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7. 직업 탐구1 (5)
자동 장착 기능을 활성화시킨 태주의 선택은 유도 화살이었다.
물론 태주의 명중률도 나쁘진 않았지만, 스킬의 보정을 통해 정확도를 극대화시켜야 자신에 대한 엄 교수의 편견을 바꿀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해도 되지?”
빈곳을 찾던 태주가 세준의 옆자리로 자연스럽게 들어섰다.
“어? 어, 그럼. 당연히 되지. 하하…….”
최악의 대진운을 완성한 세준의 한쪽 입꼬리가 어색하게 씰룩였다.
“파트너 바꿀 사람. 손.”
- “없습니다.”
세준을 제외한 모든 아이들이 엄 교수의 질문에 신속하게 대답했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정확도 테스트로 들어가 경쟁 모드를 선택한다. 실시.”
- “야, 이거 어떻게 하는 거냐?”
- “그냥 발로 누르는 거 아니야? 좀 전에 교수님도 그렇게 하시던데.”
- “어? 근데 정확도 테스트가 어디 붙어 있는 거지?”
- “경쟁 모드 나와라. 경쟁 모드.”
대부분의 아이들이 버벅거리는 동안 유경험자인 태주는 발사선 바닥에 설치된 화면을 막힘없이 터치했다.
[경쟁할 발사선의 번호를 선택하여 주십시오.]
8번 발사선에 위치한 태주가 세준의 번호를 경쟁자로 지정했다.
[7번 플레이어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겜.”
모든 준비를 마친 태주가 세준의 설정을 기다리며 어깨를 풀었다.
“어? 어, 알았어. 거의 다 됐어…… 어! 됐다!”
[7번 플레이어가 대결을 수락하였습니다.]
[표적을 생성합니다.]
위이잉!
세준이 승낙 버튼을 밟자 새로운 과녁이 두 사람 사이에 세워졌다.
표적까지의 거리는 약 30미터.
활시위만 당기면 그만인 태주와 달리 세준은 화살을 꺼내 현에 끼우는, 일명 노킹 과정이 필요해 상대적으로 시간적인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모든 승부는 7발의 화살로 결정되며, 마지막 3라운드의 경우 하나의 표적을 놓고 3명의 진출자가 경쟁하게 된다.”]
정확한 분석을 위해 통제실로 이동한 엄 교수가 마이크로 시합의 규칙을 설명했다.
바로 그때.
태주의 조를 시작으로 나란히 정렬된 6개의 표적에 첫 번째 불이 들어왔다.
쉬이익!
[“그럼 행운을 빈…… 으음?”]
탁!
엄 교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발사된 태주의 화살이 표적에 설치된 꼬마전구를 한 방에 깨트렸다.
“어!”
불이 들어온 위치를 확인하는 순간 끝나버린 첫 번째 릴리스에 세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야, 이거 전구 깨지는 소리 아니야?”
- “뭐야, 다른 조에서 전구 깼어?”
- “어? 저거 태주가 쏜 거 같은데?”
다른 조에 속한 아이들이 태주의 표적을 일제히 바라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야, 너 왜 안 쏴.”
제일 먼저 활을 내린 태주가 턱 끝으로 표적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어? 어, 난 다음 발부터 쏘려고.”
허무하게 끝난 승부에 기가 죽은 세준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발사를 포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구가 깨진 이상 물리적으로 더 높은 점수를 받을 방법은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조에 신경 쓰지 말고, 본인 표적에나 집중해라.”]
보다 못한 엄 교수가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통제했다.
물론 태주의 표적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엄 교수 역시 화면에 비춰진 화살의 명중 지점에 감탄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운인가?’
카메라를 조작하던 엄 교수가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태주의 모습을 클로즈업했다.
전구를 깬 사례는 과거에도 종종 있었지만, 우연에 의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표정만 봐도 발사자의 의도성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왜 이렇게 덤덤하지?’
놀라움에 호들갑을 떨거나 얼떨떨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태주의 표정에선 그 어떤 감정도, 심지어 희미한 기쁨이나 우쭐함조차 읽어낼 수 없었다.
‘설마. 당연하다는 건가?’
신입생답지 않은 태연함에 놀란 엄 교수가 냉철한 눈빛으로 다음 샷을 지켜봤다.
반짝!
숨 돌릴 틈도 없이 켜진 두 번째 불빛에 태주의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쉬이익! 탁!
한 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 체이싱 애로우의 위력이 또 한 번 빛을 발했다.
“어! 태주야!”
자신이 경쟁 중이라는 사실조차 잊은 세준이 꼬마전구의 파편을 응시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 “뭐야! 또야?!”
- “아니, 어떻게 전구를 두 번이나, 그것도 연속으로 깨지?”
- “저쪽 전구만 백열등만 한 거 아니야?”
- “확실히 수석은 다르네.”
입시 때의 충격이 되살아난 동기들이 태주의 압도적인 활솜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로부터 약 15초 후.
쉬이익! 탁!
모니터를 하던 엄 교수의 온몸에 강한 소름이 돋았다.
적어도 한두 번까지는 요행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7번 연속으로 전구를 깬다는 건 실력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말도 안 돼.’
전율에 가까운 충격을 경험한 엄 교수가 믿을 수 없는 결과물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 “와! 진짜 미쳤다!”
- “아니, 어떻게 7발을 다 전구에만 때려 박지?”
- “뭐야, 임세준은 결국 한 발도 못 쏜 거야?”
- “야, 너 같으면 저런 상황에서 하고 싶겠냐?”
- “어차피 리더 자리도 물 건너갔는데, 그냥 2라운드에서 기권해 버릴까?”
통제실 밖은 어느새 태주를 찬양하는 목소리로 떠들썩했다.
[“주목.”]
- “주목!”
발사선을 이탈했던 아이들이 복명복창을 하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지금부터 표적을 확인한 뒤 화살을 회수한다. 실시."
]
- “실시!”
세준을 제외한 11명의 학생들이 표적을 향해 성큼성큼 나아갔다.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물론 다른 아이들이 세 걸음을 내딛는 동안 태주의 두 발은 이미 표적 앞에 도달해 있었지만.
▶ 접촉한 장비를 인벤토리에 넣으시겠습니까? (Y/N)
태주가 표적에서 뽑아낸 화살들을 인벤토리 안에 저장했다.
물론 마나를 소모해 만든 화살이라 다른 아이들처럼 재사용을 하진 않았지만, 수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선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쉬이익! 탁!
- “어! 또 들어갔다!”
결승에 오른 태주는 1라운드 때와 마찬가지로 전구만을 골라 터트렸다.
- “와…… 어떻게 21번을 연속으로 맞히지?”
- “그러게. 진짜 볼 때마다 신기하네.”
경쟁자를 관중으로 만드는 압도적인 실력차.
모두의 예상대로 반전 따윈 없었지만, 누구 하나 지루함을 느끼지 못한 흡입력 있는 경기력이었다.
“찾았다.”
통제실에 홀로 있던 엄 교수가 마이크를 끈 뒤 혼잣말을 내뱉었다.
현역 헌터를 꺾은 것으로도 모자라 히든 웨이브까지 돌파한 태주의 실력을 영상으론 확인했지만, 오늘처럼 현장감 있는 방식으로 느껴본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 “역시 1, 2차 테스트 다 태주가 우승했네.”
- “뭐야, 그럼 이제 A는 기본으로 먹고 들어가는 거야?”
- “근데 솔직히 태주 정도면 굳이 리더를 안 해도 A+ 아니냐?”
- “그러게. 괜히 잡다한 심부름으로 시간만 뺏길 수도 있는데.”
동기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2회차 신입생인 태주는 다수의 생각이 아닌 회귀 전의 기억을 믿고 있었다.
*
*
*
“너희들도 알다시피 태주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원은 비슷한 기본기를 갖고 있었다. 뭐,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눈에 띄는 학생이 없었다는 뜻이지만.”
- “…….”
엄 교수의 냉정한 평가에 아이들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렇다고 실망할 것까진 없다. 오늘 보여준 너희들의 실력은 나를 만나기 전에 형성된, 다시 말해, 좋은 세공사를 만나지 못한 원석 같은 상태니까.”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주던 엄 교수가 리더를 선정하기 위한 마지막 절차에 대해 설명했다.
“참고로 3차 테스트는 앞선 두 번의 테스트와 달리 리더 후보에 오르지 못한 나머지 11명의 동기들에게 최종 결정권이 부여된다.”
- “어? 교수님이 아니라 저희한테요?”
투표권을 얻게 된 아이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엄밀히 말해 클래스 리더를 따르는 건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다. 올바른 리더를 선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판단력. 이곳이 게이트 안은 아니지만, 자신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을 정하는 것 또한 실력만큼이나 중요한 팀원으로서의 자질이다.”
- “아…….”
엄 교수의 말에 수긍한 아이들의 시선이 태주에게 집중됐다.
“그럼 혹시 과반수가 찬성하면 되는 겁니까?”
태주의 당선을 바라는 세준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아니. 최소 2/3이상의 인정을 받아야 클래스 리더로 선정된다.”
“3분의 2라…… 근데 3분의 2면 몇 명이지?”
숫자에 약한 세준이 옆에 있던 태주에게 물었다.
“11명을 기준으로 하면 7.3333…… 하지만 0.3명이란 건 없으니까 최소 8표는 받아야 3분의 2란 조건을 충족하겠네.”
“오오, 이건 뭐, 암산도 S급인데?”
태주의 모든 것을 닮고 싶어 하는 세준이 별거 아닌 계산 하나에도 엄지를 치켜들었다.
“투표는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며, 11명의 유권자가 동시에 선택을 마치게 된다.”
발사선으로 다가간 엄 교수가 5미터 거리에 떨어진 표적 2개를 동시에 세웠다.
위이잉!
“찬성은 7번 표적에, 반대는 4번 표적에 화살을 쏴라.”
- “뭐야, 그냥 거수로 하는 거 아니었어?”
- “과녁을 못 맞히면 무효표가 되는 건가?”
예상치 못한 투표 방식에 당황한 아이들이 부랴부랴 화살을 꺼내 들었다.
“비밀 투표가 아니라고 해서 반대표를 던지는 것에 부담을 느끼거나 눈치를 보는 모습 따윈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
- “네!”
마음의 결정을 내린 아이들이 표적을 향해 일렬로 늘어섰다.
“동기들에게 할 말이 있나?”
엄 교수가 자신의 곁에 남은 태주에게 조용히 물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투표의 관건은 장악력이었지만, 궁수 모임의 회장직에 추대될 만큼 강력한 신임을 얻고 있는 태주의 입장에선 2/3란 기준도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다.
“좋아. 그럼 지금 바로 투표를 시작하겠다.”
발사 준비를 마친 아이들이 엄 교수의 신호에 맞춰 활시위를 당겼다.
“하나, 둘, 셋, 발사!”
쉬이익! 쉬이익! 쉬이익! 쉬이익!
아이들의 손끝을 떠난 11발의 화살이 표적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날아갔다.
딱! 딱! 딱! 딱!
“어! 만장일치다!”
투표 결과를 확인한 세준이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태주를 돌아봤다.
“제법이구나.”
7번 표적에 집중된 11발의 화살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엄 교수가 태주의 한쪽 어깨를 가볍게 움켜쥐었다.
“감사합니다.”
시종일관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던 태주가 처음으로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자, 지금 이 순간부터 직업 탐구1의 클래스 리더는 신태주다. 박수!”
- “와!”
짝! 짝! 짝! 짝! 짝! 짝! 짝! 짝!
태주를 중심으로 한마음이 된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잠시 후.
“받아라.”
엄 교수가 7번 표적에서 뽑아 온 화살 뭉치를 태주에게 건넸다.
“이건 평범한 화살이 아닌 팀원들의 믿음이다. 명예롭게 잘 간직해라.”
“명심하겠습니다. 다들 고마워.”
두 손으로 화살을 공손히 받아든 태주가 동기들에게도 감사의 뜻을 전했다.
“에이, 친구끼리 뭘 새삼스럽게. 대신 수업 끝나고 한 턱 거하게 쏴.”
태주의 곁으로 다가간 세준이 어깨동무를 하며 술잔을 꺾는 시늉을 했다.
바로 그때.
지이잉!
진동으로 해둔 태주의 휴대폰에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송기철 협회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