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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천하의 주인-59화 (59/159)

059화

“복잡하구나… 밖에서는 왜구가 말썽인데… 안으로는 귀족들이 더 말썽이니…….”

“합하, 합하께오서 백성들에게 베푸신 은혜가 하해(河海)와 같으셔서 합하를 칭송하는 백성들이 많습니다.”

현수의 말에 이의방은 피식 웃었다.

“아부냐? 아니면 진심이냐.”

“아부일 리가 있겠사옵니까. 합하.”

“하하하!”

이의방은 크게 웃다가 경대승을 바라보았다.

“자네는 어찌 그리 시큰둥한 표정이야.”

“아니옵니다. 합하.”

“아니긴 뭐가… 벌써부터 불만이 많은 표정인데. 이의민 문제는 조만간 처리할 것이니 개의치 말도록 해.”

“예. 합하.”

순순히 수긍하는 표정으로 경대승은 고개를 숙이며 답하였다.

“합하, 저희는 이만 물러 가보겠사옵니다.”

“어, 그래. 동경 일은 다음에 이야기하도록 하고… 먼저들 나가봐.”

“예. 합하.”

현수와 경대승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밖으로 물러나겠다.

이의방은 시선을 돌려 고려 지도를 바라보았다.

“대체 어디서 온 거야…….”

지도를 보던 이의방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도를 보아도 어디서 왔는지 도무지 모르겠으니 말이다.

“합하, 좌복야께서 뵙기를 청하시옵니다.”

“오, 들라 하여라.”

방문이 열리면서 좌복야 문극겸이 안으로 들어와 고개를 숙이었다.

“어서 오시오. 문공.”

“합하, 공적인 자리로 왔습니다.”

“나와 사돈밖에 없는데 뭐가 어떠시오. 하하하.”

이의방은 웃음을 보였고 문극겸은 살짝 고개를 숙이었다.

“좌정(坐定)하시오.”

“예. 합하.”

문극겸은 몇 걸음 다가와서 방석에 있고 앉았다.

“무슨 일이오?”

“육부에서 올라온 정책에 관련된 것들 모두 심의를 거쳐서 가져왔습니다. 심의에 안 된 것들 또한 포함되어 있고…….”

대충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정책심의에 통과되지 않은 건 무언가 있다.

그리고 문극겸이 직접 가져왔다는 건 웬만하면 통과시켜 달라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이의방이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있는 서리에게 손짓하자, 서리는 곧장 문극겸에게 다가가 문건들을 받아 들고서 상위에 올려두고 물러났다.

문건을 집어 든 이의방은 매듭을 풀고서 펼쳐 보았다.

“이 안건들 처리하시오.”

이의방은 문건들을 훑어보고는 자신의 직인을 문건에 찍으면서 한쪽으로 치웠다.

“사돈, 내가 진심으로 묻겠는데… 고려의 수군은 사돈이 보기에는 어떻소?”

“솔직히 형편없습니다. 물론 항해술과 배 만드는 기술은 고려를 따라올 나라는 없습니다. 하지만 수군으로 현재 따진다면야…….”

문극겸의 말에 이의방은 침묵을 지켰다.

지난 수년간 나름대로 해안 방비를 열심히 하였다.

하지만 해안 방비는 해안 방비일 뿐이었다.

물론 수군이 배를 운용하여 상선 등을 호위해주기는 했지만, 그저 호위선일 뿐이었다.

그리고 대다수의 해적은 호위선의 그림자만 봐도 내빼기 일쑤였다.

한나라의 군대이다 보니,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강화 상륙은 달랐다.

방비가 뚫렸다는 것은 다른 곳도 뚫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나?”

“유능한 장수를 뽑아서 해군을 재정비하여야지요. 그동안 북방과 육군에 집중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북방군과 육군에게 예전에는 먹이지 않던 쌀밥에 고깃국을 주고 있다 들었습니다. 합하의 은혜로 인해서 군사들은 먹을 것 걱정 없이 훈련을 받아 오고 있으며 지금은 일당백에 이르는 군사들이 되었사옵니다.”

쌀과 고깃국뿐이겠는가.

전국 각지에서 올라오는 특산품 역시 분배하여 군영으로 보급하였다.

“그뿐만이 아니옵니다. 제각기 맡은 장수들은 그곳에서 남은 군량미를 팔아 군영을 유지하고 있사옵니다. 이렇다 보니 육군은 나날이 강해질 수밖에요. 재정상태에 있어서 더 들어가지 않을 정도입니다. 따라서 이제 북방과 육군을 지원하는 것을 중단하고, 수군을 지원해야합니다.”

많은 일들이 있다.

군량미를 착복하였다는 거짓 보고로 인하여 애꿎은 장수들이 얼마나 죽었던가.

이리하여 이의방은 명령을 내렸다.

필요한 게 있으면 군량미를 팔아 사라고.

대신 팔기 전에 반드시 유수 및 상관들에게 알려 그 재가를 받으라고 말이다.

유수들과 행정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하다 보니 착복(着服)하는 일은 9할 이상 없어졌다.

물론 어딘가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지겠지만 어찌 되었든 지금까지 조용하니 재정상태에서는 문제가 되는 일이 없었다.

“하긴… 중앙에서 명이 내려지기도 전에 할 거 다 하는 상황이니, 걱정은 없겠군. 수군이 이제 내 숙제인 것인가…….”

이의방은 이마를 긁적였다.

* * *

“도성에서 군사들이 달려올 것입니다. 도성에서 강화까지는 그리 멀지 않으니, 서두르는 게 좋을 겁니다.”

“하하하, 그래… 조금만 더 실어서 바로 뱃머리를 돌리자고. 응? 하하하하!”

덥수룩한 수염을 매만지며 크게 웃는 해적 두목이었다.

해적 두목은 곳곳에서 활활 불에 타고 있는 강화를 보며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악!”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이어졌다.

어린아이들이 울고불고 완전한 아수라장이었다.

해적들은 여타 가리지 않고서 약탈을 감행하였고, 너도나도 할 거 없이 젊은 여인들에게 몹쓸 짓을 하는 동시에 배에 싣고 있었다.

노예로 팔려는 속셈이었다.

“두목! 실을 만한 것들은 모두 실었습니다. 계집이든 돈이든 다 말입니다.”

“잘하였다. 하하하!”

“두목!”

저 멀리서 한 젊은 해적이 소리치며 뛰어왔다.

“뭐냐?”

“서역 놈들이 상선에서 금덩이들을 찾았습니다.”

“잘되었다. 아예 배를 옮겨버리자고.”

“예!”

“형님, 우리가 마침 돌아가려던 때에 크나큰 수확이 아닙니까1”

“그래… 하지만 서둘러야 한다. 시간이 없어.”

“예! 서둘러라! 두목께서 서두르라 하신다!”

“예!”

두목은 하늘 위를 바라보았다.

수많은 별들과 별자리들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오늘만을 기다렸다.”

해적들은 작정하고 강화 상륙을 도모하였다.

날씨 등을 며칠 전부터 파악하여 상륙하기 매우 좋은 날을 정한 것이다.

그게 바로 오늘이었다.

자욱하게 피워진 해무도 큰 역할을 했다.

이건 기회 중의 기회였다.

바람 역시 자신들 편이었다.

다만 하나 걸리는 것이 있다면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이었다.

단 일각이라도 지체하거나 늦는다면 도성에서 오는 군사들에게 몰살을 당할 것이 자명했다.

“흐음… 서둘러야겠군. 모두 버려라! 지금 들고 있는 건 다 버리고! 승선하도록 해!”

두목이 크게 외치자, 짐을 들고 옮기던 해적들은 그대로 짐을 바다에 내던지거나, 아니면 땅에 버려두고서 빠르게 배로 돌아가 승선하기 시작하였다.

갖지 못할 것이라면 차라리 쓸모없게 만들어 버리겠다는 해적들의 생각이었다.

“두목!”

“뭐냐?”

“저, 저기!”

부하 하나가 육지 한쪽을 가리켰다.

저 멀리서 무수한 횃불들이 눈에 들어왔다.

경군(京軍)이었다.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얼른 닻을 올려라! 전속력으로 강화를 빠져나갈 것이다!”

두목이 큰소리로 외쳤고, 해적들은 숨 가쁘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부우우우우!

그때였다.

갑자기 정적을 뚫고 나팔소리가 울리자, 해적 두목이 깜짝 놀랐다.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자마자 좌우로 수십여 척의 배들이 나타나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해군이다!”

해적들은 큰소리로 외쳤다.

해적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기 시작하였다.

앞뒤로 길이 막혀버린 상황이었다.

더욱 조여오듯 해군들의 전선이 양옆으로 매우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두웅! 두웅!

북소리가 울려 퍼졌고, 소리는 매우 가깝게 들렸다.

“형님, 어찌합니까?”

“어찌하긴. 뚫어야지.”

“예? 가능한 겁니까? 저들은 수군입니다. 더군다나 우리 배와는 차이가…….”

“뚫어! 못 뚫으면 우리 식솔들이 다 죽는단 말이다!”

해적 두목은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는지 손을 떨고 있었다.

‘내 예상이… 틀린 건가?’

앞이 캄캄했다.

이곳을 뚫고 나가야겠다는 생각만이 가득한 두목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려 수군은 개판이었다.

더불어 강화 수군은 애진작에 죄다 박살을 내버렸는데, 대체 저 배들은 어디서 온 것이란 말인가.

해적 두목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듯한 표정이었다.

피유우웅!

불화살 하나가 하늘 위를 날았다.

수군의 공격 신호였다.

“바, 방패!”

해적 두목이 곧장 소리쳤다.

하지만 때는 늦었다.

수백여 발의 불화살이 일제히 양옆에서 날아올라 자신들에게 향하고 있었다.

퍼퍼퍽!

“크악!”

“으아아!”

“내 다리!”

방패 사이를 뚫고 떨어진 화살들.

이를 미처 막지 못한 해적들 사이에서 순식간에 수십여 명의 부상자와 사상자가 생겼다.

두웅! 두웅!

북소리가 점점 더 가깝게 들려오면서 화살들이 빗발처럼 쏟아져 내려왔다.

“전속력으로 뚫어!”

해적 두목은 크게 외쳤고, 해적들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양옆으로는 해군이 포위망을 좁혀왔고, 해군도 함께 점점 해적을 향해 다가왔다.

그들에게 잡힌다면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희생을 각오한 도박이었다.

한편 고려 해군 대장선에서는 깃발을 올리며 신호를 주기 시작하였다.

“적들을 추격하라! 절대 빠져나가게 해서는 아니 된다!”

“예! 장군!”

“전속력으로 따라붙어라! 포위망을 좁혀라!”

부장의 명에 깃수들이 청백색 깃을 들어 올리며 흔들었다.

다른 배에서도 역시나 청백색의 깃발을 들어 올리며 흔들자, 배의 진열이 바뀌면서 해적들을 쫓기 시작하였다

“계속 화살을 퍼부어라!”

“발사!”

“화살을 계속 쏘아라!”

명이 떨어지자, 궁수들은 시위를 놓았다.

바람을 가르며 해적선으로 날아가면서 곳곳에 불화살들이 박혔다.

퍽! 퍼퍼퍼퍽!

뭍에서 군사들을 대기시키고 있는 이의민은 이 광경을 보고 피식 웃었다.

불구경하듯, 이의민이 가만히 해군과 해적들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다가 곧 명을 내렸다.

“모두 들어라! 사상자와 부상자들은 따로 나누어라! 또한 피해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라!”

“예! 평장사!”

문하시랑평장사 이의민의 명에 부장들은 속속히 움직였다.

* * *

조정에서는 해군의 관한 일들에 관해서 이야기가 오고 갔다.

해적들이 도성 앞 강화까지 쳐들어왔으니, 심각한 일이었다.

하지만 다 같이 의논을 하여도 계속해서 오가던 이야기들만 돌고 돌았다.

이의방의 심기는 매우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현 상황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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