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천하의 주인-129화 (129/159)

129화

“현재 사찰에서 조세를 거두고 있지 않습니까… 여기서 조세를 더 거둔다면 문제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경수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하였다.

“앉아서 불경(佛經) 공부하는 스님들이 밭을 일굽니까, 뭘 일굽니까. 사찰의 사노비와 나라에서 내린 관노를 이용해서 밭을 일구고, 귀족들과 백성들이 알아서 사찰에 갖다 바치니… 저들은 고생이란 걸 모르면서 자란 자들입니다.”

“흠…….”

“사찰을 제대로 한번 파헤친다면 비리(非理)가 나오지 않을 재간이 있겠사옵니까? 하옵고 개경 인근만 아니라, 이 고려 전역에 있는 무당들 역시 조세 대상으로 올리시옵소서. 무당들이야 혓바닥으로 먹고살고 있으니, 막대한 재물(財物)들이 있을 겁니다.”

현수의 말에 이의방은 입꼬리가 올라갔다.

“일리가 있는 말이야. 형부에서 조사하면 사건 사고가 수두룩할 것이네. 어사대에서 조용히 사찰 좀 뒤지면 나오는 법이지.”

“무당을 조사할 게 뭐가 있사옵니까. 그냥 잡아다가 물으면 없는 죄도 술술 불 것이옵니다.”

“그렇지? 하하하하!”

이의방이 크게 웃었다.

무당들이라고 해봤자, 죄가 없어도 형틀로 가하려고 하면 적어도 최소 한두 개 무슨 짓을 하였는지 불게 만들 수 있을 것이었다.

“돌아가는 대로 한번 해봐야지. 형부 상서와 금오위 상장군을 불러야겠구나. 아, 그리고 그 군선(軍船) 좀 보여줘 봐.”

“예. 합하.”

이경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새로 지을 군선의 설계도를 펼치자, 현수는 고개를 갸웃하였다.

지금 보고 있는 설계도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설계도였다.

잠시 기억을 더듬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툭 하고 군선의 이름을 대었다.

“…판옥선?”

판옥선이라는 말을 작게 내뱉으니, 이의방과 이경수는 현수를 바라보았다.

현수가 멀뚱멀뚱 설계도를 유심히 보고 있자, 이경수가 대뜸 물었다.

“위위경, 혹시 설계가 잘못된 부분이라도 있는 겁니까?”

“예? 아, 아닙니다.”

고려의 군선, 평전선은 기본 구조와 모양이 누전선과 동일했다.

다만 평전선과 달리, 누전선은 누각이 설치돼 있었다.

설계도의 군선을 보았을 때 떠오르던 군선은 판옥선이었다.

이경수가 고안해낸 설계도는 이러하였다.

기본적으로 현수가 알고 있는 판옥선의 구조와 같았다.

다만 이경수의 판옥선에는 포 구멍이 없었다.

설계도면에는 비교적 크기가 제법 되는 누각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뒤로는 석포 하나, 돛은 삼각돛이 포함되어 있었다.

“흠…….”

“위위경, 왜 그러십니까?”

“이 군선… 나무 재질이 무엇입니까?”

현수가 이경수에게 물었다.

“소나무입니다. 강한 파도를 만나거나 바위에 부딪혀도 깨지거나 부서지지 않습니다. 서해 갯벌에 빠진다고 하더라도 안정적으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선회력이 좋고, 제자리에서 회전력도 탁월합니다. 대신, 속도가 문제겠지요. 그래서 삼각돛을 달았습니다. 역풍을 이용하면, 노를 젓는 조군(漕軍)들은 힘이 덜 들어가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 삼각돛은 좌, 우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경수가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러한 배를 만들려면 막대한 예산이 필요했고, 화포도 장착해야 했기에 무조건 만들 수 없었다.

“이 절도사, 제가 화약과 화포를 가져온 거 알고 계십니까?”

“얼핏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걸 이 배에 탑재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배 양옆으로 화포를 달고, 회전력을 이용해서 뻥뻥 터트린다면요? 가능하다면 앞, 뒤에도 포를 달고요.”

현수의 말에 이경수는 침을 꿀꺽 삼키었다.

“오히려 석포를 달 필요가 없어 좋지요.”

이경수의 말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위경, 그 화포라는 거 말입니다. 제가 보지는 못하여서 그런데… 볼 수가 있겠습니까?”

“물론이지요. 육위 장군 악정과 양소 장군이 맡고 있으니, 이참에 함께 개경으로 올라가서 한번 살펴보시겠습니까?”

이경수는 당장 응하고 싶었지만, 쉽게 응할 수가 없었다.

서해 해군 절도사가 자리를 완전히 비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후임이 없나? 아니면… 뭐가 문제라도 있는 건가?”

이의방이 이경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제가 서해 해군 절도사인데 감히 어떻게 자리를 비우겠습니까. 합하.”

“괜찮아. 후임에게 맡기고, 임시로 다녀오면 되지. 그리고 위위경이 다리까지 만들어서 오가는 데는 하루 이틀이면 충분할 것이네. 위위경 말대로 함께 개경으로 가서 자네가 보고 싶은 걸 다시 보고 이 군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고 만드는 건 어떻겠나? 어차피 만들어야 할 것이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합하.”

이경수가 말에 따르겠다고 말하였다.

“이 절도사, 이거 말고도 다른 설계도가 있습니까? 혹시 미리 모형 같은 거 만들어 놓은 것도 있나요?”

현수의 질문에 이경수가 답하였다.

“아, 예. 내부 설계도가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이경수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의 집무 책상으로 가서는 내부설계 도면과 시험 삼아 모형으로 만든 군함을 꺼내서는 현수의 앞에 놓았다.

“이것입니다.”

모형으로 만든 군함은 영락없는 판옥선.

그것도 상향된 판옥선이었다.

현수는 판옥선을 자세하게 들여다보았고, 이의방과 이경수는 아무런 말 없이 현수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절도사, 이 군선을 만들면 이 군선을 주력(主力)으로 사용할 셈이지요?”

“예. 위위경. 그렇습니다.”

“현재의 군선들보다 확실히 실용성은 있어 보입니다. 특히 원정(遠征) 갈 때 좋을 것 같습니다.”

“원정이라는 게 무슨 말입니까?”

이경수의 물음에 이의방이 말하였다.

“요동으로 가려고.”

“예?! 요동이라니요?”

이경수가 이의방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내 직접 여기 와서 해군의 상태를 보려고 한 이유는 단 하나야. 요동으로 가려고 하기 때문이지. 육군도 육군이지만, 해군의 역할이 가장 필요한 부분이거든.”

“제가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요동으로 가려면 최소 3년에서 최대 5년은 잡고 있네. 일단 아직 공표(公表)도 하지 않았지만. 곧 공표할 거야. 그러면 가장 많이 필요한 게 해군이니… 자네가 할 일이 커.”

이의방의 말을 들은 이경수가 고개를 숙이었다.

“절대 실망하게 하지 않겠사옵니다.”

“그럼. 그래야지. 하하하!”

실망하게 하지 않겠다는 말에 이의방은 매우 흡족해하는 눈치였다.

“절도사,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러합니다만… 혹시 강화 일대에 둔전(屯田)을 운영하고 있습니까?”

“둔전이요? 아니요. 저희는 둔전을 운영하고 있지 않습니다.”

“음… 강화도와 인접한 섬들 말입니다. 그곳에 둔전을 경영하면 어떨까요?”

이의방이 의아하게 현수를 바라보았다.

“위위경, 갑자기 웬 둔전 타령이야. 곡식이 모자란 것도 아닌데.”

“군량 확보를 위해서라면, 변경지대(邊境地帶)에 둔전은 필수적으로 있어야 할 것입니다.”

“위위경, 여기는 위위경의 땅이니까 둔전을 설치하든지, 삶아 먹든지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해. 훈련 잘 받는 군사들 시키지 말고.”

이의방은 혀를 찼다.

“아니, 그게 아니라… 둔전을…….”

“변경지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강화도랑 정주 일대는 자네가 알아서 해.”

“아, 예…….”

현수는 군말 없이 고개를 숙이며 답하였다.

“합하, 그러면 해군의 훈련을 더 늘리면 되겠습니까?”

“음, 그렇게 해야겠지. 지금도 충분한 거 같지만, 혹시 모르니 추가적으로 더 훈련을 시키게.”

“예. 합하. 그렇게 하겠사옵니다.”

이의방은 품속에 지니고 있던 요동 지도를 꺼내어 이경수에게 건네었다.

“요동 지도네. 요동에 어떻게 상륙을 할지 잘 구상해서 보고하게.”

“예. 합하.”

* * *

“그래… 어찌 되어 가느냐? 금나라 말이다.”

남송의 태상황제가 진우형에게 물었다.

“예상대로 몽고가 금나라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다만 저들의 세력이 나날이 급증하는 이 가운데 금나라를 집어삼키면… 다음은 저희 송나라가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진우형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하였다.

태상황제는 그런 진우형의 걱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시만 써 내려갔다.

“세력이 강해 봤자지.”

“합하, 테무진이라는 몽골의 장수는 호락호락한 자가 아니옵니다. 테무진이라는 장수는 일국을 건국하고도 남을 요량이 있는 자입니다. 혹시 모르니, 이번 참에 고려에 사신을 보내어 훗날을 기약하시옵소서.”

“하하하, 역시 너는 네 아비의 아들답구나. 진회도 그랬었지. 금나라와 화친을 이루고 훗날을 기약하라고. 결국에는 네 아비의 뜻대로 행하였지만.”

“…후회되시옵니까?”

진우형이 묻자, 태상황제는 고개를 저었다.

“후회하지 않는다. 네 아비의 선택이 나의 선택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한세충과 악비를 너무 쉽게 버렸던 게 아닌지 한 번씩 생각이 들기는 한다.”

태상황제의 말에 진우형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나저나 너의 말대로 고려와 손을 잡으려 들려면… 신하들이 난리 칠 거 같은데. 가능한 일이 아니지 않으냐.”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세력이옵니다. 폐하, 그주화파 신료들은 제가 설득시키겠습니다.”

“금상이 수락하겠느냐? 지난번 금나라 전투 때 고려는 금의 편에 서지 않았느냐.”

“폐하께서도 아시겠지만, 작금(昨今)의 고려는 옛날의 고려가 아니옵니다. 남송과 손잡는다고 해서 금나라가 따지고 들어오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하하, 너는 고려에 소식에 빠삭하구나?”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나라가 아니옵니까.”

“…….”

“서하국, 대리국, 교지국, 포감국, 여송국에서는 현재 고려를 해동성국(海東盛國) 고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대식국 상인들에게서는 동방의 보석이라고 불리는 이때… 남송은 고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진우형의 말을 들은 태상황제가 붓을 내려놓고 진우형을 바라보았다.

“지난날, 고려는 남송을 공격하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를 하였지?”

진우형이 태상황제의 말에 읍하며 답하였다.

“예. 폐하.”

“내버려 둬라. 고려로 사신을 보내봤자 같은 답변만 나올 것이다.”

“같은 답변이라니요… 폐하, 남송을 위한 길입니다.”

진우형은 간절했다.

현 남송은 몽골의 금나라를 국경 일대를 공격하고 있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특히나 주화파 신료들은 혹여나 몽고가 금을 멸망시키고 남송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으냐는 생각을 가지고, 금나라를 경제적으로 도와서 몽골을 막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반면 주전파는 금나라를 지금이라도 다시 공격해 영토를 찾은 후 힘을 키워 몽골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우형은 이 주전파와 주화파의 말은 듣지 않고 오히려 한 곳에만 시선을 두었다.

그게 바로 고려였다.

“폐하, 다시 한번 더 간청 드리옵니다. 사신이라도 한번 보낼 수 있도록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이번에는 진우형이 무릎을 꿇고 청하자, 태상황제는 진우형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부 상서와 한번 다녀와 봐.”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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