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 입학시험 (8)
“아, 아닙니다.”
살짝 당황스럽긴 했지만, 오해가 풀린 것 같아 기분은 좋았다.
“그리고 시벨롬에게 한 방 먹인 것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학과장님이 엷은 미소를 지으며 쿨하게 스쳐갔다.
“네? 아, 네! 감사합니다!”
권위와 상관없이 잘못을 인정한 학과장님의 결정에 고마움을 표했다.
“안녕. 난 이종도 교수야. 만나서 반가워.”
와…… 이종도 교수님은 언제 봐도 파이팅이 넘치네.
임세준이 그랬듯 이종도 교수님 역시 직업이 같아 마주칠 일이 많았다.
물론 만남의 횟수에 비해 별다른 친분은 없었지만.
“앞으로 내가 널 특별히 지도하게 될 거야.”
뭐지?
의욕이 넘치는 게 벌써부터 불안하다.
예전에도 툭하면 쉬는 시간까지 수업을 했는데…….
“아, 그리고 아까 보니까 활이 좀 낡았던데. 혹시 다른 활은 없어?”
“네, 뭐…….”
“아니, 내가 가지고 있는 활이 몇 개 있는데, 괜찮으면 하나 선물하려고.”
“아니요. 괜찮습니다.”
예의상 한 번은 거절했지만, 사실 교수님이 갖고 있는 활들은 임세준의 졸업 선물과 비교할 수 없는 최상급 라인이었다.
“아니야. 내가 꼭 주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절대 부담 갖지 마.”
교수님의 특급 선물에 아이들이 부러운 표정을 지었다.
- “오 대박! 대체 얼마짜리 활을 주려고 그러지?”
- “어? 나도 신태주랑 똑같은 모델인데 나는 뭐 안 주나?”
- “야, 넌 그냥 네 돈으로 사.”
모든 게 처음이었다.
누군가를 실력으로 압도한 것도, 모두의 인정과 관심을 받은 것도.
그래서 더욱 기대가 된다.
앞으로의 학교생활이, 눈에 띄게 달라질 과거의 내가.
*
*
*
두 번째 입학시험이 끝났다.
결과 발표는 2주 후에 있지만, 딱히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압도적 1위.
내가 수석이란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벌써 와 있네.
트레이닝 돔 앞에 대기 중이던 총장님의 차가 보였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인데…….
“타게.”
살짝 내려간 창문 너머로 총장님의 눈빛이 보였다.
“네.”
가볍게 목례를 한 뒤 반대편 문으로 이동했다.
덜컥!
차문을 열자 상자 하나가 보였다.
총장님의 옆에 놓여 있는데, 딱 손바닥만 한 크기였다.
저게 뭐지?
왠지 내 거 같긴 한데…….
“수고했네. 모든 게 기대 이상이야. 내가 괜한 걱정을 했어.”
총장님의 흡족한 반응에 나 또한 마음이 놓였다.
“다 총장님께서 배려해 주신 덕분입니다.”
“아니. 오히려 자네 덕분에 내 체면이 살았네.”
총장님이 내 어깨를 가볍게 움켜쥐었다.
물론 마력을 측정하려는 게 아닌 진짜 격려의 의미로 말이다.
“이제 영상만 공개되면 완전히 전세 역전이야. 허허, 녀석들이 지을 표정이 벌써부터 눈에 선하군.”
“입시 영상은 언제 공개되는 겁니까?”
“등급 측정 영상도 같이 보내기로 했으니 늦어도 한 시간 안엔 언론에 공개될 걸세.”
매직 아처임이 입증되면, 상당히 바빠질 거다.
방송 출연에 인터뷰에, 각종 행사들까지.
심지어 해외 스케줄도 생길 거다.
아직 비행기도 못 타봤는데…….
일단 여권부터 만들어야겠다.
“아, 그리고 아레나에서 온 그 천둥벌거숭이 말이야. 내가 이 대표에게 연락해서 당장 자르라고 했네.”
총장님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늘이 어떤 자리인데 감히…… 뭐, 오늘 일로 느꼈겠지만, 자네를 발판으로 떠보려는 놈들은 갈수록 늘어날 걸세.”
“네. 앞으로 유의하겠습니다.”
총장님 말대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헌터들의 경쟁은 점점 치열해졌다.
자신의 가치에 대한 끊임없는 증명.
그 부담감은 아레나 같은 대형 길드에 들어가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좀 전에 맞붙은 그 S급 궁수처럼.
“자.”
총장님이 의문의 상자를 건넸다.
“이게 뭡니까?”
“궁금하면 한번 열어보게.”
상자의 무게는 상당히 가벼웠다.
“네. 그럼.”
총장님의 스케일을 기대하면서 천천히 뚜껑을 열었다.
어! 이건!
학부생이 아니라면 알아볼 수 없는 물건이었다.
일명 마스터 카드.
“이게 뭡니까?”
일부러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출입증이네.”
“네? 출입증이요?”
“트레이닝 돔 밑엔 수많은 통제구역이 있네. 그 카드 없이는 접근할 수 없는 곳이지.”
“아, 네…….”
“카드의 등급에 따라 들어갈 수 있는 범위가 다르네.”
“어? 카드 앞면에 3급이라고 찍혀 있는데요?”
“가장 낮은 등급이라고 서운해하진 말게. 자네를 제외한 그 어떤 학생도 마스터 카드를 소지할 수 없으니까.”
국제 대회에 나가는 학부생은 3급 통제 구역에 위치한 개인 연습실을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교수님이나 직원의 도움 없이는 함부로 출입할 수 없었지만.
때문에 카드를 맡긴다는 것은 엄청난 기대감의 표현이었다.
총장님의 애착인형이었던 허창민도 마스터 카드를 받진 못했으니까.
“그런 중요한 카드를 왜 저한테…….”
“자네만이 날 도울 수 있으니까.”
총장님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그 미소의 의미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국제헌터협회에선 매년 헌터학과의 순위를 발표하네. 우리 한국대는…….”
총장님은 무려 20분간 국제 대회에 대해 설명했다.
한 줄로 요약하면, 국제 대회를 싹쓸이해서 학교 순위를 올리라는 거지만.
하…… 아는 얘기라 그런지 엄청 지루하네.
“내 말뜻을 이해하겠나.”
못 알아들었다고 하면, 다시 설명할 기세였다.
“자네와 나 사이의 신뢰가 두터워질수록 더 높은 등급의 카드가 제공될 걸세.”
사실 학생들이 출입할 수 있는 건 3급 통제구역까지였다.
1급 통제구역엔 비밀 금고가 있다고 들었는데…….
소문에 의하면, 각성자도 통제할 수 없는 각종 재앙급 장비들이 봉인되어 있다고 했다.
“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 획득한 물품을 인벤토리에 넣으시겠습니까? (Y/N)
카드가 든 상자를 인벤토리에 저장했다.
【인벤토리】
4.
[일반]
마스터 카드 (×1)
“허허, 법사들도 어려워하는 아공간 마법을 호주머니에 넣는 것처럼 쉽게 하는군.”
총장님이 날 흥미로운 눈으로 쳐다봤다.
“하긴, 그 큰 활도 소환한 마당에 이 정도 상자쯤이야.”
이미 말했듯이 난 내 능력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보여주고 싶어도 보여줄 게 없던 과거의 내가 너무나도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그럼 혹시 입학시험 때 보여준 능력도 100%를 발휘한 게 아닌가?”
“네, 뭐…….”
사실 파이어 애로우를 한번 써보고 싶었는데, 딱히 쓸 일이 없어 다음 기회로 미뤄둔 상황이었다.
“허허, 이거 아주 갈수록 기대되는군.”
총장님의 웃음소리는 협회로 가는 내내 끊이지 않았다.
*
*
*
드디어 협회에 도착했다.
뭐, 기자들은 벌써부터 진을 치고 있었지만.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총장님과의 투샷이 유독 많이 잡히는 하루였다.
- “신태주 씨! 한국대 입시 사상 유래 없는 고득점으로 합격하셨다는데, 사실입니까!”
- “듣기론 현직 헌터와의 대결에서도 압승을 거두셨다는데, 혹시 그 부분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 “신태주 씨! 이쪽도 한 번 봐 주세요!”
- “신태주 씨!”
기자들의 질문이 정신없이 쏟아졌다.
“자, 자, 곧 보도 자료가 나갈 예정이니 궁금한 점이 있더라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총장님이 능숙한 대처로 기자들을 설득했다.
“이만 가지.”
“네.”
총장님의 뒤를 따라 협회 안으로 들어갔다.
*
*
*
“다들 자네에게 관심이 많군.”
총장님이 로비에 모인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하긴, 자네 정도면 4년을 기다릴 만도 하지.”
차에서 들은 바로는 5대 길드의 수장과 대기업 스카우터들이 총출동했다고 한다.
날 떨어뜨린 놈들은 다 모였네.
“측정이 끝나는 대로 영업이 시작될 걸세.”
“영업이요?”
이번에도 역시 모른 척 고개를 갸웃거렸다.
“N차 각성의 확률을 판단하는 것이 영업의 시작이네만, 자네처럼 검증이 끝난 인재에겐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총장님의 말이 맞다.
아마 온갖 감언이설을 내뱉으며 접근을 시도할 거다.
일종의 어장관리?
동기들의 경우 이르면 2학년, 늦어도 4학년 무렵엔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관리 대상에 들어가면, 매달 용돈을 받는데, 한 곳당 적게는 30, 많게는 100만 원까지 통장에 꽂혔다.
뭐, 난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지만.
심지어 계약금처럼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게 아니라 먹튀를 해도 상관이 없었다.
한마디로 공돈이란 뜻이다.
동기들의 경우 평균 2~3곳에서 지원을 받았는데, 허창민의 경우 무려 7곳에서 용돈을 받았다.
물론 다른 곳과의 계약이 진행 중이거나 성장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면 바로 손절을 당하지만.
“어휴 일찍 오셨네요.”
풍림의 대표가 총장님에게 다가왔다.
물론 총장님이 아니라 날 만나러 온 거지만.
“아 네가 태주구나. 세준이한테 얘기 많이 들었다. 둘이 벌써 친구라고?”
와…… 아빠나 아들이나 성격이 똑같네.
“네, 뭐…….”
“세준이가 원래 낯가림이 엄청 심한데, 다행히 태주 너랑은 코드가 잘 맞나 보다.”
“아, 네…….”
아무래도 이 집안은 낯가림의 기준이 다른 것 같다.
“앞으로 집에도 자주 놀러오고, 궁금한 게 있으면, 이 아저씨한테 언제든지 물어봐.”
임경수 대표가 나에게 명함 2장을 건넸다.
“1장만 주면 잃어버릴 수도 있잖아.”
“아, 네…… 감사합니다.”
일단 자금줄 한 곳은 확보했다.
그래도 희귀 클래스니까 최소 100만 원은 주겠지?
얼마나 많은 후원자가 모일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입구에서 손님을 가로채면 반칙 아닙니까?”
어? 아레나의 이동규 대표다.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지.
역시 5차 각성에 성공한 어쌔신이라 은신의 깊이가 달랐다.
“이 친구 표정을 보세요. 딱 봐도 억지로 웃고 있지 않습니까? 괜히 자식까지 끌어다 억지 인연 만들지 말고, 공정하게 경쟁하세요. 공정하게.”
“뭐? 억지 인연? 와 나 진짜 어이가 없네? 이봐, 이 대표, 그렇게 따지면 그쪽도 할 말 없는 거 아니야?”
“제가요?”
“오늘 한국대 입시에 프로 한 명 파견한 거.”
황당한 표정을 짓던 임 대표가 언성을 높였다.
“지면 망신이라 아무도 안 하겠다고 했는데, 아레나에서 먼저 협회에 연락했다며. 원하는 인물로 보낼 테니까 태주한테 잘 좀 얘기해 달라고.”
“임 대표님, 그건…….”
유리의 빈소에서도 느꼈지만, 아레나의 이동규는 상당히 계산적인 인물이었다.
“그게 진짜 입구에서 가로챈 거 아니야? 내 말이 틀려?”
두 사람의 신경전이 점점 격화되고 있었다.
5대 길드의 수장이 나를 두고 싸우다니.
이성은 아니지만, 기분이 묘했다.
“아니,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5대 길드 중 하나인 태동의 대표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장례식장에서 본 철용이가 태동 길드였는데…….
태동의 대표인 오승훈은 5차 각성에 성공한 S급 법사였다.
근데 저런 옷은 어디서 사는 거야?
저 세상 패션을 하고 온 오 대표는 업계에서도 기인으로 통했다.
물론 실력으로는 누구도 깔 수 없었지만.
“신태주라고 했나?”
오승훈이 내게 어깨동무를 했다.
“이건 비밀인데, 원래 호객 행위를 하는 곳은 맛집이 아니야.”
오승훈이 속삭이는 척 두 사람을 저격했다.
“손님이 줄을 서게 만들어야 진짜 맛집이지. 안 그래?”
뭐지?
틀린 말은 아닌데, 자꾸 귀에다가 속삭인다.
저리 꺼지라고 할 수도 없고.
의상이 부담스러운 게 아니라, 그냥 이 아저씨 자체가 부담스럽다.
“자, 자, 영업은 나중에 하고, 일단 측정실로 이동하세.”
총장님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던 오 대표의 팔을 마법으로 치워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