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화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주위에 있는 모두가 놀랐다.
“…….”
의견 충돌 끝에 황궁에서 칼을 들이미는 상황에 당도하자, 부장들도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나를 죽이려거든 죽이십시오. 허나, 수하들과 군사들은 죄가 없습니다. 그들은…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오로지 황실과 장군을 위해 온 이들입니다.”
김자격은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두 눈을 꽉 감으며 숨을 거칠게 들이마셨다.
그런 김자격의 말을 들은 경대승은 검을 거두었고, 자신 하나만 믿고 이렇게 온 응양군 군사들을 바라보다가 다시 뒤를 돌아 대전을 바라보았다.
의리냐, 아니면 충성이냐.
갈림길에선 경대승은 갈팡질팡한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잠시 서 있다가 명을 내렸다.
“모두 황궁을 지킨다!”
* * *
성문이 열리고 진퇴양난(進退兩難)을 거친 이의방 측이었다.
하지만 정중부 측에서는 이광정의 배신으로 인해 박존위가 이끄는 이광정의 사병과 싸워야 했다.
게다가 이의방의 사병들까지 동원된 덕분에 정중부 측을 밀어내고서는 퇴로 확보를 할 수 있었다.
퇴로로 빠져나온 이의방 군사들은 급히 군영으로 보고를 올렸다.
저녁때가 되어서야 모든 게 정리가 되었고, 정중부는 시가지 쪽으로 군사를 돌리었다.
두경승, 이의민, 이영령, 박존위, 이춘부는 남은 군사들을 재정비하였다.
그리고 필사의 각오로 몸을 던져 퇴로를 열려고 했던 고득시의 시신은 군영으로 돌려보내었다.
“하아…….”
“…….”
이의방은 부장들의 부축을 받으며 밖으로 나왔다.
창에 처참하게 고득시의 시신이 바닥에 눕혀져 있었다.
“망할 놈… 이리 일찍 가면 어쩌자는 게냐… 득시야, 내 약속하마… 평생 네 가족을 살펴줄 것이다. 적어도 내가 살아있을 동안은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니, 앞날은 걱정하지 말고 눈을 감아라.”
이의방은 전사한 고득시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그러자 군사들이 고득시의 시신을 가지고 다른 곳으로 옮겼다.
“시호야.”
“예! 위위경!”
“군사가 얼마나 있는지 살펴서 준비해라. 이번에는 내 직접 지휘를 할 것이다.”
“위위경, 아직 무리하게 움직이시면…….”
“나는 무장이다. 고작 칼자국 따위에 너무 오래 누워있었어.”
부장들의 손을 뿌리치며 이의방은 이를 바득바득 갈더니, 당당하게 걸어서 군막으로 들어갔다.
“…….”
현수도 순간 이 상황에 다리가 후들거리다가 힘이 쭉 빠진 채로 주저앉았다.
“나리!”
갑이가 와서 현수를 부축하며 일으켜 세워 주었다.
“하아…….”
현수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지 멍하니 서 있었고, 갑이는 그런 현수를 데리고서 군막으로 돌아갔다.
* * *
한편.
이의방은 다리의 통증도 그렇고, 전보다 몸도 많이 좋아진 상태였다.
“그래… 부상자들은?”
“위급한 병사들 제외하고는 어느 정도 안정적이옵니다. 이게 다 유 선생 덕분이옵니다.”
“그러하냐?”
“예. 위위경.”
이의방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갑주를 곧장 입고서는 끈을 묶고서 고리를 채웠다.
가죽끈을 매고 검을 패용하며 투구를 쓴 뒤, 침상 옆에 세워둔 월도를 들어 올렸다.
언월도보다 자루가 반 정도 짧은 월도.
길지도 짧지도 않은 적당한 길이였기에 한두 손으로 쓰기 딱 제격이었다.
이의방은 자신이 주로 쓰는 병장기인 월도를 들고서 다시 군막으로 나갔다.
* * *
얼마 후.
이의방은 부장들의 도움으로 말 위에 올라타, 나머지 군사들의 상태를 보고 받았다.
“흥위위 군영 총 군사 1만 2천 전원 이상 무! 보병 7천, 궁수 3천, 기병 2천, 지원 병력 4천 전원 이상 무! 부상병 총 8천 9백 24명! 전사자 4천 6백 71명!”
“다음.”
“흥위위 보급 군량 전원 이상 무! 최대 석 달 버틸 수 있사옵니다! 다만 약재가 턱없이 부족 하옵니다!”
“그 정도면 되었다. 개경에 입성하는 대로 전 군사는 충분히 치료를 받고 쉴 수 있게 할 것이다. 의원들의 수는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여 부상병들을 살피도록 하라! 모든 게 정리되면 논공행상(論功行賞)을 열 것이다! 알겠느냐!”
“예! 위위경!”
부장들은 큰소리로 외쳤다.
“수기를 높게 들어라! 대열을 갖추어라!”
천시호가 소리쳤고, 부장들 역시 소리치면서 대열을 갖추어 가기 시작했다.
“대장기를 드높여라! 위위경이시다!”
깃수들이 흥위위 깃발과 고려 깃발을 치켜 세웠고, 대장기는 더욱더 잘 보일 수 있도록 중앙에서 높게 들어 올리었다.
수기 글귀가 어두운 날에도 다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불빛도 환하게 밝혔다.
“전군! 나를 따르라!”
이의방은 크게 외치면서 말을 타고 앞으로 나아가자, 부상병을 제외한 전군이 이의방을 따라 개경으로 입성하기 시작했다.
두웅! 두웅! 두웅!
이의방이 개경 입성을 알리는 북을 쳤다.
“추웅! 추웅! 추웅!”
정중부와 대치중인 흥위위 전군이 충이라 외쳤다.
장졸 모두 다 충이라고 외치니, 이의방이 살아있음을 개경 천지에 알리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의방과 군사들은 북문을 통과해 개경으로 들어섰다.
“추웅! 추웅! 추웅!”
장졸들의 외침에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드높이 월도를 치켜세우자, 군사들은 소리를 멈추었다.
“용호군 대장군 이의민, 그 휘하장수들이 위위경께 인사드리옵니다! 추웅!”
“추웅!”
“응양군 상장군 두경승, 그 휘하장수들이 위위경께 인사 올리옵니다! 추웅!”
“충!”
장수들이 군례를 올리자,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시가지 전투를 미리 준비해 놓은 듯 철벽처럼 수비진을 짜놓은 정중부와 그 일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뒤로는 황궁이 보였고, 가족들도 함께 있었다.
속에서 부글부글 끌어 오르는 분노.
하지만 가족들이 있다고 해서 발목이 잡힐 수는 없는 법이었다.
“하하하! 오랜만입니다! 문하시중! 그리고 정균… 자네의 칼은 내가 아주 잘 받았네!”
“닥쳐라! 이 역적놈!”
정균은 이의방에게 역적이라며 소리쳤지만, 이의방은 아주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정중부에게 소리쳤다.
“문하시중! 너무 성급하였소이다! 내가 겨우 그깟 칼에 죽을 줄 알았소!? 이 벽상공신(壁上功臣)인 나, 이의방의 목을 그리 쉽게 가져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였던 것이오? 무장이라는 자가 치졸하게 독을 쓰다니… 비열한 인사 같으니라고! 퉷!”
정중부에게 모욕을 주며 침을 뱉는 이의방이었다.
“…….”
“내 한 가지 더 알려 줄 게 있소이다! 나를 배신하고, 나를 죽이려 하였으니… 나도 그에 대한 보답은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말이오.”
정중부와 정균은 예상치 못한 듯 살짝 당혹스러운 얼굴이었다.
“해주 전체에 개미 새끼 한 마리 남기지 않았소이다. 하하하하하!”
이의방은 크게 웃었다.
“해주정씨의 씨를 말렸다는 소리다!”
“저, 저놈이!”
“이의방, 네놈의 가족들도 도륙을 내주마!”
“정균아, 어디 한번 해볼 테면 해 보거라! 내 눈앞에서 어디 한번 해보란 말이다! 지금 당장!”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조원정, 석린, 이영진이 경대승에게 추포(追捕)되어 있었다.
현재 황궁에 응양군이 버티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였던 정중부, 정균 그리고 장수들은 차마 이의방의 말처럼 할 수가 없었다.
경대승이 응양군을 이끌고서 황궁 북문 밖에서 경계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경대승은 정중부, 이의방 양측 어디에도 끼지 않겠다는 자신의 입장을 밝히며 황실만을 지킬 것을 주장하였다.
이렇다 보니 황실에 들어가 있던 이의방의 가족 대부분은 완전히 살아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준의, 이린, 이거 형제들 역시나 안전한 곳에 피신한 상태라 찾기도 난처하였다.
‘결국 여기서 끝나는 것인가?’
속으로 생각하는 정중부.
하지만 이 싸움을 이리 쉽게 끝낼 수는 없었다.
“위위경, 오늘 둘 중 하나는 무조건 끝이 나야 할 거 같네!”
“하하하하!”
이의방은 크게 웃었다.
정중부의 의미를 알았다.
이걸로 끝을 내자는 의미였다.
정중부와, 이의방 양측 모두 이게 마지막 싸움이 되리라 생각하였다.
문짝, 수레, 솥 할 거 없이 전부 다 끄집어내어서 방벽을 만들었고 목책도 설치하여 완강하게 버틸 준비를 마친 정중부였다.
재정비를 마친 정중부는 이번에는 쉽게 물러나지 않으려 했다.
이의방은 말에서 내렸고, 군사들을 바라봤다.
아직까지 자신을 믿고 있는 장졸들이었고, 그런 장졸들을 본 이의방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몸을 돌려 정중부 진영을 바라보았다.
약 50보밖에 안 되는 거리였지만, 정중부도 함부로 활을 쏘지 않고 있었다.
목책에 방패를 설치하고 전방에는 방패 수들이 막고 있으니, 쏜다고 하더라도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달려 들어갈 때 쏴야 함을 알고 있는 정중부였다.
쉬워 보이지 않을 싸움이었다.
“위위경, 소장 이광정…….”
퍼억!
이광정이 나타나자마자 바로 따귀부터 날리는 이의방이였다.
“네 이노옴! 이광정!”
“위, 위위경! 소, 소… 소장은! 정중부가 협박하는 바람에!”
빠악!
이의방이 이번에는 발로 정강이를 힘껏 차버렸다.
“으억!”
정강이를 부여잡은 이원정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펄쩍펄쩍 뛰었고, 이의방은 군사들을 보며 명을 내렸다.
“나를 배신한 자는 죽음뿐이다. 끌고 가 목을 베라!”
“예! 위위경!”
이의민은 이광정을 끌고 갔다.
이광정은 끌려면서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렀지만, 이의방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광정의 사병들과 군사들은 겁에 질렸다.
배신자를 단칼의 잘라 내버린 이의방.
그가 자신들도 죽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지금 이의방에게 칼을 들이대었다가는 개죽음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병들과 군사들은 그저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있었다.
“박존위.”
“예. 위위경.”
“이광정의 사병과 군사들은 자네가 직접 지휘하게.”
“명! 받들겠사옵니다!”
이의방의 말에 박존위는 군례를 올리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퍼억!
한쪽에서 무언가를 도끼로 내려찍는 소리가 들렸다.
이의민이 이광정의 목을 잘라 버린 것이었다.
얼마 후, 이의민이 이광정의 목을 잘랐다며 수급(首級)을 들고 와 보여주었고, 이의방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의민은 이광정의 사병들에게로 목을 던졌다.
“히이익!”
“으어어…….”
사병들은 목이 잘린 이광정의 목을 보며 기겁을 하였다.
한마디로 배신하면 이광정처럼 죽여 버리겠다는 이의민의 압박 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