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흠…….”
“어찌 그러하십니까?”
“거란군 장수 말이야. 야율손이라 했던가?”
“예.”
“용기는 있어 보이는데 현명하지 못하구먼. 중급기병이랑 전투를 벌이니. 물러나야 할 상황이면 지체하지 말고 물러서는 것도 미덕이야. 그래야, 아군에게 알리고 재정비를 해서 싸울 준비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렇사옵니다. 합하. 승전을 감축드리옵니다.”
박지영이 고개를 숙이며 말하였다.
“내가 말한 대로 군사 남기고. 거란군은 한쪽에 묻어버리고. 고려군은 따로 모아서 묻어줘.”
“예, 합하.”
박지영은 말머리를 돌렸다.
“거란군은 한쪽으로 묻고! 전사한 고려군도 한쪽에 묻어라!”
“예! 장군~!”
박지영은 부장들에게 명령을 내리자 부장들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합하, 저기… 군사들이 오고 있사옵니다.”
이의방은 말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수많은 고려 군사가 뛰어오고 있는걸 보자 이의방은 환하게 웃으며 손을 올려 군사들을 맞이해주었다.
* * *
일주일 후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먼길을 다시오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현수는 정중하게 완안 올출을 맞이하였다.
완안 올출은 고려 황제를 알현하고 궁 밖으로 나와 현수를 만났다.
“하하하하, 위위경이 이렇게 맞이를 해주니 내 몸 둘 바를 모르겠네.”
현수 옆에 있던 악정이 통역을 해주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오시는 길은 불편하지 않았습니까?”
“음, 불편하다니. 지금 고려가 거란을 정벌하고 있어도. 환대는 제대로 받았네.”
“하하하하, 다행입니다. 요동을 지나쳐서 오셨을 텐데. 무사히 오셨네요.”
현수는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요동도 안전하고 곳곳에 고려군의 군영이 설치되어 있어서 그렇게 위협은 느끼지 못하였네.”
“그거 다행입니다. 자.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현수는 완안 올출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정중하게 스스로 의자까지 빼 주고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위위경이 이런 작은 것 하나까지 신경을 써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네.”
“어인 말씀을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존중하는 게 뭐가 대수겠습니까.”
“하하하하! 옳은 말이군!”
완안 올출은 역관을 통해서 이야기를 듣자 크게 웃었다.
“금나라에서 태학생 천명을 데리고 왔네. 이 고려에서 공부 좀 하라고 말이네. 받아 주겠는가?”
“받아 준다니요? 환영하는 바입니다. 안 그래도 저희 국자감과 성균관 학생들도 유학을 보내려고 하던 찰나였습니다. 이번 기회에 저희 고려의 학생들을 금나라로 유학을 보내고 싶습니다.”
“크하하하하! 보내게! 내가 돌아갈 때 다 데리고 가지 뭐. 하하하!”
완안 올출은 시원하게 말하였다.
그리고 태원수 완안 올출이 학생들을 데리고 온다는 소식에 국자감과 성균관 뒤편에 거대한 숙소를 짓기 시작했다.
바로 완공은 되지 않았지만, 금나라에서 오는 태학생 천명은 물론이고.
가능한 국내의 학생들도 수용하기 위함이었다.
더불어 국자감 소감 성균관 소감들이 금나라에 유학을 갈 학생들을 모집하라고 따로 명도 내려 두었다.
“지금 금에서 온 학생들은 국자감과 성균관을 국자박사 성균관 박사들이 데리고 둘러 보고 있을 것입니다.”
“아, 신경 써주어 고맙네.”
“태원수, 저희 고려에서 몽고로 상단을 보내보려고 합니다.”
상단을 보낸다는 이야기를 역관을 통해서 듣자 완안 올출은 귀를 기울였다.
“보낸다? 어찌해서? 고려가 금나라와 교역을 하면 오히려 손해일 텐데.”
“알고 물으시는 건지. 모르는 척하고 물어보시는 건지요?”
현수는 미소를 지으며 묻자 완안 올출은 피식 웃었다.
“고려가 상단을 이끌고 가겠다면 내가 도와주겠네. 고려도 몽고를 알 필요가 있겠지.”
“감사합니다. 태원수.”
현수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자 완안 올출도 살며시 고개를 숙이었다.
“아, 혹시 이야기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남송이 산동를 친다는 소리가 들리네.”
“흠…….”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게 참… 애매하다는 말이야.”
“무엇이 말입니까?”
“개봉에서 오만 오천의 군사가 준비되었다는데. 그 오만 오천으로 산동을 장악한다는 건 불가하거든. 선발대로 보내는 군사가 아니라. 그 군으로 산동을 공격하겠다는 것이네. 금나라 내부 사정도 좀 더 복잡해졌어.”
“복잡해져요?”
“한탁주라고 있는데. 산동을 공격하자고 선두에 선 자인데. 이를 극구 반대한 자는 사미원이라는 자야.”
“그럼 진우형은 어찌 되었습니까?”
현수는 누구보다 진우형의 소식이 더 궁금해졌다.
“듣기로는 그냥 가만히 있다고 하는데. 금나라는 지금 사미원, 한탁주 세력으로 나뉘고 있어.”
“실권되었다는 겁니까?”
“그건 아닌 거 같아. 지금 황제께서 산동 공격을 멈추라는 사신을 보내었는데. 그 사신을 통해서 답이 오겠지.”
“만약 공격하면?”
“전쟁이지.”
완안 올출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완안 올출의 눈빛에는 제발 전쟁 좀 일으켜 달라는 눈빛이었다.
남송을 다시 짓밟아 버리고 싶어 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반대하는 자들이 많습니까?”
“내가 듣기로는 많아, 개봉에 또 다른 소식을 들은 건 개봉의 주둔한 군사들을 지휘하는 장수들도 불만이 많은가 봐.”
“개봉에 주둔한 장수가 누구입니까?”
“지금 군을 이끌고 있는 건 젊은 장수 필재우, 오희라고 하더군.”
태원수 완안 올출은 상세하게 남송의 사정을 명확하게 보고 있었다.
“태원수께서는 전쟁이 일어날 확률은 얼마라고 보십니까?”
“글쎄… 근데 중간에 와해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무리를 해서 공격을 해올 수도 있고. 뭐 그건 남송 황제들의 몫이 아니겠나.”
남송 황제들의 몫 즉 상황제와 현황제의 결정에 달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진우형이 가만히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 영 좋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말이다.
“진우형의 비해 한탁주, 사미원을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진우형이 훨씬 낫지.”
완안 올출은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말하였다.
즉 진우형은 남송에서 조용히 있지만, 그가 모든 걸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완안 올출은 할말 다 하였는지 따라온 사신 한 명을 바라봤다.
사신이 천천히 서첩을 가지고 현수에게로 다가가자 옆에 있던 예부상서 유응규가 서첩을 받아서는 현수 앞에 놓았다.
서첩은 한 개가 아닌 4개의 서첩이었다.
“살피어 보시게.”
현수는 서첩을 하나 열어보았다.
하나는 지난번 완안 올출이 왔을 때의 서첩이었다.
거기에는 금나라 황제의 직인과 현 승상의 직인 그리고 대원수의 직인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내용도 처음 건넸을 때의 내용 그대로였다.
다음에는 두 번째 서첩이었다.
본문에 관한 내용에 동의한다는 이들의 모든 자필서명과 직인이 찍혀 있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적힌 황족들의 이름과 각 부의 수장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현수는 확인을 한 후에 서첩을 닫고서 세 번째 서첩을 열었다.
세 번째 서첩은 별거 아니었다.
그냥 매년 해왔던 것처럼 각 국가 간의 중요한 일들에 있어서 자주 왕례를 하자는 것이었고, 금나라와 고려 간의 거래를 대폭 늘리자는 내용이 적힌 서첩이었다.
“이건 별 어려운 내용 아닙니까.”
“예, 이번에 금에서 학생들만 데려온 게 아니네. 지금 상인들도 와 있으니까.”
“예,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현수는 예부 상서 유응규를 바라보며 물었다.
“금 상인들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급한 대로. 예부시랑 이유가 수용 가능한 객관에 상인들을 안내하고 부족한 상인들의 숙소는 개경 인근 여각을 구하고 있을 겁니다.”
“오! 그러합니까? 앞으로 금나라와 거래량이 대폭 늘어날 테니 여각을 좀 더 세워야겠군요.”
“개경에 세우는 것보다는 서경이 나을 것입니다.”
“예, 그렇겠지요.”
현수는 미소를 짓자, 유응규는 살며시 고개를 숙이었다.
현수는 마지막 네 번째 서첩을 펼쳐 보고 내용을 읽어내려가다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통역하던 악정도 꽤 당황스러워하였다.
옆에 있던 좌복야 이준의, 우복야 문극겸이 표정을 보다가 뭐지? 라는 표정을 지으며 완안 올출을 바라보았다.
완안 올출은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탁!
서첩의 내용을 보고서는 덮으며 서첩을 내려놓았다.
“태원수… 이건… 좀.”
“거절하지 말게. 다 좋자고 하는 거 아닌가. 무리한 요구도 아니고.”
“무리합니다!”
버럭 하는 현수였다.
“크하하하하!”
완안 올출은 현수의 행동에 그저 크게 웃기만 할 뿐이었다.
“태원수, 이건 안 됩니다. 차라리 황실 종친분들 중에 한 분을…….”
“위위경이면 족하네.”
완안 올출의 말에 현수는 손을 저었다.
“저에게 자식이 세 명이 있고, 안 사람이 세 명입니다. 그런데… 금나라 현 황제의 따님과 혼례를요?”
“황제 폐하의 뜻이네.”
완안 올출의 말에 현수는 고개를 저었다.
“태원수, 송구합니다만 이건 제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아! 여기는 어때요!?”
현수는 씨익 웃으며 옆에 있는 악정을 가리키자 완안 올출은 시선을 피하였다.
“우리 악장군이 어때서 그러하십니까.”
“저…….”
“자네는 조용히 하게.”
현수는 정색하며 악정을 바라보았다.
“그럼, 육위 장군 양소는 어떻습니까? 양 장군은…….”
“되었고. 우리 금나라에서는 자네 하나면 족하다는 말이네.”
“송구하지만. 제 안사람들이 허락을 안 할 겁니다. 그리고… 제 큰아이가 열 살입니다.”
“알고 있네.”
“하아~!”
현수는 크게 한숨을 내리 쉬었다.
신료들도 무슨 이야기인 줄 알고 있기에 쉽게 이야기를 꺼내는 이가 없었다.
“금상 황제께서는 자네가 알아서 하라고 하셨으니. 공주님을 고려에 두고 나는 돌아가도록 하지.”
일방적인 통보였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금상 황제께서는 결정하셨네. 그리고 모시고 가지 못하네.”
“그럼?”
“함께 왔지.”
완안 올출의 말에 현수는 두 눈을 감았다.
“저는 혼례를 올린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거. 질질 끄는구먼. 사내가 되어서 어찌 그런 말을 하는가. 안사람이 열이면 어떻고 스물이면 어때.”
완안 올출의 말에 현수는 기가 막혔다.
“나는 할 일을 다 하였네. 그리고. 돌아가면서 요동 일을 천천히 진행할 것이고 때가 되면 소식을 보내줄 테니 점거하도록 하게.”
완안 올출은 말을 마치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악 장군 나랑 술 한잔하겠나?”
“예?”
현수는 악정에게 말하였다.
“한잔 마셔.”
“예, 위위경.”
현수는 완안 올출을 바라보며 승낙했고 악정은 완안 올출을 따라서 밖으로 나가 버렸다.
“아니, 이게 무슨…….”
그들이 나가자마자 이준의의 말문이 트였다.
“나쁘지 않은 겁니다.”
“나쁘지가 않다니요. 위위경 안사람이 누구입니까…….”
이준의가 굉장히 심기 불편하다는 듯 말하였다.
하지만 문극겸은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우복야, 그럼 이게 좋다는 겁니까? 제가 혼례를 올린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좋게 생각하세요.”
“좋게 생각할 일이 아니니 그러지요.”
“국가 간의 혼례라는 건 그만큼 확실하게 하겠다는 증명이기도 합니다. 금 황제가 자신의 딸을 위위경에게 보내겠다는 건 확실히 하겠다는 의미이지요.”
“그렇긴 하지… 하지만 우복야 위위경이 혼례를 치른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또 혼례를 치른다는 겁니까.”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우복야 문극겸이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