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 입학시험 (6)
꾸웨엑!
아무래도 몬스터의 등에 철제 가시가 닿은 것 같다.
자! 간다!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속도를 높였다.
쉬이익! 쉬이익! 쉬이익! 쉬이익!
줄지어 날아간 화살이 방패의 중앙을 사정없이 강타했다.
팅! 팅! 팅! 팅!
푹!
꾸웨엑!
방패는 더 이상 밀려나지 않았고, 몬스터의 비명도 그쳤다.
▶ 몬스터를 처치하였습니다.
별거 아닌데?
방패 밑으로 초록색 피가 흘러나왔다.
▶ [일일 과제]를 완료하였습니다.
▶ 점수를 산정합니다.
메시지 창이 정신없이 떠올랐다.
▶ 과제 점수 [A+]
오, 에이 뿔!
부끄럽지만, A+를 받아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 보상으로 모든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대박!
일일 과제를 달성한 것만으로도 스탯이 올랐다.
목숨을 걸지 않아도 성장할 수 있는 안정적인 방법을 찾은 것이다.
이러다 진짜 7차 각성까지 찍는 거 아니야?
어쩌면 농담처럼 달린 댓글에 성지순례를 갈지도 모르겠다.
▶ 과제 점수의 합산이 기준점을 넘었습니다.
▶ 장학생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장학생은 또 뭐지?
▶ Lv.1 → Lv.2
초반이라 그런가?
A+ 하나만 받았는데도 레벨이 올라갔다.
▶ 보상으로 새로운 화살이 개방됩니다.
[N]
[C]
[F]
[?]
[?]
유도 화살 옆에 새로운 알파벳이 추가됐다.
[파이어 애로우]
- 마나로 생성한 속성(불) 화살- 활시위를 당긴 채 5초간 버티면 『화염』 효과 발동.
- 소모 마나: 10
매직 아처임을 증명할 수 있는 완벽한 화살이었다.
2차 때 쓰면 난리 나겠네.
유도 화살에 비해 마나의 소모는 크지만, 추가 특성까지 붙어 있어 손해 보는 느낌은 없었다.
▶ 현실로 돌아갑니다.
크윽.
강렬한 빛이 또 한번 눈앞을 가렸다.
*
*
*
와…….
거짓말처럼 식당에 앉아 있었다.
진짜 그대로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정지 버튼을 누른 직후였다.
물론 보상으로 획득한 것들은 온전히 반영되어 있었지만.
지이잉!
테이블 위에 올려둔 휴대폰이 요란하게 떨렸다.
“여보세요?”
모르는 번호지만, 정황상 누군지 알 것 같다.
[“나네.”]
역시 총장님이다.
[“어떻게. 기사는 확인했나?”]
“네, 총장님.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허허, 아직 감사하긴 이르네.”]
“2차 테스트 때문입니까?”
[“내가 보기엔 1차 때처럼 단독으로 응시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몬스터 웨이브의 경우 지원자 전원이 한꺼번에 참여하는 방식이었다.
“상관은 없습니다.”
[“그래? 그럼…….]
“하지만.”
[“음?”]
“차라리 비교 대상이 있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비교 대상?”]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것보다 최후의 생존자로 비춰지는 게 더 인상적일 것 같아서요.”
[“오 그래! 자네 말대로 경쟁자가 있어야 그림이 살겠군.”]
“테스트에 참여한 모두가 증인이라 난이도에 대한 의심도 사라지고, 제 실력도 쉽게 부각될 겁니다.”
[“하긴, 어차피 그놈들은 트집을 잡는 게 목적이니까.]
국제 관계가 꼭 신사적인 것은 아니다.
때론 유치하게, 때론 이기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견제와 비난도 서슴지 않는 게 외교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국가 간에도 적용된다는 뜻이다.
뭐, 지들이 인정하든 말든 내 갈 길만 가면 그만이지만.
[“그럼 다른 지원자들과 함께 응시할 수 있도록 한 교수에게 일러두겠네.”]
“저, 그리고 한 가지만 더.”
[“말해보게.”]
“현직 헌터 한 명을 테스트에 참가시켜 주십쇼.”
[“대학 입시에 프로를 말인가?”]
총장님의 목소리에서 걱정이 묻어났다.
[“자네의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그러다 밀리기라도 하면…….”]
“어차피 비교 대상이 약하면 추가 검증을 요구할 겁니다.”
[“하지만 실전 경험이 없는 아마추어는 프로를 이길 수 없네.”]
틀린 말은 아니다.
물론 그 아마추어가 회귀자라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아니요. 오히려 그 편견을 역이용할 겁니다.”
난 2차 테스트의 정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몬스터의 종류와 공격 패턴은 물론 세부적인 동선과 약점까지.
심지어 웨이브마다 다른 가산점 포인트도 충분히 학습한 상태다.
더구나 헌터학과 4년에 프로 생활 1년.
눈에 띄는 활약은 없었지만, 총장님이 말한 실전 경험도 이미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 모든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2차 각성이었지만.
[“어떻게 말인가?”]
“그건 지켜보면 아실 겁니다.”
[“허허, 이거 벌써부터 기대되는구먼.”]
웃음을 되찾은 총장님이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내 당장 협회에 연락해서 적당한 헌터를 섭외하겠네. B급을 넘지 않으면서도 경력이 길지 않은 만만한 궁수로 말이야.”]
“아니요. 전 더 강한 상대가 필요합니다.”
[“더 강한 상대? 이보게 태주군, 같은 B급이라도 프로와 아마추어는 차원이 다른 법이네.”]
“알고 있습니다.”
[“아니, 그걸 아는 사람이…… 자네 설마 A급을 원하는 건가?”]
“총장님, 전 분명 더 강한 상대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뭐, 뭐라고?”]
“5년차 이상의 베테랑 궁수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물론 2차 각성에 성공한 S급으로요.”
*
*
*
이곳은 트레이닝 돔 지하에 위치한 초대형 체험관이다.
- “야, 쟤 왔다. 쟤.”
- “어? 어디? 어디?”
이제 날 몰라보는 지원자는 없었다.
- “저…….”
처음 보는 남학생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 “죄송한데, 사진 한 장만…….”
네임드 헌터에게 인증샷을 부탁하는 건 흔한 일이었다.
물론 프로 데뷔도 못한 학부생에겐 드문 일이었지만.
“네, 뭐.”
- “어! 감사합니다! 야, 빨리 와! 빨리!”
휴대폰을 꺼낸 지원자가 갑자기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 “동갑이지만, 형이라고 부르겠습니다.”
- “어깨동무하면서 친한 척해도 돼요?”
- “야! 내 얼굴 안 나오잖아!”
부르지 않은 사람들까지 합세하다 보니 어느덧 단체 사진처럼 되어 있었다.
- “자, 찍습니다! 하나! 둘!”
사방에서 찰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어! 저도 팬이에요!”
먼저 찍은 이들이 흩어지자 새로운 무리가 들러붙었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에이 씨, 눈 감았네.
[“아, 아, 통제실에서 알려드립니다.”]
스피커에서 학과장님의 목소리가 나왔다.
[“테스트가 곧 시작되니 지원자 여러분께선 안내 방송에 집중하기 바랍니다.”]
- “이쪽으로 와서 고글부터 받아가세요!”
조교들이 체험관 한쪽에서 평가 장비를 나눠줬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총장님과의 얘기는 잘 마무리됐다.
5대 길드 중 하나인 아레나 길드에서 한 명을 보내기로 했는데, 아직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다.
“저기요. 이거…….”
입구 쪽만 보고 있던 내게 누군가 고글을 내밀었다.
“받는 김에 하나 더 달라고 했어요. 대신 전해주겠다고.”
임세준?
28기 동기인 세준은 B급 궁수였다.
“아, 네. 감사합니다.”
이 아이 역시 특별한 친분은 없었지만, 직업이 같다 보니 마주칠 일이 많았다.
“저도 궁수예요.”
세준이 내게 활을 들어 보였다.
“좋은 활이네요.”
솔직히 학부생이 들기엔 넘치는 모델이었다.
물론 금수저로 태어난 세준의 입장에선 당연한 일이었지만.
- “아, 이거요. 아빠한테 졸업 선물로 받은 거예요.”
졸업 선물이라…….
보육원 출신인 내가 받은 졸업 선물은 자립정책금밖에 없었다.
“네…….”
사실 세준의 아버지는 5대 길드 중 하나인 풍림의 대표이자 5차 각성에 성공한 S급 궁수였다.
“아, 제 이름은 세준이에요. 임세준.”
“임세준. 전…….”
“알아요. 신태주. 아마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알 걸요?”
두 팔을 벌린 세준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좀 있다 협회에 간다고 그랬죠?”
“네.”
“가면, 우리 아빠가 친한 척을 할 거예요. 제 이름을 팔면서.”
“아버지가 협회에 계세요?”
모른 척 대꾸를 좀 해줬다.
“아니요. 협회 직원은 아니고, 길드 대표예요. 풍림이라고.”
“아 풍림.”
풍림 역시 날 떨어뜨린 곳 중 하나였다.
물론 아빠 찬스를 쓴 임세준은 졸업과 동시에 풍림으로 갔지만.
“좀 전에 통화했는데, 저더러 그쪽이랑 무조건 친해지래요. 나중에 영입하려면 밑밥부터 깔아야 된다고. 완전 어이없죠?”
부족함 없이 자라서 그런지 늘 지나치게 솔직하다.
[“시험 시작 5분 전. 모든 지원자는 웨이브에 대비하기 바랍니다.”]
“어! 이제 시작하나 보다!”
열심히 떠들던 세준이 화살을 장착했다.
“나중에 동기로 만나면 꼭 아는 척해요. 그땐 번호도 물어보고 말도 놓을 거니까.”
다음을 기약한 세준이 포지션 선점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
*
*
통제실 안.
“정진천이라고 합니다.”
아레나에서 온 S급 궁수가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학과장을 맡고 있는 한중연이네.”
“전 이종도라고 합니다. 갑작스러운 부탁이라 많이 당황하셨을 텐데, 이렇게 흔쾌히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교수가 진천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뭐, 흔쾌히는 아니었습니다.”
이 교수의 손을 힐끗 내려다본 진천이 코웃음을 쳤다.
“…….”
민망해진 이 교수가 말없이 손을 거뒀다.
“지금 내려가도 시간이 빠듯하니 늦기 전에 출발하게.”
진천의 캐릭터를 확인한 학과장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그래요? 그럼 이따 내려가죠, 뭐.”
“뭐?!”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 교수가 진천의 대답에 언성을 높였다.
“야! 너 지금 장난해! 어!”
- “이 교수님! 진정하세요!”
- “그래요 교수님. 안 그래도 죄다 CCTV인데.”
통제실의 직원들이 흥분한 이 교수를 뜯어말렸다.
“정말 안 내려갈 생각인가?”
시간을 확인한 학과장이 감정을 추스르며 물었다.
“네.”
“원래 같이 들어가기로 한 거 아니었나? 내가 듣기론 그쪽 대표도 이미 동의를…….”
“학과장님, 그거 아세요?”
진천이 학과장의 말을 끊었다.
“저 건방진 애송이가 2차 각성에 성공한 S급 궁수를 원했답니다. 매직 아처의 위대함을 드러내기 위한 첫 번째 제물로요.”
진천이 화면에 잡힌 태주의 모습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럼 S급을 상대하기 위한 자격이 있다는 것부터 증명하는 게 순서 아닙니까?”
“증명?”
“일단 저 핏덩이들부터 정리하라고 하세요. 최후의 1인이 되기 전까진 내려갈 생각이 없으니까.”
“꽤 자신만만하군.”
학과장이 진천의 건방진 태도에 헛웃음을 지었다.
“전 조연으로 온 게 아니거든요.”
순간, 진천의 눈빛이 매섭게 바뀌었다.
“주연이 되러 온 거지.”
진천은 최초의 매직 아처인 태주를 꺾어 몸값을 높일 작정이었다.
“뭐?”
학과장을 비롯한 통제실의 모든 인원이 진천의 발언에 두 귀를 의심했다.
“영상이 공개되는 게 두려우면, 지금이라도 만만한 헌터를 섭외하세요. 뭐, 이겨도 본전인 싸움엔 아무도 안 오겠지만.”
“야! 너 말 다했어! 어!”
이 교수가 직원들을 뿌리치며 진천에게 돌진했다.
“그만!”
학과장이 팔을 뻗어 이 교수의 앞을 막았다.
“학과장님! 저런 놈은.”
“그만.”
“…….”
이 교수가 학과장의 카리스마에 한 발짝 물러섰다.
“정진천이라고 했나.”
학과장이 진천의 앞으로 다가가 나지막이 물었다.
“그런데요.”
“웬만하면 새로운 이름을 하나 생각해 두게. 앞으론 그 이름을 사용하기 부끄러울 테니까.”
진천과 눈을 마주친 학과장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