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54화 (54/242)

054. 콘텐츠 제작의 이해 (2)

“먹빵여신이 누구예요? 듣기론 우리 과라고 하던데.”

학생들을 둘러보던 정 교수의 입에선 태주의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

“뭐? 먹빵여신? 그게 누구야?”

자신의 두 귀를 의심한 원무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소영을 돌아봤다.

“뭐야, 너 윷튜브에서 먹방 같은 거 안 봐? 걔 요즘 한국대 여신이다 뭐다 해서 완전 잘나가는데.”

원무와 달리 소영은 먹빵여신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먹방? 남이 밥 먹는 걸 왜 구질구질하게 쳐다보고 있어. 안 그래 태주야?”

원무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태주에게 공감을 구하려 했지만, 정작 태주는 원무가 아닌 먹빵여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

“교수님?”

맨 앞줄에 앉아 있던 여학생 한 명이 발랄한 목소리를 내며 반쯤 손을 들었다.

“어? 학생이 바로 그 먹빵여신?”

먹빵여신을 발견한 정 교수가 연예인이라도 본 것처럼 반색을 하며 물었다.

“네, 교수님. 신방과 신입생 임지수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신입 크리에이터인 지수가 도도한 표정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 “야, 실물 장난 아니다.”

- “그렇게 먹어도 살이 안 찌나 봐.”

- “설마 먹뱉은 아니겠지?”

- “교수님도 아실 정도면 성공했네.”

먹빵여신의 등장에 강의실 안이 제법 떠들썩해졌다.

“어? 뭐야, 이거. 내 소개를 했을 때보다 더 반응이 좋은데요?”

- “하하하하!”

정 교수의 장난스러운 질투가 학생들과의 거리감을 허물던 바로 그때.

먹빵여신의 채널을 검색해보던 원무가 호들갑을 떨며 휴대폰 화면을 들이밀었다.

“야! 태주야, 이거 봤어?! 저 먹빵인지 뭔지 하는 애 구독자 수가 무려 30만이래! 30만!”

윷튜브는 도, 개, 걸, 윷, 모로 콘텐츠를 평가하는 동영상 플랫폼의 명칭인데, 구독자 10만이 넘으면 은색 윷놀이 말판을, 100만이 넘으면 금색 윷놀이 말판을 선물로 받을 수 있었다.

짝!

“야, 그래서 내가 요즘에 핫하다고 그랬잖아.”

답답했던 소영이 손바닥으로 원무의 등짝을 내리치며 말했다.

“근데 이거 하면 한 달에 얼마나 버나? 100? 200?”

먹빵여신의 업로드 영상들을 엄지로 밀어 올리던 원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으음. 이 정도 구독자에 조회수면, 최소 1000단위는 찍지 않을까?”

“뭐?! 처, 천만 원?! 진짜?!”

소영의 추측성 발언에 흥분한 원무가 침까지 튀겨가며 급격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아, 이런 대박 아이템을 왜 이제야 알았지?”

윷튜브의 수익성에 충격을 받은 원무가 심각한 표정으로 스스로를 자책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등록금에 장비값에 돈 나갈 곳 천지인데, 이걸로 대박 쳐서 플렉스 좀 해야겠다.”

“글쎄. 생각보다 쉽지 않을걸?”

원무의 휴대폰 화면을 손바닥으로 가린 소영이 반대편 손으로 원무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봤을 땐 각성자가 되는 것보다 윷튜버로 성공하는 게 더 어렵거든.”

“뭐?”

“아니, 그렇잖아. N차 각성이면 몰라도 초기 각성 자체는 말 그대로 랜덤하게 걸리는 건데, 윷튜버는 본인의 노력과 시간을 온전히 투자해서 성과를 내는 거잖아.”

“그럼 나도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면 되지.”

개인 방송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원무는 여전히 윷튜브를 만만하게 여기고 있었다.

“하아…… 그래서 무슨 콘텐츠를 할 건데?”

소통의 벽을 느낀 소영이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먹방.”

“뭐? 먹방?”

소영이 원무의 대답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먹빵여신이 올린 영상을 인기순으로 정렬하면 맨 위에 ‘햄최몇?’이라는 제목이 뜨는데, 조회수만 무려 200만이 넘어. 한마디로 구독자가 아닌 사람들까지 눌러봤다는 거지.”

“그래서. 너도 햄최몇에 도전하겠다고?”

“너도 알잖아. 나 완전 대식가인 거. 지금 보니까 빵 종류만 먹어서 먹빵여신이라는데, 앉은 자리에서 햄버거를 20개나 먹네.”

“뭐?! 20개를 혼자서?!”

먹빵여신의 존재 정도만 알고 있던 소영이 지수의 가냘픈 몸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20개면 거의 단체주문 아니야? 그냥 일렬로 쌓아도 이 정도 높이인데?”

놀란 소영이 책상 위에 얹어둔 손을 머리 위까지 들어올렸다.

“뭐, 도전해보기 전까진 모르는 거니까.”

지수의 뒤통수를 노려보던 원무가 갑자기 비장한 눈빛으로 입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야, 그나저나 너 라방 중에 후원 리액션 같은 거 할 수 있어? 난 민망해서 절대 못할 거 같은데.”

크리에이터들의 후원 리액션을 머릿속으로 떠올린 소영이 턱을 당기며 격하게 몸서리쳤다.

“라방? 라방이 뭔데?”

“뭐긴 뭐야, 라이브 방송이지. 아니, 이런 기초적인 것도 모르면서 무슨 1000만 원을 벌겠다는 거야.”

“용어야 차차 익숙해지면 되지. 그리고 막말로 한 달에 1000만 원을 벌 수 있는데, 그깟 후원 리액션이 문제야? 난 의자에 올라가서 춤도 출 수 있어.”

“뭐? 춤? 너 진짜 춤추기만 해 봐. 그날로 당장 결별이야.”

상상만으로도 창피했던 소영이 원무의 미간에 검지를 들이대며 단단히 경고했다.

바로 그때.

딸깍! 딸깍!

인터넷에 접속한 정 교수가 대형 스크린에 강의 계획서를 띄웠다.

“자, 여러분, 우리 강의의 이름이 뭐죠?”

- “콘텐츠 제작의 이해요.”

스크린을 응시하던 학생들이 합창을 하듯 대답했다.

“네, 맞아요. 콘텐츠 제작의 이해. 그럼 문자 그대로 콘텐츠에 대해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겠죠?”

- “네.”

“좋아요. 그럼 지금부턴 강의 계획서상엔 없는 진짜 강의 계획서에 대해 이야기해 볼 거예요.”

또 다른 의미의 재수강자인 태주를 제외한 모든 학생들이 정 교수의 말장난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전 여러분들이 여느 교수님들의 기준보다 좀 더 창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주입식 교육은 다들 받을 만큼 받았잖아요. 적어도 한국대에 들어올 정도면. 그렇죠?”

- “네.”

정 교수의 말대로 한국대는 대한민국 최고의 수재들이 모인 꿈의 대학이었다.

물론 수능 점수만 들어가지 않을 뿐, 한국대 헌터학과 역시 모든 헌터 지망생들의 목표이자 최고의 각성자들로 구성된 독보적인 양성기관이었지만.

“그래서 전 중간, 기말의 구분 없이, 심지어 그 흔한 레포트나 인간이란 존재 자체를 증오하게 만드는 무임승차의 결정판인 조별 과제마저 철저히 배제한 채, 오직 콘텐츠 하나로만 여러분들의 강의 성취도를 평가할 겁니다. 어때요? 다들 불만 없죠?”

- “네!”

정 교수의 파격적인 평가 방식이 전공 수업의 부담감을 안고 있던 학생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다.

물론 ‘콘텐츠 하나’라는 표현에 함정이 있다는 건 태주와 정 교수만 알고 있었지만.

“야! 소영아! 들었어?! 완전 대박! 이거 시험도 없고 과제도 없대!”

“그러게. 네 말 듣고 수강하길 잘했는데? 아주 칭찬해.”

덩달아 기분이 업 된 소영이 엉덩이를 들썩이던 원무의 등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토닥였다.

‘그렇게 마냥 좋아할 순 없을 텐데.’

태주가 원무와 소영의 설레발을 속으로 비웃었다.

조회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막강한 팔로워 수를 지닌 자신과 제로베이스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두 사람은 그 출발선부터가 달랐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딸깍! 딸깍!

강의 계획서를 최소화한 정 교수가 이번엔 윷튜브 화면을 스크린에 띄웠다.

“이 중에 혹시 먹빵여신처럼 윷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 손? 아, 물론 계정만 판 거 말고, 자신이 제작한 영상을 실제로 업로드 하는 케이스만.”

- “…….”

정 교수의 물음에 다들 고개만 바쁘게 움직일 뿐, 지수를 제외한 그 어떤 학생도 자신 있게 손을 들지 못했다.

“아무도 없어요? 이번 학기 학점은 조회수로 판단할 건데?”

윷튜브로 성적을 매기겠다는 정 교수의 설명에 학생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어차피 먹빵여신 빼고는 다 처음해보는 거니까. 아, 그리고 우리 수업은 상대 평가라 100명 중에 A는 20명, B는 30명까지 받게 될 거예요. 물론 +, -는 그 안에서 또 세분화 되는 거고.”

윷튜브 검색창에 먹빵여신이라고 입력한 정 교수가 30만 구독자를 지닌 지수의 채널로 들어갔다.

“지수야.”

“네, 교수님.”

“가장 오래된 영상의 업로드 날짜가 작년 12월인데, 고작 3개월 만에 30만 구독자를 얻은 거야?”

“네. 수능 끝난 기념으로 재미삼아 올린 건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지금은 아예 PD랑 편집자까지 따로 구해서 퀄리티를 높이는 중이고요.”

“우와, 완전 방송국 시스템이네? 진짜 대단하다 너.”

정 교수가 이번 학기 강의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지수의 체계적이고도 전문적인 모습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근데 평가를 위해선 너도 새로운 채널을 파야 되는데 괜찮겠어?”

“네, 전 상관없어요.”

정 교수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 지수의 목소리엔 근거 있는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오케이. 그럼 지금부터 평가 방식에 대해 설명할게요. 일단 다음 수업 시간까지 채널을 만들어서 영상 한 개를 업로드 해주세요. 채널 주소는 모두가 공유할 수 있게 강의 게시판에 올려둘 거니까 만드는 즉시 제 메일로 링크 보내는 거 잊지 마시고요. 자, 여기까지 질문?”

- “영상은 꼭 1개만 올려야 되나요?”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고 물었다.

“네. 앞으로 종강 때까지 매주 1개씩만 올릴 수 있어. 그래야 평가도 쉽고, 물량공세로 조회수만 올리는 편법도 방지할 수 있으니까요. 자, 또 다른 질문?”

- “저, 근데 교수님, 저희가 30만 윷튜버랑 경쟁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습니까? 솔직히 채널을 새로 판다고 해도 그 구독자들이 고스란히 넘어와서 조회수를 늘려줄 게 뻔한데.”

이번엔 다른 학생이 이의 제기에 가까운 질문을 던졌다.

“글쎄요. 제가 생각하기엔 지수처럼 먼저 시작한 사람의 노력을 인정해주는 것도 형평성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인 거 같은데요?”

정 교수가 형평성 논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럼. 당연하지.’

태주가 정 교수의 똑 부러진 답변에 조용히 수긍했다.

사실 모든 관심이 지수에게 쏠려 있을 뿐, 태주 역시 먹빵여신처럼 논란이 될 만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 또 다른 질문?”

- “…….”

앞선 질문자들과 동일한 의문을 품고 있던 학생들이 정 교수의 반박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없어요? 없으면, 지수야.”

“네?”

“잠깐 앞으로 나와서 콘텐츠 제작자로서의 경험담과 주의할 점 등을 다른 친구들에게 소개해줄 수 있어?”

“네, 교수님.”

자리에서 일어난 지수가 강의대를 향해 자신 있게 나아갔다.

‘30만이라…….’

물론 먼저 출발한 경주견을 관망하는 치타는 멀찌감치 떨어진 자리에서 조용히 웃고 있었지만.

‘하루 만에 찍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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