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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의 하늘은 여전히 안녕하신지-47화 (47/210)

47화

하나, 라는 말이 신호탄이었다. 상대편은 그녀와 매우 가깝게 날았다.

예상했던 바였다. 날개 끝이 스스스 스치는 소리에도 나디사는 동요하지 않았다.

이미 아래서 많이 봤던 수법이기 때문이었다. 나디사는 자리를 이동하지 않고서 몸을 더욱 수그렸다.

끄으으으, 로마의 우는 소리에 옆을 돌아보니 꼬리로 로마의 다리를 차고 있었다.

화가 날 수록 머릿속은 깨끗하게 정리가 됐다.

나디사는 목줄을 놓았다. 완전히 엎드린 자세로 로마의 목을 끌어안았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도망이 아니었다. 고통보다 더 빨리 나는 것이다.

방해를 받던 로마의 날개가 시원스레 펴졌다.

신중히 목을 낮춘다. 제 등에 달라붙은 주인을 확인한 로마가 바람을 몰고 왔다.

날아가지 않기 위해 다리를 딱 붙인 나디사는 절대 눈을 감지 않았다.

몰아치는 바람에 옆으로 피한 상대가 보였다. 하늘색의 세상으로 전진하는 나디사의 머리카락은 뒤로 쫙 빠졌다.

화드드, 바람이 내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그럼에도 나디사의 눈에는 목표 지점인 푸른 공만이 전부였다.

“윽, 아!”

쿵, 상대는 충돌음과 함께 로마의 몸을 옆으로 날렸다. 전력을 다해 날아온 상대가 뒤에서 그녀의 몸을 민 것이었다.

밀려 나간 로마는 바람을 잘못 탔다. 배를 하늘로 향하게 뒤집었다.

나디사는 머리에 피가 몰렸지만 뒤집힌 채로 날아가 위아래를 다시 바꾸었다.

“꽤 하는데!”

2차 충돌을 위해 그녀의 뒤만을 쫓고 있었다. 위치를 바꾸지 않고 무서운 속도로 달려든다.

속도로 자신 없으니 몸을 부딪쳐서라도 그녀를 이탈시킬 생각인 것이다.

나디사는 이를 악물고 로마의 목을 안았으나 두 번째 충격은 박치기가 아니었다.

아아아악, 로마가 비명을 질렀다. 꼬리가 씹혔다. 주인의 명령에 반할 정도의 고통이 몸을 지배했다.

로마가 날개를 퍼덕거리며 비행을 멈추었다. 상대는 그 틈에 추격하여 역전에 성공했다.

“로마!”

하늘에서 일어난 일은 당사자들밖에 알지 못한다. 아무리 밑에서 본 게 있더라도 상대가 시치미 뚝 떼면 이 사건 또한 무마될 것이었다.

무서운 속도로 날아간 상대가 푸른 공 근처에 당도했다. 하늘은 그의 편을 들었다.

“로마. 괜찮아?”

꼬리를 물린 고통이 상당한지 로마는 날아가면서도 우는 소리를 그치지 못했다.

그때 이미 상대편은 푸른 공을 지나쳐, 약속한 대로 한 바퀴를 날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진다. 지게 된다. 그와 똑같이 할 수 있으나, 그러면 하강 중에 상대의 꼬리를 무는 수밖에 없었다.

하강 중에 공격하는 것은 상대의 진로를 방해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목숨을 앗을 수 있었다. 그 책임이 누구에게 오겠는가.

아무리 경합이라고 하더라도 상대의 목숨을 빼앗으면 그날로 군복을 벗어야 했다.

로마는 나디사를 고개 돌려 바라봤다. 로마의 눈꼬리에 억울함이 맺혀 있었다.

나디사는 엎드려 그런 로마의 뒤통수에 입을 맞췄다. 미련스럽게 눈물이 흘렀다.

“미안해.”

아트리스에게 미안했다. 지금 하강하기 직전인 상대에게 절대로 지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마벤, 시네라, 히아신, 그리사, 아트리스. 처절하고도 아름다웠던 비행이 짧은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어떤 결말을 맞을지 알면서도 다음 주자인 자신을 위해 속도를 줄이지 않았던 아트리스.

이기면 끝이라는 듯이, 공정한 내기를 제안하듯이, 비웃음을 하늘에 울리며 떨어지려 하는 상대와 눈길이 오갔다.

그 웃음뿐인 시선에 나디사의 눈이 번뜩였다.

나디사는 로마의 목을 끌어안았다. 새벽부터 이어진 훈련으로 인한 자잘한 통증이 허리에 미쳤다.

“가자.”

바람이 불었다. 날개 가득 바람을 품고 달리는 로마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바람이 그녀 쪽으로 불었다. 시선은 따라잡을 목표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 기이한 별이 반짝 빛났다가 사라졌다. 의아함을 가진 상대편이 하강을 위해 몸을 낮춘 순간.

싸아아아아, 한 장의 얇은 양피지처럼 그가 굴렀다. 하늘 위에서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한 마지막 주자는 앞뒤로 세상이 뒤집혔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원래대로 일어서기 위해 몸을 썼다. 무릎의 마지막 조종수다웠다.

그는 난데없이 폭풍우가 덮친 줄 알았다. 바람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으니 말이다.

하강하기만 하면 끝인데. 이제 다 끝났는데. 바람에 말리듯이 굴러간 그가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힘을 썼다.

“아악!”

허리와 팔을 희생했다. 그는 뱃심으로 겨우겨우 라드를 뒤집었다.

라드가 날개로 바람을 버티고 있어 전진하거나 아래로 내려가는 방향이 잡히지 않았다.

눈을 괴롭히듯 부는 바람을 그가 한 손으로 밀어 막았다. 막고 앞을 바라봤다.

가늘게 떨린 그의 손은 천천히 아래로 하강했다.

라드의 성장이었다. 라드의 허리를 뚫고 나오는 작은 날개가 펼쳐진 순간이었다.

그는 제 처지를 잊고 라드의 새로운 진화에 경탄했다. 구름을 밟은 듯이 선 라드의 날개는 네 개였다.

돋아난 날개는 우드득, 뼈가 으깨어지는 소리를 내며 성장했다.

하늘 위로 퍼지는 뼈의 소음만큼 바람의 세기가 강해지고 있었다.

아아아, 그의 라드는 뒤로 떠밀려 가기 싫어 날개를 파닥거리며 버텼다.

네 개의 날개를 가진 라드를 동족이 아닌 적으로 인식했다. 꼬리를 숨기는 건 방어와 복종의 자세였다.

진화한 라드는 그 자체로 바람이었다. 날갯짓이 폭풍의 중심을 가져왔다.

“저게, 무슨.”

실로 말도 안 되는 속도였다. 바람을 제 밑에 깔고서 날아오는 나디사는 네 개의 날개를 펼치며 한 바퀴를 돌았다.

멍하니 그 아름다운 비행을 감상했다.

“아, 안 돼.”

남자는 아래로 내려가는 그녀를 보고 급하게 라드의 목줄을 당겼다.

“내려가야 돼! 읏!”

싸아아, 날카로운 바람이 내려가는 라드를 호위하며 휩쓸고 다녔다.

아래서 불어오는 바람은 그를 더 머나먼 위로 날려 버렸다. 하강은커녕 밀려나는 속도를 감당할 수 없어 그는 악을 썼다.

그가 따라오지 못하는 건 더 이상 나디사의 안중에 없었다.

네 개의 날개가 생긴 로마는 바람을 손끝으로 부리며 떨어졌다.

귓가를 에워싼 바람 소리는 우호적이지 않았다. 하강하는 속도는 지금껏 경험해 본 적 없는 것이었다.

나디사는 예상하던 시점보다 더 빠르게 로마의 목을 안아서 위로 올렸다.

“로마!”

* * *

수웅, 거대한 바람이 훈련장의 흙을 뒤엎듯이 휘몰아 쓸었다.

날개 네 개를 펼친 나디사의 로마가 잠시 허공에서 멈추었다.

계주를 끝내고 대기하던 네 명의 머리 위로 희망찬 바람이 지나갔다.

히아신은 이 계주에서 지기를 바랐다. 다른 이가 어떻든 상관없었다.

허무맹랑한 목표를 위해 나디사 마로닌이 희생되는 건 타당한가.

그녀의 희생으로 증명되는 가치가 무어란 말인가.

그깟 명예, 그깟 동료애.

무의미한 것을 사기 위해 내줘야 할 나디사 마로닌의 희생. 너무 비쌌다.

그래서 일부러 망치려고 했었다. 나디사가 그를 친히 지목하고, 집중하라고 하기 전까지.

히아신은 하늘을 오르는 동안 일부러 지고 왔을 때의 나디사를 생각해 봤다. 그건 어렵지 않았다.

그걸 보느니 생으로 이를 뽑히는 게 나을 정도로 무서웠다.

나디사의 로마가 일으킨 바람은 사방으로 뻗쳤다. 땅에 있는 이들 모두가 양팔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히아신은 눈을 가릴 수 없었다. 눈에 막을 씌운 듯했다. 그의 하늘을 보는 중이었다.

중간에 멈춘 로마는 날개를 움직이며 바람을 만들어 냈다. 라드의 위엄을 알리듯 하늘에 멈추어 선 그 짐승은 감탄을 자아냈다.

바람의 신. 그리고 그의 신. 두 개의 신이 하늘에 떠서 그를 심판하고 있었다.

히아신은 깨달았다. 그날, 그 시곗바늘이 거꾸로 돌아간 날. 운명의 짝이 정해진 게 아니었다.

그는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신의 강림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해가 저물지 않은 낮이었다. 낮인데 별이 떴다. 하늘에 박힌 보라색의 별은 그가 눈을 깜빡이는 순간 땅으로 떨어졌다.

그의 눈에만 보이는 보라색 별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그 쏟아지는 보라색의 별 사이로 내려오는 바람의 신은 다정하여 눈물이 났다.

보라색의 별이 떨어져 땅 밑으로 스며들었다. 그의 뺨과 어깨로도 떨어졌다.

운명은 그를 두고 장난을 치지 않았다. 그날 히아신 아스는 사랑에 빠진 것이었다.

해벗 종족 중에서도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 됐다.

형수도, 형제도, 증오하는 원수도 아니었다. 사랑하게 된 여자가 운명의 짝이었다. 떨어진 별이 심장에 박힌 순간 알았다.

이것이 운명이 자신하던 속박이었다.

와아아아, 바람의 귀환을 기다리던 발톱 부대가 그녀에게 달려갔다.

무사히 착륙한 나디사는 달려오는 그들을 보며 행복하게 웃었다.

히아신만이 웃지 않았다. 그 바람을 맞으며 서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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