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화
턱! 턱! 턱!
군사들이 발 빠르게 집결하고 있었다.
각 성곽 자리에 올라서자, 군사들을 지휘할 준비를 하는 장수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아…….”
고득시는 한숨을 내쉬었다.
수많은 저 군사들을 죽여야 한다는 상황이 착잡한 듯하였다.
같이 밥 먹고, 같이 자고, 같이 지내었던 동료들이 일순간 적이 되어 버린 것이 비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어찌 되어가고 있소.”
박존위가 와서 물었다.
“잘 되어갑니다. 장군은요.”
“나 또한 잘되어 갑니다. 그나저나 선봉은 누가…….”
“위위경께서 정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우리야 뭐… 위위경의 명령에 사는 이들이니… 안 그렇습니까.”
“하하하하! 맞는 말씀입니다.”
장수들이 고득시 주위에 붙어서 일제히 북문을 보고 있었다.
“저기… 정균이 보이네.”
“그러게 말입니다.”
저벅저벅.
두경승과 이춘부가 왔다.
“오셨습니까. 두 상장군.”
“위위경께서는 다들 알다시피 일어나실 수 없는 상황이니, 내가 대신 지휘를 명 받았네.”
“예. 명을 내리시지요.”
고득시는 이의방의 명령이라는 말에 토 하나 달지 않고 명을 내리라며 답하였다.
“일단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본다면 충차는 없고, 사다리가 대부분이네. 능선을 타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지. 따라서 우리는 무조건 성벽을 타야 하는데, 우선 낮에는 간을 보며 공격하다가 저들이 지치면 우리가 성벽을 타고 넘어가서 성문을 열도록 하지.”
“쉽지 않을 겁니다. 되겠습니까?”
돈장이 말하자, 두경승은 고개를 저었다.
“쉽지 않을 것이네. 누가 내 말대로 성벽을 타고 올라가 성문을 열겠는가. 자칫하다가는 개죽음일 수도 있는데.”
“내가 올라가지.”
“자네가?”
이의민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어이, 부장.”
이의민은 시선을 돌려 부장을 불렀다.
“예! 대장군!”
“지금 한때 절벽 좀 타봤다거나, 아니면 성벽 오를 자신 있는 놈들로 한 오십 명만 준비시켜라.”
“예! 대장군!”
부장은 군례를 올리고서 몸을 돌려 급히 이동하였다.
“두 상장군, 저쪽도 만만치 않게 준비하였을 것인데… 어떻게 성문을 공격할 것인지 설명 좀 해주시오.”
이의민에 말에 두경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공격하기는… 북문만 때려야지.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 방법밖에는 없어.”
고득시가 말하였다.
두경승 역시 고득시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보았다.
자신도 고득시와 생각이 같았으니 말이다.
“답이 나왔네.”
“간단하네요.”
돈장은 피식 웃었다.
같은 자리에 있는 이들 모두가 같은 군 출신에 심지어는 나이대도 비슷해서 계급이 아무리 대장군이든 장군이든 간에 서로를 편안하게 대하였다.
다 같이 개고생해서 올라올 수 있을 만큼 올라왔으니, 높고 낮음의 구분 따위는 이들 누구도 원치 않았다.
존대하고 싶으면 하고, 편히 하고 싶으면 하는 게 이들의 방식이었다.
“자, 슬슬 시작하자고.”
이의민은 몸을 돌아서서 소리쳤다.
“흥위위의 전력을 보여 줘라!”
“추웅! 추웅! 추웅! 추웅!”
군사들은 충이라고 외치며 사기를 드높였다.
수만의 흥위위의 군세는 10만 이상의 군사력과 비교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이의방이 흥위위 군에 얼마나 힘을 쏟아부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러하니 누가 대체 이의방을 쉽게 건드릴 수 있겠는가.
이의민이 도끼를 번쩍 들어 올리자, 군사들은 충하던 소리를 멈추었고, 이의민은 다시 몸을 돌려 말 위에 올랐다.
다른 장수들 또한 역시나 말 위에 올라탔다.
“내가 2령과 경주에서 함께 온 군사를 가지고 선두 공격하겠네.”
“2차로는 내가 하지.”
“3차로는 제가 하죠.”
“마지막은 소장이 하겠소.”
이의민, 고득시, 이영령, 박존위, 돈장, 두경승, 이춘부 순으로 나누었다.
각 2령씩 총 1만4천을 이끌고 공격하겠다는 소리였다.
물론 수적 열세는 있겠지만, 후방에서 궁수들이 엄호한다면 보병들은 최대한 바짝 붙을 것이고 사다리를 놓을 수 있을 것이다.
“알아서들 치고 빠지자고.”
이의민은 그렇게 이야기하고는 자리를 옮겼고, 다른 장수들 역시 자리를 옮겼다.
* * *
한편.
군영 안에서 아직 누워있는 이의방은 밖에 사정이 어떠한지 궁금했지만, 아직 일어설 수 없는 관계로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천 부장.”
“예. 위위경”
“밖에 상황을 좀 알고 싶구나.”
“예. 알겠습니다.”
천 부장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군영 밖으로 나갔다.
의원들은 아직도 이의방의 다리 치료에 전념하고 있었다.
이의방이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성안에 있을 가족들은 무사할지 걱정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먼저 떠오르는 이는 태자비였다.
그러다 보니 깊은 한숨이 나왔고, 의원을 바라보며 물었다.
“얼마나 이러고 있어야 하나?”
“좀 더 계셔야 할 듯합니다만…….”
“그러니까… 얼마나 더 이러고 있어야 하느냐 이 말이네.”
“적어도 두세 달 정도는…….”
“…뭐야?”
두세 달이라는 소리에 할 말을 잃었다.
그만큼 깊게 찔렸으니, 어찌보면 당연했다.
이를 믿지 못한 이의방이 애써 일어서보려고 하였으나,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지 않았는가.
그걸 경험한 이의방으로서는 의원을 죽인다고 한다고 하더라도 일어나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인지라 아예 포기하였다.
“알겠으니… 완치만 시키게.”
“여부가 있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의원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였고, 이의방은 두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청하였다.
* * *
한편, 각자 자리로 돌아온 장수들.
이의민은 부장들을 바라보며 명을 내렸다.
“성 위에 가장 먼저 오르는 놈에게 가장 큰 상을 내릴 것이다. 알겠느냐!”
“예! 대장군!”
“장졸들 가리지 말고 무조건 오르기만 하거라.”
“대장군…….”
“무슨 일이냐.”
“대장군께서 말씀하신 대로 따로 준비를 시켜 두었습니다만.”
“대기시켜라.”
“예! 대장군!”
부장은 다시 위치로 돌아가고, 이의민은 말머리를 돌리었다.
다그닥, 다그닥.
천천히 말을 타고 앞으로 나아가자, 부장들과 군사들 역시 이의민의 뒤를 따라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에 따로 편성한 궁수들이 빠르게 나아가 자리를 잡자, 또 다른 군사들이 목책에 방패를 덧씌운 것들을 들고나와 궁수들의 옆에 섰다.
목책은 하나의 방벽으로 만들어졌다.
두웅! 두웅! 두웅!
북소리가 울려 퍼지니, 북문 성곽 쪽에서도 조금 더 군사들이 보강되어 가는 게 보였다.
절대 문을 내어 주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주는 정중부였다.
이를 본 이의민은 도끼를 꽉 부여잡았다.
“전군! 공격하라!”
와아아아아아!
군사들이 일제히 북문으로 돌격하고, 궁수들이 화살을 성곽으로 쏘아대기 시작했다.
화살이 빗발치는 상황에서도 정중부 측 역시 매섭게 화살 공격을 퍼부어 대었다.
방패를 든 보병들은 얼굴을 가린 채로 사다리를 들고서 달려가 성벽에 붙었다.
퍽!
퍼퍼퍼퍽!
사다리를 가지고 달리던 군사들이 화살을 맞고 쓰러지자, 뒤따르던 군사들이 대신 사다리를 잡고서 달려갔다.
“올라가!”
부장의 외침에 성벽에 딱 달라붙었던 군사가 곧장 사다리 위로 올라가면서 동시에 사다리가 고정되었다.
턱! 턱!
사다리가 성벽에 단단히 걸쳐지자, 사다리에 올라갔던 군사들은 재빠르게 성곽으로 올라가서 정중부의 군사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곽의 군사들도 만만치가 않았다.
푹!
창에 찔린 군사는 그대로 성벽 밑으로 추락했다.
하지만 그들은 단지 사다리를 연결해 최대한 시간을 끌어준 존재들이었다.
그 뒤에 군사들이 빼곡히 사다리를 부여잡고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막아라! 공격하라!”
“통나무를 굴려라!”
“기름을 부어라! 항아리를 던져라!”
성곽의 장수들이 명령을 내리면서 지휘를 하였고, 자신들의 검과 창, 월도, 둔기 등으로 찌르고 베면서 올라온 군사들을 떨어트렸다.
쾅!
쿠르르르!
사다리로 내던진 통나무가 굴러떨어지면서 사다리에 올라탔던 군사들을 삽시간에 무너트렸다.
“공격하라!”
와아아아아아!
고득시, 이영령의 군 역시 돌격하더니, 이의민의 군대를 돕기 시작했다.
궁수들을 보호하는 목책 또한 보병들이 들고 뛰기 시작하자, 궁수들도 목책 뒤에 숨어 따라 뛰었다.
보병이 목책을 한곳에 두자, 궁수들은 그대로 몸을 낮추어 기회를 보며 화살을 다시 퍼부어 가기 시작했다.
“이랴아앗!”
이의민은 말을 타고 성벽까지 내달리다가 곧장 내려서는 사다리를 타고 잽싸게 올라갔다.
순식간에 성곽으로 착지하며 성곽 위에 있는 군사들에게 도끼를 휘둘렀다.
부웅!
퍼퍼퍽!
퍽!
도끼날로 복부와 등을 가격하고, 도끼 뒷부분으로는 머리를 가격하면서 성곽 곳곳을 누비며 군사들이 올라올 수 있도록 길을 터주기 시작했다.
“모조리 죽여라!”
성곽으로 군사들이 하나둘씩 성곽에 착지하면서 북문을 장악해 가는 듯 보였다.
와아아아아!
양옆에서 군사들이 떼 거지로 몰려오는 게 보이자, 이의민은 이를 다물고서 왼편으로 달려 들어갔다.
“이야아아아!”
빠아악!
퍼억!
도끼로 군사의 머리통을 찍어버리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서 도끼를 빼어 들었다.
적들을 무참히 죽여 가다가 이의민 주변에 수가 점점 많아지자, 다시 사다리에 몸을 맡긴 채로 굴러떨어졌다.
“올라가라!”
이의민이 벌떡 일어나서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조금만 더 있었다면… 아니, 조금만 더 버텼다면 성곽 아래로 내려가 성문을 열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쨍그라앙!
곳곳에서 항아리가 깨지기 시작하고 펄펄 끓는 기름이 쏟아지자, 이의민은 뒤도 안 돌아보고 냅다 뛰며 소리쳤다.
“기름 항아리다! 기름이다!”
기름이라면서 소리치자, 돌격하던 군사들은 멈추었지만, 뒤에서 밀려드는 군사들을 통해 밟혀 죽거나 다치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이에 성곽에서 횃불을 던지며 불을 붙이자, 미처 피하지 못한 군사들은 몸에 불이 붙어 발버둥 쳐가며 타죽어갔다.
“이런! 젠장!”
이의민은 뒤를 곳곳에서 불에 타 죽어가는 군사들을 보고 소리쳤다.
이미 늦었다.
전초는 정중부의 승리로 돌아갔고, 어느 군사들도 성벽에 붙지 못하였다.
시체들과 군사들이 타 죽어가면서 연기와 불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보통 일반기름과는 다른 맹화유(猛火油)였기에 쉽게 불이 잡힐 기미는 보이지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