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조 편성 (4)
“공격? 여기서? 그럼 가게 전체가 날아갈 텐데?”
보르가넨이 술집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칠 수도 있어. 워낙 오랜만에 사용하는 거라 힘 조절이 안 될 수도 있고.”
“지금 제 걱정을 하는 겁니까?”
태주가 보르가넨의 기우에 헛웃음을 지었다.
- “여어, 이거 재밌겠는데? 안주가 필요 없겠어.”
고개만 돌리고 있던 손님들이 아예 두 사람을 향하도록 자세를 고쳐 앉았다.
- “법사 대 법사라……. 근데 한쪽만 공격하는 거겠지?”
- “자신을 공격해 보라고 했으니까 그렇지 않을까?”
점멸의 여파로 인해 태주의 클래스를 여전히 법사로 착각하고 있는 손님들이었다.
- “그보다 우린 구경을 할 게 아니라 피해야 되는 거 아니야? 진짜 가게 전체가 날아갈 수도 있잖아.”
- “어이, 주인장, 빨리 가서 막아야 되지 않겠어? 꾸물거리다간 마지막 영업이 될 수도 있다고.”
몇몇 손님들은 테스트가 시작되기 전에 자리를 피하려 했다.
- “이봐, 싸울 거면 나가서 싸우라고.”
컵을 닦고 있던 주인장이 고개를 내빼며 보르가넨에게 소리쳤다.
“거봐, 다들 걱정하고 있잖아.”
일어나 몸을 풀고 있던 보르가넨이 주인의 눈치를 살피며 슬그머니 자리에 앉으려 했다.
“아니요. 꼭 파괴력이 있는 마법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뭐? 그럼 설마.”
“네. 중독이든 마비든 공포든, 가게 안을 어지럽히지 않으면서 고통을 줄 수 있는 방식으로 마음껏 공격해 보세요.”
태주는 보르가넨의 실력을 검증함과 동시에 자신의 특별함을 입증하기 위한 수단으로 저항 스킬을 이용할 작정이었다.
“이 정도는 괜찮죠?”
태주가 주인장의 근심 어린 얼굴을 돌아보며 물었다.
- “…….”
물론 수리비가 걱정됐던 주인장은 태주의 요청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지만.
- “뭐야, 아직도 허락을 안 했어?”
- “거, 장사 하루 이틀 하나.”
- “술 마실 데가 여기만 있는 건 아니지만, 저런 구경은 지금이 아니면 못 본다고.”
- “저 친구들이 나가면 여기 있는 사람들도 다 나갈걸?”
- “이봐, 주인장, 우리 다 나가는 꼴 보고 싶어?”
두 사람의 대결이 궁금했던 손님들의 협박 아닌 협박이 테이블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 “으음. 좋아. 대신 빈 병 하나라도 깨뜨리면 다 물어내야 돼.”
궁지에 몰린 주인장이 결국 수리비 청구에 대한 경고의 말과 함께 승부를 허락했다.
- “어이, 주인장,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여기 술이나 한 병 더 가져와.”
- “하긴, 싸움 구경이야말로 최고의 안주지.”
- “여기도 한 병 더.”
- “나도.”
- “아, 네! 바로 갑니다!”
물론 호프집에 모여 축구 경기를 보듯 흥밋거리를 찾은 손님들의 밀려드는 주문에 축 처졌던 주인장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가고 있었지만.
“자, 그럼 이제 시작해 볼까요?”
주인의 승낙을 얻은 태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벽 쪽으로 이동했다.
“참고로 전 당신의 공격을 피하지 않을 겁니다.”
“뭐?!”
태주를 따라 적당한 위치로 자리를 옮기던 보르가넨이 패배와 직결될 수 있는 파격적인 제안에 화들짝 놀랐다.
“그럼 내 공격을, 그것도 맨몸으로 고스란히 받겠다는 건가?”
자신의 두 귀를 의심한 보르가넨이 태주의 몸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실언인지 아닌지를 확인했다.
“네. 뭐, 문제 있습니까?”
태주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덤덤하게 되물었다.
- “뭐지? 딱히 이길 생각이 없나?”
- “에이, 그래도 뭔가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저러겠지. 좀 전에 맞은편 자리로 순식간에 이동한 거 못 봤어?”
- “글쎄. 마비야 뭐, 솔직히 추가 공격이 없으면 잠깐 불편하고 마는 정도지만, 중독이나 공포에 걸리면 어휴, 제대로 서 있지도 못 할 텐데.”
- “그러게. 괜히 허세 부리다가 바로 후회하는 거 아니야?”
- “나도 못 버틴다는 것에 한 표.”
- “오오, 이거 갈수록 흥미진진해지는데?”
저항 스킬의 존재를 알 리 없는 손님들이 보르가넨과 동일한 반응을 보이며 태주의 승리를 의심했다.
“적당히 할 테니 너무 무리하진 말게.”
태주를 마주한 보르가넨이 긴가민가한 얼굴로 당부의 말을 전했다.
바로 그때.
“디지니스!”
보르가넨이 현기증만을 유발하는 다소 기초적인 상태 이상 마법을 태주에게 시전했다.
물론 아무리 기초적인 수준이라고 해도 그 근본은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상태 이상 마법이었기 때문에 단순히 차멀미나 빈혈 증세 정도로 가볍게 여길 순 없었지만.
▶ 패시브 스킬 『저항』이 발동되었습니다.
멀쩡했던 시야가 흐려질 만큼 지독한 어지러움에 빠진 태주의 눈앞에 기다리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 상태 이상(현기증) 공격의 대미지가 100% 감소되었습니다.
▶ 목걸이의 효력이 발동되었습니다.
▶ 상태 이상 대미지가 5% 감소되었습니다.
▶ 반지의 효력이 발동되었습니다.
▶ 상태 이상 대미지가 50% 감소되었습니다.
저항 스킬과 함께 장신구에 붙은 옵션들까지 발동되자 태주의 눈앞을 아득하게 했던 어지러움 증세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됐네.’
보르가넨의 첫 번째 공격을 무난하게 무력화시킨 태주가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속으로 비웃었다.
‘어?!’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는 태주의 멀쩡한 모습에 당황한 보르가넨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봤다.
‘분명 제대로 들어갔는데…….’
보르가넨의 입장에선 한 달이 아니라 일 년을 쉬었다 사용해도 성공시킬 수 있을 만큼 평이한 난이도의 마법이었지만, 현기증이라는 말이 무색한 태주의 초롱초롱한 눈빛에 급기야 마법의 시전 여부조차 의심받는 상황까지 발생하게 되었다.
- “뭐야, 왜 안 해?”
- “아니야. 좀 전에 했어.”
- “했다고? 근데 왜 멀쩡해?”
- “그러게. 그냥 말만 한 거 아니야?”
- “어이,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 설명 좀 해 봐.”
보르가넨을 향한 손님들의 불만 섞인 해명 요구가 곳곳에서 빗발쳤다.
“나도 잘 모르겠네…….”
현기증이 날 것 같은 쪽은 오히려 보르가넨이었다.
- “뭐? 모르겠다고? 네가 모르면 누가 알아?”
- “그래. 대체 마법을 쓴 거야 만 거야?”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 보르가넨이 손님들의 집요한 추궁에 난처해하던 바로 그때.
“마법엔 문제가 없었어.”
벽에 등을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있던 태주가 마법에 걸린 당사자로서 보르가넨을 대신해 입을 열었다.
- “문제가 없었다고? 근데 왜 넌 아무렇지 않은데?”
술집 안에 있던 하급 기사들 중 한 명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믿을 수 없는 진실에 반박했다.
“정 그렇게 못 믿겠으면 이쪽으로 와서 같이 맞아 보든가.”
자신의 능력을 부각시켜 줄 비교대상이 필요했던 태주가 의심 많은 하급 기사에게 특별한 체험을 제안했다.
물론 한 번 더 현기증을 극복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하급 기사에게만 따로 마법을 시전할 경우 사람을 가려서 공격했다는 등의 또 다른 의심을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좋아. 내가 못 할 줄 알고?”
겉으로 보이는 태주의 온전한 모습에 자신감을 얻은 하급 기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벽 쪽으로 겁도 없이 나아갔다.
- “자, 판단은 내가 할 테니까 허튼 수작 부리지 말고, 조금 전이랑 똑같이 해 봐.”
텅! 텅!
자신의 흉갑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기세 좋게 등장한 하급 기사가 맞은편에 위치한 보르가넨을 향해 명령하듯이 말했다.
“알았네. 대신 시전 대상이 두 명이니 균등한 피해를 위해선 광역 마법을 사용해야겠군.”
태주와 하급 기사를 번갈아 바라보던 보르가넨이 두 팔을 앞으로 뻗으며 마나의 운용에 집중했다.
바로 그때.
“디지니스!”
찰나의 침묵 끝에 내뱉은 보르가넨의 외침.
주문은 동일했지만, 보르가넨의 의지와 소요되는 마나의 차이로 인해 피해의 범위는 두 사람을 커버할 만큼 충분히 확장되어 있었다.
▶ 상태 이상(현기증) 공격의 대미지가 100% 감소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태주를 지켜주는 반가운 문구가 눈앞에 떠올랐다.
물론 언제 그랬냐는 듯 호기롭게 나섰던 하급 기사의 허리는 구토 증세를 유발하는 강력한 현기증으로 인해 굽을 대로 굽어 있었지만.
“크윽!”
자신의 머리를 터질 듯이 움켜쥔 하급 기사가 처절한 신음소리를 내며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 “어! 왜 한 명만 저러지?!”
- “저기 저 검은 머리는 또 멀쩡한데?”
두 사람의 상반된 모습에 놀란 구경꾼들의 눈과 목소리가 동시에 커졌다.
- “뭐야, 그럼 진짜 마법에 대한 내성 같은 게 있는 거야?”
- “도대체 정체가 뭐지? 혹시 대마법사인가?”
- “에이, 그러기엔 나이가 너무 어리잖아.”
- “혹시 마법을 무력화시키는 방어구나 장신구를 몰래 지니고 있는 거 아니야?”
- “근데 그렇게 따지면, 저 기사도 할 말이 없지 없나? 솔직히 투구만 벗어놨지 마법이 깃든 갑옷으로 전신을 꽁꽁 싸매고 있잖아.”
그리고 이어진 온갖 추측들.
물론 각자의 의견은 달랐지만, 태주를 바라보는 달라진 시선과 그 시선에 담긴 놀라움은 이견 없이 일치하고 있었다.
“괜찮은가?!”
극심한 어지러움을 호소하고 있는 하급 기사의 안쓰러운 모습에 미안한 마음이 든 보르가넨이 회복 마법을 시전하기 위해 팔을 뻗던 바로 그때.
우당탕탕!
중심을 잃은 하급 기사가 한쪽 벽에 쌓여 있던 의자들과 함께 요란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웁! 우웩!”
심지어 조금 전까지 마셨던 술을 남김없이 게워내며 바닥에 널브러졌는데, 그 광경을 목격한 보르가넨의 입장에선 마법에 걸려도 당황스럽고, 안 걸려도 당황스러운 다소 난감한 상황이었다.
- “내가 빈 병 하나라도 깨뜨리면 다 물어내야 된다고 그랬지!”
가게 안이 엉망이 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주인장이 하급 기사가 있는 곳으로 헐레벌떡 뛰어가 의자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물론 태주의 비범함도 함께 목격한 탓에 언성만 높일 뿐 태주의 얼굴조차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제 믿음이 좀 생겼습니까?”
보르가넨에게 다가간 태주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놀랍군. 이토록 평온한 반응은 멜라임조차 불가능했는데……. 대체 이런 강력한 내성은 어떻게 기른 건가?”
“글쎄요. 단순히 기른다고 되는 게 아니란 건 법사인 본인이 더 잘 아실 텐데.”
“그야 그렇지만, 이런 이례적인 경험은 난생 처음이라……. 아무튼 자네의 강한 자신감을 근거 없는 허세로 속단한 것에 대해선 내 진심으로 사과하겠네.”
“다행이네요. 지금이라도 오해가 풀려서. 아, 그리고 당신이 제게 짐이 될지 힘이 될지에 대한 판단은 잠시 유보하도록 하겠습니다. 솔직히 이런 기초적인 마법으론 실력을 가늠하기 어렵거든요.”
“그럼 난 자네와 함께 갈 수 없는 건가?”
평가 보류 결정에 실망한 보르가넨이 간절한 눈빛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지금 그 꼴로는 좀 곤란하겠는데요?”
태주가 보르가넨의 초라한 행색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단 법사의 모습부터 갖춘 다음에 고민해보는 걸로 하죠.”
순간, 태주의 시선이 술집 안에 있던 2명의 법사에게로 옮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