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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의 던전 사냥-38화 (38/126)

제 38화

거래

김영환의 앞에도 다른 사람이 앉아있었다. 하지만 지금 김영환 외에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저 사람도 각성을 한 건가?’

그룹을 이끄는 총수라서 그런지 느낌 자체가 달랐다.

높은 감각과 3성의 나한신공은 앞에 있는 백발의 남자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려왔다.

“회장님. 이문후 씨입니다.”

“아, 그래. 어서 와요.”

“처음 뵙겠습니다.”

“거기 앉으세요. 김 비서는 차를 좀 내오지.”

“예. 회장님.”

정중한 말투였지만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었다.

저절로 그의 말에 따라야 할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었다.

‘긴장한 건가?’

차를 타고 올 때까지는 별 느낌이 없었지만, 김영환을 만나고부터 뭔가 말리는 느낌이었다.

의도적으로 복도를 가득 채운 경호원들. 그리고 DS그룹의 본사 빌딩과 수많은 직원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만큼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흐음.’

이문후는 호흡을 고르며 내공을 움직였다.

어차피 잘못을 한 것도 아니었다. 권형태를 만나면서도 할 말을 다했던 기억을 떠올린 그는 조금씩 긴장을 풀어나갔다.

“이 사람이 오 실장이 말한 그 사람인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평범한 사람으로 보이네요?”

“…….”

같이 있던 누군가가 솔직한 느낌을 밝혔다. 하지만 이문후를 관찰하고 있던 임현철은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잔뜩 긴장한 것 같았던 이문후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평범할 리 없었다.

모두의 시선이 이문후에게 향했다. 그리고 그들의 노골적인 시선에 이문후는 쓰게 웃었다. 아무리 직접 불렀다지만, 이런 관심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 표정을 읽은 임현철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우리가 이문후 씨를 부른 이유는…”

“새벽에 있었던 일 때문인 것 같은데. 맞습니까?”

“예. 거기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문후 씨에게 관심이 가서 이렇게 불렀습니다.”

대화는 김영환이 아닌 임현철이 주도하고 있었다.

미리 자리에 앉아 있었던 걸로 봐서 원래 이런 일을 도맡아서 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하는 게 서로에게 좋지 않겠어요?”

“네. 저도 그게 편합니다.”

“좋군요. 우리 그룹에서는 이문후 씨의 역량이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와 뜻을 함께 하는 게 어떻습니까?”

이미 예상하고 있던 말이었다. 크게 새롭지 않은 제안이었지만, 정작 중요한 것들이 빠져 있었다.

“뜻을 함께 하자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우리와 같이 일을 하는 겁니다. 아직까지 정확히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각성자들과 함께 움직일 거네.”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김영환이 입을 열었다.

두루뭉술한 대답을 하는 것보다 자신의 뜻을 정확히 밝히는 게 나을 거라고 판단한 그는 이문후를 바라보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내가 한참 연장자인 것 같은데, 말은 편하게 해도 괜찮겠지?”

“예. 저도 그게 편합니다.”

“고맙군. 앞으로 다른 각성자들하고 같이 움직일 거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그룹에 필요한 것들을 해주는 역할을 맡겠지.”

“필요한 것들이라면?”

“각성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네. 가장 주된 일은 던전이라는 곳에서 나오는 재료들을 구하는 거고. 그 외에 다른 일들도 맡길 생각이네.”

“…….”

재료를 구하는 일이야 어렵지 않았다.

지금도 하고 있는 일이었다. 던전에 들어가서 몬스터들과 싸우고 놈들의 전리품을 챙기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뒤에 붙인 말이 마음에 걸렸다.

‘그 외에 다른 일들이라.’

거대한 기업을 경영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법을 위반하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런 것들을 맡길 생각인 것 같았다.

대놓고 할 수 없는 일들.

굳이 사업뿐만 아니라 다른 일을 처리하는데도 각성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쓰일 것은 너무나 뻔했다.

“원하는 게 있나?”

쉽게 답을 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김영환이 운을 뗐다.

아직 이문후의 실력을 확인한 것은 아니었지만, 각성을 한 게 확실한 만큼 데리고 있어서 나쁠 건 없었다.

“글쎄요.”

“보통은 쉽게 밝히지 못하더군. 그래서 미리 준비를 했네.”

“준비요?”

김영환의 말에 옆에 있던 사람이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리고 이문후의 탁자 앞에 놓으며 손으로 가리켰다.

투명한 탁자에 놓인 하얀 좋이.

그냥 종이 한 장이었다. 권유하듯이 가리키던 행동과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었다.

“이게 뭡니까?”

“원하는 금액을 적어보게.”

“예?”

“백지수표네.”

백지수표라는 것을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유명한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들이 아주 가끔 받아봤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직접 이런 제의를 받을 줄은 몰랐다.

‘확실히 스케일이 다르다네.’

김영환의 배포가 놀라웠다.

앞에 놓인 백지수표. 밑으로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거금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금액이 커질수록 해야 할 일은 더 많아졌다.

‘그만큼 힘든 일도 해야 한다는 거겠지?’

자유와 돈 중에 무엇을 선택할 건지 강요받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당연히 백지수표를 선택했을 것 같았다. 원하는 금액을 다 줄지는 모르겠지만, 천억이든 이천 억이든 적고 봤을 이문후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보통 스스로가 생각하는 자신만의 가치가 있을 테지.”

“글쎄요. 평소에 그런 생각은 안 해봐서요.”

“그런가?”

자신을 바라보는 김영환의 시선에 이문후는 쓰게 웃었다.

아무래도 시험을 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스스로의 가치?’

고민을 해봤지만, 구체적인 액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여기에 금액을 적으면 앞에 있는 사람의 명령을 끝까지 따라야만 할 것 같았다.

‘저 사람과 함께 한다?’

아직 김영환이 누군지 몰랐다.

언론이나 매체에 나오는 유능한 대기업 총수의 모습이 그가 알고 있는 전부였다.

“회장님께서 제 가치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 그것 참 어려운 질문이군.”

이문후의 질문을 받은 김영환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역으로 이런 질문을 받을 거라고는 예상 못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은 적당한 금액을 쓰고, DS그룹과 함께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다른 이유를 대면서 정중하게 거절을 했지만, 이문후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기분이 상한 건가?’

불쾌해하는 듯한 모습을 보면 자신이 꼭 필요해서 끌어들이려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저 흔한 각성자들 중에 한 명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소모품 정도로 생각하고 있던 거겠지?’

이런 모습에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이문후는 테이블 위에 놓인 백지수표를 밀어냈다. 아무것도 적지 않은 그대로였다.

“거절입니까?”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행동에 자리에 앉아있던 임현철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내키지 않는 일을 하는 것보다는 이게 나을 것 같아서요.”

“의외군. 하지만 이런 기회는 흔치 않을 거네.”

“예. 알고 있습니다.”

“흐음. 알겠네. 평안감사도 자기가 싫으면 안 하는 거겠지.”

이문후 스스로도 이런 결정을 쉽게 내린 자신의 모습을 놀라워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뜻대로 움직이고 싶지는 않았다.

“아쉽군. 같이 일을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네.”

“…….”

“여기까지 오느라고 고생 많았네.”

김영환은 형식적인 인사를 건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굳이 더 시간을 할애할 필요성을 못 느낀 것이다.

“그럼 저도 일어나 보겠습니다.”

곧바로 방을 나가는 김영환의 모습에 이문후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임현철이 그를 붙잡았다.

“잠깐만 시간을 더 내주겠습니까?”

“예? 할 말이 더 남아 있습니까?”

“이제는 사업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사업이요?”

“네. 단순히 우리 쪽으로 끌어들이자고 귀한 시간을 내주라고 한 건 아닙니다. 저에게는 이게 더 중요한 일이거든요.”

임현철은 사람을 불렀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고급스러운 상자를 내어왔다.

“새로운 사업을 구상 중입니다. 이문후 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

임현철은 가지고 온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평범해 보이는 벨트와 검은색 단검이 들어 있었다.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하지만 이문후는 그가 왜 이걸 내보이는지 알 수 있었다.

“이건 던전에서 나온 걸로 만든 것 같네요?”

“정확합니다! 재료 모두가 던전에서 나온 것들이지요. 이대로 던전으로 가지고 들어가도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

임현철이 말한 새로운 사업은 각성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이문후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처음 천조각과 가죽을 얻었을 때만 해도 이런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그는 실제로 물건을 팔아봤다.

이상한 놈들과 엮이면서 뒤로 미뤄놨지만, 잘만 하면 대박이 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한 걸 이 사람들이 모르는 게 더 이상하겠지.’

돈 냄새는 기가 막히게 잘 맡는 곳이 바로 앞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담담한 이문후의 반응에 임현철은 미소를 흘렸다.

이문후에 대한 조사를 모두 끝마친 상태였다. 그 역시 개인적인 거래를 통해서 이런 물건을 팔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나 보네요?”

“예? 예.”

“오히려 말이 잘 통하겠군요. 우리 그룹은 이제 이쪽으로 사업을 해볼 생각입니다. 일상생활을 하다가도 던전으로 들어갈 수 있을만한 것들이죠.”

괜찮은 생각이었다.

아직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을 때, 먼저 이런 아이템을 선점한다면 적어도 망할 것 같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대상이 그와 같은 각성자라는 게 중요했다.

백지수표를 받을 정도로 초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앞으로 그 사람들의 수익이 커질 것은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만큼 시장을 형성하는 소비자들의 수준이 올라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듣자하니 이번에 꽤나 많은 물건들을 확보한 것 같은데. 앞으로 우리와 계약을 맺고 그 물건들을 공급해주는 건 어떤가요?”

“공급이요?”

“충분히 만족할 만한 가격에 매입을 하겠습니다. 그 양이 많든 적든 상관없어요.”

임현철의 제안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바라는 바였다.

“가죽이나 천을 원하는 건가요?”

“뭐든 상관없습니다. 던전에서 나오는 것들이라면 뭐든 매입하겠습니다.”

“…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선물입니다. 벨트는 평소에도 착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 단검 품질도 나쁘지 않다고 하더군요.”

“이걸 받아도 되는 겁니까?”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처음부터 드리려고 준비해 뒀던 거니까요.”

그는 임현철이 건네는 물건을 받았다.

던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선물이라는데 마음에 들지 않을 리 없었다.

“좋군요.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곧바로 계약서를 작성하시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조율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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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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