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5. 직업 탐구1 (3)
“어?”
위치상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12번 학생이 엄 교수의 돌발 행동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1차 테스트에 돌입한 엄 교수가 미리 준비해둔 100원짜리 동전 한 개를 꺼내어 활을 든 학생의 왼팔 위에 살포시 올려놨기 때문이다.
- “야, 저건 또 뭐하는 거냐?”
낯선 광경을 목격한 아이들이 또 한 번 술렁였다.
- “어? 저거 군대에서 하는 건데?”
- “뭐? 군대?”
- “어. 우리 형은 각성자가 아니라 현역으로 다녀왔는데, 훈련소에 가면 총열 위에 바둑알을 올려놓고 격발 연습을 한 대. 방아쇠를 당겼을 때 바둑알이 떨어지면 실패하는 거고.”
- “뭐야, 그럼 동전 때문에 요령을 피울 수가 없잖아.”
6g도 채 안 되는 동전 1개가 팔을 더 무겁게 만드는 건 아니었지만, 동전을 떨어뜨리면 안 된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학생들로 하여금 묘한 긴장감을 갖게 만들었다.
“발밑에서 동전 소리가 나는 순간 탈락이다.”
“네? 아, 네…….”
전방을 주시하고 있던 12번 학생의 시선이 저절로 동전에 고정됐다.
“으음.”
두 번째 동전을 올려놓기 위해 옆으로 이동한 엄 교수가 태주의 모습을 아래위로 훑어봤다.
“4학년 수업에 들어간다고?”
스캔을 마친 엄 교수가 태주의 팔에 동전을 올리며 물었다.
“네.”
엄 교수와 눈을 마주친 태주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던전에 들어가는 수업이니 트레이닝 돔에서의 훈련은 당연히 시시해지겠군. 그렇지?”
던전 안에서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엄 교수의 입장에선 준비되지 않은 신입생의 이른 실전 경험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설령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지닌 세계 최초의 매직 아처라 할지라도.
“아닙니다.”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한 태주가 엄 교수의 날선 질문에 말을 아꼈다.
엄 교수의 성향상 말로 주저리주저리 설명하는 것보다 자신의 능력을, 다시 말해, 던전에 투입될 자격이 있음을 몸소 증명하는 편이 더 설득력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 수준에 대해선 나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소문난 콜렉터인 이 교수가 자신의 물건을 내어준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엄 교수가 태주의 활을 슬쩍 쳐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난 이 교수의 제안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 “……?!”
솔직함을 넘어선 엄 교수의 노골적인 비판에 아이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물론 내 생각이 편견인지 예견인지는 전적으로 네 능력에 달렸지만.”
태주의 한쪽 어깨를 살짝 움켜쥔 엄 교수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채 10번째 발사선으로 자리를 옮겼다.
*
*
*
잠시 후.
- “야, 넌 안 힘드냐?”
- “안 힘들긴. 이마에 땀나는 거 안 보여?”
고작 10여 분이 경과한 시점이었지만, 슬슬 팔이 떨려오는 이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었다.
- “힘들면, 활시위를 더 팽팽하게 당긴 다음에 활의 각도를 살짝 높여봐. 동전이 안 떨어질 정도로 아주 약간만.”
- “근데 그것보단 딴생각을 하는 게 더 낫지 않아? 난 지금 머릿속으로 점심 메뉴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 “야, 팔이 이 모양인데, 점심은 둘째 치고, 숟가락 들 힘이나 있겠냐?”
- “그래도 너희들은, 후우…… 아직 견딜 만한가 보네. 흡! 이 와중에 딴생각 할 여유도 있고…… 난 아예 아까부터 머릿속이 하얘. 그냥 아무 생각도 안 나.”
- “하아…… 난 이따 다른 수업도 들어가야 되는데…… 이러다 진짜 필기는커녕 연필도 못 드는 거 아니야?”
대부분의 아이들이 통증을 호소하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지만, 개중엔 눈치 없는 농담으로 힘을 빼는 녀석도 있었다.
- “야, 내가 충격적인 사실 하나 알려줄까?”
- “뭐? 충격적인 사실? 그게 뭔데?”
- “이거 3시간짜리 연강이라 쉬는 시간 빼고도 최소 2시간은 더 들어야 돼.”
- “야, 이 사악한 새끼야. 그런 얘길 왜 지금.”
- “아아…… 갑자기 힘이 쫙 빠진다.”
- “야, 너 진짜 눈치 안 챙기냐?”
극도로 예민해진 아이들이 눈치 없는 동기를 윽박지르던 바로 그때.
- “어!”
짧은 탄성과 함께 첫 번째 탈락을 알리는 동전 소리가 들려왔다.
땡그랑!
“탈락자는 발사선 뒤로 한 발짝 물러나라.”
- “네.”
첫 번째 탈락자인 세준이 엄 교수의 지시에 얼른 추를 내려놨다.
쿵!
- “나 먼저 간다. 수고.”
왼팔을 주무르던 세준이 후련한 표정으로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리더 경쟁에서 밀린 탈락자가 오히려 남은 인원을 격려하는 아이러니한 그림이 연출된 것이다.
- “야, 우리도 이 정도만 할까?”
- “그러게. 어차피 떨어질 거 1~2분 더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으니까.”
이번엔 은밀한 대화를 주고받던 아이들이 팔을 기울여 동전을 떨어뜨렸다.
땡그랑! 땡그랑!
- “후우……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 “야, 나 왼쪽 팔이 더 커진 것 같지 않냐?”
리더의 혜택을 포기한 아이들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발사선을 벗어났다.
이제 남은 생존자는 9명.
- “어떡하지?”
- “그러게. 지금까지 버틴 게 아깝긴 한데.”
탈락자들이 속출하자 묵묵히 버티고 있던 아이들의 멘탈까지 덩달아 흔들리고 있었다.
“떠들 힘은 남았냐?”
아이들의 이른 포기에 실망한 엄 교수가 못마땅한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고작 10분 만에 포기라니. 너희들은 내가 맡은 역대 최악의 기수다.”
더 이상의 탈락을 막고 싶었던 엄 교수가 자존심을 자극하는 방법으로 남은 아이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려 했다.
물론 신체보다 먼저 무너진 정신력은 쉽게 회복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었지만.
땡그랑! 땡그랑! 땡그랑!
*
*
*
쿵!
20분에 접어들자 동전이 아닌 추가 먼저 바닥에 떨어졌다.
- “우와…… 진짜 더 이상은 못 하겠다.”
활을 던지다시피 내려놓은 아이가 땀으로 흥건해진 옷을 펄럭이며 턱을 늘어뜨렸다.
이제 남은 학생은 단 1명.
어느 정도 예견된 상황이었지만, 모공조차 열리지 않은 태주의 뽀송뽀송한 얼굴엔 미세한 주름조차 잡혀있지 않았다.
- “야, 태주는 무슨 석상이냐?”
- “내가 옆에서 지켜봤는데, 아예 표정 변화가 없어. 완전 평온 그 자체야.”
- “와…… 누워서 잠만 자도 뒤척이는데, 어떻게 50kg짜리 추를 달고도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서 있지?”
- “야, 추를 떠나서, 너네 이종도 교수님이 줬다는 저 활 무게가 얼마인지는 아냐? 와…… 내가 새터 때 한 번 들어봤는데, 뻥 안 치고, 겁나 무거워. 진짜 웬만한 근력이 아니면 팔 뻗고 균형도 못 잡아.”
- “역시 어나더 레벨.”
- “리더는 누가 봐도 태주가 되겠지?”
- “하아…… 난 그냥 시험이나 잘 봐야겠다.”
일찌감치 탈락한 아이들이 태주를 바라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 “근데 교수님 자세도 각이 살아 있지 않냐?”
- “야, 팔뚝 하나가 태주 허벅지만 한데 당연히 잘 버티겠지.”
- “그래도 근력 자체는 태주도 밀리지 않을 걸? 저번에 새터 때 봤잖아. 학과장님이 만든 결계를 한 방에 박살 낸 거.”
- “하긴, 그때 학과장님이 그레이트 배리어를 안 쳤으면, 후폭풍에 휩쓸려서 다 자빠졌을걸? 심지어 그레이트 배리어에도 금이 갔었잖아.”
- “에이, 그래도 피지컬만 놓고 보면, 3대500이 아니라 5000도 들게 생겼는데, 설마 태주한테 밀리시겠어? 명색이 3차 각성에 성공한 S급 궁수인데?”
두 사람의 승부를 지켜보던 아이들이 의미 없는 논쟁을 벌이던 바로 그때.
“이미 1등이 결정됐으니 그만해도 좋다.”
엄 교수가 태주의 자세를 훑어보며 중단 의사를 물었다.
“아니요. 30분까진 버티겠습니다.”
태주의 남다른 의지에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뭐야, 교수님이 그만해도 된다고 했는데, 굳이 30분을 채우겠다고? 왜?”
- “와…… 저 정도면 거의 고통을 즐기는 수준 아니냐?”
11명의 동기들 모두 태주의 이해할 수 없는 선택에 혀를 내둘렀다.
물론 던전 투입에 대한 엄 교수의 생각이 편견이었음을 증명해야 하는 태주의 입장에선 당연한 결정이었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오기로 버티는 거 같진 않고. 으음. 10번, 12번.”
흥미로운 표정을 짓고 있던 엄 교수가 갑자기 탈락자 2명을 불렀다.
- “네!”
“지금부터 10번은 11번에게, 12번은 내 활에 자신의 추를 연결시킨다. 실시.”
- “네?!”
엄 교수의 지목을 받은 아이들이 생각지도 못한 극단적인 지시에 두 귀를 의심했다.
“5분 정도는 괜찮겠지?”
태주의 한계가 궁금했던 엄 교수가 무게를 높여 승부욕을 자극했다.
“네.”
엄 교수를 대하는 태주의 덤덤한 표정이 오히려 허세 가득한 미소보다 자신감 있게 비춰졌다.
물론 자신의 몸무게보다 무거운 추를 한 팔로 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 “태주야, 진짜 괜찮겠어?”
자신의 추를 들고 온 10번 학생이 엄 교수의 눈치를 살피며 난감한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으니까 그냥 걸어.”
회귀 전엔 없던 새로운 도전이지만, 팔에 무리가 가기 전, 폭주 스킬로 힘을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에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고 판단했다.
▶ 스킬 『폭주』를 사용하시겠습니까? (Y/N)
철컥!
활에 걸린 무게 추 밑에 50kg짜리 추가 하나 더 연결됐다.
‘어?’
만약을 대비해 스킬창까지 열어뒀던 태주가 기대에 못 미치는 추의 중량감에 흠칫 놀랐다.
‘내가 이 정도로 강해졌나?’
상태창에 표시된 근력 수치가 몰라보게 증가한 건 알고 있었지만, 힘을 쓸 일이 있을 때마다 폭주 스킬을 사용하다 보니 정작 평소 능력에 대해선 의존도가 낮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야 좀 근육에 자극이…… 음?”
호기를 부리던 엄 교수가 태주의 여유로운 표정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 “와…… 진짜 실화냐? 아니, 50kg짜리 추를 어떻게 줄줄이 소시지처럼 들고 있지?”
- “야, 근데 태주가 저렇게 가볍게 들고 있으면, 포기할 줄 알고 시킨 교수님이 너무 뻘쭘해지는 거 아니야? 좀 전까지만 해도 완전 의기양양하게 제안했는데.”
- “그러게. 어쩌면 교수님도 이미 후회하고 있을걸?”
두 사람의 힘을 저울질하던 아이들의 의견이 어느덧 태주의 승리로 모아지고 있었다.
잠시 후.
삐비비빅! 삐비비빅!
휴대폰에 설정해둔 타이머가 30분의 종료를 알리며 요란하게 울려댔다.
쿵!
“제법이군.”
추를 내려놓은 엄 교수가 굳은살 박인 투박한 손을 태주에게 내밀었다.
“네가 프로면 무승부지만, 넌 아직 학생에 불과하니 이번 대결은 너의 승리다. 축하한다.”
교수로서 쉽지 않은 결단을 내린 엄 교수가 자신의 패배를 깔끔하게 인정했다.
“감사합니다.”
활을 거둔 태주가 엄 교수와 정중히 손을 맞잡았다.
- “와!”
짝! 짝! 짝! 짝! 짝! 짝! 짝! 짝!
순간, 숨죽인 채 지켜보던 아이들이 태주의 승리와 엄 교수의 대인배스러운 태도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조용. 조용.”
때 아닌 환호성에 머쓱해진 엄 교수가 아이들을 진정시킨 뒤 쉬는 시간을 갖도록 했다.
“대학엔 중고등학교 때처럼 수업종의 개념이 없다. 중간에 화장실 보내달라고 징징대는 건 애들이나 하는 짓이니까 알아서 10분 안에 해결하고 와라. 실시.”
“어? 교수님, 설마 다음 시간에도 추를 사용합니까?”
추를 든 세준이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어! 그럼 상자에 도로 갖다 놓을까요?”
“대신 추를 담은 상자는 저기 있는 창고 안에 옮겨 놔라.”
“네! 알겠습니다!”
원하는 대답을 얻은 세준의 몸이 어느새 상자 쪽으로 틀어져 있었다.
“혼자선 무리니 최소 4명 이상은 붙어야 될 거다.”
뒷정리를 부탁한 엄 교수가 발걸음을 돌리려던 바로 그때.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상자 앞에 나타난 태주가 말없이 손잡이를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