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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46화 (46/242)

046. 직업 탐구1 (4)

철제 상자의 손잡이를 잡는 순간 알 수 있었다.

폭주 스킬 없이도 충분히 들 수 있다는 것을.

‘역시.’

성공을 직감한 태주가 두 손으로 상자를 번쩍 들었다 놨다.

쿵!

- “어! 뭐야 이거!”

- “야! 너 갑자기 왜 그래!”

신나게 추를 들고 오던 아이들이 태주의 괴력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냥 한번 들어보고 싶어서.”

태주가 덤덤한 말투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 “아무리 추를 몇 개 뺐어도 그렇지 어떻게 그 무거운 걸 혼자.”

- “태주야, 진짜 순수하게 힘으로만 든 거야? 혹시 부유 마법 같은 걸 쓴 건 아니고?”

“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상식적인 추측을 해보던 아이들이 태주의 태연한 대답에 또 한 번 놀랐다.

- “와…… 이건 뭐, 화장실도 가기 전에 지리겠네.”

- “아니, 태주 같은 말 근육 체형에서 어떻게 저런 무지막지한 힘이 나오지?”

- “그러게. 완전 탱커형 궁수네.”

- “근데 좀 전에 순간 이동을 했으니까 어쌔신형 궁수도 되는 거 아니야?”

- “그렇게 따지면, 클래스 자체가 매직 아처니까 법사형 궁수지.”

- “아니. 학과장님이 만든 결계를 맨손으로 깼으니까 태주는 무투가형 궁수야.”

- “야, 새터 때 그렇게 술을 먹고도 멀쩡했으면, 당연히 힐러형 궁수 아니냐?”

태주의 능력에 경외감을 느낀 아이들이 진지한 농담으로 입씨름을 하고 있던 바로 그때.

그 광경을 목격한 엄 교수의 입에서 나지막한 감탄사가 혼잣말처럼 흘러나왔다.

“편견이었군.”

*

*

*

10분간의 짧은 휴식을 뒤로한 아이들이 아쉬운 표정으로 훈련장에 모여들었다.

“혹시 팔에 문제 있는 사람, 손.”

엄 교수가 수업에 들어가기 전, 아이들의 몸 상태부터 체크했다.

- “…….”

2열 횡대로 선 아이들이 자신의 팔뚝을 만지작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좋아. 주목. 그럼 2차 테스트를 시작하기에 앞서 직업 탐구1의 방향성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도록 하겠다.”

이목을 집중시킨 엄 교수가 아이들을 향해 휴대폰 화면을 들어보였다.

- “어? 이게 무슨 사진이에요?”

- “혹시 가운데 있는 덩치 크신 분이 교수님이세요?”

- “언제 찍으신 거예요?”

얼굴을 내민 아이들이 가늘게 뜬 눈으로 화면 속 단체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그래, 나다. 그것도 아주 오래전의 모습이지.”

고개를 끄덕인 엄 교수가 씁쓸한 헛웃음을 지었다.

“교수가 되기 전 난 꽤 큰 규모의 길드를 운영하고 있었다.”

휴대폰을 거둔 엄 교수가 차분히 말을 이어 갔다.

- “어? 길드 마스터면 교수보다 훨씬 더 많이 벌지 않나?”

- “그러게. 왜 그만두셨지? 더구나 대형 길드면, 아예 차원이 다를 텐데.”

- “야, 좀 조용히 해봐. 안 들리잖아.”

다소 사적인 얘기였지만, 아이들의 눈빛은 수업을 진행할 때보다 더 반짝거렸다.

“돈이 최고라고 여기던 난 하루가 멀다 하고 게이트를 들락거렸다. 물론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지만, 큰 부와 함께 100여 명에 달하는 헌터들의 리더로서 명예로운 삶을 살 수 있었지.”

과거의 영광을 회상하는 엄 교수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드리워졌다.

- “헐, 대박!”

- “뭐야, 저 정도면 좀 잘나갔던 정도가 아닌데?”

- “그러게. 헌터만 100명이면, 5대 길드까진 아니어도 최소 30위권 안에 들었을 것 같은데?”

- “근데 진짜 왜 그만두셨지?”

엄 교수의 화려한 커리어에 흥분한 아이들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들썩이기 시작했다.

“하아…… 하지만 성공에 눈이 멀었던 난 입사한 지 채 1년도 안 된 신입 헌터들을 S급 던전에 투입시켰다.”

깊은 한숨을 내쉰 엄 교수의 시선이 잠시 허공을 향했다.

“물론 이르다 못해 비난의 여지마저 있는 성급한 결정이었지만, 레드오션으로 변해버린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유능한 인재들이 들어온 것을 과시하는 방식으로 길드의 건재함을 증명할 필요성이 있었다. 뭐, 이런 안 좋은 관행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지만.”

‘유리랑 똑같은 케이스네.’

회귀 전, 빈소에서 들었던 아레나 길드의 만행이 태주의 뇌리를 스쳤다.

“사실 이 사진은 게이트에 들어가기 직전에 찍은 거다. 내 양옆으로 늘어선 녀석들이 바로 S급 던전에 투입된 신입들이고.”

엄 교수가 다시 한번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물론 길드에 소속된 수십 명의 베테랑들이 함께한 터라 큰 문제는 없다고 판단했었지. 심지어 레이드 후엔 신입 헌터들을 위한 축하 파티까지 열 계획이었다. 뭐, 이게 영정사진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안색이 어두워진 엄 교수가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보며 말끝을 흐렸다.

- “어? 그럼 설마 사고가…….”

덩달아 심각해진 아이들이 엄 교수의 기분을 헤아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블랙홀 게이트.”

- “네?! 블랙홀 게이트요?!”

사고의 원인을 안 아이들이 격양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래. 각성자가, 아니, 인류가 정복하지 못한 유일한 게이트지.”

죽음만이 유일한 탈출구인 블랙홀 게이트는 S급으로 위장한 일종의 페이크 게이트였다.

- “어? 근데 교수님께선 어떻게…….”

- “그러게. 블랙홀 게이트는 생환 확률이 제로라고 들었는데.”

블랙홀 게이트의 잔인한 통계 수치를 알고 있는 아이들이 엄 교수의 생존 사실을 의아하게 여겼다.

“어떻게 살아남았냐고?”

- “네…….”

“나만 들어가지 않았으니까.”

- “네?!”

반전에 가까운 엄 교수의 충격적인 고백에 아이들이 술렁였다.

“내 오른팔을 담당하던 녀석이 던전 입구에서 그러더군. 이번 레이드를 마지막으로 독립을 할 생각이라고. 물론 헌터들 사이에선 흔히 있는 일이라 배신감 따윈 들지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 배려란 생각으로 녀석에게 공대 지휘권을 위임했었지.”

- “아…….”

생존의 이유를 납득한 아이들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을 아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일반적인 게이트는 던전을 클리어를 하지 못한 채 일정 시간이 경과하는 순간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다. 쉽게 말해, 던전 안에 있던 몬스터들이 게이트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는 거지. 하지만 블랙홀 게이트의 경우는 좀 다르다. 신태주 학생?”

던전 브레이크에 대해 설명하던 엄 교수가 갑자기 태주를 호명했다.

“네.”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르지?”

“블랙홀 게이트의 경우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는 악명답게 일정 시간이 경과하는 순간 게이트가 사라집니다.”

“그래. 정확하다.”

엄 교수가 태주의 군더더기 없는 답변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어떤 게이트가 블랙홀 게이트로 변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일례로 내 동료들을 전멸시킨 블랙홀 게이트 역시 협회의 사전답사 땐 S급 게이트로만 책정됐으니까. 블랙홀 게이트에 페이크 게이트란 별명이 붙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 “어? 그럼 던전 자체가 하나의 인격체처럼 원하는 타이밍에 정체를 드러내는 거네요?”

- “와…… 이거 생각만 해도 후덜덜한데?”

- “그러게. 한마디로 S급이든 N차 각성이든 블랙홀 게이트 안에선 답이 없다는 거잖아.”

자발적으로 택한 헌터의 길이지만, 블랙홀 게이트가 주는 미지의 두려움은 신입생들의 패기마저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사고 후에 난 큰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혼자 살아남은 것에 대한 미안함과 신입 헌터들에 대한 죄책감이 날 폐인처럼 만들었지. 하아…… 결국 새로운 동료를 맞이할 염치가 없었던 난 희생된 길드원들을 위한 납골당을 건립한 뒤 길드를 해체했다. 레이드로 축적한 대부분의 재산도 사회에 환원했고.”

당시의 슬픔이 되살아난 엄 교수가 먹먹해진 가슴으로 한숨 섞인 자책을 했다.

- “아…… 그래서 신입생인 태주가 던전에 들어가는 걸 반대하신 거구나.”

- “하긴, 그 정도 트라우마면, 나 같아도 말렸겠다.”

아이들은 그제야 태주의 던전 실습 수강에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던 엄 교수의 속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후학 양성을 통해 죄책감을 씻어내라는 협회장님의 도움으로 이렇게 교단에 서게 됐지만, 내가 최고의 각성자들이 모인 한국대를 택한 것과 그곳의 일원인 너희들을 강하게 키우려는 궁극적인 이유는 단 하나, 바로 블랙홀 게이트 때문이다.”

- “…….”

엄 교수가 생각하는 직업 탐구1의 방향성에 태주를 제외한 모든 아이들의 말문이 막혔다.

“너희들에게 부담을 주려는 건 아니지만, 블랙홀 게이트를 정복할 수 있는 인류 최초의 각성자를 양성하는 것이 내 일생일대의 목표이자 존재의 이유다.”

잔뜩 힘을 준 엄 교수의 비장한 눈빛이 자연스럽게 태주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블랙홀 게이트라…….’

모두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난감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태주만큼은 엄 교수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내 기억으론 지금부터 회귀 전까지, 그러니까 향후 5년 이내에 대한민국에서 발생할 블랙홀 게이트의 숫자는 총 2개다.’

기억을 더듬어보던 태주가 업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블랙홀 게이트의 생성 시기를 머릿속으로 체크했다.

‘2학년 때 한 번, 3학년 때 한 번.’

물론 남은 시간이 촉박한 만큼 충분한 준비가 이루어지기 전까진 서두를 생각이 없었지만.

“음…… 생각보다 사설이 길어졌군.”

시간을 확인한 엄 교수가 1교시에 이어 리더 선발을 위한 2차 테스트를 진행했다.

“1차 테스트와 달리 2차 테스트에선 궁수의 자질과도 직결된 활솜씨를 평가할 예정이다.”

- “오, 다행이다.”

근력 테스트에 질겁했던 아이들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시범 조교 앞으로.”

늘 그랬듯 엄 교수의 시선이 세준에게로 옮겨졌다.

“네? 저요?”

당황한 세준이 검지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그래, 너. 활 들고 7번 발사선으로.”

“아, 네!”

엄 교수의 부름을 받은 세준이 장비를 챙겨 신속하게 이동했다.

“궁술 테스트는 특별히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하겠다.”

활을 든 엄 교수가 세준의 옆에 위치한 8번 발사선으로 자리를 옮겼다.

“와…….”

단순한 시범 상대였지만, 체급 차이에서 비롯된 엄 교수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세준을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다.

“이번엔 두 사람이 단 하나의 표적을 놓고 경쟁을 벌이게 된다.”

엄 교수가 발사선 바닥에 설치된 화면을 발바닥으로 터치해 과녁의 유형을 설정했다.

위이잉!

입력을 마치자 급소가 표시된 사람 모양의 과녁이 바닥에서 올라왔다.

“불이 들어온 급소를 상대방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정확하게 공략하는 쪽이 승리하는 아주 단순한 방식이지.”

반짝!

과녁의 이마에 불이 들어온 것을 확인한 엄 교수가 목표 지점을 향해 재빨리 화살을 발사했다.

쉬이익! 딱!

- “오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엄 교수의 뛰어난 활솜씨가 아이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

물론 활시위조차 당기지 못한 세준은 엄 교수의 전광석화 같은 실력에 그대로 얼어붙었지만.

“자, 그럼 지금부터 원하는 발사선으로 이동한다. 실시.”

- “네!”

태주와의 맞대결을 피하고 싶었던 아이들이 둘씩 짝지어 발사선을 채워나갔다.

물론 적수가 없다고 판단한 태주는 제자리에 선 채 빈자리를 둘러보고 있었지만.

▶ 체이싱 애로우[C]를 선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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