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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의 하늘은 여전히 안녕하신지-33화 (33/210)

33화

마벤은 기쁘면서도 아쉬운 얼굴이었다. 이제야 노디 사용법을 제대로 배우게 됐는데 떠나게 됐다면서 말이다.

“가르치려면 다 가르치고 보낼 것이지. 배우다가 마는 게 뭐야.”

가방 안에 옷을 구기듯이 집어넣은 마벤은 신경질을 잔뜩 부렸다.

입으로는 힘들다, 지겹다, 했지만 이 훈련은 교본만 보던 그들의 눈을 트이게 해줬다. 짐이 별로 없어 진작 짐 싸기를 마친 나디사 또한 아쉽긴 마찬가지였다.

“나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

“어, 알았어.”

나디사는 하얀 재킷을 챙겨 들고 오두막 밖으로 나왔다.

짐을 싸고 붙이는 일이야 어렵지 않았지만 이 해변가를 떠나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았다. 랭키의 훈련은 단점을 죽이기보다 장점을 살리는 데에 초점이 있었다.

‘비상!’

랭키는 신호를 주는 게 좋다며 비상, 하강, 전진 같은 기본적인 전달 방법을 알려 줬다. 그중에서 나디사가 좋아하는 훈련은 하강이었다.

아트리스의 하강 신호가 들리면 아래로 동시에 떨어지면서 바람의 저항을 느꼈다. 그때의 짜릿한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구름을 벗어나 푸르른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깊은 바닷속이 상상되면서 이대로 빠져 죽을 것 같아 심장이 뛴다.

그럼에도 하강을 멈출 수 없었다. 랭키는 우스갯소리로 사랑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했다.

신호가 있기 전까지 고개를 들 수 없다. 두려워 고개를 들면 실패로 간주했다.

나디사는 이 훈련을 가장 잘하는 학생이었다. 바다가 곧 눈앞에 떨어진다고 해도 그녀는 절대 머리를 올리지 않았다.

‘비상!’

가장 늦게 고개를 들고, 가장 빠르게 내려왔다.

손끝이 저릿한 감각이 있었다. 그때 비상하는 것이다. 설명할 수 없는 그 감각이 찾아오는 순간 라드의 머리를 들면 바람이 사방으로 퍼지는 게 느껴졌다.

비상하는 자신의 등에 날개가 달린 것처럼 날았다.

라드에 탄 것이 아니라 날개를 펼친다고 느껴질 때 비로소 누구보다 빠르게 비상할 수 있었다.

바람도 따라오지 못하는 속도로, 구름을 뚫고 저 바다보다 푸른 하늘로.

날개를 달고서 자유로이 나는 그 기분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거다.

“바다를 좋아하나?”

바다 앞에 서서 훈련을 떠올리던 나디사는 옆을 돌아봤다. 두꺼운 시가를 입에 문 랭키가 그녀를 보며 서 있었다.

몸통의 수장인 헤번이 오고 나서야 지금까지 복귀시키라는 명령을 랭키가 여러 번 반려한 걸 알 수 있었다.

왜 그는 일개 말단 부대의 훈련을 도왔을까. 그리고 머리가 될 수 있는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 이 촌구석에서 살고 있나.

여러 의문이 있었지만 나디사는 그에게 그 어느 것 하나 묻지 않았다. 그의 질문이 뒤늦게 머릿속에 들어왔다. 바다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바다보단 하늘을 더 좋아하는 편입니다.”

“둘 다 파란 거, 이왕이면 하늘이 낫기는 하지.”

랭키는 공감하는 것처럼 웃으며 연기를 뱉었다.

쓴 물을 삼키는 듯한 그의 미소는 인간적으로 보였다. 로피는 주인이 무얼 해도 좋은 것처럼 꼬리를 흔들었다.

“로피는 참 순하네요.”

“순하지. 그렇게 훈련했으니까.”

“훈련시키는 걸 좋아하시나 봐요.”

“내 말, 내 눈빛 하나에 변하는 사람을 보는 것만큼 적성에 맞는 일도 없긴 해.”

떠날 때가 되니 그는 순순하게 모든 말을 받아 주었다.

“나디사, 라고 하지. 보통 플란 종족은 이름 끝에 사를 붙이지.”

시가를 물었다, 뺐다, 고민하던 랭키는 마침내 그 이름을 도마에 올렸다. 그녀 역시 진실을 찾고자 갈라 보고 싶은 그 이름을.

“티사라는 여인을 아나?”

“모릅니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혈연관계라는 중요한 키를 랭키에게 알려 주었을 때 어떤 파장이 올지 알 수 없었다.

친모와 애틋하다고는 하나 세월이 너무 흘렀다. 한 계절에도 바뀌는 게 사람의 마음인데 어떻게 덥석 신용할 수 있겠는가.

랭키는 아무렇지 않게 다음 말을 이끌었다.

“내 제자였지. 네 비행을 보면 그 애가 떠올라.”

“……어떤 사람이었는데요.”

“비행을 하려고 태어난 사람처럼. 그 해 들어온 신입은 물론, 그 이상에서도 그만한 애는 없었어.”

제 친모에 대해서 마로닌 부부는 단 한 번도 이야기해 준 적 없었다.

자신은 어떠한가. 이젠 얼굴은커녕 목소리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친모는 그녀에게 푸르른 망토로 기억됐다.

“되게 인기도 좋았지. 그 아이는 누구나 사랑할 만큼 밝고 착하고 상냥했지.”

남의 입에서 듣는 친모의 이야기는 중독성이 강했다. 듣기만 해도 가슴이 울렁거려 나디사는 천천히 눈을 내리감았다.

이건 자신이 찾고픈 진실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더 듣고 싶었다. 그 여자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조금 더 늘었으면 좋겠다.

“힘들어도 힘들단 이야기도 안 하고. 나는 그 아이가 차기 수장이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어.”

“그런데요?”

“그런데…….”

그녀를 그리워하던 랭키의 눈이 깊은 어둠을 지났다.

“두 번째 신관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있나?”

나디사는 어깨에 힘이 빠졌다. 펼쳐지던 상상의 나래가 뚝 끊겼다. 무의식중에 입이 움직였다.

“압니다. 저희 부대를 축복해 주셨거든요.”

“그것 말고는 아는 게 없나?”

“네.”

“흠. 그것도 능구렁이가 다 됐군.”

랭키는 로피와 산책을 더 하려는 것처럼 시가를 털며 뒤돌려고 했다. 티사를 모른다고 했으니 잡을 명분이 없었다.

“아참.”

떠나려던 랭키가 발을 멈추었다.

“돌아가면 두 번째 신관인 록에게 따로 찾아가 보도록 해.”

“……제가요?”

“티사에 대해 나보다 잘 아는 이는 그 남자니까.”

랭키 웨던은 당황하여 얼어 있는 나디사를 보며 씨익 웃었다.

“마이사 마로닌과 로단 마로닌은 티사의 절친한 고향 친구였지. 그들의 딸이 티사를 똑 닮은 게 대단한 우연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아.”

랭키의 말에 뼈가 있었다. 그는 떠나면서 손을 작게 흔들었다.

“또 보자꾸나.”

언젠간 시가 냄새 묻은 밤바람이 그리워지려나. 해안 길을 걷는 그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다 앞을 지켰다.

그는 자신이 누군지 짐작 가는 듯했다. 들킨 것은 얼굴뿐이었다.

그건 그만큼 그 여자와 자신이 닮았다는 소리가 된다.

“록…….”

두 번째 신관 록에 대한 단서를 던져 주어 감사했다.

그전에도 혹시나 했었다. 군인과 신관을 엮을 상상력이 없어서 포기했을 뿐.

록과 처음 엮인 날, 비 오는 날의 입문식을 떠올리는 순간이었다.

“나디사!”

사이 좋게 모인 동료들이 어서 오라며 손짓했다. 여자들 오두막 앞이 집합 장소인 모양이었다.

나디사는 고민하던 것을 잊고서 발을 놀렸다. 서늘하게 울렁거리던 가슴은 그녀를 향한 손짓에 자취를 감췄다.

저절로 웃음이 피어나는 조합에 걸음이 바빠졌다. 무슨 좋은 일이 있는 듯한 마벤이 더 빨리 오라고 성화였다.

신난 마벤이 무어라고 떠들자 돌아오는 반응은 네 개였다.

아트리스는 지겨운 듯이 눈을 감고, 그리사는 무표정하게 눈을 깜빡거리며, 히아신은 같이 웃었다. 시네라는 기대감이 핀 얼굴이었다.

이윽고 합류한 나디사의 어깨를 끌어안고 마벤은 달밤에 막춤을 췄다. 진짜 내용은 춤 막바지에 들을 수 있었다.

“나디사? 우리 집으로 간대!”

“너희 집으로?”

사정은 이랬다. 몸통의 수장인 헤번의 라드의 상태가 며칠째 좋지 않았다. 마벤의 집은 서부 지역에서 나름 먹히는 부잣집이란다.

요양은 필요하고, 그렇다고 복귀 명령이 떨어진 이상 이곳에 계속 머물 순 없었다.

귀한 라드를 데리고 머물 장소를 물색하다가 마침 가까운 서부에 있는 마벤의 집이 낙점된 것이었다.

“맨날 나한테 거짓말 아니냐는 눈빛을 보냈었지? 우리 집이 얼마나 부자인지 내가 가서 보여 주겠어!”

그래서 의욕이 타올랐나 보다. 마벤의 쉬지 않는 자랑에 모두가 질린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싫어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나디사는 곧 작별하게 될 바다를 바라봤다.

오늘은 눈으로 그릴 수 있다. 그 여자가 라드를 몰고 하늘을 나는 모습을, 조금은 선명하게.

처음엔 라드군에 큰 애정이 없었다. 친모처럼 전부를 라드군에 쏟지는 않을 거라고 다짐했었다. 그리하여 훗날 그녀에 대해 알게 되더라도 부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료가 생기고, 함께 생사를 건너고, 훈련하고, 믿어 주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변덕을 부렸다.

과연 자신이 이 모든 것을 아무것도 아닌, 금방 등질 수 있는 것으로 취급할 수 있을까.

나디사의 눈빛이 망설임을 담았다. 샤포드 밖으로 와서 만난 세상은 꽤 괜찮았다.

“나디사?”

“아, 어.”

자랑을 한참 이어 가던 마벤은 그녀의 목에 손을 두르고 짤짤 흔들었다.

“너는 그나마 깔끔한 편이니까 내 방에서 같이 자는 걸 용납해 줄게. 너한테 진짜 침대가 뭔지 보여 주겠어.”

마벤의 허세 섞인 말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식사만 잘 나오면 된다던 그리사가 비스듬한 미소를 지었다.

“나디사가 안됐네요, 마벤은 코도 고는데.”

“뭐? 이 어린 게.”

한 방에서 먹고 자면서 서로의 잠버릇까지 다 알아 버렸다.

“너 이리와!”

그리사는 제 발을 밟으려는 마벤을 피해 바다로 내려갔다.

“야! 이리 안 와?”

추격전을 벌이는 그리사와 마벤을 보며 나디사는 문득 어색하던 첫 소집일이 떠올랐다.

모든 것이 조금씩 변해 가고 있었다. 나디사는 그게 몹시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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