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쉽게 말해서 쇼윈도 부부라고 생각하세요. 내조 이런 거 필요 없습니다. 계약이 끝나면 바로 이혼입니다.” “……네?” 인생에서 청혼따위 바란 적 없다. 고아년이라고 맞아가며 커온 세월. “조건에 협의는 없습니다.” 그런 지옥같은 삶에 그가 나타났다. 결혼을 말하는 자리에서 이혼 고지하는 남자. 그는 하린이 짝사랑하는 상대이자, 피가 섞이지 않은 동생과 약혼이 오고가던 사람이었다. *** “정말로, 진짜 제가 다른 놈 만나서 사는 거 보길 원해요?” “상관없어.” 숨김없는 알맹이가 툭 튀어나와 둘 사이에 팽팽한 줄다리기를 거침없이 흔들었다. 낯선 감정이, 곧 터질 듯 팽창하고 있음을 느꼈다. “한 번이라도 여자로 봐주면 안 돼요? 저 뭐든지 잘 배우고, 잘 할 자신 있어요.” “뭐를.” 토끼처럼 붉은 눈이 커다랗게 뜨여 그를 애타게 바라봤다. 붉게 물든 얼굴이 깊은 마음속에 숨겨두었던 무언가를 건드렸다. 한번 꺼내면 영영 돌이킬 수 없어, 티도 못 내던 그 감정을 말이다. “내가 널 여자로 봐주면, 어떤 일이 생길 줄 알고.” 성대를 긁으며 튀어나오는 목소리가 묘하게 날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