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귀환했다-48화 (48/117)

49화 그게 뭔데, 십덕아 (2)

치킨과 피자를 시원하게 얻어먹은 그날, 홍유진은 백한영의 번호를 얻어 냈고.

매일같이 전화를 했다.

[선생님, 홍유진입니다. 건강하셨나요.]

“저희 얼굴 본 지 하루도 안 됐는데요?”

치킨을 사 준 것에 더해 당분간 생활할 돈을 준 백한영에게 홍유진은 거의 매일 연락을 하며(빌린 돈은 이세계에서 가져온 귀금속을 처분해 금방 갚았다) 친분을 다졌고.

인터넷 방송에 대한 얘기도 그러던 도중 나왔다.

“인터넷 방송을 하신다고요?”

[정확히는 할 예정입니다.]

“인터넷 방송이면 뭐, 게임을 하고 그런 건가요?”

인터넷 방송이면 백한영도 나름 알았다.

물론 잘 아는 건 아니었고, 게임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정도만 딱 알고 있다고 보면 됐다.

백한영의 말에 홍유진이 바로 대답했다.

[네. 게임도 하고, 그것 외에도 여러 콘텐츠를 준비해 놨습니다.]

“어떤 콘텐츠요?”

[이것저것…….]

인생을 대충 사는 백한영이었기에 잘 알았다.

저건 준비가 안 된 사람의 대답이었다.

속으로 허허 웃은 백한영이 이내 말했다.

“남들 앞에서 게임하는 건 재밌겠네요.”

[그래서 예전부터 해 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방송을 직접 하는 건 귀찮아서 좀 그렇고, 체험 정도는 해 보고 싶네요.”

백한영도 반쯤은 농담으로, 반쯤은 진심으로 한 소리였다.

인터넷 방송을 하기엔 돈이 이미 많기도 했고, 관심을 받는 것도 별로…….

근데 관심을 받고 싶지 않다고 말하기엔 꽤 멀리 오지 않았나?

아무튼 그래도 최대한 지양하는 게 맞았으니 본격적으로 방송을 하는 건 좀 그랬지만.

원래 사람이란 게 자기가 안 해 본 일은 한 번쯤은 해 보고 싶어지기 마련이었다.

때문에 나온 단어가 체험이다.

진짜 딱 체험 정도로만 즐기고 빠지고 싶은 게 백한영의 마음이었는데.

인터넷 방송 체험이라니, 그딴 게 존재할 리 없지 않은가?

하지만 홍유진은 백한영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체험이요?]

“예.”

[그러면 나중에 저희 방송에 출연해 보실래요?]

“어… 네. 시간이 나면요.”

대충 말한 것 같다면 제대로 봤다.

실제로 대충 대답한 게 맞았거든.

당시 트롤러들을 데리고 근대 배경의 전쟁터에서 1 대 5, 1 대 10의 싸움을 계속하느라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 거다.

느닷없는 인터넷 방송 출연 제안에 기억을 되짚고 있던 백한영에게 홍유진이 말을 걸었다.

[선생님?]

“네?”

[혹시 바쁘신가요?]

바쁘냐고?

백한영은 고개를 살짝 내려 앞을 바라봤다.

[매화검수: 바쁨? 안 바쁘면 우리 길드 공성전에 용병으로 참가하실?]

어느새 접속이 된 창천지로의 메시지 창에 <매화검수>의 귓속말이 올라오고 있었다.

공성전… 쟤네 1위 길드라 특히 더 재밌는데.

음.

홍유진 쪽도 물어보고 정하자.

“인터넷 방송 시작한 지 해 봐야 이제 일주일 정도밖에 안 된 것 아닌가요? 벌써 사람들이 봐요?”

[운이 좋았습니다.]

“얼마나 보는데요?”

[어제를 기준으로 한 8,000명 정도.]

8,000명……. 그래서, 저게 많은 거야 적은 거야.

얼핏 봐선 많아 보였지만, 인터넷 방송의 생태를 잘 몰랐기에 백한영이 최대한 말을 조심하며 물었다.

“제가 출연해서 뭘 하면 될까요.”

[선생님 게임 좋아하지 않나요?]

“그렇죠?”

[제가 조사한 바로는 잘하시는 걸로 아는데.]

“굉장히 잘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게임엔 자부심이 넘치는 백한영이 곧바로 대답하자, 홍유진이 말했다.

[장인 초대석 같은 걸 할 생각인데, 첫 번째 게스트로 선생님을 모시고 싶습니다. 어떠신가요.]

“으으음.”

그니까 요약하자면 가서 게임만 하고 오면 된다 이건가?

저 정도라면.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일정은 당장 보내 드리겠습니다!]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홍유진과의 통화를 종료하며 백한영은 키보드를 두들겨 채팅을 쳤다.

[검신백한영: 다음 기회에 참가하도록 하겠소.]

[매화검수: ㅇㅋ]

공성전이야 언제든 할 수 있었지만, 홍유진의 제안은 다음엔 안 올 수도 있었으니 이게 맞았다.

그리고 솔직히 인터넷 방송.

해 보고 싶긴 했어.

* * *

살짝 시간을 돌려 일주일 전.

성검을 사용해 시원하게 적 최종보스(아님)를 잡… 기 직전에 멈춘 홍유진은 다음 날 앞으로 살 집을 구했고.

방송 장비를 구매했다.

“게임이면 카드 게임 같은 걸 말하는 거야?”

“좀 달라.”

“난 네가 용병 애들이랑 카드 게임 할 때마다 어차피 탈탈 털리면서 왜 하나 싶었는데, 그걸 굳이 보려는 사람이 있다 이거지?”

“좀 다르다니까……. 엘레나, 너 그런 생각을 했었니.”

홍유진은 자신이 있었다.

게임을 잘하기도 했고, 스스로의 입담 정도면 충분히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홍유진은 망설임 없이 방송을 시작했고.

[1명]

방송 1일 차에 자신감이 박살 났다.

바닥에 주저앉아 좌절하고 있는 홍유진에게 이엘이 다가가 물었다.

“괜찮아?”

“이제 하루 차니까, 점점 나아지겠지.”

“그래도 한 명이나 봤잖아? 힘내.”

차마 저 한 명이 자신의 부계정이라고 말하지 못한 홍유진은 팔짱을 끼고 사태를 분석했다.

홍유진의 방송을 아무도 보지 않은 이유야 많았다.

가장 먼저 인터넷 방송이 레드오션인 게 있었다.

시청자 10명 미만의 인터넷 방송인 수십, 수백 명이 동시에 방송을 켜곤 하는 생태계에서 아무것도 없는 일반인이 갑자기 진입한다고 해서 확 뜰 리가 없는 것이다.

입담이 좋은 것? 중요했다. 사실상 인터넷 방송인이 살아남는 데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건 그거다.

소개팅과 비슷했다.

아무리 말빨이 좋아도 그걸 보여 줄 환경이 안 되면, 즉 첫인상이 별로면 아무것도 할 수 없듯이.

입담이 좋아도 우선 시청자들을 모으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었다.

요약하자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엔 홍유진에겐 뭔가가 없었다.

방송 외적으로 이미 유명한 것도 아니고, 게임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얼굴도 솔직히 말해 호감 가는 상이긴 했지만 잘생긴 건 아니었다.

남성 인터넷 방송인이 남성 시청자를 상대로 장사를 하려면 잘생긴 것보다 말을 잘하는 게 더 중요하긴 했지만, 여기서 첫인상론이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모을 정도의 무언가가 없으면 애초에 그런 남성 시청자가 모이지도 않는 거다.

‘게임도 너무 어려워.’

홍유진이 게임을 잘하긴 했었다.

현재 가장 유명한 게임인 레전드 오브 레전드, 통칭 레오레가 막 출시됐던 당시 상위 0.01 정도의 실력자였으니 어디 가서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녔다고 할 수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서 모든 유저가 상향 평준화 된 뒤에, 거기다 오랜만에 게임을 하기까지 하니 상대와 마주치는 1초마다 벽이 느껴지는 것이다.

홍유진이 머리를 굴렸다.

이 난관을 어떻게 타파해야 될까.

어떻게 해야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을까.

“용사님 왜 저러고 계세요?”

“그… 인터넷 방송? 그게 잘 안됐나 봐.”

이엘의 말에 성녀, 세피아 레이즌이 자애로운 말투로 홍유진에게 물었다.

“혹시 저희가 도와드릴 건 없을까요?”

“왜 저희야. 나는 안 도와줄 거야.”

“…도와줄 거?”

세피아의 말에 홍유진의 뇌리에 벼락이 쳤다.

그래. 어차피 다 같이 잘 먹고 잘살자고 이러는 거잖아.

나 혼자 할 이유가 없지.

그렇게 홍유진이 값진 깨달음을 얻고 다음 날.

“안녕하세요. 용사 파티에서 치료 및 보조를 맡고 있는 성녀, 세피아 레이즌이라고 합니다.”

[2,607명]

홍유진은 방송을 끄고 살짝 울었다.

기뻐서는 아니고, 그냥 울었다.

왜인지는 묻지 마라. 슬퍼지니까.

어쨌든 세피아를 비롯한 용사 파티 멤버의 힘… 까놓고 말해 외모 덕에 홍유진의 방송은 시작하자마자 엄청난 이슈 몰이를 했고.

고작 일주일 만에 8,000명 정도가 보는 대기업 방송으로 성장했다.

“오늘의 용사 파티 토론 주제는 ‘용사 파티에 도적이 필요한가?’입니다.”

“와아아아―.”

몰락한 귀족가의 천재 마법사, 잊혀진 신의 성녀, 세계수에게 버림받은 엘프 궁수의 박수 소리에 힘입어 홍유진이 말했다.

“그러면 우선 시청자들의 의견부터 듣겠―.”

“야.”

홍유진의 말을 끊고 누군가 난입했다.

그냥 도적, 이엘이었다.

“주제 꼬라지가 왜 저래. 누가 골랐어, 저거.”

“토론 주제 모집 게시 글의 첫 댓글이 저거였어…….”

살벌한 이엘의 말투에 홍유진이 쪼그라들었다.

설명을 들었음에도 이엘이 눈썹을 꿈틀거렸고.

그런 이엘을 천재 마법사, 엘레나가 다독였다.

“뭐 어때, 그냥 재미로 하는 건데.”

“…알겠어.”

일단 순순히 자리에 앉아 토론을 시작하는 이엘.

모든 참가자가 자리에 앉은 걸 확인한 홍유진이 목을 가다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선 필요 있다 측은 왼쪽에 앉아 주세요.”

이엘이 왼쪽에 앉았다.

“필요 없다 측은 오른쪽에 앉아 주세요.”

홍유진을 포함한 모두가 오른쪽에 가서 앉았다.

“야!”

이엘이 소리를 빽 질렀다.

“너, 너네 나를 그런 눈으로 봤던 거야?”

“이엘, 그게 아니에요.”

“이엘 네 얘기는 빼놓고 직업적인 관점에서 순수하게 도적이 필요 없잖아. 어디다 써, 도적을.”

“도적이 할 수 있는 일은 궁수인 저도 할 수 있습니다.”

세피아, 엘레나, 티냐의 말에 이엘이 바로 반박에 나섰다.

“함정 해체! 내가 여태까지 해체한 함정이 얼마나 많았는데! 기억 안 나?”

“말했듯 그건 저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내가 했잖아!”

“저희는 필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단호한 티냐의 말에 이엘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정보는? 내가 몰래 잠입해서 얻어 온 정보가 얼마나 많은데.”

“도움이 되긴 했지만…….”

엘레나가 말을 흐렸다.

인간끼리의 갈등이 발생했을 때 이엘이 도움이 된 건 맞았지만, 많이 도움이 됐냐고 묻는다면 고개가 갸웃거려졌기 때문이었다.

“그냥 그 자리에 이엘이 아니라.”

“얘들아, 이엘의 쓸모가 아니라 도적의 쓸모에 대해 얘기하고 있어. 잊지 말아 줘.”

“그래. 이엘이 아니라 도적. 도적이 가져오는 정보가 물론 좋긴 했지만, 그럴 기회가 별로 없었잖아? 그럴 바에는 차라리 도적 대신 전사를 넣는 게 낫지 않을까?”

“동의해요.”

“동의합니다.”

사정없는 팩트 폭격에 이엘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너희, 나를…….”

“잠깐, 얘들아! 이엘의 눈이 죽었어! 그만해!”

급하게 토론을 중지한 홍유진이 이엘에게 다다갔다.

“유진아, 나 쓸모없어?”

“그럴 리가 있나. 우리 이엘이 얼마나 쓸모가 많은데.”

“정말이면 내 장점을 세 가지만 말해 봐.”

전투력이 높지도, 머리가 좋지도, 특수한 힘이 있는 것도 아닌 이엘의 장점이 뭐냐고?

평소에 고민해 보지 않았던 문제에 홍유진이 과부화된 상태로 머리를 굴리다, 한 가지 답을 꺼냈다.

“…가슴이 크다?”

“나 집에 갈래.”

자리에서 일어난 이엘이 그대로 방을 나갔다.

정적이 차오른 방 안에서, 홍유진이 말했다.

“1부 토론 방송은 이걸로 종료입니다! 금방 2부로 찾아올게요!”

즉시 방송 종료.

그리고 이 모든 걸 자신의 방에서 시청자의 입장으로 봤던 백한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작 알긴 했는데, 저 친구 제정신은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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