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4화
새로 장착한 능력
예상하지 못한 현상이 당혹스러웠다.
한 거라고는 몰래 숨어서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직접적으로 몬스터를 잡은 적도 없었고, 상처 입은 놈이 뒤늦게 죽은 것도 아니었다.
‘왜 이렇게 된 거지?’
이문후는 오벨리스크에서 퍼져 나왔던 붉은 빛을 떠올렸다.
그나마 영향을 끼쳤던 것은 그에게 스며든 붉은빛이었다.
갑자기 얻게 된 경험치도 놀라웠다. 하지만 도열해 있는 오크들의 변화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크아아아!”
놈들의 포효에 절벽이 무너질 것 같이 흔들렸다.
드높아진 사기와 함께 고무된 모습을 본 이문후는 놈들의 변화를 눈치챘다.
‘강해진 건가?’
의식을 하기 전보다 더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경험치가 오른 것은 이문후 혼자가 아니었다. 한데 모인 오크들도 성장한 느낌이었다.
‘잠깐 힘을 얻은 것 같지는 않은데.’
모여 있는 놈들 중에 일부는 일부는 근육과 덩치가 더 커진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인 것을 보면 아무래도 영구적으로 힘을 얻은 게 확실했다.
아무 의미 없이 사람들을 제물로 사용한 게 아니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깨달았지만,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적들이 더 필요하다! 곧 문이 열린다! 그때가 되면 더 많은 인간을 잡아 와라!”
“크아아아!”
주술사가 한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문이 열린다는 건 게이트를 말하고 있었다.
‘조만간 다시 웨이브가 시작된다는 건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생각보다 그 시기가 빠른 것 같았지만, 그 전에 놈들의 수를 줄여야만 했다.
문제는 지금 이 상태로 놈들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기습을 한다고 해도 서너 마리가 최선일 것 같은데.’
백여 마리가 넘어가는 오크들의 위용은 대단했다.
대전사로 보이는 놈들만 셋이었다. 일대일로 싸워도 쉽지 않은 놈들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지나치기에는 앞에 있는 놈들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방법이 없을까?’
정면돌파는 불가능했다.
고블린이나 원숭이들과 싸웠을 때처럼 변수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정적이라고 할만한 놈들은 없을 것 같은데.”
지금 모인 놈들이 이곳을 지배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거기에 독을 사용할 수 있을만한 우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고민하는 와중에 모여 있던 오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술사의 연설이 끝나자, 놈들은 흩어졌다. 저마다 무리를 지으며 움직이는 모습에 이문후는 몸을 잔뜩 웅크렸다.
‘지금 걸리면… 죽겠지?’
몬스터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지금 그의 모습은 오크가 아니었다.
‘오크로 변할 수는 없나?’
놈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움직이면 훨씬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었다. 내부에서 은밀하게 움직이면 누군가가 죽어도 발각되지 않을 것 같았다.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저주받은 피라는 스킬 자체가 1레벨로 유지되고 있었다.
만약 레벨을 올린다면 어떤 효과가 나타날지 몰랐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레벨을 올릴 수도 없는 것이 경험치 구슬이 부족했다.
‘맞아! 경험치 구슬!’
조금 전에 얻은 경험치로 부족했던 새로운 경험치 구슬을 손에 넣었다.
그렇게 모인 구슬이 모두 40개였다.
‘이제 5레벨인데.’
예상하지 못한 경험치로 너무 쉽게 경험치 구슬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는 경험치 구슬을 레벨에 투자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5성 이상의 스킬 제한이 해제됩니다. 나한신공의 효과가 5성까지 정상적으로 적용됩니다.]
[장착할 수 있는 스킬의 수가 늘어납니다.]
5레벨이 되자, 예상했던 것처럼 새로운 스킬을 하나 더 장착할 수 있었다.
레벨을 올릴 수 있는 스킬이 하나 더 늘어난 것이다.
‘흐음.’
고민하던 그는 저주받은 피를 새로운 스킬 창에 장착했다.
어차피 건곤대나이를 통해서 유지되고 있던 능력이었지만, 2레벨이 됐을 때, 어떤 효과가 생기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오크로 변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렇게 된다면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여기에 있는 놈들을 수월하게 잡을 수 있었다.
‘백 마리가 넘는 오크라니.’
경험치만 생각해도 엄청난 이득이었다.
그 전에 다시 경험치 구슬을 채워야 했다.
***
‘저놈들한테 중요한 곳인가?’
레벨을 올리고 오크들의 동향을 살피던 이문후는 생각보다 경계가 삼엄한 절벽의 모습에 의문을 가졌다.
오크 주술사가 다시 오벨리스크의 모습을 숨겼지만, 오크들의 경계는 줄지 않았다.
대략 서른 마리 정도의 오크들이 주변을 지키고 있었다.
‘마을은 저쪽이던데.’
이미 인근의 지형을 모두 확인했다.
확실히 고블린의 사냥 지식은 큰 도움이 됐다. 몇 번 오간 게 전부였지만, 저절로 주변의 지형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삼엄한 절벽과 마을이라.’
이 상황을 잘 이용하면 오크들을 쉽게 처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마을과 절벽으로 이어지는 길은 하나였다.
제법 거리가 있어서 지원을 오는데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문제는 저 오크들인데.’
아무리 그라도 서른 마리의 오크들을 상대하는 건 힘들어 보였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은 기습으로 수를 줄이는 것뿐이었다.
‘잡다보면 어떻게 되겠지.’
아무것도 안 하고 고민만 한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우선 놈들의 수를 줄이면서 변하는 상황을 보고 판단하는 게 중요했다.
이문후는 곧바로 움직였다.
계속 고블린으로 변한 상태로 움직이는 것도 부담이었다. 이미 어떻게 움직일지 동선을 짜둔 그는 구석에 있는 오크를 향해 은밀하게 다가갔다.
‘한 번에 처리해야 하는데.’
오크를 처리할 몇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하지만 처음인 만큼 과한 힘을 쓰는 것도 나빠 보이지 않았다.
그는 과감하게 움직였다.
경계를 서는 오크의 사각지대로 움직이면서 곧바로 순간이동 능력을 사용했다.
파앗!
순식간에 오크의 뒤로 움직인 그는 곧바로 단검을 찔러 넣었다.
“크르륵!”
예리한 단검이 정확히 목을 파고들었다.
행여라도 소리가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놈의 입까지 막자, 오크는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후우.’
다행히 큰 소란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이제는 이런 식의 기습이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크를 처리한 이문후는 들려오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다량의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 구슬을 완성하였습니다.]
‘뭐야?’
겨우 오크 한 마리를 처리했을 뿐이었다.
더군다나 이미 경험치 구슬이 완성된 상태에서 처음 잡은 놈이었기 때문에 기존에 쌓인 경험치도 없다고 봐야 했다.
그런데도 경험치 구슬이 완성된 것이다.
‘이놈이 대전사도 아니잖아?’
평범한 오크였다.
여기까지 오기 전에 상대했던 다른 놈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보통 대여섯 마리를 잡아야 경험치 구슬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제는 5레벨이 된 만큼 더 많은 놈을 잡아야 경험치 구슬을 완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겨우 한 마리로 경험치 구슬을 얻게 된 것이다.
이상함을 느낀 그는 쓰러진 오크를 살폈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오크였다. 다른 게 있다면 앞에 있는 놈도 얼마 전에 있었던 의식을 통해서 붉은빛을 흡수했다는 것이었다.
‘그 빛 때문에 그런 건가?’
그에게 나쁠 건 없었다. 그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경험치 구슬을 손쉽게 얻었다는 것 자체가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문후는 의구심을 가지며 다른 오크를 찾았다.
어쩌면 지금 죽은 놈이 특별한 건지도 몰랐다. 그 차이를 알기 위해서도 다른 놈을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크킁?”
가까이 붙기도 전에 오크가 킁킁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뭔가를 눈치챈 듯한 놈의 모습에 이문후는 몸을 잔뜩 웅크렸다.
여기에서 정체를 들켜서 좋을 건 없었다.
그는 신중하게 움직이면서 오크를 주시했고, 곧 반대편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을 확인하며 그대로 놈을 향해 달려갔다.
파앗!
나한보를 밟자 그의 몸이 순식간에 오크와 가까워졌다.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놀란 오크가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문후를 확인하기도 전에 강한 충격이 내부를 뒤흔들었다.
“끄어억!”
이문후는 오크의 옆구리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그 와중에 발경을 펼치며 기운을 흘러 넣자, 오크는 고통스러워하며 무릎을 꿇었다.
순식간에 오크를 제압한 그는 곧장 단검을 찔러 넣었다.
아무리 놈을 무력화시켰다고 해도 완전히 숨통을 끊어놔야 안심이 됐다.
푸욱!
칼끝을 타고 전해지는 묵직한 감각.
동시에 경험치로 변한 오크의 죽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량의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 구슬을 완성하였습니다.]
‘여기에 있는 놈들이 특별한 건가?’
이번에도 많은 경험치를 얻었다.
두 번째 구슬을 손에 넣은 이문후는 죽은 오크를 바라봤다.
그렇게 특별할 건 없어 보였다.
갑자기 왜 이렇게 많은 경험치를 주는 건지는 몰랐지만, 이 시간이 지나가기 전에 더 많은 놈들을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
[다량의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 구슬을 완성하였습니다.]
일부러 활력단까지 복용한 그는 최대한 빨리 움직였다.
다행히 열 마리의 오크를 처리할 때까지 경험치는 줄어들지 않았다.
그렇게 모은 10개의 경험치 구슬.
이문후는 새로운 스킬창에 장착한 저주받은 피의 레벨을 올렸다.
[저주받은 피가 2레벨이 되었습니다.]
[변신 가능한 몬스터의 종류가 늘어납니다. 변할 몬스터를 선택해야 합니다.]
새로운 알림과 함께 선택해야 할 몬스터를 정해야 했다.
이문후는 눈앞에 떠오른 두 몬스터를 바라봤다.
‘홉고블린하고 오크?’
2레벨이 되자 둘 중에 하나를 고를 수 있었다.
고블린의 상위 개체인 홉고블린과 그가 원하던 오크였다.
고민을 할 것도 없었다.
그는 곧바로 오크를 선택했다. 동시에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오크의 괴성이 들려왔다.
“크아아아!”
울부짖는 소리.
아무래도 계속되던 암습이 걸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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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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