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 입학시험 (7)
그나저나 S급 궁수는 왜 안 오지?
현직 헌터의 참가 소식은 이미 모두에게 공지된 상황이었다.
막판에 거절했나?
솔직히 프로의 입장에선 자존심이 상할 수 있는 제안이었다.
잃을 게 없는 나와 달리 최후의 1인이 되어도 본전이었기 때문이다.
웨에에에엥!
웨이브의 시작을 알리는 사이렌과 함께 고글의 전원이 켜졌다.
[증강현실이 구현됩니다.]
처음에 나올 몬스터는 분산에 최적화된 놈이다.
빠른 속도를 바탕으로 변칙적인 움직임을 펼치는데, 여기엔 출제자의 의도가 숨어 있다.
일종의 묻어가기 방지?
개인의 기량을 파악하려면 뭉쳐 있는 녀석들부터 흩어놔야 되기 때문이다.
[남은 몬스터가 없어야 다음 웨이브로 넘어갑니다.]
더구나 몸이 덜 풀린 상태에선 스피디한 몬스터가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사망으로 간주된 지원자는 자세를 낮춘 뒤 비상구로 이동합니다.]
당시엔 전체 지원자의 1/5이 1차 웨이브에서 탈락했다.
나도 물론 그중 하나였지만.
[첫 번째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고글에 뜬 문구가 사라지자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 “으악! 썅!”
시작과 동시에 탈락자가 나왔다.
- “야! 이 새끼들 졸라 빨라!”
- “야! 너 뒤에! 뒤에!”
예상대로 뭉쳐 있던 인원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 “힐 좀 주세요! 힐!”
- “힐러 한 분만 이쪽으로!”
힐러의 경우 힐의 횟수와 양에 따라 점수가 부여되는데, 그래서인지 상대방의 체력이 고글에 표시됐다.
나도 슬슬 시작해볼까?
각 웨이브엔 숨겨진 가산점이 있는데, 1차 웨이브의 경우 시간이 핵심이다.
일명 멀티킬.
일정 시간 안에 적을 연속으로 제거하면 되는데, 킬과 킬 사이가 2초를 넘으면 실패였다.
물론 속사를 익힌 내게 2초란 시간은 한없이 지루했지만.
쉬이익! 쉬이익! 쉬이익! 쉬이익!
*
*
*
통제실 안.
“교수님! 신태주 학생이 또 기록을 세우고 있습니다!”
흥분한 프로그래머가 태주의 화면을 확대했다.
“보고 있네.”
학과장이 통제실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태주의 실시간 기록을 묵묵히 지켜봤다.
[더블킬! 100점]
[트리플킬! 200점]
[쿼드라킬! 300점]
[펜타킬! 500점]
[헥사킬! 1000점]
[퍼스트 블러드!]
[더블킬! 100점]
[트리플킬! 200점]
최대 6킬까지 부여되는 가산점이 무서운 속도로 표시되고 있었다.
“와…… 학과장님, 저건 속사가 아니라 거의 기관총 수준인데요?”
태주의 골수팬인 이종도 교수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교수님! 신태주 학생이 잡은 몬스터가 전체의 1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프로그래머는 이미 e스포츠 해설자로 변해 있었다.
【1위: 신태주】
2위와의 격차를 따지는 건 무의미했다.
태주의 압도적인 플레이 앞에선 모두가 들러리였기 때문이다.
“그냥 클래스가 다르네요.”
이종도 교수가 태주의 기록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바로 그때.
“제법이네.”
화면을 응시하던 진천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시시할까 봐 걱정했는데…….”
*
*
*
[4차 웨이브가 종료되었습니다.]
내 활약으로 전체적인 생존율이 올라갔지만, 결국 최후의 1인이 됐다.
[1분 후 5차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사실 몬스터 웨이브는 체력 테스트에 가까웠다.
수백수천 마리의 몬스터를 상대하다 보면 대미지와 상관없이 신체적인 부담을 느낀다는 뜻이다.
물론 힐러의 도움을 받을 순 있지만, 지금처럼 혼자 남은 상황에선 그마저도 어려웠다.
[00:00:48]
재정비 시간을 체크하며 다가올 웨이브를 대비했다.
5차 웨이브의 특징은 지대공.
쉽게 말해 날아다니는 몬스터와 싸우는 건데, 공격 패턴이 워낙 지랄 맞아 욕이 절로 나왔다.
어?
누군가 체험관 안으로 들어왔다.
저 사람이 바로…… S급 궁수?
회귀를 한 건 맞지만, 네임드가 아닌 이상 일일이 기억할 순 없었다.
“안녕하세요.”
“…….”
내 인사를 무시한 남자가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뭔가 느낌이 싸한데…….
왠지 여기도 일부러 늦게 온 것 같다.
“잘 부탁드립니다. 신태주라고 합니다.”
“…….”
녀석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저…… 선배님?”
“누가 네 선배야.”
“네?”
와……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지?
기 싸움이라고 하기엔 정도가 지나치다.
“그냥 닥치고 네 일이나 해. 어차피 다시 볼 일도 없으니까.”
오케이.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시벨롬.”
돌아서는 녀석의 뒤통수를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야,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뭐? 씨발놈?”
“아니요. 씨발놈이 아니라 시벨롬이요. si bel homme. 프랑스어로 꽃미남이란 뜻이에요.”
“뭐?”
“여자한테 인기 많으시죠? 선배님은 진짜 누가 봐도 시벨롬이세요.”
“뭐, 뭐 이 새끼야!”
“어? 이제 5초밖에 안 남았네? 선배님, 그럼 수고하세요. 아, 그리고 비상구는 저쪽이니까 괜히 들어왔던 데로 나가지 마세요. 알았죠?”
“뭐야, 내가 너보다 먼저 떨어진다는 거야! 어!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5차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아니, 뭐, 꼭 그런 게 아니라…… 어! 선배님! 뒤에! 뒤에!”
“뭐?! 왜?!”
녀석이 식겁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아니요. 비상구는 뒤에 있다고요.”
“야! 신태주!”
녀석의 뚜껑이 열림과 동시에 게이트도 열렸다.
▶ 화살의 종류를 선택하세요.
[N]
[C]
[F]
[?]
[?]
5차 웨이브에선 화살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
▶ 체이싱 애로우[C]를 선택하셨습니다.
기본 화살의 궤적으로는 곡예비행을 하는 몬스터를 맞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썅! 왜 이렇게 안 맞지?!”
화살을 난사하던 시벨롬이 초반부터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5단계는 입시용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 5차 각성 이상의 잠재력을 지닌 슈퍼 루키를 찾기 위한 일종의 테스트 버전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진천의 건방진 태도가 못마땅했던 학과장이 프로그램의 난이도를 극단적으로 올린 상태였지만.
“선배, 그거 그렇게 쏘면 안 돼요.”
“뭐? 그렇게 쏘면 안 돼? 야! 고3 핏덩어리 새끼가 감히 날 가르쳐!”
진천도 나름 2차 각성에 성공한 S급 헌터였지만, S급 던전을 모티브로 만든 극악의 난이도에선 고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거참, 아까부터 나이 얘기 되게 하시네. 선배 혹시 꼰대예요? 요즘엔 젊은 꼰대들이 더 문제라던데.”
“뭐, 뭐?! 꼰대?!”
“자, 제가 하는 걸 잘 보세요. 이렇게 활시위를 당기고, 목표물을 찾은 다음에 그대로 띵.”
손끝을 떠난 화살이 몬스터의 움직임을 따라 역동적으로 날아갔다.
쉬이익!
증강현실인 탓에 타격감은 없었지만, 화살이 관통한 몬스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때요. 참 쉽죠?”
“…….”
유도 화살을 본 녀석이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하긴, 이런 건 나도 본 적이 없으니까.
어쩌면 나와의 대결을 이미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게 안 되면, 그냥 예측 사격이라도 하세요. 뭐, 그래봤자…… 어! 선배님! 뒤에! 뒤에!”
“뭐? 뒤? 야, 내가 한 번 속지 두 번…… 어! 뭐야 이거!”
저공비행을 하던 몬스터가 녀석의 등을 사정없이 공격했다.
“아니, 선배님, 평생 속고만 살았습니까? 이건 뭐, 알려줘도 못 받아먹네.”
“뭐, 뭐, 인마!”
이젠 녀석의 역정이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S급이라 기대했는데…….
이제 슬슬 끝내야겠다.
▶ 스킬 『도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Y/N)
녀석의 당황한 얼굴을 3초간 응시했다.
“야! 뭘 봐 이 새끼야!”
▶ 스킬 『도발』이 발동되었습니다.
“아니요. 자세히 보니까 좀 못생긴 거 같아서요.”
“뭐?”
순간, 공중을 배회하던 수백 마리의 몬스터가 녀석을 향해 미친 듯이 날아들었다.
“어! 뭐야 이거! 으악!”
▶ 스킬의 효력이 종료되었습니다.
허세를 부리던 S급 궁수가 1킬도 못 올린 채 참교육을 당했다.
*
*
*
통제실 안.
“예!”
진천의 탈락을 확인한 이 교수가 환호성을 질렀다.
“어? 교수님, 이번에도 방우혁 학생 때처럼 몬스터들이 뭉쳤습니다.”
모니터를 하던 프로그래머가 학과장을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흐뭇한 미소를 띤 학과장이 모른 척 화면에만 집중했다.
“학과장님, 저 새끼 표정 보셨습니까? 뭐, 자격을 증명하라는 둥 주연이 되러 왔다는 둥 온갖 꼴값은 다 떨더니 결국 1마리도 못 잡고 아웃됐습니다. 하하하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던 이 교수가 호탕하게 웃었다.
“어! 교수님! 신태주 학생이 또 학살자 모드로 변했습니다!”
프로그래머가 빠르게 올라가는 킬수를 가리키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학과장님, 이러다 진짜 히든 웨이브까지 가는 거 아닙니까? 솔직히 5단계부턴 깨라고 만든 웨이브가 아닌데…….”
이 교수가 태주의 클리어를 조심스럽게 예측했다.
“교수님, 경쟁자도 탈락했는데 이제 난이도를 낮출까요?”
태주 혼자 고군분투하는 것이 미안했던 프로그래머가 학과장에게 물었다.
“음…… 좀 더 지켜보지.”
괴물 신인의 한계가 궁금했던 학과장이 프로그래머의 한쪽 어깨를 짚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
*
*
잠시 후.
[히든 웨이브가 종료되었습니다.]
고글에 뜬 반가운 문구에 태주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
완벽 그 자체.
누가 봐도 흠잡을 곳이 없는 천상의 플레이였다.
‘근데 왜 이렇게 어려워졌지? 혹시 프로가 개입해서 난이도를 높였나?’
통제실의 상황을 알 리 없는 태주가 당시를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 “오!”
지상으로 올라오기 무섭게 아이들의 리스펙트가 느껴졌다.
- “와…… 어떻게 지금 올라오지? 난 여기서 1시간 넘게 기다렸는데.”
- “그러게. 조교들 말로는 5차 웨이브에 히든 웨이브까지 깼대.”
- “뭐? 히든 웨이브? 그런 것도 있었어?”
- “몰라. 무슨 화살도 막 유도탄처럼 날아다녔다는데, 한마디로 그냥 괴물이래 괴물.”
날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이 또 한 번 달라졌다.
부러움과 질투로 가득했던 눈동자에 두려움이 서린 것이다.
“신태주 학생.”
어? 통제실에 있던 학과장님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네, 학과장님.”
“이미 눈치챘겠지만, 추천서가 없어도 합격할 수 있는 점수가 나왔다. 축하한다.”
“학과장님 말씀처럼 운이 좋았던 것뿐입니다.”
“아니. 처음엔 나도 운이라고 생각했다. 협회장님의 손자를 구해 추천서를 받은 것도, 입학시험 당일에 2차 각성을 해서 매직 아처가 된 것도.”
학과장님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싫어하는 두 가지에 대해 기억하나?”
“네. 공정하지 못한 것과 실력도 없이 운만 좋은 것입니다.”
“그래. 내가 널 지적하면서 했던 소리다. 뭐, 결과적으론 내 판단이 성급했지만.”
“학과장님…….”
“오해해서 미안하다.”
학과장님의 공개 사과에 트레이닝 돔이 고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