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쿠션은 원래 푹신해요 (3)
각성자 협회 회의실.
그곳에서 눈앞의 스크린을 바라보던 협회 관계자들은 턱을 쓰다듬었다.
“무신련 여기 확실히 특이하네?”
“특별한 외부 활동은 없지만, 성장 속도가 정상을 벗어났습니다. 보시죠.”
스크린에 세부적인 데이터가 떠올랐다.
무신련 길드원들의 성장 곡선을 알려 주는 그래프가 어지럽게 그려져 있는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성장을 보여 준 사람이 있었다.
“김태식인가.”
“협회와 각종 길드에서 주목하던 슈퍼 루키입니다. 이제 루키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많이 성장했지만요.”
“원래 이 정도였나?”
“그랬으면 주목하는 정도가 아니라 기를 쓰고 데려갔겠죠.”
B급에서 반년 만에 S급으로 성장한 건 빠르다 못해 전례가 없는 수준이었다.
그 천진혁조차 S급이 되기까지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으니 말이다.
뭐, 천진혁은 외부 활동을 안 해서 S급의 실력을 갖췄음에도 아무도 몰랐던 거라 경우가 다르긴 했지만, 아무튼 전례가 없긴 했다.
거기에 김태식은 천진혁같이 낮은 등급 때부터 비범함의 편린을 보여 주거나 하지 않았다. 때문에 지금 결과가 더욱 신기한 관계자들이었다.
“그리고 김태식에게만 포커스가 집중돼서 그렇지, 다른 길드원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S급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엄청나서 티가 안 났던 거지, 다른 길드원들의 성장도 정상적이지는 않았다.
B급이 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A급으로 승급한 최동협과 신유나.
승급을 주관한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시종일관 여유롭게 능력을 사용했다고 하니, 이들도 곧 S급이 될지도 몰랐다.
“S급만 세 명, 아니 이초아까지 네 명인가.”
“진짜 전례가 없는 수준이군요.”
허어. 관계자들의 입에서 감탄인지 탄식인지 모를 소리가 터져 나왔다.
국내에 S급 각성자가 늘어나면 관계자 입장에서 당연히 좋았지만, 그 정도의 전력이 한 길드에 집중된다니.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하나밖에 없죠.”
개인 활동을 할 때는 평범했던 자들이 누군가를 만나며 특별해졌다.
그것도 한 명뿐만 아니라 셋 전부가.
이렇게 인과가 명확하면 싫어도 알 수밖에 없었다.
“백한영이 원인인가.”
“이 사람의 실력으로 얘기가 먼저 나올 줄 알았는데, 교육 능력으로 시끄러워질 줄은 몰랐네요.”
“그런데 정말 확실한가? S급이 공산품도 아니고. 이렇게 찍어 내듯 만들 수 있어?”
하지만 아무리 인과가 명확해도 관계자들은 반신반의인 상태였다.
어쩔 수가 없었다. S급은 각성자의 정점이자 인류 최후의 보루.
그런 걸 원하는 만큼 만들어 낼 수 있었다니. 그 어떤 각성 능력보다 무서운 힘이었다.
“저희도 믿기지 않지만, 결과가 이런데 부정하는 것도 이상하죠.”
“…이런 능력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널리 써야 하지 않나? 우리가 선별한, 애국심이 넘치는 자들만 백한영의 교육을 받게 한다면.”
“그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게 또 그렇게 편리하게 일이 돌아가지 않는 모양입니다.”
딸깍. 스크린에 새로운 정보가 떠올랐다.
이번에 새로 백한영의 길드에 들어간 4명의 정보였다.
“이초아까지 무신련에 들어갈 줄은 몰랐는데.”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백한영의 교육이 마법사에게까지 유용한 듯합니다. 그게 아니면 여태 개인 활동을 선호하던 이초아가 저런 신생 길드에 들어갈 이유는 없죠.”
“하긴. 근데 그래서? 일이 편리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니. 뭘 보고 말하는 거지?”
“새로 뽑힌 길드원들을 보시죠.”
“평범한데? 각성 능력도 희귀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고. 아, 금성화 이 사람은 다르긴 하네. 그런데 금성화도 뭐 특별하다고 할 정도는 아닌데?”
배예린, 청진호, 금성화의 능력을 비롯한 경력 그리고 각종 평가를 읽어 봤지만, 특출 난 점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애들도 S급이 될 수 있다면 협회에서 주목 중인 루키들은 더 빠르고 쉽게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뽑힌 사람의 능력은 별로 안 중요합니다.”
“그러면 뭐가 중요한데.”
“몇 명이 어떤 과정을 거쳐 뽑혔나가 중요하죠.”
스크린에 이번엔 최근 치러진 무신련 공개 면접의 경쟁률이 나왔다.
그걸 본 관계자의 입에서 경악스러운 목소리가 나왔다.
“아니, 이 정도였어? 지원자만 거의 5,000명이 넘네?”
“네. 저 중에서 4명만 뽑힌 겁니다. 이미 S급인 이초아를 제외하면 3명이 뽑힌 건데, 말씀하신 대로 아무나 S급으로 만들 수 있었다면 그럴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그냥 한 번에 많은 사람을 신경 쓸 수 없어서 그런 걸 수도 있지 않나?.”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그게 결정적인 원인은 아닐 겁니다. 저 5,000명, 전부 면접을 봤습니다.”
“5,000명을 전부?”
“네. 사실상 이력서를 넣은 사람을 전부 만나 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나 S급으로 만들 수 있다면 이럴 필요가 없죠.”
아무나 S급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면 굳이 귀찮게 면접을 보며 사람을 가릴 필요가 없었다.
그냥 대충 이력서를 보고 괜찮다 싶은 사람 몇 명을 데려오면 되니까.
하지만 백한영은 그러지 않았다.
그 이유는 명확했다.
“S급을 만들 수는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공장에서 찍어 내듯 S급을 만들 수는 없을 겁니다. 자기만의 기준이 있을 거고, 그 기준에 통과한 사람을 S급으로 만들 수 있는 거죠.”
“아쉽군.”
관계자가 입맛을 다셨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S급을 찍어 낼 수 있다면 자신들에게 도움이 많이 될 텐데. 인류에 공헌도 될 거고. 그러지 못한다니 많이 아쉬웠다.
물론 백한영이 노리는 건 S급이 아니라 SSS급이고, S급이 뭐야. SS급까지는 관계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양산이 가능했지만, 그런 속사정까지 이들이 알 수는 없었다.
다행이었다. 백한영에게도, 관계자들에게도.
만약 저런 속사정을 관계자들이 알았다면 눈에 불을 켜고 백한영을 귀찮게 했을 텐데, 그러면 장담하건대 3일 만에 사달이 난다.
상급 신(최상급의 경지에 반쯤 발을 걸침)을 자극하고 멀쩡하길 바라면 양심에 털이 난 거니까.
“협회에서 육성 중인 각성자들이 백한영의 기준을 만족할 가능성도 있지 않나?”
“없습니다.”
“왜? 백한영이 협회와 관련된 각성자는 안 받겠다고 선언이라도 했나?”
“아뇨. 이력서를 넣은 저 5,000명에 저희가 육성 중인 각성자도 포함돼 있습니다. 그런데 합격자 명단에는 없죠? 무슨 뜻인지 아실 겁니다.”
“아.”
협회가 육성 중인 각성자는 이미 S급이라는 달콤한 과실에 홀려 무신련에 이력서를 넣었다가 탈락을 마친 상태였다.
백한영의 혜택을 받을 일말의 가능성마저 사라진 게 아까워 볼을 긁적이던 관계자가 이내 입을 열었다.
“이 정도면 백한영에 대해 어느 정도 안 것 같군.”
“드디어 본론이네요.”
딸깍. 스크린에 이번엔 다른 정보가 올라왔다.
백한영에 대한 세부적인 데이터였다.
“뭐가 없군.”
“활동은 거의 안 하니까요. 마지막으로 활동한 게 월드 게이트인데, 솔직히 이때도 활동했다고 하기에는 좀 그렇습니다. 예비 인원이라 근처 맛집 탐방을 더 많이 했거든요.”
“게를 아주 맛있게 먹었군. 근데 왜 포장을 해 갔지? 숙소에서 먹으려고 한 건가?”
무려 백한영이 출장지에서 먹은 음식의 종류까지 나열돼 있었건만, 스크린을 반도 못 채우는 데이터 양에 관계자들이 신음성을 냈다.
무언가를 판단하기엔 데이터가 너무 부실했기 때문이었다.
“이 사람을 S급으로 승급시켜도 될까요?”
“다중 게이트 때 보여 준 퍼포먼스만 보면 S급이 확실하지만.”
“모르는 일입니다. 그날의 컨디션이 최상이라, 혹은 순간의 플루크로 A급임에도 S급의 퍼포먼스를 보여 준 사례가 가끔 있지 않습니까.”
“으으으음.”
S급으로 승급할 때는 보통 두 가지 방식을 썼다.
하나. 본인이 직접 S급이 됐다고 알려 테스트를 받고 승급하는 것.
둘. 협회와 관계자들이 판단해 S급이라고 생각될 경우 승급하는 것.
참고로 말하자면 김태식은 전자였고 천진혁은 후자였다.
사실 백한영의 S급 승급을 얘기하는 건 아직 시기상조였다.
본인의 실력과 별개로 보여 준 게 거의 없었으니까.
김태식을 비롯한 무신련에 대한 소문이 퍼지지 않았다면 백한영의 승급 얘기는 다음 활약을 했을 때로 미뤄졌을 것이다.
“S급을 찍어 내는 능력은 확실히 대단하지만, 그런 걸로 승급을 시켜 주기엔 S급이 가진 위상이.”
“정말 그것 하나 때문에 승급을 고민하는 게 아니잖아요. 본인이 가진 능력도 충분히 S급이라고 판단됐기에―.”
“다중 게이트 때 보여 준 퍼포먼스는 위기 상황에 발현된 한계를 넘는 힘일 가능성이 있다고 누누이 말하지 않았―.”
회의실이 시끄러워졌다.
원래도 S급 승급은 시끄러운 주제였지만, 이 정도 데이터만으로 S급 승급을 고민해 본 적이 없었기에 더욱 혼란스러워진 것이다.
“그냥 본인을 불러와서 확인하면 되지 않나?”
“이미 연락을 넣어 봤지만 거절했다고 합니다.”
“천진혁이랑 똑같은 케이스군.”
과거 천진혁이 느닷없이 수십의 A급 몬스터를 일검에 참살한 직후. 협회는 그를 불러 S급이 맞는지 확인하려 했지만, 깔끔하게 거절당하고 말았다.
그래서 회의를 통해 천진혁을 S급으로 승급시켰었는데, 그때와 비슷한 상황에 관계자들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왜 S급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비협조적인 걸까.
협조성이 높은 윤한이 그리운 밤이었다.
“상대가 거절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해야지. 그러라고 월급을 받는 것 아닌가?”
“누가 뭐라고 했나? 일은 하고 있지 않은가, 데이터가 부족해서 그렇지.”
“차라리 승급은 다음으로 미루는 건 어떨까요.”
“큼큼.”
상석에서 들려온 헛기침에 시끄러웠던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사람들을 조용히 시킨 협회장이 나직이 말했다.
“요즘 세상이 안팎으로 어지럽지 않은가. ‘오버로드’라는 이상한 놈들이 괴상한 사상을 퍼트리고, 게이트는 갈수록 늘어 가고. 지쳐 가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새로운 S급이 탄생했다는 소식을 전해 주는 게 좋지 않겠나?”
“그런 이유로 S급을 주기에는.”
“누가 그런 이유로 주라고 했나. 다 제쳐 놓고 저기에 나온 정보만 봐도 충분하구만. 안 그런가?”
확실히 데이터가 부실하긴 했지만, 저기에 나온 정보만으로도 S급 승급이 충분히 가능하긴 했다.
너무 부실한 탓에 저게 단발성인 건지 지속성인 건지 파악이 안 돼서 망설였던 것뿐이지.
“오류가 없다면.”
“솔직히 이 정도 퍼포먼스를 보여 주고 S급이 안 되는 것도 이상하긴 합니다.”
회의실의 분위기가 정돈됐다. 모두의 의견이 하나로 수렴된 것이다.
“결정된 것 같군.”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킨 협회장이 이내 천천히 이어 말했다.
“그럼 백한영 씨를 S급으로 승급시키는 걸로 하고 회의를 마치도록 하게나.”
“알겠습니다.”
백한영.
S급 승급 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