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귀환했다-47화 (47/117)
  • < 그게 뭔데 십덕아(1) >

    “보물이요?”

    “어.”

    “갑자기요?”

    “갑자기는 아니고.”

    평소와 같이 두들겨 맞은 김태식이 보물 타령을 하는 백한영을 미심쩍은 눈으로 쳐다봤다.

    굉장히 믿고 따르는 형이었지만, 백한영이 가끔 나사가 빠진 거 같은 소리를 한다는 걸 지난 몇 달간 충분히 체감했기 때문이었는데.

    “대답이나 해줘. 보물을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될까.”

    “어떤 보물이요.”

    “귀한 거?”

    “보물이니 당연히 귀하겠죠. 제가 말한 건 종류가 어떻게 되냐는 거였어요.”

    김태식의 말에 백한영은 잠시 고민하곤 입을 열었다.

    “한세상을 침략하고 싶어질 정도로 귀한 보물이야.”

    “······형 어제 무슨 애니 봤어요.”

    “애니 얘기가 아니라 현실 얘기야. 나 진지해.”

    “저번에도 세상을 구하는 용사의 자격이 뭐냐고 물어봐 놓고 애니 얘기였잖아요!”

    “억울하다 억울해.”

    백한영이 정말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뒷짐을 졌다.

    근데 저번에 그건 애니 얘기가 아니라 소설 얘기였는데.

    억울하네?

    “그래서 보물을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되냐고. 세 번 물었다.”

    “으으음. 모험을 떠나야 되지 않을까요?”

    “일단 네 수준은 잘 알았다. 가서 검이나 휘둘러라.”

    도움이 안 되는 대답에 백한영은 김태식을 훈련장 구석으로 치워버린 후 최동협과 신유나에게 다가갔다.

    신유나의 빛의 검이 허공을 누볐다.

    천수분심공(千手分心功)에 조그마한 성취가 있었던 신유나는 이제 동시에 10개의 빛의 검을 조종할 수 있었는데.

    때문에 최동협은 사방에서 동시에 쏟아지는 빛의 검을 상대해야만 했다.

    최동협의 몸이 기민하게 움직였다.

    원래라면, 그러니까 승급 시험 당시의 신유나였다면 최동협이 손쉽게 거리를 좁힐 수 있었을 것이다.

    그때 신유나가 다뤘던 빛의 검은 마치 화살을 면으로 쏘듯 구멍이 많고, 빈틈이 많아 피할 구석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얘기가 많이 달랐는데.

    전부 천수분심공 덕이었다.

    천수분심공은 무당의 양의심공 같이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무공.

    그런 천수분심공을 이용해 조종하는 빛의 검은 하나하나가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은 효과를 줬는데.

    그걸 파훼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10명의 신유나를 전부 쓰러트리는 것이다.

    최동협의 극야권이 발동했다.

    안대로 눈을 가리고 나무공을 피하는 단계까지 올라간 최동협의 극야권은 조금 더 제6감에 가까워졌는데.

    덕분에 최동협의 행동은 예전보다 반 박자 이상 빨라졌다.

    최동협의 몸에 강림한 야수가 강하게 포효했다.

    빛의 검이 하나둘씩 꺾이다 반 정도 남았을 때.

    광륜봉시진(光輪封時陣)이 발동됐다.

    “아.”

    빛의 검과 함께 자신을 겨눈 신유나를 보고 최동협이 양손을 들었다.

    항복 표시였다.

    신유나가 빛의 검을 역소환하며 입을 열었다.

    “이번엔 내가 이겼네.”

    “광륜봉시진 진짜 너무 사기야. 형 저는 저런 거 없어요?”

    “저거 발동 조건이 얼마나 까다로운데. 머리를 굴려서 파훼 좀 해봐.”

    “저는 생각을 하지 말라면서요.”

    “본능으로 생각해 본능으로.”

    무리한 요구에 최동협이 울상을 지었다.

    백한영이 말했다.

    “얘들아.”

    “네. 교관님.”

    “보물을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될까?”

    “보물이요? 음.”

    김태식과 마찬가지로 최동협도 백한영이 가끔 이상한 소리를 한다는 걸 알아버렸기에 별 저항 없이 대답했다.

    “종류에 따라서 다르죠. 보물선이면 바다 밑을, 왕족이 착용하던 목걸이면 암시장을 가야 되지 않을까요?”

    “흐으으으음.”

    김태식보다는 나았지만, 마음에 드는 답변은 아니었다.

    최동협이 신유나를 바라봤다.

    “저도 말해요?”

    “아무거나 말해.”

    “으음. 산이라든가.”

    소꿉친구라더니 한 명은 바다고 한 명은 산이야?

    똑같네 똑같아.

    “그래서 교관님 이번엔 뭐예요?”

    “뭐가.”

    “저번에는 웬 영화 얘기였잖아요.”

    “현실 얘기라니까.”

    그리고 저번에 그건 애니 얘기였어 동협아.

    지금 보니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는구나?

    입이 옆으로 주욱 찢어질 거 같네?

    “됐다. 훈련 열심히 해라.”

    “어디 가시게요?”

    “집.”

    길드원들 뒤로한 채 백한영은 주차장으로 가 자신의 애마에 탑승한 순간.

    띠링.

    알람음이 울렸다.

    백한영은 스마트폰을 꺼내 메세지를 확인하곤 중얼거렸다.

    “한유림 씨네?”

    마침 잘됐다 싶어 백한영이 한유림에게 문자를 보냈다.

    [한유림:한영 씨 몸은 어떠세요? 저번에 일이 터져서 확실히 대접하지 못한 거 같아서 죄송하네요. 혹시 괜찮으시면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식사를 사고 싶은데, 어떠신가요?]

    [나:보물을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될까요?]

    백한영의 문자에 한유림이 1.7초 만에 바로 답장을 보냈다.

    [한유림:보물이요? 혹시 저를 말하는 건가요?]

    [나:아뇨. 진짜 보물이요.]

    거기서 내가 보물인가요가 튀어나온다고?

    연예인 식 농담은 따라가기 힘드네.

    시간이 흐르고.

    혹시 전파가 끊겼나? 라는 생각을 백한영이 했을 때쯤.

    [한유림: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한유림이 문자를 보냈다.

    왠지 기운이 빠진 듯한 느낌이 들어 백한영은 화이팅이라고 대답해 준 후 차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댄 백한영은 엘리베이터에 탑승했고.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초아를 만날 수 있었다.

    붉은 머리를 배배 꼬며 고민에 잠긴 이초아에게 백한영은 오늘 계속 꺼냈던 질문을 똑같이 던졌다.

    “이초아 씨.”

    “네. 백한영 씨.”

    “보물을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요.”

    이초아가 미간을 꿈틀거렸다.

    “···구체적으로 말해주실래요? 어떤 보물이요.”

    “지니의 요술 램프라든가.”

    “진지하게 묻는 거 맞죠?”

    너무 뜬금없는 소리에 이초아가 그렇게 묻자, 백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진심이죠.”

    “요술램프라면 사막으로 가야 되지 않을까요?”

    “사막이라.”

    띵.

    엘리베이터 도착음에 백한영과 이초아가 동시에 내렸다.

    당신의 친절한 옆집이웃, 마법사였으니 당연했다.

    바로 문 앞으로 간 백한영이 도어록에 손을 올렸다.

    얼른 오늘치 게임을 하고 애니소설영화만화드라마를 볼 생각이었는데.

    “저기요.”

    그런 백한영을 이초아가 붙잡았다.

    백한영이 몸을 돌리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보물에 대해 더 하실 말이 있으신가요?”

    “···그거 말고요. 언제 시간 나요.”

    “시간이요?”

    “그.”

    이초아가 말을 끌었다.

    하고 싶은 말은 있지만, 차마 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이런 건 또 귀신같이 눈치채는 백한영이 곧장 캐치하고 물었다.

    “<오랜 사이> 보셨구나. 저한테 교습받고 싶으신 거죠?”

    “···바로 그거예요.”

    “손님은 언제나 환영이죠. 전혀 민폐 아니니 언제든 말을 거셔도 좋습니다. 이참에 아예 전화번호도 교환하죠.”

    “바로 그거예요.”

    백한영과 전화번호를 교환한 이초아가 한층 들뜬 기분으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백한영은 집 안으로 들어가며 생각했다.

    그렇게 나한테 교습을 받고 싶었나.

    근데 이초아 저 사람 마법사일텐데, 내가 가르쳐줄 수 있나?

    뭐, 그래도 나름 술법사들과 오래 알고 지냈으니 조언 정도는 해줄 수 있겠지.

    집에 들어가자마자 백한영은 소파에 드러누워 있던 백은하와 눈이 마주쳤다.

    “잠깐만. 오빠 와서. 다음에 통화할게.”

    오빠의 등장에 백은하는 통화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와 백한영에게 다가갔다.

    “오빠 왔어?”

    “어. 누구야?”

    “내 친구. 오빠도 이름 정도는 몇 번 들어봤을 거야.”

    “네 친구가 누구누구 있었는지 하나도 기억 안 나.”

    “그래?”

    수십 년간 다른 세계에 있다 온 백한영이 백은하의 옛날 친구 이름 같은 걸 기억하고 있을 리 없었다.

    “근데 일찍 왔네? 무슨 일 있었어?”

    “···그냥 오랜만에 일찍 왔어.”

    평소와 같은 시간에 퇴근한 것이었지만,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피하며 거짓말을 해버린 백한영을 백은하가 실눈으로 바라봤다.

    “오빠.”

    “은하야. 보물을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될까.”

    무언의 압박에 백한영이 종일 묻고 다녔던 질문을 급하게 백은하에게 던졌다.

    “보물?”

    우리의 착한 백은하는 오빠의 질문에 손가락으로 턱을 툭툭 치며 고민하곤 이내 입을 열었다.

    “어떤 보물? 비싼 거?”

    애가 어렸을 때부터 돈을 벌어서 그런가. 보물 얘기에 가격부터 물어보네.

    아니 보물이 보통 비싸긴 한데, 그래도 낭만이라는 게 있는데.

    “비슷해.”

    “으음.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을 뒤져봐야 되지 않을까?”

    “예를 들자면?”

    “금고라든가···.”

    은하야. 오빠가 일 열심히 할게.

    그러니 이제 우리 돈에서 좀 벗어나자.

    알았지?

    “···오빠?”

    “왜?”

    “눈빛이 이상해서. 왜 그리 따뜻한 눈빛이야?”

    “따뜻하면 좋은 거 아니야?”

    “기분 나쁜 따듯한 눈빛이야.”

    백은하의 말에 살짝 상처받은 백한영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후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모험, 바다, 산, 사막, 금고.’

    그리고 아무도 찾지 못하는, 가장 깊숙한 곳이라.

    흠. 거긴가?

    손가락을 세운 백한영이 그대로 공간을 베고 안으로 들어갔다.

    지구의 가장 깊숙한 곳.

    그 누구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행성의 중심부.

    내핵에 걸어 들어간 백한영이 눈을 끔뻑였다.

    “없네?”

    이번에야말로 정답이라고 직감하고 들어간 거였는데, 내핵엔 그냥 단단한 금속과 대지만 가득 차 있을 뿐이었다.

    방으로 돌아온 백한영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 새끼 사기 친 거 아니야?”

    백한영은 한 일주일 전쯤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이곳에 모든 걸 이룰 수 있는 특이점이 숨겨져 있다고 전 우주에 소문이 쫙 퍼졌다.’

    ‘소문 하나 때문에 남의 차원에 깽판을 놓은 거야?’

    ‘···당연히 증거도 있었다. 이걸로 내가 알고 있는 건 다 말했다. 그러니까 제발.’

    아스트레일의 했던 말을 되새긴 백한영이 볼을 긁적였다.

    이렇게 찾았는데도 발견이 안 됐으면 누가 몰래 훔쳐 가는 건 불가능하겠지.

    신경 끄자.

    ‘그 특이점이란 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긴 건데.’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 추측만 잔뜩 있다. 모든 가능성이 뭉쳐 있는 보석이다, 전 우주의 기운이 집약된 빛이다 등.’

    ‘쓸모가 없네.’

    다시 생각해도 필요 없는 정보만 잔뜩 줬었네.

    그 녀석 때문에 일주일 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시간만 낭비했잖아.

    이럴 줄 알았으면 한 대 더 때려줄걸. 너무 쉽게 보내줬네.

    백한영이 컴퓨터를 켰다.

    오랜만에 창천지로에 접속해서 시원하게 PK를 하고 다니기 위해서였는데.

    ‘···빛?’

    백한영의 뇌리에 문득 빛이라는 단어가 꽂혔다.

    빛. 빛이라.

    빛이라고 하니까 뭔가 떠오를 거 같기도 한데.

    내가 어디서 봤지 그걸?

    백한영이 오랜 기억을 뒤적이며 상념에 잠기려던 찰나.

    ♬―.

    벨 소리가 울렸다.

    스마트폰을 든 백한영이 통화 버튼을 누르고 입을 열였다.

    “여보세요?”

    [선생님. 저 홍유진입니다.]

    “네. 무슨 일이죠?”

    [다름이 아니라.]

    살짝 뜸을 들인 후 홍유진이 말했다.

    [저번에 말씀하셨던 인터넷 방송 출연이요. 이번에 하시면 어떨까 해서요.]

    홍유진의 말에 백한영이 눈을 깜빡였다.

    인터넷 방송 출연이라니.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했었던 거 같기도 한데.

    이렇게 갑자기?

    < 그게 뭔데 십덕아(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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