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화
범죄자
바닥에 남아 있는 도둑놈의 흔적.
핏자국이 여기에서 끊긴 걸 보면 던전 안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여기로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어쩌면 스스로 막다른 길로 들어갔는지도 몰랐다.
이대로 던전 안으로 들어가거나, 나오는 것만 기다리면 놈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문후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흐음.”
그는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고무원은 숨을 죽인 채 그 모습을 지켜봤다.
‘뭐야? 왜 안 들어가는 거야?’
일부러 이문후가 던전으로 들어가기를 바라면서 함정을 팠다.
아무리 떨쳐내려고 해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 놈이었다.
마냥 도망간다고 피할 수 없다는 생각에 흘러나오는 코피를 닦지도 않고, 의도적으로 흔적을 남긴 것이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이대로 던전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저놈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던전을 클리어하지 않는 이상, 다시 돌아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문후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설마, 계속 밖에서 기다리는 건 아니겠지?’
여기까지 쫓아온 놈이라면 밖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문제는 스스로의 상태였다.
‘계속 버틸 수는 없는데.’
순간이동 능력을 연거푸 사용하면서 너무 많은 체력을 쏟아냈다. 이렇게 많은 피를 쏟아낼 때까지 사용한 적은 처음이었다.
시간 차이를 두고 하루에 네 번을 쓰는 게 최고였다.
그 이상 사용하면 몸에 무리가 갔고, 여기에서 더 쓴다면 죽을지도 몰랐다.
지금도 이미 무리를 한 상태였다.
잠자코 기다리고 있는 와중에도 눈앞이 어지러웠다.
‘제발 좀 꺼지라고!’
그는 염원을 담아서 기도했다.
지금까지 죽였던 사람들의 기분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죽음의 공포가 눈앞까지 다가온 것 같았다.
그때, 이문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여기 있지?”
“…….”
“그 상태로 던전으로 들어갔다는 건 말이 안 돼. 자살하러 간 거랑 다름없으니까. 어디 숨어 있는 거지?”
“…….”
이문후는 고무원의 의도를 파악했다.
살기 위해서 도망친 놈이 사지로 들어간다는 게 너무 이상했다.
아무리 일회성 던전의 난이도가 높지 않다고는 하지만, 지금 고무원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반응이 없네.’
확신은 없었다. 조금이라도 상대가 동요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주변의 소리에 집중하면서 뭔가 단서가 나오기를 원했지만, 고무원은 생각보다 인내심이 높았다.
‘정말로 안으로 들어간 건가?’
그는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봤다.
바닥에 남아 있는 말라붙은 피. 그리고 벽에 걸려 있는 연장들까지.
특별히 이상한 건 없었다.
어쩌면 이미 이곳을 빠져나갔을지도 몰랐다.
고민하던 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주변 소리에 집중했다.
높은 감각을 이용해서 고무원의 숨소리를 찾을 생각이었다.
높은 감각 스탯. 그리고 운용하고 있는 나한신공의 내공.
내공이 귀로 몰리기 무섭게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더 커져만 갔다.
육체적인 능력을 더 키워주는 게 바로 내공이었다.
청력을 높이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크흡.’
가까운 곳에서 그가 찾던 소리가 들려왔다.
동요한 고무원의 숨소리가 조금 거칠어진 것이다.
“거기 있을 줄 알았다!”
이문후는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발을 내딛자, 숨어 있던 고무원이 화들짝 놀라며 능력을 사용했다.
파앗!
“크윽!”
창고 밖에서 미약한 소리가 들렸다.
결국, 그가 의도했던 대로 놀란 고무원은 무리를 하며 능력을 사용했다.
터엉!
이문후는 곧바로 문을 박차며 튀어나갔다.
고무원은 저승사자를 만난 것 마냥 기겁하며 도망을 갔지만, 바로 앞에 있는 이문후를 떨쳐낼 수가 없었다.
“저리 꺼져!”
고무원은 뒤늦게 쥔 단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미 예상하고 있던 만큼 쉽게 당할 이문후가 아니었다.
뻐억!
그는 오히려 휘두르는 고무원의 손목을 후려쳤다.
이미 지친 고무원의 공격을 막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끄아악! 내 팔!”
고무원의 팔이 기괴하게 뒤틀렸다.
그 역시 각성을 한 플레이어였지만, 힘의 차이가 너무나 명백했다.
가진 거라고는 순간이동 능력뿐이었다.
다른 능력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전투중이었다. 강제적으로 능력을 바꿀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걸 생각할 경황이 없었다.
“커헉!”
이문후는 고통스러워하는 고무원의 목을 틀어쥐었다.
강한 악력에 고무원의 눈에 핏발이 섰지만, 개의치 않았다.
“끄으윽. 왜 이래?”
“몰라서 물어?”
“배고파서… 크윽. 그랬어. 그래도 이렇게 심하게 대할 건 아니잖아!”
“뻔뻔한 새끼.”
“끄윽.”
“다음 목표는 민영이었냐?”
“무, 무슨…”
“됐다. 너 같은 새끼한테 이런 걸 물어봤자 순순히 대답하지는 않겠지.”
이문후는 독하게 마음먹었다.
앞에 있는 놈은 연쇄 살인마였다. 많은 정황이 그 사실을 알려왔다.
아주 큰 착각으로 오해를 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거리낌 없이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것만 봐서도 이대로 놓아줄 수 없었다.
“씨발! 그래서 뭐?”
“뭐라고?”
“어떡하라고! 나를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
“그럼 너도 나랑 똑같은 놈이 되는 거야! 네가 판사냐? 뭐라도 되는 것 같아? 크큭. 기껏 해 봐야 경찰에 신고하는 것뿐이겠지.”
고무원은 흥분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재수가 없어서 이상한 놈에게 잡혔지만, 사람을 죽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을 바로 죽이지 않고, 이렇게 잡아놓은 것을 보면 앞에 있는 놈이 할 수 있는 건 몇 대 때리는 것밖에 없었다.
“날 죽이면? 그다음에는 어떡하려고?”
“…….”
“경찰이 잘했다고 표창이라도 줄 것 같냐? 너도 살인자가 되는 거야. 이 새끼야! 죽일 깜냥도 없는 새끼가. 너는 내가 폭행죄로 고소할 거야. 이 새끼야!”
“하! 황당한 새끼네.”
적반하장으로 소리치는 고무원의 행동에 기가 찼다.
그도 그럴 것이 고무원은 자신이 있었다. 이미 증거라고 할 만한 것들은 모두 치운 상태였다.
죄를 증명하는 게 쉽지 않았다.
기껏 해 봐야 절도가 전부였고, 많은 약탈이 일어나는 이 시점에서는 큰 죄가 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냥 빨리 신고나 해! 이 새끼야.”
“내가 신고나 하려고 여기까지 온 것 같냐?”
“크큭. 날 죽이려고? 날 죽이면? 그 뒤에는? 시체는 어떡할 건데?”
“겨우 그거 때문에 이렇게 자신만만해 하는 거였구나?”
고무원이 왜 이렇게 막장으로 나오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확실히 시체를 처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바로 옆에 흔적을 지울 좋은 수단이 있었다.
“사람 죽이는 게 쉬운 일 같지? 매일 밤마다 네가 죽인 놈이 꿈에 나올걸? 그놈들이 달려든다고. 왜 죽였냐고 원망하면서.”
“…….”
“크큭. 그걸 감당할 수 있겠냐? 오히려 그런 놈들을 비웃으면서 다시 죽일 수 있겠어?”
“네 경험이냐?”
“자신 있으면 죽여보든가! 요즘에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개나 소나 사람을 죽이니까 살인이 쉽다고 생각하나 본데…”
“다행이네.”
“… 뭐?”
“혹시나 했거든. 네가 내가 생각하는 미친 연쇄 살인범이 아니라면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 것 같았는데.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
“시체는 없을 거야. 네가 더 잘 알지 않나? 그동안 죽인 시체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고무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자신의 목줄을 쥐고 있는 놈이 왜 던전 앞에서 그렇게 고민을 했는지 이해가 갔다.
‘처음부터 던전에 시체를 유기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거야!’
그걸 눈치챘다고 하더라도 사람을 죽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발적인 살인이 아니라면 평범한 사람은 거부감을 가지는 게 당연했다.
“설마? 너도…”
“지랄하네.”
“커헉!”
그는 동족으로 생각하는 고무원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강한 고통에 고무원의 몸이 절로 꺾였지만, 이문후는 개의치 않았다.
“슬슬 끝내자.”
“자, 잠깐!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그냥 신고를 하는 게 너한테도…”
“너 같은 놈들은 이 일을 그냥 지나치지 않더라고. 다시 나오는 날에는 복수를 하겠다고 달려들겠지.”
“아니야! 나는 절대 그렇지 않아! 네 머리털 하나 못 건드렸는데 어떻게 복수를 하겠어?”
“그러니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건드리겠지. 민영이 같이 힘이 없는 약한 사람들을.”
“…….”
고무원은 잘게 몸을 떨었다. 앞에 있는 놈은 자신의 생각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해도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이제는 기회를 엿봐서 도망가는 수밖에 없었다.
‘한 번뿐이야. 단 한 번!’
이미 몸은 엉망이었다.
여기에서 더 능력을 사용한다면 죽을지도 몰랐지만, 가만히 있는다고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자, 잠깐! 잠깐만 기달… 커헉!”
이문후는 반항하는 고무원의 입을 막았다.
매가 약이었다. 고통이 가해지자 그는 괴로워하면서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던전. 이걸 이런 식으로 사용하다니.’
게이트 앞에 섰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살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고무원을 보며 마음을 굳혔다.
‘이런 놈이 다시 살아나간다면… 민영이가 위험해질 거야.’
희생자가 더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그 목표가 그가 여동생처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막아야 했다.
특히나 순간이동이라는 사기적인 능력이 이런 놈 손에 들어갔다는 것 자체가 재앙이었다.
이문후는 고무원을 제압한 채 게이트로 손을 뻗었다.
우선 던전으로 들어간 이후에 놈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고무원은 남은 힘을 쥐어짰다.
“끄아아악!”
괴성과 함께 그의 몸이 바로 앞으로 옮겨졌다.
아슬아슬하게 이문후의 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우웨에엑!”
구역질을 하자 피가 쏟아져 나왔다.
눈앞이 노랬다. 이대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간신히 기회를 벌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씨! 발!”
고무원은 복잡한 감정을 욕으로 토해냈다.
다행히 마지막 도박이 통했다. 놈은 게이트로 넘어갔고, 조금의 시간을 더 벌 수 있었다.
“끄으윽.”
던전을 클리어하기 전까지는 되돌아올 수 없었다.
그 시간 동안 여기를 벗어나야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끄으으윽!”
고무원은 바닥을 기었다. 시간이 지나면 이 기회도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우선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의 도움을 구해야만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변을 당한 거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도울 게 분명했다.
‘근처에 사람들이 없다는 게 문젠가.’
사람들의 관심이 적고, 시체를 처리할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장소였다. 하지만 그 조건들이 지금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이럴 줄 알았다.”
“…….”
섬뜩한 목소리에 절로 솜털이 돋아났다.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다. 던전으로 들어가야 할 놈의 목소리가 들린 것이다.
“환청인가?”
“환청이라고 생각하고 싶겠지.”
“뭐, 뭐야? 어떻게?”
“독한 새끼. 마지막까지 개수작을 부리네.”
이문후였다.
던전으로 들어갔던 그가 밖으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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