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1화
단순하게
나명진에게 연락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련의 무리들이 다가왔다.
일회성 던전 자체가 인적이 드문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동안 DS에서 관리를 한 만큼 직접 찾아올 사람은 없다고 봐도 이상하지 않았다.
‘드디어 온 건가?’
이문후는 그들이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라고 확신했다.
나명진과 나선 건설에 소속된 각성자들.
생각했던 것보다 그 수가 많지 않았지만, 지금은 나명진을 먼저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나타난 사람들을 살피던 그의 표정이 저절로 굳어졌다.
“뭐야? 기다리고 있었잖아?”
한국어가 아니었다.
가장 앞장서서 다가오던 사람은 외모가 조금 달랐다.
‘일본어잖아?’
나명진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엉뚱한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그를 대신해서 나타난 사람은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이문후가 의문을 가진 것처럼 도착한 나선 건설의 사람들도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들은 이문후의 옆에 쓰러져 있는 도유준을 발견했다.
정신은 잃은 그는 미동도 없었고, 도유준의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우릴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
“미친놈이잖아?”
웅성거리는 그들을 뒤로하고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는 이문후를 향해 물었다.
“네가 나 상이 말한 그놈이냐?”
“…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짜증 섞인 그의 대꾸에 옆에 있던 남자가 일본인의 말을 전했다.
“네가 나 사장님이 말한 그놈이냐고 묻고 계신다.”
“나 사장? 나명진?”
“그래.”
“저 새끼는 누구지? 나명진은 어디에 있는 거지?”
“…….”
이문후는 대답 대신 나명진의 행방을 물었다.
당연히 그가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직접 오는 대신 다른 사람을 보낸 것이다.
‘하긴, 그때도 그랬었지.’
오랜만이라 잊고 있었다. 하지만 나명진은 원래 이런 놈이었다. 상황이 다 끝나면 그때 나타나는 놈이었다.
“아무튼 너희들은 나명진 따까리라는 거지?”
“따, 따까리? 이 새끼가!”
유이치는 알아들을 수 없는 이문후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통역을 하던 사람이 흥분한 걸 보면 분명히 좋은 말은 아니었다.
“저놈이 뭐라고 하는 거지?”
“그게…”
“했던 말 그대로 전해.”
“우리보고 나 사장님 부하냐고 물었습니다.”
“크큭. 나보고 나명진의 부하라고?”
이문후는 갑자기 웃는 유이치의 표정에 그가 화가 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아니었다.
그 사실을 확인시켜 주려는 듯이 유이치는 곧바로 이문후를 향해 달려들었다.
파앗!
바닥을 박차기 무섭게 유이치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이미 그의 실력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빨랐다.
쉬이익!
앞으로 다가오기 무섭게 빛이 번뜩였다.
급하게 뒤로 물러났지만, 아슬아슬하게 스친 도격에 옷이 잘려나갔다.
“이걸 피해? 제법인데?”
“뭐라고 구시렁대는지는 모르겠지만, 뭘 해야 할지는 알겠네.”
“이놈이 뭐라고 하는… 흐읍!”
통역을 향해 묻던 유이치는 달려드는 이문후의 모습에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이미 그가 반격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뻐억!
전광석화 같은 공격이었다.
힘을 실은 주먹에 얻어맞은 유이치는 그대로 튕겨져 나가며 바닥에 처박혔다.
“크윽!”
“조심하십…”
콰앙!
길게 늘어난 봉이 순식간에 유이치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그가 일어나기도 전에 이문후의 공격이 꽂혔지만, 유이치는 혼자가 아니었다.
“크윽.”
“괜찮으십니까?”
“쳇! 죽인다!”
추한 꼴을 보였다고 생각한 그는 다시 한번 힘을 끌어 올렸다. 뒤로 물러난 이문후를 향해 다시 한번 쇄도한 그는 일본도를 휘두르며 다시 한번 이문후를 공격했다.
채앵!
하지만 이번 공격은 그의 봉에 가로막혔다.
생각했던 것보다 유이치의 공격이 빨랐지만, 이미 한 번 겪어본 만큼 그 공격에 다시 당할 이문후가 아니었다.
그는 당황한 듯한 유이치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손을 뻗어오는 그의 행동에 유이치는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올렸다.
다시 한번 주먹이 날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문후는 주먹을 뻗는 대신 그의 팔을 붙잡았다.
우두둑!
“크윽!”
경악할 만한 힘이었다. 유이치 역시 낮지 않은 근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 닿은 우악스러운 손길은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이 자식이!”
“그 손 안 떼!”
뒤따라왔던 사람들은 당황한 듯 소리쳤다.
유이치는 일본에서 온 손님이었다. 나름 상당한 실력자로 알고 있었지만, 이문후에게 너무 쉽게 제압당한 것이다.
이런 상황이 너무 당혹스러웠다.
무엇보다 유이치는 그들이 지켜야 할 사람이었다. 만약 여기에서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그 책임은 오롯이 그들이 져야만 했다.
‘뭐야? 중요한 놈인가?’
남아 있는 사람들의 반응에 이문후는 유이치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손에 잡힌 놈이 상당히 중요한 것 같았다. 유이치를 붙잡은 이문후는 그를 끌어당기며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
뻐억!
제압당한 유이치의 고개가 돌아갔다. 피를 흘리며 비틀거리는 모습에 같이 온 사람들이 다시 한번 거친 말을 내뱉으며 손을 뻗었다.
“그 손 놓으라고!”
쉬이익!
허공에서 날카로운 칼바람이 생겨났다.
순식간에 그의 목을 노리며 날아오는 예리한 기운에 이문후는 유이치를 끌어당겼다.
“미친!”
유이치로 앞을 가로막자, 칼바람을 날린 사내는 당황하며 급하게 팔을 들어 올렸다.
급하게 날린 마법의 궤적을 바꿔야만 했다.
쐐에엑! 콰앙!
다행히 참사는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리하게 마법을 조절한 만큼 큰 충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커헉!”
피를 토해내는 그의 모습에 이문후는 확신을 할 수 있었다.
지금 잡은 놈을 이용하면 이들을 쉽게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을.
‘이놈들 먼저 처리해야 하나?’
나명진이 이 자리에 없다는 사실은 아쉬웠지만, 이 사람들이라도 확실하게 끝내는 게 좋았다.
어차피 나중에는 적으로 만날 사람들이었다.
이미 단단히 마음을 먹은 그는 유이치를 끌고 뒤에 있는 던전으로 끌고 갔다.
“크윽. 이 자식이!”
유이치는 힘을 끌어 올리며 이문후의 손을 뿌리쳤다.
기괴하게 뒤틀린 팔에서 강한 고통이 전해졌지만, 지금은 상대의 손을 빠져나오는 게 먼저였다.
뒤에 있는 던전으로 들어간다면 위험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이문후는 곧바로 손을 뻗었다.
“하압!”
유이치는 다가오는 손을 향해 도를 휘둘렀다.
다행히 무기를 든 손은 멀쩡했기 때문에 혼신의 힘을 다해서 일격을 뿌렸다.
파앗!
휘두른 도신에 붉은 기운이 맺혔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공격으로, 유형화 된 기운이 이문후의 손을 향해 날아왔다.
‘검기 같은 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도기를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조규종과 비견될 수 있는 실력자였지만, 이문후는 옆으로 비켜서면서 손을 휘저었다.
티잉!
내공을 담은 손짓에 유이치의 도가 튕겨져 나갔다.
“말도 안 돼!”
모든 것을 벨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회심의 공격이었다. 실제로 기운을 가득 실은 도는 강철도 쉽게 잘라낼 정도로 예리했다. 하지만 이문후의 손에 너무나 쉽게 가로막혔다.
유능제강의 무리를 깨우친 그에게는 어렵지 않았다.
아무리 도기가 맺혀 있다고는 하지만, 날아오는 도의 방향만 바꾸면 피해 없이 공격을 흘릴 수 있었다.
“뭐 하고 있어! 빨리 이놈을 떨쳐내!”
이번 한 수로 이문후와의 격차를 깨달은 유이치는 크게 소리쳤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움직이기도 전에 이문후는 그를 따라잡았다.
“저리 가!”
쉬이익! 쉬이익!
당황한 유이치는 미친 듯이 도를 휘둘렀다.
우선은 앞에 있는 놈을 떨쳐내는 게 중요했다. 하지만 다시 공격을 흘린 이문후는 유이치의 품으로 파고들며 주먹을 뻗었다.
뻐억!
묵직한 충격이 전해졌지만, 유이치는 이를 악물며 그의 주먹을 견뎌냈다. 다른 사람들이 도울 때까지 어떻게든 버틸 생각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날아오는 주먹에 결국 그의 몸이 꺾였다.
“후우.”
이문후는 이유치의 머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그를 끌고 뒤로 물러났다.
“머, 멈춰!”
뒤에 있는 던전으로 향하는 그의 행동에 사람들은 당황했다. 하지만 미처 말릴 겨를도 없이 이문후는 정신을 잃은 유이치를 게이트 안으로 밀어 넣었다.
“미친 자식!”
“나명진한테 전해. 이 새끼 구하고 싶으면 직접 찾아오라고.”
“거기 서!”
이문후는 그 말을 남기고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지도 못한 그의 행동에 남은 사람들은 당황하며 서로를 바라봤다.
“어떡하지?”
“… 쫓아가야지! 너는 사장님한테 연락해. 나머지는 안으로 들어간다!”
“보통이 아니던데. 괜찮을까?”
“던전 안이잖아! 차라리 잘 됐어. 모두 힘을 아끼지 마!”
결정을 내린 그들은 곧바로 움직였다.
한 명은 남아서 나명진에게 연락을 취했고, 나머지는 모두 던전 안으로 뛰어들었다.
***
콰앙!
안으로 들어온 그들을 맞은 것은 은빛 섬광이었다.
던전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문후는 그들이 들어오기 무섭게 봉을 휘둘렀다.
“끄으윽!”
무방비 상태로 넘어온 그들은 너무나 쉽게 쓰러졌다.
뒤늦게 자세를 잡으며 방어를 하려고 했지만, 힘이 잔뜩 실린 봉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콰앙! 콰앙!
이문후가 봉을 휘두를 때마다 한 명씩 피를 흘리며 쓰러져 나갔다.
마음을 단단히 먹은 그의 공격은 거침이 없었다.
머리에 강한 충격을 입은 사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쓰러졌고, 곧 그의 죽음을 알리는 소리가 전해졌다.
[스킬, 양가창법을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 구슬을 2개 획득하였습니다.]
죽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 넘어왔다.
스킬뿐만 아니라 경험치 구슬까지 손에 넣은 이문후는 잊고 있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래. 플레이어!’
몬스터를 잡는 것보다 각성을 한 플레이어를 잡는 게 더 효과적이었다. 그동안에는 같은 사람을 쓰러뜨리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앞에 있는 놈들은 아니었다.
“하압!”
그는 다시 한번 봉에 힘을 실었다.
내공을 머금은 봉은 길게 늘어나며 앞에 있는 남자의 가슴을 때렸다.
콰앙!
괴음과 함께 다시 한 명이 쓰러졌다.
피를 토하며 튕겨져 나간 사내는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고, 이문후는 다시 한번 그가 남긴 보상을 손에 넣었다.
[경험치 구슬을 1개 획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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