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망나니 검술 교관이 되었다-16화 (16/119)

016화

* * *

회전검은 필립이 꽤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기술이었다.

원리도 단순했다. 전기톱의 원리를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었다.

마력에 대한 깊은 이해도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았기에 필립은 디아나, 그리고 펠리시아가 이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필립은 어느새 돌아온 펠리시아와 디아나를 뒷마당에 앉힌 채 설명하기 시작했다.

“오러를 회전시키는 건 원리만 알면 상당히 간단합니다. 일단 각자 검을 들고 검기를 형성해 보십시오.”

펠리시아와 디아나는 떫은 표정으로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곧 그녀들이 든 검에서 푸른 검기가 솟았다. 디아나의 그것보다 펠리시아의 검기가 더 선명했다.

“그 상태에서 오러의 흐름을 더 빠르게 해 보십시오.”

“…응?”

펠리시아가 무슨 개소리냐는 눈빛으로 필립을 빤히 바라보았다.

필립은 작게 한숨을 내쉰 뒤 다시 지시했다.

“일단 나름대로 내 말대로 하도록 노력해 보세요.”

“그런 짓을 했다간 폭주가 일어날 겁니다. 교관. 한 번에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오러를 사용하면 보통 그렇게 됩니다.”

디아나가 필립의 말을 반박했다.

“무슨 말이십니까? 누가 더 많이 밀어넣으라고 했습니까? 물론 흐름을 더 빠르게 하면 더 많은 오러가 소모되겠지만 그건 결과일 뿐이지 원인이 아니란 말입니다.”

졸지에 학생이 된 교수와 교관은 필립이 뭔가 대단한 사실을 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안타깝게도 무슨 말을 하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잘 보십쇼.”

필립은 짧은 단검을 들어 검기를 일으켰다.

“이게 여러분이 아는 것과 같은 평범한 검기입니다. 검신에 오러를 둘러 칼날을 덧씌운 상태죠.”

곧 필립이 정신을 집중하자 단검을 뒤덮은 푸른 칼날이 불꽃처럼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거, 검강?”

펠리시아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마치 검강처럼 보이지만, 이건 검에 오러를 보내는 속도를 빠르게 한 것에 불과합니다. 자, 여기서부터는 간단합니다.”

불꽃처럼 일렁거리던 검기가 어느새 빠른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 시점에서 펠리시아와 디아나는 입을 쩍 벌렸다.

“이렇게 단지 검신을 향해 오러를 밀어넣는 게 아니라 오러가 가진 응집력을 이용해 다시 몸으로 돌아오도록 오러를 유도하는 겁니다. 물론 원심력 때문에 오러가 일정 부분 소실되겠지만, 검기를 유지하는 데 쓰이는 양보다 오히려 적습니다.”

설명을 마친 필립이 단검을 펠리시아에게 내밀었다.

“한번 해 보세요.”

그녀는 명문 아카데미의 교수로서 차마 한마디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으…응.”

쭈뼛거리며 단검을 잡고 오러를 불어넣었으나 필립과 같은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검기조차 형성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필립이 한탄했다.

“굉장히 쉽게 설명했다고 생각했는데.”

“…하다 보면 되지 않을까?”

펠리시아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녀 스스로도 자신이 없었다.

“애초에 방향성이 틀렸습니다. 그렇게 해선 일 년을 해도 어림없습니다. 잠깐 이리 와 보십시오.”

‘이게 되려나?’

필립은 반신반의하며 펠리시아에게 손짓했다. 그녀가 다가오자 필립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이걸… 왜 이렇게 하는 건데?”

“한번 직접 느껴 보시라고요.”

“그게 무슨 말이…… 흐이이이익!”

곧 자신의 손을 통해 오러가 밀려들자 기겁한 펠리시아가 눈을 질끈 감고 비명을 질렀다.

본래는 타인의 몸에 오러를 주입하면 거부 반응 때문에 살갗이 터져 나가야 했다.

‘그런데 왜 안 아프지?’

심장이 거세게 뛰는 걸 느끼며 펠리시아는 조심스럽게 실눈을 떴다.

“…응?”

그녀는 자신의 손을 타고 오러가 흐르는 걸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도 전혀 아프거나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걸 여기서 이렇게, 그냥 몸 밖으로 밀어내는 게 아니라 순환하는 길을 만드는 거라고. 속도를 빠르게 한다는 건 세게 보내는 게 아니라 통로를 좁게 만드는 거야.”

필립은 천천히, 그리고 친절히 설명하며 그녀가 자신의 말을 이해할 때까지 그녀의 손을 통해 오러의 흐름을 느끼도록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펠리시아는 머릿속이 밝아지는 것을 느끼고 벼락을 맞은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가 무의식 속으로 빠져드는 걸 느끼며 필립은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뭔가를 깨달은 이후일 것이었다.

“이제 교관님 차례입니다. 이리로 오십시오.”

“저도 저렇게 해주는 겁니까?”

디아나는 놀랍다는 듯 되물었다.

“여러분이 이걸 할 줄 알게 되면 제가 나중에 편해집니다. 나중에 학생들에게도 가르칠 건데 교관님도 아셔야죠.”

필립은 그렇게 말하며 디아나의 손목을 잡았다.

“교관님께서는 비명을 지르시지 않을 거라 믿습니다.”

디아나 파렌할은 헛웃음을 뱉으며 그에게 손목을 맡겼다.

이십 분 정도 시간이 흐른 뒤 그녀 또한 무의식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 * *

주말이 지난 월요일이었다.

1학년 검술 수업에 들어간 필립은 학생들의 자율 훈련을 감독하고 있었다.

열네 살 어린 소년 소녀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과 같았다.

그렇기에 필립은 쉴 틈 없이 검술 교장 전체를 돌아다녀야 했다.

“지스칼드 보렌자. 훈련용 인형으로 장난치지 마라.”

“애니스 프랄린. 올리비아 누에스. 너희들이 친해져서 참 보기 좋은데, 지금은 수업 시간이잖니? 잡담은 수업이 끝나고 했으면 좋겠구나. 아니면 적어도 훈련을 하면서 하던지.”

“그래, 하인리히 콜린스. 배가 아프다고? 얼른 다녀오렴.”

총 세 시간으로 이루어진 검술 수업은 보통 이론 한 시간, 실습 한 시간, 자율 훈련 한 시간으로 진행되었다.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엔 그렇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은 특별한 일정이 있는 날이었다.

교수인 펠리시아와 선임 교관인 디아나 프렌할은 그 일정 탓에 수석교수에게 불려간 상황.

맨 앞으로 당겨진 자율 훈련 시간은 온전히 필립 혼자 감당해야 했다.

‘신입이 그렇지, 뭐.’

필립은 그렇게 생각하며 재빨리 움직였다. 학생 한 명이 목검을 이상하게 쥐고 수련 인형을 두들기려던 참이었다.

“잠깐만, 그렇게 쥐고 때리면 네 손이 매우 아플… 날 놀렸구나?”

그 학생은 필립도 알고 있는 아이였다. 헤일리 바로운. 북부 변경백의 막내아들이었다.

지금보다 훨씬 어릴 때부터 검을 잡았을 그가 파지법을 헷갈릴 리가 없었다.

그는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피부가 어두웠고, 특이하게도 은발이었다.

“제가 놀려서 화나셨어요?”

“그럴 리가.”

필립은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네요. 친구들하고 내기했는데. 어떻게 하면 화내실 건가요?”

헤일리에게선 태어날 때부터 남 위에 선 자 특유의 오만함이 느껴졌다.

‘귀여운 녀석.’

소년이 생각하는 건 뻔했다.

아카데미에 어느 정도 적응했으니 자신이 남들과는 다르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것이었다.

필립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네가 장난을 좀 친다고 내가 화를 내는 일은 없을 거다. 하지만 네가 나를 화나게 만들기 위해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입힌다거나, 너보다 약한 학생을 괴롭힌다면 화가 나겠지. 그렇게 할 거니?”

헤일리는 뭔가 불만스럽다는 듯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바로운 가문 사람은 그렇게 불명예스러운 행동을 하지 않아요.”

“착하구나.”

“….”

헤일리 바로운은 이게 아닌데, 라는 표정을 지으며 얌전히 목검을 휘둘렀다.

“잠시 모두 주목!”

곧 잠시 불려갔던 디아나 프렌할의 목소리가 검술 교장을 울렸다.

모두의 시선이 모이자 디아나의 입술이 다시 열렸다.

“프리비아 아카데미의 졸업생이자, 명예로운 실베르 나이트의 일원인 요슈아 프랄린 경이 여러분의 수업에 참관하기 위해 북부 전선에서 지금 막 도착했다.”

그 말에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와, 실베르 나이트래.”

“…부럽다.”

“잠깐, 프랄린이면 애니스 프랄린하고 무슨 관계지?”

필립의 시선이 애니스 프랄린을 향했다.

그 조그만 소녀는 놀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며 중얼거렸다.

“…오빠?”

그리곤 당장이라도 달려가 안기고 싶어 안달이 났는지 발을 동동 굴렀다.

“오늘 이론 교육은 요슈아 프랄린 경의 특별 강연으로 대체할 것이다.”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오락거리가 별로 없는 환경에서 유명한 기사의 무용담은 어린 소년 소녀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지.’

다만 필립은 궁금했다.

2주 뒤, 대련에서나 만나야 할 실베르 나이트의 일원이 왜 지금 이 시점에 나타난 것일까.

‘이런 일은 없었는데?’

“그러니 모두 교복으로 환복 후 강의실로 집합하도록.”

얼마 남지 않은 자율 훈련 시간은 그대로 생략되었다. 학생들은 재잘거리며 탈의실로 직행했다.

“우리도 조금 쉬다가 이동합시다. 교관. 혼자 고생하셨습니다.”

주말 이후로 더욱 살가워진 디아나 파렌할이 웃으며 휴식을 권할 때 필립은 자신을 간절히 바라보는 간절한 시선을 느꼈다.

애니스 프랄린이었다.

듣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필립은 알 것 같았다.

“네 오빠를 만나고 싶은 모양이구나.”

소녀는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간식을 앞에 두고 기다리라는 명령을 받은 강아지 같았다.

“애니스 프랄린. 교관이 분명 옷을 갈아입고 강의실로 오라고 했을 텐데.”

디아나가 엄한 목소리로 그녀를 나무랐다. 애니스는 순식간에 울상이 되어 필립을 바라보았다.

자기편을 들어줄 사람을 직감적으로 알아챈 것이었다.

필립은 웃으며 디아나를 만류했다.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디아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수업이 끝나거든 만날 것 아닙니까. 특별 대우를 받으면서까지 일찍 만나게 해줄 필요는 없습니다.”

“…잠깐 귀 좀.”

“네?”

필립이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대련은 2주나 남았는데 왜 기사단원이 벌써 아카데미에 왔겠어요? 분명히 이유가 있을 텐데, 저 애를 데려가는 걸 핑계로 한번 알아보려 합니다.”

“뭐, 그렇다면야.”

디아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밉지 않은 수작이었기에 한 번 속아주기로 한 것이었다.

“들었지? 따라오렴. 늦으면 두고 갈 거다.”

“…정말요? 감사합니다!”

애니스는 환호성을 지르며 필립의 팔을 끌어안았다. 필립은 그녀의 어깨를 잡고 조심스럽게 밀어낸 뒤 애니스와 조금 거리를 두고 걸었다.

땀냄새가 조금 났기 때문이었다.

디아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녀는 요즘 필립 덕에 검을 처음 배울 때의 흥분과 즐거움을 다시금 느끼는 중이었다.

‘회전검.’ 그가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베푼 그 새로운 차원의 가르침은 그녀가 보는 세상을 한층 넓혀 주었다.

‘아무도 모르겠지. 저 아름다운 얼굴 안에 세상을 뒤엎을 검의 귀신이 들어있을 거라곤.’

그녀는 교관이 된 후 처음으로 휴가를 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 달 정도는 아무 생각 없이 검만 휘두르고 싶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