궁금하다는 듯 묻자 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악령이 힘을 사용하게 되면 그 흔적이 반듯이 남게 되어 있어.”
영안실 직원의 도움으로 서가영의 시체를 볼 수 있었다.
“악령의 짓이 맞아.”
시신에는 아직도 악령의 기운이 진하게 남아있었다. 하얀 천을 아래로 내린 인호가 죽은 서가영의 눈꺼풀을 위로 올린다.
“역시.”
서가영의 눈은 온통 빨간색이었다.
“눈이 왜 저런 거예요?”
“악령이 이 아이의 눈을 통해 몸 안으로 들어갔어. 아이의 영혼을 뒤흔들고 육체와 영혼의 연결을 끊은 거지. 그래서 눈에 악령의 흔적이 남아있는 거야.”
서가영의 눈을 다시 감겨주고 천을 덮어준다.
“강한 악령인가요?”
영안실을 벗어나며 유 형사가 묻는다.
“강해. 아주 강해.”
서가영의 시체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몸이 오싹할 정도로 강력했다.
“그건 어떻게 됐어?”
“통신사요? 그게 통신 3사에 가입된 번호가 아니더라고요.”
통신사에 가입되어 있을 것이라곤 기대도 하지 않았다.
“정 검사님께서 아는 분을 통해 그 번호로 전화를 걸면 수신이 차단되게 하는 어플을 개발하게 하시려는 것 같아요.”
“어플 개발이 그렇게 쉽게 되나?”
“뭐라도 해 봐야 하니까요. 그런데 사실 전 크게 기대도 안 해요. 우리나라 사람들 하지 말라면 더 하잖아요. 모르긴 해도 지금도 그 번호에 전화 거는 사람들 있을걸요.”
이번 사건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망령이나 악령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믿지 않는 존재다 보니 오히려 호기심을 더 자극하는 것이리라.
설마, 설마 하면서 전화를 걸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빨리 해결해야지.”
* * *
이민정이 사무실 창문을 열어 밖을 내다보며 말한다.
“보름달 떴네요. 보름달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요.”
“이만 퇴근 해.”
“소장님은 퇴근 안 하세요?”
“금방 올라갈 거야.”
“그러면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내일 뵐게요.”
이민정이 가방을 메고 사무실을 빠져나간다.
사기꾼과 영감, 뚱보가 긴장된 표정으로 인호를 바라본다.
“정말 할 거야?”
뚱보의 물음에 인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다.
“하하. 왜 나보다 더 긴장들을 하고 그래요?”
“걱정이 되니까 그렇지.”
“별일 없을 거예요.”
인호가 소파에 등을 기대며 눈을 감는다.
시간이 흐르고 자정이 가까워진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인호가 자정이 되자 천사 전화로 전화를 건다. 세 번째 전화를 걸고 끊은 후 기다린다.
곧 전화가 온다.
- 다시 전화했네?
“어떤 질문이든 다 대답해 주는 천사님이라며. 그래서 나도 질문 하나 하려고.”
- 질문의 대가는 비싼데?
“뭐 대가는 재주껏 받아 가면 되잖아? 그렇지?”
인호가 이민정이 열어두고 간 창문을 통해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검은 하늘 중앙에 둥근 달이 걸려 있다.
만월이 뜨는 밤 자정.
세상에 음기가 가장 강해지는 순간이다.
인호는 일부러 이때에 맞춰 악령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이때라면 악령이 자신을 피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 뭐가 궁금해?
“아버지를 알아?”
- 정. 은. 호.
악령이 아버지의 이름을 한 자, 한 자 끊어 말한다.
“니가 그 손말명이구나.”
- 키키키키키.
악령이 소름 돋는 웃음을 토해낸다. 인호의 맞은편에 앉은 망령들이 몸을 부르르 떤다. 악령의 웃음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영체에 타격을 입은 것이다.
“자-, 질문에 답을 해주었으니 대가를 요구해 봐.”
- 키키키키. 너…….
“내가 널 못 죽인다고 같다고 생각하는 거야?”
섬뜩한 음성이 사무실 입구 쪽에서 들려온다.
그곳에 하얀 원피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자가 서 있었다. 손말명이 모습을 드러내자 영감과 사기꾼, 뚱보가 자취를 감춘다.
무서워 도망친 것이 아니라 인호가 그렇게 하라고 지시를 내려 둔 것이다.
“처음 보지만 이미 알고 있는 사이처럼 친숙함이 느껴지네. 아버지를 만났을 때는 운 좋게 도망쳤다며?”
“도망쳐? 내가? 키키키키키-!”
손말명이 웃자 사무실 집기들이 사방으로 날아다닌다. 손말명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새빨갛게 물든다.
“그때 나는 네 아버지를 죽일 수 있었어. 그런데 어째서 그러지 않았을까?”
인호가 인상을 찌푸린다.
손말명이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내가 어째서 원한을 품은 악령이 되었는지 알아?”
“…….”
“바로 네 아버지 정은호 때문이야. 네 아버지가 내가 사랑하는 이를 소멸시켰거든.”
“산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구나.”
손말명은 분명 ‘죽였다’라는 표현이 아닌 ‘소멸시켰다’라는 표현을 썼다. 아버지는 악령이 아닌 망령을 소멸시키지 않았다.
“그렇다면 같은 악령을 사랑했겠군.”
“내가 누굴 사랑했던 무슨 상관이지?”
이제 알 것 같다.
어째서 손말명이 탈진해서 기절한 아버지에게 해코지하지 않고 사라졌는지.
“내게서 사랑하는 존재를 빼앗아 갔으니 나도 그렇게 할 거야. 네 아버지가 가장 사랑했던 널 죽일 거야.”
손말명이 환하게 웃는다.
인호가 피식 웃는다.
“그럴 능력은 되고?”
“정. 인. 호. 내가 널 못 죽일 것 같아?”
“날 죽일 생각이었다면 머리카락 따위에 일부를 담아 오지 않고 직접 찾아왔겠지.”
“키키키키키-! 아직 다 못 즐겼거든. 널 죽이는 건 충분히 즐긴 다음이야. 오늘은 인사하러 온 거야. 잘 지내. 머리카락은 이만 물러갈게.”
손말명이 사라진다. 그녀가 사라진 곳에 긴 머리카락 한 올이 천천히 떨어진다. 자신의 머리카락에 영체의 일부를 실어 보낸 것이다.
인호가 벽에 걸린 아버지 사진을 바라본다.
“아부지, 유산치곤 조금 빡센데요.”
* * *
사주 카페 미로.
인호가 황동호와 함께 들어서자 김명운이 일어나 반겨준다.
“토룡 형님 오랜만입니다.”
“현학 동생 잘 지냈고?”
“사는 게 매일 똑같죠. 형님은요?”
“최근에 누구 때문에 조금 덜 심심했지.”
김명운이 알겠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 녀석 한동안 날 줄기차게 찾아오더니 토룡 형님으로 갈아 탄 거였어?”
“갈아타긴 뭘 갈아타요.”
“그런데 둘이 한꺼번에 왜 왔을까요? 서로 안부나 묻자고 온 건 아닌 것 같은데.”
“나도 전화 받고 온 거라 무슨 일인지 잘 몰라.”
인호가 김명운에게 묻는다.
“얼굴 생김새만으로 사주를 알아낼 수 있어요?”
“가능하겠냐?”
이번에는 황동호에게 묻는다.
“머리카락 한 올 있습니다.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있을까요?”
“산 사람은 아닐 거 같고.”
“네, 악령이에요. 최근에 천사 전화라고 들어보셨어요?”
황동호는 모르는 표정이고 김명운은 아는 듯하다.
“가끔 손님들이 와서 그 이야기 하더라. 그런데 그거 진짜라며?”
“네. 진짜 맞아요. 통화연결음에 악령이 자신의 음성으로 분신사바 주문을 숨겨 뒀더라고요.”
“재밌네. 악령이 머리를 제법 썼네.”
“그렇긴 한데 전 재미있을 상황이 아니라서요.”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냐는 듯 인호를 바라본다. 인호가 이번 일의 원흉인 손말명과 아버지 사이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정말 너희 아버지가 소멸시키지 못했다고?”
황동호가 젊은 도사일 적에 인호 아버지와 활동 시기와 조금 겹쳤다. 그렇기에 정은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악령을 사랑했고, 그 악령을 아버님이 소멸시키자 그 복수를 하겠다고 널 죽이려 한다? 희대의 복수극인데? 너랑 오래 알고 지내다 보니 별일을 다 겪는다. 머리카락은 어디에 있어?”
인호가 손수건에 쌓아 둔 머리카락을 황동호 앞에 내민다.
“그 처녀귀신 얼굴 어떻게 생겼냐?”
종이 한 장을 꺼내 김명운에게 건넨다.
“그림 잘 그렸네. 이렇게 생긴 거야? 예쁘잖아.”
김명운이 인호가 그린 손말명의 얼굴을 보며 말한다.
“사주를 알 수는 없어. 하지만 얼굴은 많은 것을 알려주거든. 자-, 내게 말해봐. 넌 어떤 처녀귀신이니?”
김명운이 그림을 보고 있을 때 황동호가 머리카락을 손에 잡은 채 눈을 감고 중얼거리고 있다.
“멀지 않은 곳에 있어.”
“날 노리고 있으니 먼 곳은 아니겠죠. 머리카락에 영을 실어 사무실까지 온 것만 봐도 가까운 곳에 있어요.”
“머리카락에 담긴 기운을 보니 너 혼자 상대할 수 있는 악령이 아닌 것 같은데?”
“저 혼자 합니다.”
“치사한 녀석이네. 맛있는 음식은 원래 다 같이 나눠 먹는 거야.”
인호가 빙긋 웃는다.
“명색이 아버지가 남겨 주신 유산 아닙니까.”
* * *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밤하늘을 날아가고 있다. 신기하게도 나비는 하얗기만 할 뿐 아무런 무늬가 없었다. 그 이유는 나비가 살아있는 나비가 아닌 도술로 만든 나비이기 때문이다.
황동호가 만든 나비에 손말명의 머리카락이 붙어 있다. 하늘을 날아가는 나비를 쫓는 이는 다름 아닌 인호였다.
나비가 도착한 곳은 사무실에서 멀지 않은 작은 공원이었다.
화르륵-
공원에 도착하자 종이 나비에 불이 붙어 재가 되어 버렸다.
“이야,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의자에 손말명이 앉아 있다. 손말명이 인호를 보며 환하게 웃는다.
“주변 정리는 하고 왔어?”
“뭐 그럴 필요 있나? 다시 돌아가면 되는데.”
손말명이 선고하듯 말한다.
“넌 오늘 여기서 죽어.”
순간 손말명의 몸이 흐릿하게 변하더니 어느새 인호의 앞에 서 있었다. 그녀의 손아귀에 인호의 목이 잡힌다. 인호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른다.
손말명은 벤치를 향해 인호를 집어 던진다. 다행히 벤치에 부딪히지 않고 맨바닥에 떨어져 그나마 충격이 덜했다.
“인사가 제법 거칠잖아?”
인호가 일어서며 목을 비틀었다. 그러자 또다시 손말명의 몸이 흐릿해진다.
“또 당할 줄 알았지?”
이번에는 인호의 손아귀에 손말명의 목이 잡힌다. 손말명이 환하게 웃는다. 그 순간 인호의 눈에 푸른 기운이 일렁인다. 푸른 기운이 몸을 타고 이동해 손말명의 목을 틀어쥔 손에 도착한다.
“제법 맵네. 잘 영글었어. 기다린 보람이 있어.”
손말명의 모습이 사라진다. 인호의 몸이 붕 떠 허공을 가른다. 바닥에 떨어진 인호가 몸을 비비 꼬며 겨우 일으킨다.
“후우-.”
길게 숨을 토해낸 인호가 팔목을 걷는다.
“칭찬 고마워. 실망시키면 안되니까 지금부터 전력을 다 할게. 기대해도 좋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