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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천하의 주인-31화 (31/159)

031화

쿠웅!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부장은 그대로 주저앉았고 가지고 온 밥 역시 떨어트렸다.

“사, 상장군… 살려주십시오…….”

늘 보던 얼굴, 응양군의 부장이었다.

“떨 거 없다.”

이춘부가 부장에게로 다가갔다.

“괜찮으냐?”

“예? 아, 예에에…….”

이춘부는 넘어진 부장을 일으켜 주었다.

“너는 그저 우리에게 밥을 주러 왔고, 들어와 보니 이런 상태였다고 고하거라.”

“…예?”

부장은 침을 꿀꺽 삼키었다.

“그래야 네가 덜 다친다. 알겠느냐?”

“아, 예… 대장군… 저 허면… 어디로 가시는지…….”

“글쎄다. 그건 못 가르쳐주겠다.”

이춘부는 미소를 지으며 부장의 어깨를 툭 쳤다.

“가세나.”

“예. 상장군.”

“잘 부탁한다.”

“수고하게.”

“예. 소장 전존걸 명을 따르옵니다.”

군례를 올리며 부장은 고개를 숙이었고, 두경승과 이춘부는 뒤로 돌아섰다.

“뒷문으로 가시옵소서. 그곳이 그나마 경계가 덜하옵니다. 또한 일각에 한 번씩 군사들이 교체되니, 그 점만 알아주시옵소서.”

“고맙네.”

이춘부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두경승과 함께 뒷문으로 향하였다.

끼익.

살짝 문을 열어서 주위를 살핀 후에 두경승이 먼저 밖으로 나가고, 이춘부가 다음으로 나왔다.

“전존걸의 말이 맞는 듯합니다. 전반적으로 경계가 허술합니다.”

“자네 혹시 위위경의 위치를 아는가?”

“고득시 장군이 지금 북문에서 군영을 설치했다 합니다. 그쪽으로 가보는 게…….”

“북문이라… 이거 어렵겠구먼. 능선을 타야 하나?”

“일단 능선을 타세.”

“예. 상장군.”

이춘부와 두경승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 * *

“뭐라… 지금 뭐라 하였느냐! 정중부가 일이 끝나는 대로 들르겠다고 하였느냐?!”

태후는 기가 찼다.

정중부의 거만함이 이 정도이다.

이제 황실은 허수아비에 불과 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만약 이의방을 정말로 제거를 한다면 후의 방향은 뻔했다.

“태후마마, 어찌하옵니까.”

“어찌하기는 나를 이리 감금을 해놓았는데 방법이 있겠는가… 최상궁이라도 지금 태비의 거처로 가서 동태를 살펴보도록 하게.”

“예. 태후마마.”

최상궁은 다시 태후전 밖으로 나갔다.

태후는 어지러움에 이마에 손을 얹었다.

왜 이런 상황까지 온 것인지.

대체 어디서부터가 잘못된 것인지.

만약 시간을 돌리고 싶다면 되돌리고 싶었다.

선황제가 간신들을 품기 그 전으로… 아니, 인종이 살아 있었을 때로 말이다.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선황제의 책봉을 죽을힘으로 반대를 했을 것이다.

“열성조들이시여,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

“문을 열거라!”

그때 밖에서 황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럴 수는 없사옵니다. 폐하. 문하시중께오서…….”

“네 이놈! 황제인 내가 어머니를 뵈러 오는 데 있어서도 문하시중의 명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냐! 네 놈에게는 황제가 위더냐, 문하시중이 위더냐!”

황제의 호통 소리가 태후전을 울려 퍼졌다.

“들어가시오소서. 폐하.”

끝내 부장은 고개를 숙이며 길을 비켜 주었고, 황제는 신을 벗고서 태후전으로 들어갔다.

현재 황제도 태후도 모든 이들에게 있어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 버렸다.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였던 황제의 위엄은 사라진 지 오래이며, 이제는 개나 소나 쳐다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태후마마, 소자이옵니다.”

“들어오세요…….”

안에서부터 힘없는 태후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이에 내관이 곧장 문을 열자, 황제는 안으로 들어갔다.

“태후마마, 괜찮으시옵니까?”

“하아…….”

태후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그걸 황제도 그걸 아는지 차마 태후의 얼굴을 볼 수가 없어 시선을 회피하며 말하였다.

“부디 조금만 견디시옵소서. 소자가 곧 처리할 것이옵니다.”

“무엇을요. 무엇을 황제가 처리를 한다는 말입니까. 정중부는 이제 황실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었어요. 황제의 말도 듣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태후의 말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황제였기에 태후전에라도 온 것이었다.

안전하다고 안심을 시키려고 말이다.

그러나 태후도 이미 상황을 알고 있는지 가망이 없다는 말만 할 뿐이었고, 황제는 이런 나약한 황제인 자신이 싫었으나, 어찌하랴.

무신들이 세운 자신이기에 힘이 없는 허수아비 황제나 다름없었다.

이를 알고 있었음에도 애써 모르는 척을 했다.

이의방이 있었을 때까지만 하여도 황제의 위엄과 권위는 지켜주었는데 말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이의방이었지만, 자신 앞에서는 깍듯이 대한 이의방이 오늘따라 보고 싶었다.

그리고 내심 이의방이 돌아오길 바랐다.

무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이 사실을 누구에게 말하리오.

혼자서 그냥 끙끙댈 수밖에는 없었다.

“소자, 기필코 황실의 위엄을 되찾을 것이옵니다.”

“되었소이다. 이리된 마당에 무슨 황실의 위엄을 찾는단 말이오.”

완전히 끝이 났다고 생각한 태후였다.

“지킬 수 있다면… 태자비와 황제의 목숨을 지키시오. 그렇게 해서라도 맥을 이어가란 말이오. 황실을 우선시하고, 웃어른을 공경하는 태자비는 이의방의 딸치고 참한 태자비요. 그러하니, 부디 태자비는 버리지 마시구려…….”

태후가 신신당부하자, 황제는 고개를 숙이며 몸을 돌아서 곧장 밖으로 나갔다.

꼭 마지막 당부 같았다.

“하아…….”

문을 열고서 안에서 나온 황제는 내관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속히 문하시중을 대전으로 들라하라.”

“예. 폐하.”

황제는 그렇게 명을 내리며 자신 또한 대전으로 향하였다.

* * *

며칠 후.

“위위경.”

이의민이 군영 안으로 들어왔다.

“이 대장군!”

털석!

갑옷과 얼굴에 말라비틀어진 피가 보였다.

“괜찮으시옵니까?”

“괜찮아. 그나저나 대장군 몰골이 말이 아니구만.”

“명 하신 대로 해주에서 깔끔하게 다 쓸어버렸사옵니다.”

“뭐…? 쓸어버렸다니… 정씨들 말인가?”

“그냥 다 죽여 버렸사옵니다.”

“…….”

해주 정씨들만 죽이라고 했더니, 해주 전체의 사람들을 몰살을 시켜 버렸다는 말을 하는 이의민에 이의방은 당혹스러웠다.

죄가 없는 사람들을 다 죽여버렸다니.

이건 좀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었다.

“해주에 개미 새끼 한 마리 남기지 않았사옵니다. 이제 위위경에게 도전을 하면 어찌 되는지 톡톡히 알게 될 것입니다.”

“아, 그건 그렇지만… 그래… 잘했어! 잘하였어! 하하하하!”

이의방은 크게 웃었다.

어찌 되었든 해주 전체를 박살을 내버렸으니, 크게 한 건 한 셈이나 다름없었다.

“그래. 거기 상황은 어떠한가?”

“해주 관아 관리들과 군사들이 시신들을 처리하고 있을 것이옵니다. 별거 없사옵니다.”

“음… 그래. 그렇게 해야지. 그래도 백성들이었으니… 장례나 잘 치러줘야지 않겠는가.”

“물론이옵니다. 안 그래도 해주 관아에 말을 해놓고 왔습니다.”

“고생했네, 고생했어!”

이의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었다.

“그나저나… 다리는 어떠시옵니까?”

“많이 좋아졌어.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걱정하지 말게. 정작 성안에 있는 가족들이 걱정이야. 자네 가족도 그렇고, 여기 있는 장수들의 가족들도 그러하고…….”

“죽는다고 하더라도… 그 복수를 하면 되는 것이옵니다. 심려치 마시옵소서.”

“…….”

이의방은 이의민의 말에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의민은 자신의 명이면 무엇이든지 다 했다.

폐주 때도 그러했고, 이번도 그랬다.

다만 해주에 관한 일에 대해선 조금 도가 벗어난 듯한 생각이 들었다.

“소장은 위위경께서 오랫동안 소장과 식솔들을 챙겨주신 것만 생각하오면 백골이 난망이옵니다. 앞으로도 위위경의 말씀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할 것이옵니다. 저 북문으로 홀로 뛰어가 부숴 버리라고 하시오면 소장은 뛰어가서 맨손으로라도 성문을 부숴 버리겠사옵니다.”

“하하하하.”

이의방은 이의민의 말에 웃었다.

역시 자신의 최고의 수하다웠다.

펄럭.

“이 대장군! 돌아오셨습니까!”

“고 장군! 잘 있었나!?”

“물론입니다.”

“아하하하하하!”

위위경의 막사 안으로 장수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로써 이의방의 5인방이 모두 모였고, 흥위위 또한 전군이 집결하였다.

이제 개경을 공격하는 일만 남은 것이었다.

“장군!”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돈장이 물었다.

“무슨 일이냐?”

“응양군 상장군과 대장군께서 오셨사옵니다.”

“뭐라!?”

돈장이 놀란 얼굴로 이의방을 바라보자,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뫼시어라!”

막장이 걷히자, 몰골이 말이 아닌 상태의 두경승과 이춘부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 둘은 이의방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이었다.

“아니, 윽!”

이의방이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려고 하자, 통증이 밀려오며 다시 자리에 주저 앉았다.

“위위경!”

“괜찮아… 두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몰골이 왜 그래…….”

맨몸으로 싸우며 여기까지 온 것인지 두 사람은 성한 곳이 없었다.

“박장군, 의원을 불러와.”

“예! 위위경!”

박존위는 곧장 막사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두경승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정중부가 어떻게 황실을 장악하고 있고, 지금 가족들의 상황이 어떠한지, 더불어 태자비 또한 위험하다는 사실까지 모두 말했다.

또한 오면서 본 군에 배치 상황과 북쪽 능선에 정균이 군을 배치하였다는 사실 또한 모두 거짓 없이 이의방에게 말하였다.

“그래도 다행이야. 이리 살아서 여기까지 와주어 말이야. 고맙네… 두 상장군… 그리고 이 대장군도 고마워.”

두경승과 이춘부는 고개를 숙이었다.

“지금 무엇보다 두 상장군이 개경에 사정을 자세히 알 것이니, 어떻게 개경으로 들어갈 것인지 의논하여 준비들 하게.”

“예. 그리하겠사옵니다.”

졸지에 두경승이 대장이 되어 버린 상황이다.

개경을 공략하고 정중부를 잡을 계획을 짜기 위해 두경승을 필두로 하여 장수들 모두 밖으로 나갔다.

“두 상장군, 의원에게 일단 상처부터 보이게!”

“예! 위위경!”

안에서 들려온 이의방의 목소리에 두경승은 대답하며 자리를 이동하였다.

* * *

이틀 후.

부우우우우! 부우우우우우!

개경.

황궁에서 소라 나팔이 울려 퍼지는 소리가 들리자, 황제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내관, 밖에 무슨 소란인지 알아보고 오너라.”

“예. 폐하.”

내관은 급히 밖으로 나갔다.

두웅! 두웅! 두웅!

북소리마저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다.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듯 밖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자, 황제는 불안에 떨어야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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