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화
할아버지가 직접 약초 사업에 뛰어들면서 기반을 닦아 나가다 아버지 대에 이르러 사업이 번창하게 되었다.
진행하는 사업은 매번 성공적이었다.
그로 인해 아버지 대에는 2차 병원급에 해당하는 병원을 2개를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회사를 더욱더 크게 불려 나가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아버지는 인삼 재배하는 농장을 12만 평의 대지를 가지고 있다.
인삼을 활용해 각종 환약을 만들어 시중에 쉽게 누구든지 복용할 수 있게 했다.
그 외에도 감자환, 양파환, 오미자환, 가시오가피환, 인진쑥환 등 여러 가지를 준비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국내에서 누구나 알 정도의 회사가 되어버렸다.
한마디로 나는 한국에서 나름 금수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에게 대대로 이어져 왔던 독초를 법제하는 방법을 배워왔다.
평일에는 학교에 다니며 지내다, 금요일 날 차를 타고 내려와서 부모님 직원분들의 일 도와 드리면서 지내왔다.
게다가 그 일대 산지와 평지를 모두 사들였기에 아무 때나 약초 캐고 싶으면 캐러 올라가면 그만이었다.
그렇다 보니, 나의 인생 자체가 자연인 라이프였다.
이제는 웬만한 독초와 독사의 독에 내성이 생겨 물리거나 만져도 쉽게 독이 퍼지지 않는 몸이 되었다.
그러던 중 그날 아버지가 약초를 캐오라고 해서 산에 혼자 올라갔다가 사고를 당하였다.
너무 이른 시간 나간 게 탈이었다.
이슬이 맺히고 땅이 미끄러울 때, 그때는 항상 조심하라고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누누이 말씀하셨지만, 나는 오늘따라 귀찮아서 빨리 약초만 후딱 캐고 내려오면 괜찮을 것이라 방심하였다.
내려와서 씻고 밥 먹고 역사 공부를 조금 하다가 졸리면 자려고 했더니.
기어이 사고를 당하였다.
발을 잘못 디뎠다가 쭉 미끄러지며 굴렀고, 정신 차려 보니 고려였다.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아… 내 방학…….”
“응…? 뭐라고 했나……?”
이곳에는 방학이라는 말이 없다는 것을 알고서도 방학이라는 말이 나왔다.
“네? 아, 아니에요…….”
나는 의원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네 은근히 강골이구만.”
“…네?”
“그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도 뼈 하나 부서지지 않았어. 아주 강골이야. 강골.”
“아, 네… 고맙습니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강골.
오래전부터 들어왔던 소리다.
다른 학교 애들이랑 싸워도 전혀 다치거나 하는 일이 없어서 생긴 별명이었다.
“후우…….”
자연스럽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제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앞이 캄캄했다.
‘고려라니…….’
자신이 어떻게 고려에 오게 되었는지도 몰랐다.
천문학자도 아니고 별, 달 이딴 거는 더욱더 알 수 없었다.
‘미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뜩 들자, 고개를 저었다.
덜컹.
방문이 열리자,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군…….”
‘장군?’
갑옷을 입고 허리에 검을 패용한 채 들어온 장수를 바라보았다.
대략 사십 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장수.
그는 그날 저녁에 본 사람이 아니었다.
“네 이놈! 어서 일어나지 못할까. 서북면병마도사이시다!”
“아, 되었어…….”
우학유는 옆에 부관에게 되었다는 말과 함께 자리에 앉아서 청년을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몸은?”
“괘, 괜찮습니다.”
“음… 그래. 다행이구나.”
“…….”
무언가 긴장이 되었다.
혹여 허리에 찬 검을 빼 들어 자신을 죽이면 어떡할까.
순간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허허, 그날 얼마나 놀랐는지 아느냐?”
“…….”
“그날 기억 안 나느냐? 그날 자객으로 오해를 받은 것 말이다.”
우학유의 말에 아차 싶었고, 침을 꿀꺽 삼키었다.
정말 그날 죽지 않을게 신기할 정도였다.
“아무튼 네 목숨은 위위경께서 살리신 목숨이니… 위위경께 평생 충성을 다하거라.”
대뜸 충성을 다하라니.
이게 무슨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지 이해를 못 한 나였다.
“저… 위위경이라니… 그분이 누구시죠?”
“이의방이시다. 위위경 또는 섭장군이라고 부르고는 하는데…….”
“잠깐만요… 이의방이요……?”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이름 이의방.
무신정변(武臣政變)의 주도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때 만난 사람이 이의방이라니 놀라웠다.
아니 충격이었다.
지금이 고려이고, 이의방이 살아 있을 때라면 허수아비 황제 명종이 집권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의방 그가 최고 실권자라는 것이었다.
학교에 다니면서 국, 영, 수는 평균이었지만, 역사 공부는 나름 틈틈이 해온 나로서는 현재 시대를 추측해볼 수 있었다.
고려… 정확히 따지고 본다면 무신정권 초기였다.
그렇다면 이의방은 곧 죽는다.
역사가 그렇다.
그런데 이상한 건 여기는 개경이 아니었다.
왜 개경이 아닌 이곳에 이의방이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조위총의 난까지 생각한다면 더욱 앞뒤가 맞지 않았다.
나는 도무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머리를 싸매야 했다.
“흠…….”
우학유는 깊게 생각에 빠져 버린 청년의 모습을 보고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당장 말을 꺼내기 딱 곤란한 상황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의원.”
“예. 장군.”
“내 다시 올 테니, 청년을 좀 자세히 살펴주게.”
“아… 예. 알겠사옵니다.”
우학유는 고개를 끄덕인 뒤,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허허, 이야기하다가 생각에 빠져 버리는 녀석이라니… 그래도 생각이 깊은 녀석인 것으로 보아 위위경께 도움 꽤 되겠구나…….”
우학유는 미소를 지었다.
* * *
얼마 후.
“흠…….”
생각해보니, 뭔가 맞지 않는 것이 확실해졌다.
이의방은 진작 죽었어야 하는 게 정상이고, 북방에 나와 있는 게 비정상인 상황이었다.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다 패배하여 개경으로 돌아가다가 개경에서 정균에게 살해당하는 것이 맞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이의방은 멀쩡하게 살아 있다.
‘자신이 이쪽 고려라는 곳에 착지하고 나서부터 역사가 뒤집어진 건가?’라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해보았다.
만약 그렇다면 여간 문제가 아니었다.
“이보게… 꿀물이라도 마시게.”
“아! 고맙습니다!”
의원이 준 사발을 받아 들고서 나는 그대로 꿀물을 들이켰다.
“캬! 달다!”
“하하하하.”
의원은 작게 웃으며 사발을 다시 받아들고서 상위에 올려두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였는가?”
“아… 네. 현재 제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좀 알고 싶었습니다.”
“어떤 상태이긴… 아픈 상태지.”
“아, 어르신… 그 위위경이라는 분 말입니다. 평양을 지나온 건가요? 아니면 평양을 가고 계신 건가요? 그것도 아니면… 혹시 여기가 개경인가요?”
이의방이 살아 있는 경우의 수를 모두 의원에게 토해내듯 질문했다.
“허허… 이 사람 머리를 제대로 다쳤구먼… 서경은 이미 지나온 지가 언제인데. 그리고 여기는 안 북부일세. 안주라고…….”
“안주…? 안 북부……?”
다시 머리를 돌리며 빠르게 판단하였다.
자신은 굴러떨어지면서 안 북부 즉, 서경의 위 지역인 안주에 착지 한 것이었다.
또한 착지한 지점에서 우연히 이의방을 만나게 되었으며, 돌아가는 방법 따위는 모르고 또 왜 여기에 와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하하하하하!”
상황이 파악되자, 미친놈처럼 웃기 시작했다.
“허허… 이거 머리를 제대로 다친 모양이야.”
의원은 이상행동을 하는 유현수를 보며 혀를 끌끌 차고는 빨리 약을 준비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내가 고려라니… 내가 고려에 있다니…….’
“하하하하하하하!”
유현수는 계속해서 크게 웃을 뿐이었다.
* * *
그날 저녁.
조금 더 자고 일어났더니, 개운하다.
머릿속이 모두 정리가 된 듯 말이다.
덜컹.
방문이 열리면서 우학유가 안으로 들어서자, 사태파악이 되어버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그래. 아까보다는 더 좋아진 것 같구나.”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우학유의 말에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였다.
“앉거라.”
“예…….”
저자세로 나오면서 우학유의 권유대로 자리에 앉았다.
“그래… 몸은 어떻냐?”
“아주 개운합니다. 날아갈 듯합니다.”
“하하! 그거 잘되었구나! 이제 너는 나와 함께 위위경에게로 갈 것이다.”
“…예?”
갑자기 위위경에게로 간다니, 나는 당황스러웠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이의방을 만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수상한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위위경께서 네게 물어볼 게 많은 것 같더구나.”
우학유의 말에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 걸까.
머릿속에서 꾀가 나오지 않았다.
그냥 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네 가방 말이다.”
뜨끔!
가방을 봤다면 내용물도 다 보았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가장 친한 친구들을 제외한 다른 친구들에게는 절대 가방을 공개한 적이 없었다.
숨길 만한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좋은 게 있더구나. 하하하.”
“…….”
얼굴이 붉어지는 나는 당장 이불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하하하하하!”
우학유는 그런 나의 모습에 더 크게 웃으며 어깨를 툭 쳤다.
“아무튼 몸이 회복되었으니, 출발하자꾸나.”
실컷 웃다가 말하는 우학유에 나는 그의 뜻을 정중히 거절하였다.
“저… 죄송합니다만, 저는 못 갈 듯합니다.”
“응?”
“갑작스러운 데다가… 보시다시피 저는 고려 사람이 아닌지라…….”
“그게 무슨 말이냐. 옷은 이상하다고 하지만… 우리말도 할 줄 아는 게 고려인이 아니라니?”
험악하게 이야기를 하는 우학유의 표정에 뭔가 실수를 한 듯했다.
이에 나는 침을 꿀꺽 삼키었다.
“세작이냐?”
“예!?”
“세작이 아니라면 어찌하여 네가 고려인이 아니라는 것이냐.”
“어…….”
“하하하! 알겠다. 너무 당황스러워 그리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냐. 아직 나이도 어리니, 그럴 만도 하다. 내 이해하마. 그럼 이리하자. 위위경과 개경에서 만나는 걸로.”
“…네?”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건 아니다.
자신이 원하던 상황이랑 정반대로 일이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난 그냥 여기를 떠나고 싶었다.
아니, 어떻게 해서든 이곳을 벗어나서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상황이 정리는 되었지만, 적응하기는 너무나도 힘들었다.
“하아…….”
“이리하자. 갑이야…….”
덜컹.
방문이 열리면서 한 20대 초반의 남자가 들어섰다.
“예. 주인어른. 부르셨사옵니까.”
제법 무사다운 풍채를 보이는 청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