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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233화 (233/242)

233. 하극상 (6)

은신 스킬을 이용해 턱밑까지 다다라 있던 태주가 롤링 어택을 시도하려는 보스몹의 복부에 버스터 애로우 한 발을 꽂아 넣은 것이다.

쿠아아아아아!

비명으로 변한 포효와 생닭처럼 털이 날이 간 휑한 뱃가죽.

일격을 가한 곳은 배퉁이였지만, 고통의 여파는 전신으로 퍼져 있었다.

시종일관 빳빳하게 서 있던 털끝이 부위를 막론하고 수양버들처럼 늘어진 것이다.

쿵!

성게에서 설인으로 돌아간 보스몹의 넓은 등판이 바닥에 닿는 순간, 천장에 붙은 고드름에서 파편이 떨어질 만큼 강렬한 진동이 지축을 울렸다.

- “어? 저게 어떻게 된 거지?”

바닥에 대(大) 자로 뻗어버린 보스몹의 낯선 포지션을 목격한 학생들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 “그러게. 배 부분이 아주 만신창이가 됐어.”

- “조금 전 있었던 그 폭발음 때문인가?”

- “근데 누가 그런 거지? 분명 마법이 먹히는 타입은 아니었는데.”

이런저런 추측들을 쏟아내던 학생들이 보스몹의 주위로 조금씩 다가갔다.

바로 그때.

“스톱!”

자신이 먼저 확인하는 것이 순서라고 판단한 이 교수가 학생들을 향해 소리쳤다.

“상황 파악이 끝날 때까진 다들 그대로 있어.”

학생들의 발걸음을 멈춰 세운 이 교수가 보스몹이 널브러져 있는 곳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죽었나?’

보스몹의 팔을 계단 삼아 가슴 위로 올라선 이 교수가 피해 부위를 유심히 내려다본 뒤 얼굴 쪽으로 방향을 틀어 호흡의 유무를 체크했다.

‘일단 숨은 안 쉬는 거 같은데.’

보스 사냥에 성공했음을 확신한 이 교수가 학생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지금 공격한 사람 누구야.”

학생들의 적극성을 끌어내기 위한 하나의 유인책으로 내건 마정석의 주인이자 이번 레이드의 키 플레이어, 다시 말해, 흰색 별을 받아 마땅한 제자가 누구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 “…….”

이 교수의 질문을 받은 학생들이 말없이 서로의 얼굴만 쳐다봤다.

“뭐야, 아무도 없어?”

눈꼴이 시릴 만큼 잘난 척을 해도 충분히 용서가 될 기특한 상황이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슬아야, 네가 그런 거 아니야?”

보스몹의 상처 부위를 육안으로 재차 확인한 이 교수는 마법에 의한 치명상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처음엔 행방을 알 수 없는 태주의 솜씨가 아닐까 생각도 했지만, 화살의 흔적이 발견되지도 않았을뿐더러, 폭발음과 대미지의 면적 등을 고려해 봤을 때 익스플로전(Explosion) 계열의 마법이 사용된 것이란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물론 버스터 애로우가 폭발과 동시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점을 알 리 없는 이 교수의 빗나간 추측이었지만.

“아니요. 제가 안 했는데요.”

이 교수의 지목을 당한 슬아가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다.

“아니라고? 그럼 누가 그랬는지 아는 사람.”

첫 번째 추리에 실패한 이 교수가 목격자를 찾고 있던 바로 그때.

‘……?!’

보스몹의 가슴 위에 올라서 있던 이 교수의 몸이 순간적으로 들썩였다.

폭발의 충격으로 잠시 정신을 잃었던 설인의 호흡이 돌아오면서 폐가 부풀었던 것이다.

‘뭐지 이 끈질긴 생명력은?’

학생들의 접근을 막은 판단은 베스트였지만, 비무장 상태인 교수라고 해서 순순히 보내 줄 보스몹이 아니었다.

쿠아아아아아!

배에 힘을 주기 어려운 상태라 포효의 데시벨은 상당히 약화되어 있었지만, 쩍 벌어진 아가리 사이로 드러난 날카로운 송곳니와 갈퀴를 닮은 기다란 손톱에선 걸리적거리는 모든 생명체를 사정없이 찢어발기겠다는 복수의 의지가 묻어나고 있었다.

‘역시 게이트 밖으로 나가야겠다.’

설인의 가슴에서 뛰어내린 이 교수가 학생들에게 신속한 대피를 명하려던 바로 그때.

“자! 다들 입구 쪽으…….”

펑!

이번엔 천장에서 동일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설인의 숨통이 붙어있다는 것을 확인한 태주가 방어 능력을 상실한 몸뚱이 위로 거대한 고드름을 떨어뜨리기 위해 버스터 애로우 한 발을 더 사용한 것이다.

푹! 푹! 푹! 푹!

표적으로 삼은 거대한 고드름과 함께 주변에 붙어 있던 크고 작은 고드름들이 설인의 몸뚱이 곳곳에 관통하듯이 박혔다.

쿠아아아아아!

자신이 했던 방식 그대로 대갚음을 당한 설인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물론 눈살이 찌푸려지는 날카로운 괴성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지만.

펑!

아가리 속에 발사된 세 번째 버스터 애로우가 설인의 흉측한 대가리를 온데간데없이 만들었다.

- “…….”

포효가 그치면서 찾아온 숨 막히는 정적.

보스몹의 최후를 목격한 모두가 눈앞에서 펼쳐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말을 잇지 못했다.

바로 그때.

▶ 스킬 『은신』이 해제되었습니다.

홀연히 자취를 감췄던 태주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설인의 몸통에 박힌 거대한 고드름 위였다.

마치 자신이 잡은 녀석임을 알리는 트로피 헌터들의 인증샷처럼.

- “어?!”

입 아프게 해명할 필요가 없는, 보스몹의 죽음을 둘러싼 모든 궁금증을 단번에 해소시켜 주는 태주의 완벽한 위치 선정에 선배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 “뭐야! 보스몹을 잡은 게 태주였어? 그것도 혼자서?”

- “말도 안 돼. 분명 마법도 안 먹히고, 냉병기도 무용지물이었는데.”

- “그럼 세 번의 폭발음이 전부 화살 때문이라는 거야?”

- “그러게. 불이 발사되는 건 봤어도 저렇게 폭탄처럼 터지는 경우는 처음인 것 같은데.”

- “근데 화살에서 저 정도 폭발력이 나올 수 있나?”

- “글쎄. 폭탄이 장착된 화살이야 시중에서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만, 저렇게 자유자재로 화살의 종류를 변경할 수 있는 건 매직 아처밖에 없지 않을까? 너도 아까 봤잖아. 태주의 첫 번째 공격이 실패했을 땐 불화살이었다는 거.”

- “와아, 그 말인즉슨, 천장에 있던 고드름도 일부러 떨어뜨렸다는 거네?”

보스몹의 사기적인 방어력에 무력감을 느꼈던 선배들이 이번엔 태주의 압도적인 공격력에 높은 벽을 느꼈다.

- “그나저나 어디 있다 나타난 거지? 순간 이동이라고 하기엔 너무 오래 안 보인 거 같은데.”

- “어? 설마 어쌔신들처럼 은신 스킬을 사용한 거 아니야?”

- “뭐? 은신? 궁수가?”

- “야, 막말로 순간 이동도 하는데, 은신이라고 못하겠어?”

은신이라는 단어가 동기들의 입에 오르내리자 어쌔신 클래스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주엽의 심기가 상당히 불편해졌다.

‘궁수 주제에 어떻게 한 거지?’

어쌔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기술인 은신을 다른 사람도 아닌, 태주가 사용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대체 네 녀석의 한계가 어디까지냐고.’

보스몹 위에 우뚝 선 태주를 올려다보는 순간, 단검을 쥐고 있던 주엽의 손아귀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물론 태주의 대활약이 달갑지 않은 건 장세종과 박성규도 마찬가지였지만.

“이제 어쩌지.”

배가 아프다 못해 속이 뒤집어질 지경인 성규가 세종에게 다가가 물었다.

“하아. 어쩌긴 뭘 어째. 다 끝난 거지.”

체념의 한숨을 내쉰 세종이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마음 같아선 작은 꼬투리라도 잡아 보고 싶었지만, 아무리 봐도 동기들의 공감을 살 만한 실수는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던전 자체를 클리어한 상태라 몬스터에게 기습을 당한다거나 생각지도 못한 함정에 빠지는 그릇된 요행을 바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역시 너였구나.”

설인을 쓰러뜨린 장본인이 태주라는 것을 알게 된 이 교수가 안도의 미소와 함께 학생들을 불러 모았다.

“자, 다들 이쪽으로 모여 봐.”

- “네.”

사방에 흩어져 있던 학생들이 이 교수가 서 있는 설인의 사체 앞으로 집결했다.

활을 거둔 태주 역시 고드름 위에서 내려와 선배들의 틈에 섞였다.

- “태주야.”

누군가 태주의 등 뒤에서 나지막이 말을 걸었다.

“네?”

뒤를 돌아보니 자신이 숄더 차지로 구해준 52번 선배였다.

- “아깐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인사를 못했어.”

별다른 부상 없이 테스트를 마치게 된 52번 응시자가 설인의 사체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 “진짜 고마워. 네가 아니었으면 저기 누워 있는 저 털북숭이처럼 온몸에 구멍이 숭숭 났을 거야.”

“당연한 일을 한 건데요 뭐.”

- “당연하긴. 다들 도망치느라 바빴는데.”

52번 응시자가 진심 어린 감사를 표하고 있는 사이, 학생들이 한데 모인 것을 확인한 이 교수가 앞줄에 서 있던 전사 클래스 학생에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검 좀 잠깐 빌려줄래?”

- “네? 아, 네.”

이 교수의 부탁을 받은 학생이 자신의 검을 두 손으로 공손하게 건넸다.

“고마워.”

검을 받아든 이 교수가 설인의 사체 주위를 돌며 마력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숨통이 끊어진 설인에게선 마력이 발산되지 않았지만, 몸속 어딘가에 숨어 있는 마정석에선 몬스터의 생사 여부와 무관하게 마력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쯤인가 보네.’

푹!

미세한 마력을 느낀 이 교수가 설인의 왼쪽 허벅지에 검을 찔러 넣은 뒤 밑으로 자르듯이 빼냈다.

쿨럭!

검 끝이 빠져나오자 설인의 파란 피가 허벅지를 타고 바닥에 흘러내렸다.

바로 검을 뽑았다면 온몸에 피가 튀었겠지만, 상처를 길게 낸 이 교수의 노련함 덕분에 옷이 더럽혀지는 불상사를 피한 것이다.

쑤욱!

칼을 왼손으로 넘긴 이 교수가 오른쪽 소매를 최대한 걷은 뒤 벌어진 상처 안으로 팔을 집어넣었다.

‘찾았다.’

단단한 대퇴골에 3분의 1쯤 박혀 있던 마정석을 단단히 움켜쥔 이 교수가 있는 힘껏 팔을 빼냈다.

“자, 이건 누구한테 줄까?”

학생들 앞으로 돌아온 이 교수가 마정석을 내밀며 물었다.

물론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지만.

- “…….”

반대하는 이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한 이 교수의 형식적인 질문에 학생들의 시선이 모아졌다.

“으음. 역시 그게 맞겠지?”

모두의 이목이 태주에게 집중된 것을 확인한 이 교수가 긍정의 고갯짓을 했다.

“신태주, 앞으로.”

이 교수가 태주를 불러냈다.

- “…….”

태주가 호명되는 순간, 앞에 있던 선배들이 양옆으로 알아서 길을 터주었다.

“네, 교수님.”

이 교수의 부름에 답한 태주가 선배들 사이로 당당하게 나아갔다.

“자, 이제 네 거야.”

태주를 마주한 이 교수가 약속대로 마정석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첫 레이드의 전리품을 얻게 된 태주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

*

*

잠시 후.

- “어! 나온다!”

2시간 가까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기자들이 게이트에서 나오고 있는 학생들을 발견했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태주가 나오는 순간을 포착하고 싶었던 기자들이 본능적으로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약 5분 후.

- “어? 뭐지?”

카메라를 내린 기자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게이트를 빠져나오는 인원이 더 이상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기다리던 태주의 모습만 보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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