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귀환했다-31화 (31/117)

월드 게이트(4)

김인성. 지난달에 B급으로 승급. C팀으로 보내고.

송영훈. A급 2년 차. 얘는 B팀.

백한영, A급. 이러면 A나 B팀에 넣는 게 맞는데.

근데 백한영 얘 저번에 내가 승급 심사에 참여했던 애 아닌가? 그러면 각성자 경력이 이제 3달도 안 되는 거잖아.

C팀이 맞겠다.

그러한 사고 과정을 거쳐 이초아가 C팀에 백한영의 이름을 적어 넣은 순간, 백두의 간부가 와 말을 걸었다.

“백한영 씨는 C팀에 둘 건가요?”

“네? 네.”

“으음. 뭐 나쁘지 않네요."

이게 백한영이 C팀에 들어간 이유였다.

물론 백두의 간부와 이초아가 똑같은 생각을 하고 백한영을 C팀에 집어넣은 건 아니었다.

이초아는 단순히 백한영의 각성자 경력이 짧은 걸 보고 C팀에 집어넣은 거라면, 백두의 간부는 조금 더 큰 그림을 봤다.

관계자들 사이에서 뛰어난 인재라고 말이 많이 돌았던 백한영을 예비팀에 놔둠으로써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기로 한 것이다.

···이초아도 관계자인데 백한영의 실력이 심상치 않다는 걸 왜 모르냐고 묻는다면, 이초아가 길드에 소속되지 않은 프리랜서라는 걸 근거로 들겠다.

절대 성격 탓에 친한 사람이 적어서가 아니다.

중요하니 두 번 말하겠다.

“실종자는 각자 수색하자고요?”

“그게 더 효율적이니 어쩔 수 없죠.”

일본 측 조사단의 말에 이초아는 속으로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모를 때는 아무 생각 없었는데, 뒷사정을 전부 안 상태로 대화를 하니 상대의 말이 가증스러운 것이다.

언제까지 하나 보자.

이초아가 표정 관리를 하며 말했다.

“좋아요.”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이초아는 한국의 조사단과 함께 월드 게이트 내부에 진입했다.

공간이동 특유의 울렁거림이 지나간 후. 이초아가 속으로 살짝 감탄했다.

게이트 내부로 들어왔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탁 트인 공간이 나왔기 때문이다.

“게이트 내부가 아니라 다른 세상이라고 해도 믿겠네요.”

조사단의 각성자 중 한 명이 작게 중얼거렸다.

똑같은 생각이었기에 이초아는 마음속으로 동의를 하고 하늘을 바라봤다.

높고 푸른 하늘과 맑은 구름이 자리 잡은 광경은 꽤 보기 좋았다.

하지만 이초아는 보기 좋은 풍경을 봤음에도 속이 안 좋아졌다.

그녀가 맑은 날 대신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우중충한 인간이어서?

실제로 이초아가 그런 인간이긴 하지만, 그거랑 별개로 이초아의 기분을 나쁘게 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초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인위적이야.’

뭔가 다 미묘하게 거슬렸지만, 가장 거슬리는 건 역시 구름이었다.

마치 예쁘라고 배치해 놓은 듯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은 이초아가 한참을 보고 있었음에도 제자리에 박혀 1mm도 움직이지 않았다.

자연현상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게이트 내부가 맞긴 하네.’

이곳이 별개의 세상이 아니라 게이트 내부라는 걸 확인한 이초아가 뒤늦게 게이트 내부로 들어온 일본의 조사단을 흘겨봤다.

그냥 한국의 조사단을 따라 게이트에 들어온 것뿐인데 묘하게 밉상이었다.

한 번 미운털이 박히니 사전에 말했던 대로 움직일 뿐인데도 마음에 안 드는 것이다.

“슬슬 움직이죠.”

이초아의 말에 한국 측 조사단이 게이트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현재 월드 게이트는 사전에 게이트를 발견한 일본 측에서 미리 간단한 조사를 2번 정도 해놓은 상태였다.

게이트에 돌입하기 전 보여줬던 지도도 그런 식으로 만들어 진 거고.

때문에 월드 게이트에 대한 정보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제대로 된 정보를 모으지는 못했다고 해야 되나. 딱히 성과를 내지는 못 한 일본의 조사단이었다.

일본 조사단이 밝혀낸 월드 게이트에 대한 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직경 50km 정도의 닫힌 차원이다.

딱히 몬스터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 두 개가 끝이었는데, 전자는 몰라도 후자는 심각했다.

사실상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는 뜻과 같았으니 말이다.

“특이점을 발견하는 걸 목표로 넓게 흩어지죠.”

이초아의 말에 한국의 조사단이 사전에 말한 대로 흩어져서 월드 게이트 내부를 훑기 시작했다.

‘원래 별생각 없었는데, 수작질이 짜증 나서라도 먼저 성과를 내야겠어.’

*

“게가 참 맛있네요.”

“원래 홋카이도가 해산물로 유명하잖아.”

“알죠. 아는데, 그냥 당황스럽네요. 진짜 매일 비행기 타고 일본이랑 한국을 왔다 갔다 하는 거 맞아요? 그리고 이런 건 어떻게 가져온 거예요.”

“안 될 게 어딨어. 얼른 먹어. 열심히 훈련한 상으로 주는 거니까.”

백한영의 말에 최동협이 얌전히 대게를 입에 넣었다.

맛은 있었다. 출처가 수상해서 그렇지.

일본으로 출장을 간다더니 매일 훈련실에 출석하는 백한영을 이상하게 여기며 최동협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김태식이 백한영에게만 들리는 작은 목소리로 조용히 물었다.

“형 막 저번처럼 순간이동하고 다니는 거에요?”

“순간이동이 아니라니까. 공간이라는 개념을 자르는 거야. 너도 검사면 확실히 구분해야지.”

“그러다 들키면 어떻게 하게요.”

“들키면 들키는 거지 뭐.”

“···그런 생각이었어요?”

김태식이 상상도 못 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백한영을 바라봤다.

저번 SS급 던전 공략 사건 때 정부에서 던전 수호자를 쓰러트린 사람을 애타게 찾아도 입 꾹 다물고 있길래 무슨 일이 있어도 힘을 숨기고 싶어 하는 줄 알았는데, 들키면 들키는 거고 말면 마는 거라는 가벼운 마음을 하고 있었다니.

그러고 보면 이 형은 다중 게이트 사태 때도 그다지 힘을 숨기고 싶어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힘을 숨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수십 마리의 A급 몬스터를 대놓고 일검에 베어버릴 리 없지 않은가.

“형 사실 사람들이 본 실력을 알아봐 주길 원하죠.”

“그럴 리가 있나. 그러면 얼마나 귀찮아지는 줄 알아?”

“귀찮아진다고 말하는 거치고는 너무 허술한데요?”

“그거야···. 에이 됐다. 뭘 얘기하고 있냐. 다 먹었으면 치우고 일어나. 그 실력에 잡담이 나와?”

숨긴 게 이 정도고 자신의 실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려던 백한영은 애 붙잡고 뭐 하는 건가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한영을 따라 신유나와 최동협도 엉거주춤 일어났다.

최동협이 말했다.

“바로 훈련해요? 아직 소화도 안 됐는데?”

“네가 일반인이냐? 각성자가 소화 같은 소리 하고 있어. 훈련장으로 따라 와.”

“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훈련장으로 향하는 최동협.

훈련장에 도착하자마자 나무공을 띄운 백한영이 이내 신유나에게 말했다.

“유나 네가 그동안 얼마나 감을 잡았는지부터 좀―.”

“악! 악! 악!!”

“―보자.”

“교관님. 뒤가 너무 시끄러운데요?”

“라디오 같은 거라고 생각해.”

백한영의 말에 신유나가 바로 허공에 빛의 검을 생성했다.

예전처럼 수십 개의 빛의 검을 늘어놓는 게 아니라 딱 하나의 빛의 검만을 생성한 신유나가 백한영을 바라봤다.

“해봐.”

신유나가 빛의 검을 제어했다.

빛의 검이 화려한 궤적을 그리며 허공에 잔상을 남겼다.

허공을 날아다니는 빛의 검을 한참 동안 지켜보던 백한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보다는 봐줄 만하네.”

“정말요?”

“어디까지나 전보다 낫다는 거고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이제 다음으로 넘어가자.”

백한영의 말에 신유나가 살짝 긴장된 표정을 지으며 허리춤에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물론 빛의 검은 계속 유지한 상태였다.

“마음껏 덤벼.”

백한영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신유나가 빛의 검과 동시에 백한영에 달려들었다.

오른쪽에서 빛의 검이 날아왔다. 챙! 훈련용 목검으로 가볍게 빛의 검을 막아낸 백한영은 연달아 쏘아지는 신유나의 검을 미끄러지듯 피해냈다.

신유나의 검과 빛의 검이 유기적으로 연계하며 백한영을 공격했다.

빛의 검이, 신유나의 검이, 또 빛의 검이.

마치 두 사람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 같이 어지러운 상황이었지만, 백한영의 표정은 정작 담담했다.

실력 차이가 크게 나서 그렇다기보다는 그냥 신유나에게 부족한 점이 아직 많아서 그랬다.

신유나와 빛의 검은 유기적으로 연계되는 것처럼 보이기만 하고 실제로는 텅 비어 있었다.

무작위로 낭인 몇 명을 잡아다 알아서 협공을 펼치라고 풀어놓은 것 같다고 해야 되나.

다른 걸 제쳐놓고 합격진의 기초부터 가르쳐야 될 거 같았다.

‘그걸 제외하면 일단은 만족이긴 한데.’

벌써 빛의 검 하나와 같이 싸우는 게 가능할 정도로 멀티 태스킹이 가능하다니.

신유나와 천수분심공(千手分心功)이 잘 어울릴 거라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재능이 있었다.

‘1성 정도인가? 무공구결 알려준 지 며칠 만에 저 정도면 상당히 빠르네.’

천수분심공은 마음을 나누는 무공으로, 무당의 양의심공 같이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종류의 무공이었다.

최종적으로는 천 개의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게 목적이긴 한데, 지금은 너무 먼 얘기고.

당장은 딱 10개의 빛의 검만 자유자재로 다뤄도 쓸만할 것이었다.

‘분광검법(分光劍法)도 나름 괜찮게 쓰고. 기본 틀은 잡혔네.’

이 정도면 미리 준비해 놓았던 훈련을 해도 괜찮겠다 싶어 백한영이 말했다.

“이거 보여?”

백한영이 훈련장 구석에 있던 손바닥만 한 철판을 가져왔다.

마법적 처리가 돼 흠집조차 내기 쉽지 않은 단단한 철판에 빨간 색으로 무언가 새겨져 있었는데, 다름 아닌 숫자였다.

1부터 30까지 순서대로 적혀있는 철판을 신유나에게 확인시켜 준 후 백한영이 철판을 공중에 띄웠다.

“지금부터 저 철판이 네 주위를 빠르게 날아다닐 텐데, 1부터 30까지 차례대로 맞추면 돼. 이해했어?”

“네.”

“해봐 그럼.”

정신없이 허공을 날아다니는 철판을 향해 신유나가 빛의 검을 날렸다. 휙. 가볍게 신유나의 공격을 회피하는 철판. 백한영이 말했다.

“맞추기 쉽지 않을 거다.”

신유나가 검을 든 채로 1이 적혀 있는 철판을 향해 빛의 검과 함께 달려갔다.

열심히 훈련을 하는 신유나를 보며 백한영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뒤에서 좀비의 목소리가 들렸다.

“교관님···.”

“어 왜. 무슨 일이야.”

“왜 유나는 나무공 훈련 같은 걸 하지 않나요···?”

왜 신유나는 날아오는 철판을 회피하는 훈련 같은 걸 하지 않는지 억울한.

아니.

소꿉친구가 제대로 된 훈련을 받지 못할까 걱정된 최동협이 그렇게 묻자, 백한영이 말했다.

“서로에게 맞는 훈련법이 따로 있는 거야.”

“저도 저런 식으로 하면 안 되나요? 날아다니는 나무공을 주먹으로 맞추는 거죠.”

“동협아.”

“네. 교관님.”

“너는 얻어맞지 않으면 훈련이 안 돼. 그냥 그렇게 태어났어. 받아들여라.”

“아···.”

본능을 단련해 제6감을 완성해야 되는 최동협과 기교를 단련한 끝에 이기어검의 극한에 도달해야 되는 신유나의 훈련법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본능이라는 게 위협이 느껴지지 않으면 제대로 단련이 되지 않았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근데 너 실력 좀 많이 늘었나 보네? 이렇게 대화할 기운도 있고.”

“아.”

“슬슬 2단계에 돌입해도 되겠다. 내일부터 바로 시작하자.”

백한영의 말에 최동협은 속으로 한탄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용히 있는 건데.

괜히 말을 걸었다.

*

이초아가 월드 게이트 조사를 막 시작하고, 백한영이 최동협을 신나게 굴리고 있던 그 시각.

월드 게이트 지하에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자신의 세계에 찾아온 벌레들을 확인한 녀석이 불쾌하다는 듯 무언가를 빚기 시작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땅 위에 끔찍한 괴물 하나가 나타났다.

한국의 조사단과 일본의 조사단이 월드 게이트에 입장하고 2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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