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화
“좌복야의 말씀이 맞습니다. 우리는 바다에 대해 모르지요…….”
“그럼 어찌하자는 말입니까?”
“어쩌긴요. 방도를 찾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 방안이 무엇입니까?”
“바다에서 전투하였던 기록들을 보면 답이 나올 것이 아닙니까?”
“전투기록이요? 있어 봐야 최소 백 년 전입니다. 더불어 바다에 대해서 잘 아는 건 상인들과 어민이지요. 그들을 데려다 장수 자리에 앉힐 수도 없는 거 아닙니까?”
“그럼 어쩌자는 겁니까? 해적들한테 항복이라도 하자는 이 말이오!”
“그 무슨 개소리입니까!”
“개소리라니!”
“개소리가 아니면 무엇이오!”
“뭐라!”
콰앙!
점점 언성이 높아지고 있는 찰나, 이의방이 상을 내리쳤다.
이에 신료들은 쥐 죽은 듯이 입을 다물었고 이의방은 병부상서를 바라보며 물었다.
“병부상서, 해군들의 상황에 대해서 알려면 얼마나 걸리겠소?”
“최소한 일 년입니다. 전국 각지에 있는 해군 관할령을 조사하고, 실제 상황이 어떠한지 살피려 하면 말입니다.”
“하아…….”
이의방은 한숨을 내쉬었다.
답답함 때문이었다.
해군을 재정비하고, 장수를 찾아 양성한다고 하면 최소 3년은 걸릴 것이다.
거기에 전선들을 수리하고, 새로 만들자면 시간은 더욱더 걸릴 것일 게 뻔했다.
그동안 고려의 해군은 직접 전투한다고 하기보다, 바다 주변을 왔다 갔다 하며 이상이 없는지 파악하는 것에 급급했다.
또한 해군임에도 대부분의 훈련은 육지에서 했다.
배 위와 바다에서 싸운 경험은 그렇게 없었다.
“저 무과처럼 해군도 따로 보는 시험을 보는 게… 어떻습니까?”
현수가 조심스럽게 답하였다.
“뽑았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바다에 대해 아는 게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에요.”
“그럼 잘 아는 자를 찾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걸 누가 합니까?”
“…….”
병부상서의 말에 현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병부상서.”
“예. 합하.”
“석 달이네. 석 달 안으로 정리하게.”
“아, 예. 합하.”
병부상서가 굳은 얼굴로 답하였다.
이제 이의방이 말한 석 달 안에 무조건 처리해야 했다.
어찌 정리할 것인지는 병부상서의 손에 달려있었다.
해내지 못한다면 자리를 내어놓아야만 하는 부담감까지 안고 가야 했다.
“현수야, 조만간 집으로 좀 오거라.”
“예. 합하. ”
“경들은 모두 들으시오.”
“예. 합하.”
“답을 찾을 때까지 퇴청할 생각들은 마시오. 답이 나오면 보고 후에 퇴청들 하시오.”
“예. 합하.”
신료들은 이의방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답하였고, 이의방은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 * *
며칠 후.
“해적들을 모두 추포(追捕)했다 합니다!”
“예. 소식 들었습니다. 평장사의 장계에 따르면… 도망가려던 해군들이 길목을 막아 해적들을 일망타진(一網打盡)하였다고 했습니다. 정말 대단하기 그지없습니다.”
문극겸이 기뻐하면서 말하자, 이중의 또한 기쁜 듯 문극겸의 말에 맞추었다.
“해군을 이끌고 온 이경수라는 자 또한 대단합니다. 피해는 보았지만, 해적의 수괴(首魁)를 잡았다고 하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이 아닙니까. 아니 그렇습니까?”
“해적들을 문초하여 본거지를 찾아 일망타진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이 김에 뿌리까지 뽑아내어야 합니다.”
신료들은 해적들의 처후 문제를 의논하였다.
“하…….”
“어찌 그러십니까?”
이준의는 한문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작금(昨今) 고려의 현실이 너무나 비참하여 한숨이 나옵니다. 쳐들어온 게 왜구가 아니라 고려인들이라 하지 않습니까.”
“이 좋은 날… 똥 씹어 먹은 표정들은 그만하시고. 이 기쁜 소식을 황제 폐하께 가서 알려 드려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맞는 말입니다. 자, 우리들 모두 가십시다.”
신료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황제에게로 향하였다.
* * *
한편, 이의방은 먼저 황제를 알현하고 있었다.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소이다.”
“폐하, 신이 간청하옵건대… 장졸들이 돌아오는 대로 폐하께서 맞이 해주시는 것이 어떠하시옵니까?”
“당연한 말이 아니오. 내 돌아오는 대로 장졸들을 크게 위로해 주고 싶은데 이상국의 생각은 어떠하시오?”
“폐하께서 장졸들을 위로해 주신다면 그들이 크게 기뻐할 것이옵니다.”
이의방은 살며시 미소를 지었고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 대신들께서 폐하를 뵙기 청하옵니다.”
“들라 하라.”
덜컹.
방문이 열리자, 신료들이 안으로 들어와 이의방에게 먼저 고개를 숙이고 그다음으로 황제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였다.
“어서 오시오. 승전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 상국에게 먼저 전해 들었소이다. 이 상국.”
“예. 폐하.”
“장졸들이 돌아오면 크게 잔치를 베풀어야 하지 않겠소.”
“지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그 부분에 관하여 신이 알아서 준비하겠사옵니다.”
황제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이의방은 황제에게 고개를 숙인 뒤 조용히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하아…….”
“폐하, 어디가 안 좋으시옵니까?”
이준의의 말에 황제는 손을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네. 다행스럽게도 나라의 급한 불을 껐으니, 안도의 한숨이 나온 것이오. 하하하.”
황제는 웃었지만 웃는 게 아니었다.
허울뿐인 황제 자리였다.
이의방이 무신들의 권력다툼에서 생존했고, 오히려 자신의 상관이었던 정중부와 그의 일파들을 폭풍처럼 쓰러트려 버렸다.
황제의 신분임에도 이의방에게 도전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황제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만 하였다.
괜히 덤볐다가 이의방의 심기를 거스른다면, 그가 어찌 나올지 알겠는가.
그렇기에 황제는 참고 참아야만 하였다.
다음 보위에 태자가 무사히 앉을 수만 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된 상황에 태자를 이 자리에 앉혀 두기에는 너무나도 두렵다는 생각만 들었다.
지난 수년간 이의방은 자기 일에 대해서 반대를 하면 무조건 죽여버렸다.
상관이든, 부하든, 부장이든 신경쓰지 않았다.
너무나도 잔혹한 형벌이었다.
하지만 이의방은 백성들에게만큼은 온화했다.
자신의 권력을 지키고 적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애를 무척 썼다.
바로 민심이라는 무기로 말이다.
겉으로는 온화하고, 자비로운 자인 척했지만, 적어도 이 안에서만큼은 권력을 위해 뭐든지 할 이의방이었다.
귀족뿐만이 아니라, 조정 신료들도 이의방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쉽게 드러내지 않고 있기에 이의방 역시나 경계를 거두지 않고 있었다.
그나마 현 조정 신료들을 건드리지 않는 이유는 바로 자신의 사람으로 꽉 채웠기 때문인 듯했다.
이의방은 속을 알 수 없는 호랑이 아니, 이리와 같았다.
이렇다 하니, 감히 이의방에게 뭐라고 할 수도, 질책할 수도 없었다.
황제는 황실을 위한다고 하는 이들조차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황제는 계속해서 고민하며 경계를 해야만 하였다.
문극겸, 경대승, 한문준 같은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준의는 생각에 잠긴 황제의 표정을 조심스럽게 관찰하고 있었다.
“우복야, 짐을 왜 그리 보는 것이오?”
“아, 폐하의 용안이 좀 불편한 게 아니신지 신이 걱정이 되어… 무례를 저질렀사옵니다.”
“아, 아니오! 아니오! 하하하하!”
또다시 손을 저으면서 말하는 황제였다.
이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두경승은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이준의를 노려보았다.
“우복야께서는 어찌 한나라의 신하임에도 불구하고, 지존이신 황제 폐하를 업신여겨 보는 것입니까.”
“그게 무슨 말이오. 내 언제 폐하를 업신여겼다는 것이오.”
“…….”
“그만하게. 우복야가 짐의 건강을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송구하옵니다. 폐하.”
“허험!”
이준의는 헛기침을 하면서 시선을 돌리었다.
“이만 나가들 보시게…….”
황제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두경승은 바로 황제의 뒤를 따라 나갔다.
* * *
자그마치 열흘이 흘렀다.
강화에서 돌아온 경군과 해군들이 돌아오는 날에 맞추어 황제가 친히 장졸들을 위로하고, 상금을 내렸다.
또한 이들을 축하하는 잔치를 개경에서 크게 베풀었다.
개경에서 열린 잔치는 백성들에게도 돌아갔다.
해적이 쳐들어와 불안했을 백성들을 위해 잔치를 사흘간 베풀었고, 그 사흘 동안은 잔치에 너도나도 어울리며 즐겁게 즐기었다.
그렇게 시간이 좀 흐르자, 개경은 다시 평소의 모습을 되찾았다.
“합하, 문하시랑평장사께서 오셨사옵니다.”
밖에서 들리는 말에 이의방은 보던 장계를 접어 두었다.
“들라.”
덜컹.
저벅저벅.
이의민은 방문이 열리자, 이의방에게 다가섰다.
“합하, 찾아계셨사옵니까.”
“음… 자리에 앉게.”
“예. 합하.”
이의민은 이의방의 말에 자리에 앉았다.
“그래. 황제 폐하께서 자네에게 손수 어검을 하사하였는데… 어떠한가?”
“모두 합하의 은덕으로 받은 것이옵니다.”
“하하하하.”
이의방은 이의민의 말에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장을 찾으신 연유가 있을 것이온데… 어인 일로 부르셨사옵니까?”
“아, 다름이 아니라… 동경유수로 자네가 가주었으면 싶은데…….”
“예? 동경유수라니요?”
“아… 지난번에 경 장군하고, 유 장군이 돌아오지 않았나. 그때 밖의 사정을 좀 들어봤는데 동경에 문제가 많아. 그리하여 자네를 보내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러네. 귀족 놈들이 하도 지랄 맞아서 말이지. 자네가 가면 좀 말 좀 듣지 않겠나?”
“…….”
“가서 민심도 좀 살펴보고… 더군다나 그곳은 자네 고향이 아닌가. 이런 말 하기 좀 뭐하지만, 천민 출신으로 재상의 자리까지 올라서 신도재상(新道宰相)이라 불리는 자네가 아닌가. 그런 자네가 동경유수로 간다면 동경의 민심도 좀 낫지 않을까 하여 그러네.”
이의방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혹… 경대승 때문에 그러는 것이옵니까?”
이의민도 얼추 사정을 알고 있다는 듯 이야기를 하자, 이의방은 이의민의 말을 회피하지 않았다.
“그런 이유가 없다면 거짓이겠지. 그런 김에 신도재상이라고 불리는 자네가 동경에 가서 길도 좀 닦아보게. 어때? 할 수 있겠는가?”
“예. 소장… 동경으로 내려가 합하께서 하신 말씀 그대로 이행하겠사옵니다. 또한 동경 군사들의 훈련도 맡아 강군으로 만들어 놓을 것이오니…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그래, 그렇게 해. 하하하하하!”
이의방은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리는 것 같아 마음을 놓았다.
이의민은 살며시 고개를 숙이었다.
“그리고 말이야… 강군도 좋지만, 남해안 일대도 좀 살펴봐 주게. 물론 자네가 해군에 대해서는 잘 알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한번 살펴주었으면 싶네.”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합하. 심려치 마시옵소서.”
“그래. 자네가 동경유수로 가니, 내 안심할 수 있겠네. 어떤가? 오늘 내 집에서 술 한잔하는 것이.”
“예. 합하. 그리하겠사옵니다.”
이의민은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한 후에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