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게이트(3)
다양한 각성자를 태운 전용기가 일본 신치토세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전용기에서 내리는 면면은 화려했다.
유명 A급 각성자부터 거대 길드의 핵심 전력까지.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어디 S급 게이트라도 공략하러 가냐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3명의 각성자 중 한 명이었다.
“협력 요청을 했으면 얌전히 기다리지, 왜 지들끼리 먼저 들어간 건지 이해가 안 되네.”
긴급 소집 때문에 짜증이 난 S급 각성자, 홍염 이초아가 미간을 찌푸린 채로 활주로에 내려왔다.
실종된 일본의 조사팀 탓에 마무리 직전이던 마법 연구를 내팽개치고 비행기에 탑승한 터라 기분이 많이 안 좋은 것이다.
붉은 단발을 단정하게 정리하며 이초아가 작게 중얼거렸다.
“진짜 조금만 더 하면 됐을 거 같은데.”
머릿속에서 아른거리는 마법술식을 한참 떠올리던 이초아는 이내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지워버리곤 사람들을 따라 공항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아쉬워도 사람이 실종된 와중에 마법술식을 붙들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이초아의 뒤를 따라 남자 하나가 비행기에서 내렸다.
“해외는 처음 와보네.”
해외여행보다 차원여행을 먼저 해본 남자, 백한영이었다.
공항으로 들어가며 백한영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50km라는 넓은 공간을 조사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릴 테니 여유가 생길 때마다 맛집 탐방이나 다닐 생각이었는데, 실종자가 생기는 바람에 그럴 수가 없게 됐다.
아무리 백한영이 무신경하다지만 최대한 빨리 실종자를 찾아야 되는 상황에서 여유롭게 관광을 할 정도로 눈치가 없진 않은 것이다.
공항에서 수속을 마친 백한영은 사람들과 함께 미리 빌린 버스에 탑승해 임시 조사본부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한참 동안 도로를 달린 버스가 컨테이너와 천막이 들어서 있는 공터에 도착했다.
조사단이 버스에서 하차하자,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오셨군요.”
조사단을 마중 나온 건 살짝 어색한 발음으로 능숙하게 한국어를 하는 중년의 일본 남자였다.
현장 책임자인지 완장 같은 걸 달고 있는 남자에게 한국 조사단의 책임자인 이초아가 말했다.
“덕분에 일찍 왔어요. 그래서 정확한 상황이 어떻게 되죠?”
“자세한 건 이쪽으로 와서···.”
이초아는 한국의 조사단이 전부 하차한 걸 확인하고는 남자를 따라 천막으로 향했다.
한국의 조사단이 천막에 모두 들어오자마자 일본 조사단의 정부 측 책임자, 요시다 카쿠히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일정을 꼬이게 한 점, 다시금 사과드립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사과할 시간에 대책이나 찾죠 우리. 지금 한시가 급하잖아요?”
이초아의 말에 요시다 카쿠히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스크린을 작동시켰다.
스크린에 그림 하나가 튀어나왔다.
이초아가 말했다.
“저건 뭐죠?”
“1차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한 월드 게이트 입구 근처의 지도입니다.”
“저런 내부의 게이트는 처음이네요.”
“그래서 여러분을 부른 거기도 합니다. 한국은 무려 SS등급의 게이트를 공략한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죠.”
정작 SS등급 던전 게이트를 공략했을 때 던전 수호자는 구경도 못 하고 일반 몬스터만 정신없이 잡았던 이초아가 살짝 어색하게 대답하고는 지도를 살펴봤다.
지도엔 초록색으로 던전의 입구가 표시돼 있었는데, 초록색과 멀리 떨어진 장소 몇 군데에 빨간 점이 여러 개 찍혀 있었다.
“저기에 있는 빨간 점들이 조사단이 실종된 것으로 추정되는 곳인가요?”
“그렇습니다. 사전에 정했던 계획대로라면 저 중 한 구역에서 실종됐을 겁니다.”
“흐으음.”
이초아가 붉은 단발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꼬았다.
그녀가 고민에 잠길 때의 특징이었다.
주어진 정보를 통해 앞뒤의 상황을 파악하려던 이초아는 문득 이상한 점을 느꼈다.
‘뭔가 급한 느낌이 아니네. 왜 이렇게 느긋한 거 같지?’
다양한 허례허식을 생략하고 바로 실종자에 대한 얘기로 들어간 일본 측은 어떻게 보면 급해 보인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겉이 그런 것일 뿐. 분위기라고 해야 되나. 뭔가 임시 조사본부에 맴도는 공기가 느긋한 느낌이 들었다.
예상과는 다른 조사본부의 분위기에 이초아가 의구심을 품고 있을 때, 한국의 조사단 중 한 명이 손을 들며 입을 열었다.
“실종된 각성자들은 누구죠?”
“자료를 드리겠습니다.”
물어볼 줄 알았다는 듯 바로 서류를 돌리는 요시다 카쿠히로.
질문자, 대한민국 10대 길드 중 하나인 백두의 간부가 서류를 읽어 내리곤 말했다.
“여기에 적힌 인물들이 전부 실종된 게 맞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거참 큰일이군요. 빨리 대책을 세워야겠어요.”
백두의 간부가 책상을 톡톡 치고는 천천히 이어 말했다.
“저희끼리 회의를 하고 싶은데, 자리를 비워줄 수 있겠습니까?”
“회의 말입니까? 물론 가능합니다.”
백두의 간부의 말에 요시다 카쿠히로가 컨테이너 밖으로 벗어났다.
각성자들이 백두의 간부를 흘긋 바라봤다.
갑자기 왜 저러는지 이해가 안 갔기 때문이다.
회의는 무슨 회의. 지금 실종자 탐색보다 중요한 게 어딨다고.
그렇게 각성자들이 머릿속으로 의문을 표하고 있을 때, 이초아가 말했다.
“일단 장단은 맞춰줬는데, 갑자기 사람은 왜 내보낸 거예요.”
그 말에 백두의 간부가 서류를 흔들며 입을 열었다.
“여기에 실종됐다고 적힌 사람들, 실종 안 됐습니다.”
“네?”
“저희가 따로 운용 중인 정보원이 알아낸 거니 믿어도 됩니다.”
이초아는 길드에 소속되지 않았기에 이런 부분에서 약했다.
그나저나 실종이 안 됐다니. 이초아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게 사실이라면 왜 사람이 실종됐다고 거짓말을 한 거죠?”
“뻔하죠. 있지도 않은 실종자 탐색을 시켜 뻘짓을 하게 만들고 자기들끼리 몰래 조사를 진행할 생각일 겁니다.”
“대체 왜?”
“SS게이트를 공략해 위상이 잔뜩 올라간 우리보다 먼저 성과를 내면 세상의 주목을 뺏어올 수 있으니까요. 애초에 실종자도 본인들이 확보하고 있어 언제든 찾을 수 있으니 더욱 좋죠.”
“하.”
이초아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껏 도와주려고 왔더니, 수작을 부려?”
“미리 말해두지만 증거는 없으니 가서 진실을 밝히겠다고 난리 치지 마세요. 헛발질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누굴 바보로 아나. 말 안 해도 그런 짓은 안 해요.”
이초아의 말을 끝으로 한국의 조사단 사이에 침묵이 맴돌았다.
사람이 실종됐다고 해서 예정보다 하루 빠르게 출국까지 했는데 거짓말이었다니. 어이가 없는 것이다.
모두가 입을 다물고 와 중 각성자 한 명이 입을 열었다.
“그냥 돌아갈까요?”
그걸 시작으로 회의실이 시끄러워졌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 눈에는 겁먹어서 도망친 겁쟁이로밖에 안 보일 텐데?”
“근데 실종자가 없으니 다행 아닌가요?”
“정치 쪽에서 건 수작인가. 싹 다 날로 먹으려는 게 딱 그쪽에서 좋아하는 방식인데.”
백두의 간부가 이초아를 쳐다봤다. 정보를 제공했으니 책임자답게 슬슬 결론을 내려달라는 의미를 담아서.
쾅. 이초아가 책상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각성자들이 입을 다물고 이초아를 주목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이초아가 말했다.
“수작질은 잊고 본질에 집중해요. 우리는 조사를 하러 왔잖아요. 맞죠?”
“뭐 그렇죠.”
“그러면 조사를 하면 되잖아요. 실종자 탐색 때문에 머리가 아팠는데 오히려 잘됐네요.”
이초아가 컴퓨터를 조작해 스크린에 그림판을 띄웠다.
“팀을 셋으로 나누죠.”
“둘도 아니고 셋으로요?”
“안에 뭐가 있는지 모르고. 하는 짓 보니까 일본에서 또 수작질을 부릴 수 있잖아요? 혹시나 일이 잘못됐을 때를 대비해 팀을 잔뜩 나눠놓는 게 좋아 보여요.”
이초아가 그림판에 마우스로 그림을 그렸다.
삐뚤빼뚤한 원이 세 개 생겨났다.
아무도 뭐라고 안 했건만, 괜히 찔렸는지 이초아가 급하게 말을 쏟아냈다.
“···제가 마우스를 많이 안 잡아 봐서 그래요. 마법사가 손재주가 없다? 그러면 할 수 있는 일의 폭이 무척 제한되는 거 아시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S급 마법사인 제가 그림을 못 그릴 리가···.”
“저. 이초아 씨? 알겠으니 하던 설명 계속하셔도 됩니다.”
“···편의상 A, B, C팀이라고 부를게요.”
삐뚤빼뚤한 원에 삐뚤빼뚤한 A, B, C가 새겨졌다.
그걸 본 각성자 중 한 명이 결국 참지 못하고 일어났다.
“이초아 씨.”
“네?”
“잠깐 비켜보세요.”
이초아가 그린 그림을 싹 다 지우고 아예 도구를 사용해 원을 그린 후 그 안에 깔끔하게 A, B, C 집어넣는 각성자.
각성자가 말했다.
“더 필요하신 거 없나요?”
“···그 정도면 된 거 같아요.”
이초아의 말에 각성자가 마우스를 넘기고 자리로 돌아갔다.
마우스를 받자마자 그림판 구석에 조그맣게 원을 그리는 연습을 하던 이초아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빠르게 입을 열었다.
“월드 게이트를 조사할 A팀과 B팀에 조사단 주요 인력을 최대한 집어넣고, 예비로 게이트 밖에 둘 C팀에 나머지를 집어넣죠.”
“그러면 A와 B팀에 비해 C팀의 전력이 너무 낮아지는데요?”
“그러니까 예비라는 거죠.”
이초아가 A팀과 B팀 밑에 마우스로 글자를 집어넣으려다가, 아까 앞에 나왔던 각성자가 하던 걸 기억해 내곤 텍스트 삽입 도구를 사용해 명단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이게 제가 생각하는 A팀, B팀 명단이에요.”
“음.”
각성자들 사이에 묘한 침묵이 이어졌다.
“마음에 안 드세요?”
“살짝 조정이 필요할 거 같군요.”
회의실이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월드 게이트 조사라는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앞두고 밖에서 구경만 하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 말이다.
모두가 바쁘게 대화를 하는 와중에 백한영은.
‘실종자가 없으면 느긋하게 관광해도 되는 거 맞지?’
미리 찾아 놨던 맛집을 둘러볼 생각에 살짝 신난 상태였다.
*
“해방이다!”
최동협이 수련실 내부에서 포효를 내질렀다.
그런 최동협을 한심하게 쳐다보며 신유나가 말했다.
“교관님이 내주신 숙제 안 할 거야? 왜 이렇게 신났어.”
“너는 몰라. 모른다고.”
당연히 백한영이 내준 숙제를 할 생각인 최동협이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나무공 지옥에서 빠져나온 기쁨을 참을 수가 없었다.
‘가만히 앉아서 마나 제어 연습만 하는 녀석은 이 기쁨을 절대 몰라.’
나무공에게 하도 얻어맞았더니 몸에 멍이 안 든 곳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끙끙대는 삶을 살다가 백한영이 자리를 비운 잠깐이긴 하지만 극야권의 초식만 갈고 닦는 삶을 산다?
꿀맛 같은 휴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최동협이 힘차게 외쳤다.
“자. 오늘도 열심히 훈련을 해볼까!”
“그래? 의욕이 넘치니 다행이네.”
“?”
들려선 안 될 목소리에 최동협이 덜덜 떨며 목을 돌렸다.
마치 고장 난 로봇처럼.
있어선 안 될 자와 눈이 마주친 최동협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교관님이 거기서 왜 나와요?”
“왜냐니. 여기 내 건물 안에 있는 수련장인데?”
“아니, 그 얘기가 아니라. 교관님 일본 가지 않았어요?”
“갔지.”
“벌써 귀국했어요? 최소 몇 주는 일본에 있을 거 같다고 하지 않았어요?”
최동협의 말에 백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가보니까 최소 몇 주는 일본에 있어야 될 거 같더라.”
“근데 어떻게 여기에···?”
“다 방법이 있어 이 녀석아. 것보다 네가 훈련을 그렇게 좋아하는지 몰랐네. 오늘은 특별 메뉴로 가볼까?”
“아.”
세상을 원망하는 최동협을 향해 나무공을 날리며 백한영은 아까 이초아와 나눴던 대화를 상기했다.
“백한영 씨는, 음. C팀이 좋겠네요.”
“···C팀이요?”
“네. C팀이요.”
왜 물어보냐는 듯 쳐다보던 이초아의 시선을 다시금 떠올린 백한영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책임자가 예비인 C팀으로 가라고 했으니 별수 없지 뭐. 부를 때까지 애들 훈련이나 시키고 맛집 탐방이나 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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