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화
던전 진입
가게를 비운 이유와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을 전해 들은 그는 널브러져 있던 신분증을 바라봤다.
“손지혜. 맞아. 이름이 지혜였어.”
짝사랑하던, 실종됐던 사람이 겪은 일은 큰 충격이었다.
예전에 맥주를 사갈 때 봤던 그 신분증이 확실했다.
손지혜가 몹쓸 일을 당한 것도 충격이었지만, 그 미친놈이 노리는 다음 대상이 여동생이라는 것도 경악스러웠다.
아무리 티격태격하는 사이라지만, 가족에게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하지 절로 몸이 떨려왔다.
“후우. 고생했다.”
“고생은 무슨. 근데, 너 괜찮냐?”
정민석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평소에 그가 알던 친구가 아니었다. 지인이 두 명이나 엮인 일이었기 때문에 동요할 수밖에 없었지만, 너무 다른 모습이 걱정이었다.
“당연히 괜찮지. 고생은 네가 했는데 왜 날 걱정해? 다친 곳은 없지?”
“없다니까. 너는… 정말 괜찮지?”
“괜찮아.”
“…….”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이런 분위기에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곧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실례합니다.”
임성효였다. 오랜만에 본 그녀의 모습은 처음 봤을 때와는 많이 달랐다.
“성효 씨! 오셨어요?”
“네. 오랜만이에요.”
서로를 확인한 둘의 표정이 밝아졌다.
조금 전까지 침울해 있던 정민석이었지만, 어느새 얼굴에는 어색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아, 그때 그분이시죠? 던전에서 봤던?”
“네.”
“그쪽도 오랜만이네요.”
“네.”
짧게 답만하는 이문후의 대꾸에 임성효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내색하지 않으며 물었다.
“아,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셨잖아요?”
“예. 그게…”
질문을 하던 임성효는 어수선한 가게 안을 살폈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일이 생긴 것 같았다.
“도둑이 든 건 가요?”
“네.”
“죄송한데. 요즘에는 워낙 이런 일이 많아서요. 제대로 된 조치가 이루어지기 힘들 것 같아요. 저도 안타깝지만 해줄 수 있는 게 많지는 않을…”
“아니요. 단순한 도둑놈이 아니었어요.”
“예?”
“이것 좀 봐주세요.”
이문후는 고무원이 남긴 물건을 보여줬다.
그리고 여러 장의 신분증을 확인한 임성효는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며 이문후를 향해 물었다.
“이건 도둑이 가지고 있었던 건가요?”
“네. 거기 손지혜라는 사람은 몇 달 전에 실종이 됐던 사람이었어요.”
“손지혜?”
“저희 가게에 오던 손님이었어요. 한동안 안 오셔서 다른 가게를 이용하는 줄 알았는데.”
“…….”
확실히 이상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수사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머뭇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이문후는 설명을 이어갔다.
“그 도둑. 아니, 연쇄 살인범이 활동하던 곳이 있더군요. 그곳에서 시체를 처리했더라고요.”
“시체를요?”
“이게 그놈한테 희생된 사람들 유골 같아요.”
“…….”
이문후는 조심스럽게 던전에서 챙겨온 것들을 보였다.
이런 곳에서 사람의 뼈로 보이는 것들이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임성효는 깜짝 놀랐지만, 마음을 추스르며 물었다.
“잠깐! 설마, 직접 그자를 쫓아간 건가요?”
“쫓아가기는 했죠. 하지만 잡을 수는 없었어요.”
“아, 그럼 도망을…”
“아니요. 그놈은 이미 죽었어요.”
“주, 죽어요?”
“던전으로 도망을 가더라고요. 거기에서 몬스터들한테 당했거든요.”
“…….”
“그곳에 있던 던전에 시체를 유기했더라고요. 뒤늦게 뒤쫓아서 들어갔을 때는… 도망간 놈도 죽어 있었죠.”
이문후의 설명을 들은 임성효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대충 정리를 했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럼 그 던전이라는 곳은…”
“지금은 사라졌어요. 일회성 던전이라서요.”
“…….”
“혹시, 민석 씨도 같이 움직였나요?”
“예? 그게…”
“저 혼자 움직였습니다.”
“혼자서 일회성 던전을 빠져나왔다는 건가요?”
“그럼 안 되는 건가요?”
“아, 아니요. 그건 아닌데…”
임성효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생각보다 이문후의 실력이 더 대단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실력보다 지금은 이 일이 더 중요했다.
‘던전에 시체를 유기하다니.’
증거를 너무나 쉽게 지울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동안 생각지도 못한 방식에 그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
한쪽에 놓인 유골. 그리고 늘어져 있는 신분증들.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들은 임성효는 이문후가 말한 폐가를 확인했다.
거기에서 증거를 확보하고 용의자의 정체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 비록, 용의자의 시신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그건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고무원. 29세. 7급 주사보잖아?”
취합된 정보를 살피던 임성효는 고무원의 프로필에 절로 미간을 찌푸렸다.
생긴 건 멀쩡했다. 거기에 직업도 공무원이었다.
살인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끔찍한 일을 벌인 것이다.
“미친놈. 도대체 이런 짓을 왜 벌인 거지?”
오래전부터 범행을 저지른 놈이 잡히지 않은 걸 보면 생각보다 철두철미한 놈인 것 같았다.
그런 놈이 편의점을 털다가 이문후에게 잡힌 것이다.
‘3년 전에 처음으로 범죄를 저지른 것 같은데. 그럼 그때부터 생긴 비슷한 범죄는 모두 이놈 짓이라는 건가?’
만약 다음 대상이 정민영이 아니었다면 끝내 미결로 남을 사건이었다.
연쇄 살인범이 각성을 하면서 초인적인 능력까지 얻었기 때문에 놈을 잡는 건 더 어려워졌다.
원래대로라면 강력계로 넘겨야 할 사건이었다.
하지만 고무원이 각성을 했기 때문에 그녀가 맡을 수밖에 없었다.
새로 신설된 비상 대책 TF에 차출된 만큼 각성한 플레이어에 관한 사건은 이제 그녀와 동료들의 몫이었다.
“연쇄 살인범이 각성이라.”
다행히 던전에서 목숨을 잃었다고는 하지만, 앞으로 이런 놈들이 더 늘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지금도 점점 범죄가 늘어나고 있었다.
순찰 시간을 더 늘리고, 여러 노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씩 힘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대담하게 일을 저지르는 사람이 많아졌다.
“앞으로 이런 놈들을 상대해야 하는데. 하아!”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제는 초능력을 쓰는 사람들을 상대로 싸워야만 했다.
평범한 범인을 잡는 것도 힘든 마당에 초인적인 힘을 다루는 사람까지 상대하려면 몇 곱절은 더 힘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그 사람은 뭐지? 생각보다 엄청난 실력자였잖아?”
정민석이야 던전에서 그 힘을 확인해 본 적이 있다.
피지컬이 뛰어난 만큼 곧바로 현장에서 뛰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 비해 이문후는 평범했다.
싸움과는 거리가 먼 얼굴이었지만, 고무원을 잡은 걸 보면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단이 있는 것 같았다.
“아니지! 상대가 고무원이라는 놈이었으니까 쉬웠을지도 몰라.”
적힌 프로필만 보면 고무원의 체격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플레이어로 각성을 했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인 신체 능력이 중요했다.
“상대가 약했나? 그래도 던전을 혼자 클리어 할 정도면 보통 실력은 아닌데.”
어찌 됐든 이문후를 조금 더 주목해 볼 필요가 있었다.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면 같이 일을 해봐도 나쁘지 않았다.
“준태 씨. 이문후 씨에 관한 인적사항. 찾아봤어요?”
“예? 거기 책상 위에 올려놨어요.”
“아, 고마워요.”
임성효는 준비된 서류를 살펴봤다.
그리고 이문후에 관한 것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학교 폭력에 연루된 복싱 선수? 선출이잖아?”
그의 이력이 심상치 않았다. 생각보다 전적이 화려했지만, 학교 폭력과 연루됐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보기에는 그렇게 안 보였는데.”
조금 무뚝뚝한 면이 있었지만, 누군가에게 해코지를 할 인상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는 게 고무원 역시 살인을 저지를 얼굴은 아니었다.
“이 사람은 어떻게 하지?”
정민석은 반드시 팀에 끌어들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문후와 관련된 사건이 마음에 걸렸다.
“학교 폭력. 뭐야? 그 일로… 가족을 잃었잖아?”
뒤이어 벌어진 사건을 읽던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안타까운 이문후의 사연에 서류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
파앗!
순식간에 공간이 달라졌다.
순간이동을 사용한 이문후는 순식간에 이동한 스스로의 몸에 깜짝 놀랐다.
확실히 이 능력은 사기였다.
눈에 보이는 거리를 순식간에 뛰어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그만큼 제약이 뒤따랐다.
‘내공이 문젠가.’
거리에 따라서 소진되는 내공의 양이 달라졌다.
아주 짧은 거리를 움직여도 작지 않은 양이 필요했다. 그보다 더 먼 거리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당연히 더 많은 내공을 사용해야만 했다.
이문후는 이제 겨우 2개의 능력만 장착할 수 있었다. 순간이동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나한신공이나 건곤대나이 중에 하나를 빼야만 했다.
“그렇다고 건곤대나이를 뺄 수도 없고.”
건곤대나이는 그가 가지고 있는 힘의 근간이었다.
순간이동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건곤대나이는 무조건 써야만 하는 능력이었다.
당연히 나한 신공을 빼야 했지만, 나한신공 자체가 내공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건곤대나이도 내공심법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전체적인 능력과 잠재력을 상승시켜줬지만, 내공의 양까지 늘려주지는 않았다. 그래도 기본적인 체력과 품고 있는 힘을 향상시켜줬기 때문에 나한신공을 빼는 게 최선이었다.
“나쁘진 않은데. 싸우면서는 못 쓰는 건가?”
내공을 회복하고 처음 사용한 순간이동 능력.
생각했던 것보다 내공의 소모가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지만, 실전에서 쓰기에는 힘들어 보였다.
“구관이 명관이네.”
손에 넣은 다른 능력들을 한 번씩 시험해 봤다.
삼재검법은 물론이고, 에스크리마라는 단검술. 거기에 유운보법과 유운심법까지.
모두 저마다 장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건곤대나이와 나한신공의 효율이 가장 좋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좋은 능력을 썩힐 수는 없는데.”
이문후는 주변을 둘러보며 자리에 앉았다.
낮에도 사람들이 오지 않는 한적한 곳이었다. 밤이 되면 다른 사람들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기 때문에 운공을 해도 안전한 장소였다.
우선 사용한 내공을 회복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순간이동을 이용해서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곳을 갈 계획을 세웠다.
‘정규 던전이라.’
지금까지는 일회성 던전만 들어갔다.
나오는 몬스터들도 약했고, 얻을 수 있는 것도 한정적이었지만, 접근하기는 쉬운 곳이었다.
하지만 점점 일회성 던전을 찾는 게 어려워지고 있었다.
노출된 일회성 던전은 모두 클리어한 상태였다.
다른 사람들도 힘을 얻거나 키우기 위해서 던전을 찾고 있었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일회성 던전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이제 다른 곳이 필요했다.
수많은 몬스터들이 살아가는 곳. 거기에 큰 보상까지 얻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정규 던전이었다.
문제는 안에 있는 몬스터보다 밖에서 지키고 있는 병력들이었다. 장전된 총을 들고 있는 군인들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는 게 가장 큰 걱정이었다.
‘게이트를 넘을 때만 순간이동을 쓰면 되지 않을까?’
게이트를 넘으면 바로 나한신공으로 바꿀 생각이었다.
다시 내공을 회복하는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던전 안에서는 최대한 안전하게 움직일 생각이었다.
“흐읍!”
그렇게 운공을 마치자, 단전이 내공으로 가득 찼다.
힘을 보충한 그는 어느새 어두워진 주변을 확인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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