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52화 (52/242)

052. 병문안 (3)

【스킬】

5. 간파

5번째 스킬이자 4번째 액티브 스킬인 간파가 태주의 스킬 목록에 추가됐다.

‘간파라…….’

[간파]

- 효과: 반경 20미터 안에 있는 대상의 급소, 약점, 손상 부위 등을 간파할 수 있음.

- 소모 마나: 50

- 재사용 대기시간: 없음

‘이런 스킬이 있었으면, 핵을 찾는 개고생도 안 했을 텐데.’

다른 스킬들에 비해 소모되는 마나의 양도 적었지만, 점멸과 마찬가지로 쿨타임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뭐, 덕분에 장비 테스트도 마치고, 연사 능력도 재확인했지만.’

슈팅 글러브를 낀 손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태주가 과제의 종료를 알리는 강렬한 빛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 현실로 돌아갑니다.

*

*

*

한국대 병원에 도착한 태주가 메시지에 적힌 병실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똑똑.

‘회장님께선 아직도 대화 중이신가?’

벽을 사이에 두고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는 5차 각성자의 마력이 병실 안에선 느껴지지 않았다.

‘아차, 진우가 점멸로 들어와 달라고 그랬지?’

손잡이를 잡으려던 태주가 병실 위치와 함께 적힌 진우의 요구 사항을 떠올리며 잠시 멈칫했다.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노크로 인기척을 마친 태주가 팬서비스 차원에서 약간의 이벤트를 선사했다.

바로 그때.

“으아악!”

화장실에서 나오던 진우가 태주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뭐지?’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턱!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한 태주가 진우의 등 뒤로 이동해 넘어지는 것을 막아줬다.

“어? 형이 날 또 한 번 구해줬네? 헤헤.”

스스로도 민망했던 진우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태주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뭐야, 너. 노크 소리 못 들었어?”

태주가 비스듬하게 기대고 있던 진우의 몸을 똑바로 세우며 물었다.

“화장실에서 눈곱 떼느라 못 들었어. 형도 알잖아. 물 틀어 놓으면,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거.”

진우가 까치집이 생긴 뒷머리를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말했다.

“와…… 근데 너 혼자 쓰기에 너무 넓은 거 아니야? 이건 뭐, 침대만 바꾸면 바로 호텔인데?”

6인실에 익숙한 태주가 50평이 넘는 VVIP실의 크기와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에 수준 차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러게. 밥도 호텔처럼 나오면 완전 짱인데…… 형, 오렌지 주스 괜찮아?”

“그냥 아무거나 줘.”

“어? 그럼 진짜 아무거나 줘야겠다.”

냉장고를 들여다보던 진우가 솔잎으로 만든 음료수를 꺼내 태주에게 건넸다.

“어? 이거 그 치약 맛 나는 음료수 아니야?”

호불호가 강한 음료수를 받아든 태주가 표정에서부터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어? 나는 민트 맛이 나서 나쁘지 않던데?”

같은 것을 들고 온 진우가 캔 뚜껑을 따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그럼 너 설마 민트 초코도 좋아해?”

“민초? 없어서 못 먹지.”

확고한 취향을 밝힌 진우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음료수를 들이켰다.

“심지어 내 게임 아이디도 민초의 삶이야.”

“아, 그랬구나. 몰랐네.”

억지웃음을 짓고 있던 태주가 손에 든 음료수를 인벤토리 안에 슬쩍 집어넣었다.

바로 그때.

“진짜 넓기는 넓네.”

음료수를 입에서 뗀 진우가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병실 안을 둘러봤다.

“근데 아무리 호텔처럼 꾸며 놔도 병실은 병실이잖아. 눈만 뜨면 낯선 천장. 다음엔 또 다른 병원 특실에 누워 있겠지 뭐. 헤헤.”

소리 내어 웃고 있었지만, 진우의 눈엔 왠지 모를 슬픔이 어려 있었다.

“아! 그건 그렇고, 아까 그 순간 이동, 완전 신기하다.”

괜한 소리로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 진우가 호들갑스러운 리액션을 보이며 황급히 말을 돌렸다.

“진짜 어떻게 하는 거야? 나도 가르쳐주면 안 돼? 우리 할아버지도 이런 건 못 한다고 그랬거든.”

“아, 이거?”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진우의 장단에 맞춰주기로 한 태주가 모른 척, 친근한 농담으로 어색함을 풀어 나갔다.

“영업 비밀이라 안 돼.”

진우의 옆으로 이동한 태주가 어깨동무를 하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아! 진짜!”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겨우 웃음을 되찾은 진우가 태주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밀치려 했지만, 태주는 어느새 반대편으로 이동해 다른 팔로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건 병문안 선물로 너무 약한 거 아니야?”

병문안 선물 대신 점멸을 보여 달라던 진우의 요청을 아낌없이 들어주던 태주가 빈손을 보여주며 의아하게 물었다.

“아니야. 이게 지금까지 받은 선물들 중에 제일 좋아. 진짜야.”

눈이 동그래진 진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격하게 손사래를 쳤다.

“난 솔직히 형이 오늘 못 온다고 할 줄 알았거든.”

“내가? 왜?”

“형 이제 완전 유명해졌잖아. 人수다 팔로워도 1000만이 넘고. 사실 입원했다는 것도 알릴까 말까 엄청 고민했었어. 괜히 바쁜데 할아버지 때문에 거절하지 못할 것 같아서.”

태주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던 진우가 말끝을 흐리며 시선을 떨궜다.

바로 그때.

“어쭈. 이게 아주 날 띄엄띄엄 알고 있었네? 어? 그래 안 그래. 야, 말해봐 이 자식아.”

헛웃음을 짓게 만드는 진우의 귀여운 고민에 태주가 헤드락을 거는 척, 팔로 머리를 휘감았다.

“아! 아! 잘못했어! 항복!”

머리를 붙잡힌 진우가 태주의 팔뚝에 탭을 치며 발을 동동 굴렀다.

물론 외동아들인 자신을 친동생처럼 대해주는 태주의 악의 없는 장난을 진우도 즐기고 있는 중이었지만.

“그리고 팔로워도 1000만이 아니라 1500만이야 인마. 어디서 어설프게 뒷조사는 해가지고.”

진우의 기분을 풀어주던 태주가 흥미로운 가설 하나를 떠올렸다.

‘어? 잠깐. 간파 스킬이 꼭 급소만 알려주는 건 아니잖아.’

태주의 기억으론 분명 간파 스킬의 적용 범위에 손상 부위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럼 혹시 불치병의 원인도 알 수 있는 거 아니야?’

궁금증이 생긴 태주가 간파 스킬의 첫 대상으로 진우를 택했다.

▶ 스킬 『간파』를 사용하시겠습니까? (Y/N)

‘지목 방식은 도발이랑 비슷하네.’

▶ 간파할 대상을 3초간 바라보십시오.

헤드락이 걸린 진우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던 태주가 속으로 숫자를 세어 나갔다.

‘하나…… 둘…… 셋.’

▶ 스킬 『간파』가 발동되었습니다.

순간, 간파 대상의 공략 포인트가 태주의 머릿속에 데이터처럼 전송됐다.

‘역시 몸 전체가 약점이네.’

각성을 하지 못한 12살 아이의 신체는 경중을 따질 것도 없이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었다.

‘기절할 때 다친 곳도 손상 부위로 체크되어 있고.’

심지어 낙상의 결과로 발생한 외상 지점과 채 아물지 못한 흉터들의 위치 등도 정확하게 집어내고 있었는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몸에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의료진의 소견과 달리 진우의 심장에서 심각한 수준의 손상이 감지되었다는 것이다.

‘근데 이 정도 심각성이면 병원에서 몰랐을 리가…… 어?’

심장의 상태를 확인하던 태주가 뒤이어 보고된 정밀 분석 메시지에 미간을 좁혔다.

▶ 간파 대상의 심장에 재앙 등급의 마력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뭐?! 재앙 등급?!’

헤드락을 걸고 있던 태주의 팔에 저절로 힘이 풀렸다.

“이때다! 도망치자!”

태주의 심정을 알 리 없는 진우가 해맑은 얼굴로 병실 안을 뛰어다녔다.

‘내가 왜 재앙 등급이나 되는 마력을 못 느꼈지? 분명 미세한 마력의 차이도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고 확신했는데.’

상당한 충격을 받은 태주가 자책을 하듯 스스로에게 따져 물었다.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어떻게 비각성자의 몸으로 그런 엄청난 마력을 견딜 수 있는 거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불치병의 실체에 태주가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재앙 등급을 지닌 장비의 경우만 봐도 사용자를 파멸로 이끄는 저주로 인해 구해도 쓸 수가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유가 뭘까?’

▶ 스킬의 효력이 종료되었습니다.

뜻밖의 고민거리를 얻은 태주의 주름진 미간이 간파를 마친 이후에도 쉽게 펴지지 않고 있었다.

바로 그때.

‘그래. 어쩌면 재앙 등급의 마력을 다스릴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 진우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발상을 전환한 태주가 인류 최초의 7차 각성자 등극을 위한 성장의 원동력을 진우의 심장에서 찾으려 했다.

“태주 형, 거기서 뭐해.”

멀찌감치 숨어 있던 진우가 얼굴만 내민 채 태주가 있는 곳을 쳐다봤다.

“어, 가.”

생각을 정리하고 있던 태주가 진우의 부름에 점멸을 사용하려던 바로 그때.

똑똑!

‘어?’

태주의 고개가 문 쪽에서 느껴지는 강한 마력에 이끌려 저절로 돌아갔다.

‘협회장님?’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리자 송기철 협회장과 진우의 상태를 체크하러 온 간호사의 모습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협회장과 눈이 마주친 태주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

“일찍 왔구나.”

병실 안으로 들어선 협회장이 태주의 방문을 미소로 반겼다.

“안 그래도 심상치 않은 마력이 느껴져서 짐작은 하고 있었다.”

태주가 그랬듯, 협회장 역시 태주가 발산하는 마력을 정확히 감지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좀 전에 태주 형이 순간 이동하는 거 보여줬어! 완전 짱이야!”

협회장에게 달려간 진우가 들뜬 목소리로 자랑을 쏟아냈다.

“오오, 그래? 그럼 나머지 얘기는 주사부터 맞고 들을까?”

손자의 재롱에 맞장구를 쳐주던 협회장이 진우의 양쪽 어깨를 잡아 간호사가 있는 쪽으로 돌렸다.

“아아, 나 진짜 하나도 안 아픈데.”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기분이 다운된 진우가 어깨와 팔을 축 늘어뜨린 채 입을 삐쭉거렸다.

“진우야, 너 태주 형이 보는 앞에서 이렇게 애기처럼 굴 거야? 너 나중에 태주 형처럼 유명한 헌터가 되고 싶다며. 그럼 주사 정도는 남자답게 맞아야지. 안 그래?”

“알았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마지못해 대답한 진우가 태주를 의식하며 간호사에게 다가갔다.

“병의 원인은 아직도 못 밝힌 겁니까?”

진우의 비밀을 알게 된 태주가 협회장의 인지 여부를 자연스럽게 떠보았다.

“하아…… 안타깝게도 그렇다는구나.”

태주의 질문에 한숨을 내쉰 협회장이 주사를 맞고 있는 진우의 작은 등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뭐지? 정말 모르고 있는 건가?’

손자의 생명이 달린 문제를 외면할 만큼 냉정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간파 스킬의 존재를 숨기고 싶어 하는 태주 역시 섣부른 발설로 불필요한 의심을 사고 싶진 않았다.

‘되도록이면, 상황 파악이 끝날 때까지 밝히지 않는 게 좋겠어.’

진우의 심장이 얼마나 더 버텨줄지는 알 수 없지만, 다행히 회귀 직전까지도 진우와 관련된 안타까운 소식은 들은 적이 없었다.

‘형이 5년 안에 고쳐줄게. 물론 날 위해서도.’

진우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태주가 공유할 수 없는 약속과 함께 주먹을 말아 쥐었다.

바로 그때.

“아 참, 그리고…….”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던 협회장이 태주를 돌아보며 조용히 운을 뗐다.

“지난 주말에 5대 길드의 수장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 했었다.”

“아, 네.”

“물론 협회와 길드간의 소통을 위한 형식적인 모임이었지만, 자리를 파하기 전, 아주 재미있는 의견이 하나 나왔었지.”

“재밌는 의견이요?”

“그래. 너와 관련된 아주 흥미로운 제안이 말이다.”

눈을 마주친 협회장이 태주의 한쪽 어깨에 손을 얹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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