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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천하의 주인-111화 (111/159)

111화

얼마 후.

현수와 예부 상서 증효운은 현수가 묵고 있는 방안에 들어와 차를 마시고 있었다.

접대 사신과 고려 측 사신들은 연회 자리에서 남송의 기예단의 기예(技藝)를 보며 즐겁게 연회 자리를 즐기고 있었다.

“위위경, 어찌 저를 이곳에서 보자고 하신 겁니까?”

예부 상서 증효운이 물었다.

“제가 내일 객관으로 와달라고 하였지요?”

“예. 그러셨지요. 한데… 지금 저를 보려고 하시는 연유가 있으십니까?”

예부 상서 증효운의 물음에 현수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리 준비해둔 상자 하나를 가지러 가더니, 금세 자리로 돌아왔다.

탁.

현수가 상자 하나를 내려 상 위에 올려놓았다.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현수가 미소를 지으며 상자를 열어 보이자, 예부 상서 증효운의 시선이 달라지며 침을 꿀꺽 삼키었다.

상자 속에 있는 건 어느 것에도 비할 데가 없는 이름다운 청자였다.

“황실에 진상(進上)하는 장인이 만든 청자입니다. 마음에 드십니까?”

“제가 본 청자들 중에 가장 아름답습니다.”

현수가 미소를 지었다.

예부 상서 증효운은 이미 청자에 홀딱 빠져있었다.

청자에서는 불빛의 반짝이는 청록색의 은은한 빛깔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청강석을 갈아 안료로 사용한 당초 무늬가 돋보였다.

“소동파도 가지고 싶어 하였던 청자입니다. 직접 보시니 어떻습니까?”

“명불허전(名不虛傳)입니다. 많은 청자를 봐왔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청자는 보지 못하였습니다.”

“마음에 들어 하시니 정말이지 다행입니다. 예부 상서, 제가 이 청자를 대인께 선물로 드리지요.”

“예!?”

예부 상서 증효운이 깜짝 놀라 말했다.

이러한 최상품의 청자라면 황실로 들어가야 하는 게 정상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청자를 자신에게 준다는 게 놀라운 듯 재차 물었다.

“받아 주십시오. 그저 작은 선물입니다.”

현수는 계속하여 청자를 예부 상서 증효운에게 내밀었다.

증효운은 이걸 자신에게 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위위경, 혹… 저에게 원하시는 게 있으십니까?”

현수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정말 관심이 있는 화약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고, 그냥 예부 상서가 아무 거리낌 없이 구해줄 수 있는 걸 말하였다.

“잡서(雜書)를 구해주세요.”

“잡서요?”

“송나라, 대식국 가리지 않고 최대한 잡서를 좀 구해주시지요. 그거면 됩니다.”

“정말 그거면 됩니까?”

예부 상서 증효운은 의문이 들었다.

고작 잡서를 구해달라고 이렇게 귀한 청자를 주지는 않았을 거라는걸 잘 알았다.

증효운이 의심스러운 얼굴로 되물었다.

“진짜 원하는 게 있으신 거 같은데… 말씀해 보시지요. 잡서는 제가 원하는 만큼 구해드릴 수는 있습니다.”

“정말 구해주실 수 있습니까?”

“하하, 이야기 해주셔야 구해드리지요.”

“화약을 구해주셨으면 합니다. 저 대국인 금나라를 벌벌 떨게 한 화약 말입니다.”

증효운의 표정이 한순간에 굳어졌다.

“어려운 일이라는 걸 잘 압니다. 솔직히 내가 여기까지 직접 온 이유도 화약 때문입니다.”

예부 상서 증효운은 잠시 골똘하게 생각하였다.

“미안하지만, 나도 화약에 대해서 아는 게 없습니다. 주전파 신료들 중에서도 아는 자가 극히 소수일 뿐이지요.”

“그러니까… 확실히 화약은 있는 것이네요?”

“예. 화약은 있지요.”

“그럼 화포도 함께 있겠네요?”

“당연합니다. 화약이 있는데 화포가 없겠습니까.”

“그거면 되었습니다. 그리고 꼭 서적들 좀 많이 구해주십시오.”

“예…….”

현수는 미소를 지으며 증효운과 더욱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었다.@@@

* * *

시간이 흐르고, 때가 되었다.

고려의 사신들은 남송의 태상황제와 황제를 알현하기 위하여 대전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현수는 은실로 자수를 놓은 자색 관복을 입고, 금과 금을 연결한 요대를 착용하고 있었다.

정균, 천시호, 악정은 붉은색 관복에 구문금대를 착용한 채로 대전 안에서 부르기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차질 없이 준비하였지?”

“예. 모든 품목 전부 준비하였습니다. 물품 서첩도 다시 새로 써 놓았으니… 문제는 없습니다. 그리고 건네주신 서찰도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천시호가 작게 말하였다.

“악 장군, 이거 자네에게 모두 달려있어.”

“예. 열심히 한번 해보겠습니다.”

“뒤탈 생기면 내가 책임지겠네.”

“진짜 그거 안된다니까. 그러네…….”

정균은 인상을 찡그리며 작게 말하였다.

“아니, 그래도 일단 한번 해보자니까요…….”

“그게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네. 닮아도 얼마나 닮았겠어… 배에서도 말했지만, 이건 너무 위험하네.”

정균은 극구 만류하였다.

현수는 살며시 가슴에 손을 얹고 툭툭 쳤다.

“저 피갑 입었습니다.”

“그거 가지고 되겠냐? 이 X친 놈아!”

정균은 이를 갈았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이건 진짜 미친 짓이었다.

될지 안 될지도 몰랐을뿐더러, 만약 된다고 하더라도 겨우 피갑 하나를 가지고 검을 막겠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그냥 차라리 주전파 신료 몇 접선해서 포섭하자고. 어? 그게 낫지. 지난번에 예부 상서에게 청자 줬다며.”

“아, 예… 알겠습니다. 이 방법 안 먹히면 실행하죠.”

현수는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고, 정균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끼이익.

대전의 정문이 열리면서 환관의 목소리가 울렸다.

“고려국 사신들은 입조(入朝)하시오!”

“위위경, 들어가시면 되옵니다.”

뒤에 서 있던 역관이 말을 하자, 현수는 천천히 고려국 관리들과 함께 대전 안으로 들어섰다.

수많은 오른편에는 주화파, 왼편에는 주전파가 있었다.

주전파는 고려국 사신을 째려보고 있었고, 주화파 사신들은 흐뭇하게 보고 있었다.

현수는 정중앙에 서서 황제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발이 쳐진 곳에 태상황제가 자리하였고, 그 아랫단에 현 남송의 황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고려국의 동벽상공신이자, 육위의 대장군이며 전중감 위위경 부마도위 유현수가 태상황제 폐하와 금상 황제 폐하를 알현하옵니다!”

현수는 허리를 굽히며 인사하고는 말하였다.

“고려국 황제 폐하의 표문과 고려국의 집정 대신의 서찰을 올리옵니다.”

현 고려국의 사정을 모를 리 없는 태상황제와 금상 황제는 역관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려의 관리가 앞으로 나와 표문과 서찰을 남송의 관리에게 전하였다.

금상 황제는 고려국 황제의 표문을 먼저 받아 펼쳐 살펴보더니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대부분 승전을 축하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많은 신료 중에서 유독 머리에 서리가 내린 관리들이 악정을 보고는 흠칫흠칫 놀라는 기색을 보였다.

현수가 황제를 바라보고 있지만, 뒤에서 그들의 시선이 느껴질 정도였다.

악정은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그들은 자세하게 볼 수 없었다.

남송의 태상황제가 표문과 서신을 보더니, 황제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아래로 내려와 현수에게 다가갔다.

황제는 온화한 모습으로 현수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승전을 축하하기 위해 이리 와준 것에 감사하다고 하십니다.”

역관이 귀에 대고 말하자, 현수는 살며시 고개를 숙이었다.

“다시 한번 대송의 승전을 진심으로 감축드리옵니다.”

“감축드리옵니다!”

고려의 신료들이 축하 인사를 건넸다.

태상황제는 고려에서 온 사신들을 보며 먼 곳에서 왔다며 직접 위문(慰問)하였다.

현수, 정균, 천시호, 악정 순으로 위문하다가 악정의 차례가 되었다.

악정과 눈이 마주친 태상황제의 얼굴에 웃음기가 싹 가셨다.

악정은 슬쩍 입꼬리를 살짝 올리었다.

태상황제를 바라보며 살며시 인사하자, 옆에서 지켜보던 정균은 침을 꿀꺽 삼키며 가만히 지켜보았다.

태상황제는 악정의 얼굴을 보며 안색이 창백하게 변해갔다.

이내 몸을 덜덜 떨더니, 천천히 돌아섰다.

태상황제는 무어라 작게 혼자 중얼거리다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태상황제의 이상 반응을 느낀 금상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폐하, 괜찮으시옵니까?”

금상 황제가 급하게 태상황제에게로 다가가던 찰나였다.

태상황제는 대전을 호위하는 군사에게로 곧장 다가가 검을 뽑아서는 악정을 향해 달려가 검을 휘둘렀다.

이에 신료들은 당황해하였고, 말릴 틈도 없었다.

처음부터 태상황제를 지켜보던 현수는 곧장 악정 앞으로 다가가 악정 대신, 태상황제의 칼을 맞아 주었다.

“위위경!”

사선으로 베어버린 태상황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지 다시 악정을 향해 검을 찔렀다.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남송 신료들이 달려들어 태상황제를 말리었다.

“놔라! 악비를 죽여라… 악비!”

“폐하를 모셔라! 어서! 그리고 태의를 불러라! 태의를!”

횡설수설하는 태상황제를 보고 금상 황제는 대전이 크게 떠나갈 정도로 외쳤다.

대전은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현수야!”

정균이 현수를 급히 부축했고, 상태를 살폈다.

“된다니까요… 크크… 천 장군, 이대로… 곧장 항구로 돌아가 배를 타고 고려로 가서 이 사실을 알리게.”

“…예.”

피가 줄줄 흐르는데도 현수는 웃고 있다.

그나마 피갑 덕분에 깊게 베이지 않았지만, 피가 쉴 새 없이 나오고 있었다.

“현수야, 그만 말해라. 일단…….”

환관이 급히 현수를 둘러업고는 태의감으로 뛰었다.

태의가 올 때까지 있을 수 없으니, 환관이 현수를 업고 뛴 것이다.

사신으로 온 신료들은 급히 환관의 뒤를 따라었고, 천시호는 혼란한 틈을 타서 곧장 대전까지 왔던 길을 돌아 급하게 항구로 향하였다.

신료들은 대전 밖으로 태상황제를 데리고 자리를 옮겼다.

저 멀리 환관이 고려 사신을 데리고 가는 걸 본 금상 황제는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폐하! 폐하!”

주전파 신료들이 급히 금상 황제에게 다가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폐하, 괜찮으시옵니까!”

“지금 이 나라가 위기에 처하였다… 태상황제께서 왜 발작을 하신 거야! 왜!”

황제는 인상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수년 동안 조용히 약을 먹으며 잘 지낸 태상황제였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태상황제가 대뜸 악비를 외치더니 발작하고는 고려 사신을 공격하였다.

이 사실이 고려국에 들어간다면 분노한 고려가 금나라와 손을 잡고 공격해올 가능성이 매우 컸다.

“유영 장군, 지금 당장 황궁 안에 있는 모든 고려 사신들을 객관에 연금(軟禁)하시오.”

“예!?”

“급하오! 한 사람도 여기 빠져나가면 아니 되네. 자네가 사신들을 다 인솔하게.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예! 폐하!”

유영은 급히 대전 밖으로 나갔다.

남송 황제는 자리에서 신하들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병부상서.”

“예! 폐하!”

“지금 이 자리에서 있었던 일들은 절대 밖으로 새어 나가서는 아니 되네. 밖으로 나가는 성문을 모두 닫아걸고, 모든 항구의 배를 띄우지 못하도록 하게. 그리고 모든 군에게 경계 태세를 갖추라 명하라.”

“예! 폐하!”

병부상서는 곧장 밖으로 나갔다.

“태상황제의 검에 베인 사신의 상태가 어떤지 짐에게 계속 보고하도록 하라.”

“예. 폐하…….”

상선 환관은 남송 황제의 명을 받아 들고는 곧장 대전 밖으로 나갔다.

“태상황제가 검으로 베려고 한자가 있네. 그자가 누구인지 알아보게.”

“예! 폐하!”

남송의 신하들은 곧장 밖으로 나가 발이 빠르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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