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히아신은 전율했다. 그녀는 그의 신이었다. 제 품으로 쓰러지고 만 나디사를 안아 든 히아신은 잠이 든 그녀의 얼굴을 제 어깨에 기대게 했다.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들어왔다. 아마도 이 집의 주인. 하지만 그런 건 히아신에게 관계없는 일이었다.
눌리고 참고, 오래 버텼다. 기특한 놈을 바지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밖으로 퉁겨져 나온 물건은 이미 하얀 액을 흘리고 있었다. 기대감이 넘쳐 침을 흘리지만 안 될 일이었다.
이런 더러운 장소에서 신을 안고 싶진 않았다.
“아, 음…….”
제 어깨를 간질이는 숨을 느끼며 히아신은 그 숨소리에 맞추어 손을 흔들었다. 마치 그녀가 수음을 해 준다고 상상하며 나디사의 머리통에 수십 번 입을 맞추었다.
“으, 으응.”
허리가 움찔거렸다. 나디사의 가여운 입술이 제 어깨에 비벼지고 있었다.
이런 수확을 기대한 적 없는데. 제 신이 된 자는 바보처럼 착하기도 했다.
이런 것을 단순히 사랑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세간에서 말하는 사랑은 너무도 가볍고, 어리석었다. 그녀는 사랑의 주인이 아니라 그의 주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찬양하며 기도만 올릴 생각이 없다.
사랑을 자각하고 얻은 운명의 짝은 히아신의 음험한 본성과 만나 환장할 정도의 쾌락을 바라고 있었다.
나디사의 몸을 파고들고, 그녀가 울부짖으며 제 아래에 시큼한 물을 쏟기를 바란다.
이래서는 신자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불경스러운가. 신을 타락시킬 기회만 호시탐탐 엿보는 이였다.
똑똑, 방문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히아신은 수음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신과 둘이 내버려 둔 이 상황을 그가 상상하길 바랐다.
신과 누가 있는지. 그가 누구를 탐하고 있는지. 그래서 온 세상이 그녀의 추문을 알기를 바랐다.
히아신의 인생에 계획 같은 것은 없었다. 그는 갖고 싶은 게 있으면 갖고, 정처 없이 떠돌다가 내키면 남의 집을 빼앗고, 그러고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를 모시고 살 신전을 구하고 싶었다. 그녀의 추종자를 계획적으로 괴롭히고 살인하고 싶었다.
나디사의 눈길과 사랑, 증오, 무엇이든 가지고 싶어 적절한 날을 기다렸다.
걱정으로 물든 눈은 오늘 실컷 가졌다. 나디사의 코끝에 어깨를 비비적거리던 히아신은 하늘로 허리를 찌르며 긴 신음을 흘렸다.
“아…….”
제 손에 묻어나는 하얀 씨물을 본 히아신은 행복하게 웃었다. 나디사의 머리통에 입을 맞추고 그녀의 봉긋한 가슴을 가리기 위해 단추를 마저 잠갔다.
언젠가 그의 단추를 이로 잠그고, 풀게 만들어 볼 것이었다.
신을 향한 비정상적인 욕구가 치솟은 히아신은 제 씨물을 바지에 치덕치덕 바른 뒤 대충 버클을 잠갔다.
콧노래 소리와 함께 걸어가 문을 열었다. 그 앞에 있는 늙은 사냥꾼을 마주했다.
“아, 그…….”
“우리 갈게.”
“네? 그나저나 다친 데는 어떻게 괜찮으신지.”
“훌륭했고 최고였어.”
그는 히아신을 미친놈 보듯 보았다. 히아신은 비릿한 씨물의 냄새를 맡은 그가 하얗게 질리는 것을 보고 뒤에 누운 여자를 일부러 보였다.
지금까지 자신과 뒹군 사람이 누구였는지 만천하에 자랑하고 싶었다.
“오늘 힘들었는지 코 자더라구.”
“아, 예…….”
히아신은 그녀를 공주님처럼 안아 들고서 오두막 밖으로 나갔다.
수시로 입을 맞추는데도 깨어나지 않는다.
히아신은 따라오도록 명령 내린 디디가 로마의 옆에 쭈그려 있는 것을 보고 눈을 찡긋거렸다.
자, 이제 집 나간 공주님을 데리고 돌아갈 시간이었다.
* * *
나디사는 손끝이 움찔거렸다. 그 오두막에서 잠이 든 것인가.
몸을 후다닥 일으켜 본 천장은 그때의 통나무 천장이 아니었다.
“무슨 늦잠을 그렇게 자.”
마벤의 목소리. 나디사는 고개를 돌렸다. 훈련하고 온 듯이 땀으로 젖은 마벤은 깨어난 나디사의 침대에 앉았다.
나디사는 자신이 꿈을 꾼 것인가, 생각했지만 이어지는 마벤의 말에 정신이 들었다.
“아무리 깨워도 안 일어나더라. 지금 밖에 난리가 났어.”
“난리라니.”
나디사는 제가 입은 낡은 셔츠를 보고는 꿈이 아님을 깨달았다.
사냥꾼의 딸이 입던 그 옷이었다. 나디사의 멍한 얼굴을 본 마벤은 코웃음 치며 말했다.
“그 싸가지 있잖아. 미친 신관.”
란을 말하는 것이었다. 중간에 사라진 그를 떠올린 나디사는 눈을 크게 뜨며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누구한테 습격당했나 봐. 그것 때문에 지금 신전이 발칵 뒤집혔어. 우리 훈련도 다 미뤄진 상태야. 라드군 몸통, 심장, 다 거기로 소집됐거든.”
나디사는 그녀의 말이 이어질수록 창백해졌다.
습격. 란이 깨어나지 않으니 일이 그렇게 진행되는 것인가. 하지만 그때 분명 란은 제 눈앞에서 스스로 없어졌었다.
“하여간 쌤통이지. 그 성격에 어디서 또 원수질 일은 만든 거 아니겠어?”
사정을 모르는 마벤은 속 편히 웃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고 내려오라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 그때 똑똑,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벤.”
마벤의 어깨가 반사적으로 떨렸다. 아트리스의 목소리였다. 마벤은 나디사를 바라본 뒤,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왜.”
“나디사가 깨어났나 해서.”
그 말을 들은 마벤은 실망한 듯이 눈꼬리가 처졌다.
끝났다고는 했지만 아직 감정이 남은 모양이었다. 거칠게 일어선 마벤이 문고리를 돌려 직접 문을 열어 줬다.
“일어났어.”
퉁명스레 대답한 그녀가 아트리스의 어깨를 퍽 치고 바깥으로 나갔다.
그런 마벤에게 잠시 시선을 준 아트리스는 들어와 곧장 문을 잠갔다.
달칵, 문이 잠기는 소리를 들으며 나디사는 급하게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아트리스는 굳이 일어날 필요 없다는 듯이 그녀의 앞으로 빠르게 걸어왔다.
“나디사. 어제 무슨 일이 있었어.”
가벼운 복장의 마벤과 다르게 아트리스는 망토까지 둘러서 입고 있었다.
새벽에 자신이 나갔다는 걸 아트리스는 알고 있었다. 자신 없는 눈빛으로 말했다.
“란이 제 시험 상대가 돼 달라고 했어. 그리고…….”
그리고 나디사는 란과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이야기했다.
그가 빛으로 자신을 공격한 일, 그리고 그 바람으로 벽에 부딪힐 뻔하여 날개를 또 하나 꺼낸 일. 란이 창을 써서 위태로웠던 일.
그러나 나디사는 히아신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그가 나타나 자신 대신 창을 막아섰으나 그 이후의 그의 상처가 빠르게 회복된 일, 그리고 그 후의 바로 복귀하지 않고 저지른 일들이 생각났다.
아트리스에게 다 얘기하면 안 된다는 눈치가 생겼다.
“그리고.”
“눈 떠 보니, 여기야.”
“하아…….”
아트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팔목 단추를 잠갔다.
그 모습을 보자 어제 등 뒤에서 자신을 안고 단추를 잠그던 히아신이 생각나 나디사는 제 얼굴을 감쌌다. 어제는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
“자책할 것 없어. 네 잘못이 아닌 듯하니.”
나디사는 확신하듯 말하는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
아트리스는 점잖은 미소로 그녀에게 쉬라고 말한 뒤 문으로 걸어갔다.
“아트리스. 어디 가는 건데.”
“신관들은 어떻게든 찾아. 곧 너를 용의선상에 올릴 거야.”
전혀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나디사는 침대에서 일어나 그에게로 다가왔다.
“그럼 내가 가겠어. 있었던 일을 말하고…….”
“내가 말했지. 너는 쉬라고.”
이만큼 했으면 됐어. 아트리스가 그녀의 어깨를 잡고서 놓았다.
더 따라오지 말라는 듯이 문을 열고서 나간 그가 빠르게 계단 아래로 사라졌다.
따라 나간 나디사의 눈에는 그의 푸른 망토 자락만이 보였다.
결연한 그의 망토를 보던 나디사는 위층으로 시선이 갔다.
이제 히아신에게 물을 차례였다. 그녀는 위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