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 때부터 성에 갇혀 살아온 대마법사 이리아는 스무 살이 된 첫날, 자유를 찾아 가출을 감행한다. 기사들을 피해 도망친 곳은 바로 이웃 나라의 전쟁터. 기사들이 올 수 없는 이곳이라면 가출 계획이 순조롭게 흘러가리라 생각했다. 분명 그랬는데…… “나 몰래 도망치게 둘 수는 없는데.” 이번에는 기사들이 아닌 한 남자가 발목을 잡는다. “책임져야지.” “뭐…뭘 채, 책임져요?” “나.” 이리아의 상사이자 군대를 이끄는 영웅, 제국의 공작 덱스터 하워드. 술에 취해 기억조차 나지 않는 밤이다. 눈앞의 이 무시무시한 남자와 이런 식으로 얽힐 줄은 감히 상상조차 못 했었다. 도대체 뭘, 어떻게 책임지라는 건지. 혼란스러운 이리아에게 덱스터가 요구한 건 딱 하나였다. “나와 결혼하면 돼.” 그건 바로, 결혼. *** 그런데 대체 왜 결혼인 걸까. 덱스터 하워드는 나를 진절머리나게 싫어했다. 몸 한 번 닿는 것도 혐오할 정도로, 눈앞에서 죽여버리겠다고 고함칠 정도로. 다른 남자라면 몰라도, 절대 덱스터 하워드와 결혼하고 싶지는 않아. 내 방대한 가출 계획에 이런 건 없었어. 덱스터 하워드와의 결혼 따위는 없었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