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0화
“지금 네가 하는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부를지 알고 그러는 것이냐?”
인호가 서글프게 웃는다.
“제가 언제 그런 거 신경 썼습니까?”
“요즘 잘해 왔잖아. 상제께서도 바뀐 네 모습에 흡족해하시고 말이야.”
“그 말은 한동안 제가 저답지 못했다는 말이네요.”
인호는 여전히 두 팔을 벌린 채 병실 문을 막아서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비켜라. 지금 넌 망자를 인도해야 하는 저승사자의 임무를 방해하는 것이야.”
“죄송합니다. 매번 말을 안 들었지만, 이번 한 번만 더 안 듣겠습니다.”
인호가 눈을 감는다.
저승사자가 인호를 무서운 눈으로 쏘아본다. 저승사자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인호가 슬며시 눈을 뜬다. 저승사자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대로 한마디 말도 없이 시간이 흐른다.
내일 조혈모세포가 올 때까지 이 자리를 지켜야 할 것이다.
새벽 한 시가 되고, 세 시가 지나갈 무렵 인호는 밀려오는 잠을 참으려 애썼다.
저승사자는 처음 모습 그대로 인호를 쏘아보고 있을 뿐이다.
* * *
새벽 네 시.
인호의 눈꺼풀이 천천히 내려간다.
“어.”
잠시 졸다 눈을 뜬 인호가 화들짝 놀란다. 앞에 서 있어야 할 저승사자가 보이지 않았다.
인호가 황급히 병실 안을 살피려 할 때였다.
“나 여기 있다.”
옆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인호의 고개가 돌아간다. 병실 문 옆 벽에 저승사자가 등을 기댄 채 서 있었다.
“싸우자고 덤비는데 존다고 몰래 들어가면 나중에 어떻게 볼까 무서워서 이러고 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필요 없어. 이 일은 이미 내 손을 떠났으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승사자가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본다.
“보고 올렸다. 네가 죽자고 덤벼서 뭘 어찌할 수 없다고.”
“설마 상제께서 내려오시거나 하지는 않겠죠?”
“그렇게 한가하신 분이 아니다.”
저승사자가 인호를 한 번 보고는 눈을 감는다.
“안 들어갈 테니까 좀 자라.”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괜찮기는 씹새. 그냥 자리만 펴주면 코 골면서 자겠구만. 안 들어간다면 안 들어가.”
인호가 애써 졸음을 밀어낸다.
하지만 다시 눈이 서서히 감긴다.
* * *
“헛!”
인호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부장과 눈이 마주치자 깜짝 놀란다.
“부장님 오셨습니까.”
“네. 반갑다고 인사라도 하고 싶은데, 상황이 좀 그렇네요.”
부장이 인호의 뒤 병실을 바라본다.
“지금 인호 씨가 하는 행동이 저 아이에게 희망고문이 될 수 있다는 거 알아요? 저 앓고 있는 병이 어떤 건지 인호 씨도 잘 알잖아요.”
알고 있었다.
조혈모세포를 이식받는다고 해도 완치확률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쯤은.
“하지만 그래도 해 볼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결과가 같다면요?”
“…….”
“과연 저 아이 어머니의 가슴 속 죄책감이 줄어들까요? 아니면 이곳에 오기 전에 전혀 몰랐던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인호 씨의 마음이 편해질까요?”
“왜?”
인호가 부장을 똑바로 바라본다.
“왜 해 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만 하십니까?”
“해서는 안 될 일이니까요. 이미 정해진 운명을 비틀려고 하는 거니까요.”
인호가 입을 닫는다.
자신이 틀리고 부장과 저승사자가 맞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럴 수밖에 없었다.
부장의 말처럼 마음이 편해지고자 이러는 것이 아니다.
그저 유설아가 소유정에게 한 약속을 지키게 해주고 싶을 뿐이다.
- 우리 나중에 꽃구경 가자.
소유정은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몇 번이고 권하는 유설아에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꼭 같이 가자.
아직 죽음을 잘 모르는 아이와 죽음을 기다리는 아이가 약속했다.
“인호 씨는 거기서 절대 안 비킬 거죠?”
“네.”
“우리도 무리하지 않을 거예요. 대신 이번 일에 대한 대가는 온전히 인호 씨가 감당해야 해요.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죠?”
“알겠습니다.”
“이제 좀 자요. 그거 오려면 아직 한참 남았잖아요.”
* * *
인호는 누군가 어깨를 흔들자 잠에서 깨어났다.
“여기서 계속 주무시고 계셨던 거예요?”
소유정의 어머니 정미선이다.
“아-.”
시간을 확인하니 11시가 조금 넘었다.
“혹시-.”
“네.”
정미선이 환하게 웃는다.
“인호 씨가 힘 많이 써 주셨다고 들었어요.”
“왔구나. 그러면 바로 시술하는 건가요?”
정미선이 고개를 흔든다.
“지금은 유정이 상태가 조금 안 좋아서 상태 호전되면 그때 시술할 거래요.”
“근데 시술해도…….”
“저도 알아요. 괜찮아요. 우리 유정이 이대로 떠나보내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인호 씨 덕분에 해볼 수 있는 걸 모두 해 보게 되었잖아요. 시술이 잘되지 않아도 저나 유정이는 인호 씨를 평생 은인으로 여길 거예요.”
주위를 살피니 부장과 저승사자는 보이지 않았다.
“유정이는 좀 어때요? 어제는 많이 아파 보였는데.”
“지금도 아파요. 그래도 어제보단 조금 나아졌어요. 빨리 괜찮아져야 시술도 받을 텐데. 아참, 유정이한테는 아직 시술 얘기하지 않았어요.”
“왜요? 그 이야기를 해 줘야 더 빨리 기운 차릴 텐데요.”
“인호 씨가 직접 얘기해 주세요.”
“제가요?”
정미선이 환하게 웃는다.
“인호 씨 덕분에 우리 유정이 시술받는 거잖아요. 그러니 직접 말해 주세요.”
* * *
몸을 소독한 후 무균복을 입고 병실 안으로 들어간다. 소유정은 모자를 쓰지 않고 있었다. 오랜 시간 항암치료를 해 머리 대부분이 빠져 있었다. 많지 않은 머리가 부끄러운지 소유정이 모자를 찾는다.
“괜찮아. 예뻐.”
소유정이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유정아.”
“네.”
“유정이 몸 안 아파지면 치료할 거야. 조혈모세포라고 들어봤지?”
“네. 구하기 힘들다고 들었어요.”
인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 구하기 힘든 걸 이 아저씨가 구했네.”
“정말요?”
소유정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래. 그러니까 빨리 기운 차리자. 시술받고 건강해져야 설아랑 약속한 것도 지키지.”
인호가 웃으며 장갑을 낀 손으로 소유정의 손등을 톡톡 두드린다.
“아저씨하고도 약속하자. 빨리 낫기로.”
“약속.”
소유정이 애써 웃음 지으며 새끼손가락을 내민다.
* * *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샤워를 한다. 이민정에게 안 씻는다고 구박받지 않기 위해서다. 무엇보다 오늘은 아주 중요한 날이기도 했다.
“유정이 컨디션이 좋을지 모르겠네.”
소유정이 시술받는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휴대폰이…… 왜 꺼져 있지? 아, 충전기를 안 꽂고 잤구나.”
옷을 갈아입으며 휴대폰 충전을 하고 바로 전원을 켠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열 번 넘게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인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메시지를 확인한다. 모두 콜키퍼 메시지였다.
불과 한 시간 전에 온 것들로 발신인이 정미선으로 되어 있었다.
인호가 떨리는 손가락으로 통화 버튼을 누른다.
- 여보세요.
힘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음성이었다.
“네. 네. 알겠습니다. 곧 갈게요.”
인호가 차를 몰아 신성 종합 병원으로 향했다.
인호는 병원에 도착해서 내리자마자 소유정이 있는 병실로 뛰어갔다.
병실 앞 의자에는 정미선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어머님.”
정미선이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정미선의 눈이 빨갛다. 인호를 보자 그녀의 눈에 물기가 번진다.
“유정이가. 유정이가…….”
정미선이 무릎에 얼굴을 묻고 서럽게 운다.
“인호 씨 많이 찾았는데.”
“미안합니다. 제가, 제가…….”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떼 병실 문 앞에 선다. 작은 창문을 통해 병실 안을 본다. 소유정이 침대에 누워있다. 어제까지 몸에 주렁주렁 달려 있던 장치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저녁에 열이 나고 토하기 시작했어요. 의사 선생님하고 간호사분이 어떻게든 해 보려고 했는데.”
인호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정미선이 그 뒤를 따라 들어온다. 인호가 소유정이 누운 침대 곁으로 다가가 무릎을 바닥에 댄다.
축 늘어져 있는 소유정의 손등을 검지로 톡톡 두드린다.
“유정아. 아저씨하고 약속했잖아. 빨리 나아서 시술받고 건강해지기로 아저씨하고 약속했잖아.”
정미선이 그대로 주저앉아 서럽게 오열한다.
“설아하고 꽃구경도 가야지. 유정이는 약속 잘 지키는 착한 아이잖아.”
인호의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다.
“미안해. 아저씨가 미안해. 조금 더 일찍 찾아 줬어야 했는데. 아저씨가 미안해.”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푸른빛이 일렁인다.
검은 정장의 저승사자 옆에 소유정이 서 있었다.
“아저씨. 울지 마요.”
“유정아. 미안해. 아저씨가 미안해. 유정이 아플 때 와서 옆을 지켜줘야 했는데.”
“아저씨도 울보네.”
유정이가 인호의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아준다.
“유정이는 이제 하늘의 별이 될 거예요.”
“그래. 유정이는 하늘에서 가장 예쁜 별이 될 거야.”
“깜깜한 밤에 아저씨 무섭지 않게 반짝여 줄게요.”
“고마워. 유정아, 고마워.”
* * *
소유정의 장례는 수목장으로 치렀다. 화장한 뼛가루를 나무 주변에 뿌려주었다.
“인호 씨. 그간 고마웠어요.”
정미선이 애써 웃는다.
“저도 유정이도 잠시 동안 인호 씨 덕분에 행복했어요. 유정이가 하늘나라 가기 전에 설아에게 약속 지키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전해 달라고 했어요.”
“네. 제가 전해 줄게요.”
“전 이만 갈게요.”
정미선이 몸을 돌린다.
인호는 그녀를 잡지 않았다. 서로 얼굴을 보고 있으면 소유정이 떠오를 뿐이었다.
정미선이 떠난 후 인호는 잠시 그 자리에 머문다.
“유정아, 이제 아프지 말고 항상 웃으며 살아.”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몸을 돌리니 저승사자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원망스럽냐?”
“그럴 리가요. 할 일 하신 건데요.”
“너 없을 때를 노린 거 절대 아니다.”
“알아요. 그게 유정이의 운명이었던 거죠. 괜히 저 때문에 더 많이 아프고 떠난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네요.”
“정미선 씨 말대로 잠시 동안은 행복했을 거다.”
인호가 걸음을 옮긴다.
저승사자는 말없이 인호와 나란히 걷는다.
“좋은 곳으로 갔겠죠?”
“어린아이가 죄를 지었으면 얼마나 지었겠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어린아이들은 모두 극락으로 간다.”
“다행이네요.”
“상제께서 이번 일에 대해서는 네게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겠다고 하셨다.”
“감사하다고 전해 주세요.”
저승사자가 인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 후 멀어진다.
* * *
- 천사님이 모든 질문에 다 대답해 준데.
이선정은 침대에 누운 채 휴대폰을 들고 있다.
“천사가 어디 있어? 말도 안 되지.”
학교에서 친구에게 말을 들을 때에도 그런 게 어디 있냐며 타박을 주었다.
- 진짜야. 천사하고 통화한 애들 엄청 많아.
정작 그 말을 하는 친구에게 천사와 통화 해 봤냐고 물었더니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선정이 휴대폰을 켰다, 껐다를 반복한다.
- 010 1004 1004
번호를 차례대로 누른다.
“번호만 보면 진짜 천사 번호인 줄 알겠네.”
손가락이 통화 버튼으로 가다 멈칫한다.
“세상에 천사가 어디 있다고.”
피식 웃고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하지만 곧 다시 휴대폰을 들고 번호를 누른다.
“…… 천사, 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