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화
의주, 귀주, 철주, 선주, 곽주, 서경 등에 있는 봉수대.
한시적으로는 총 한 개씩 밤에는 횃불로 아침에는 연기를 올린다.
평상시에는 한 개였지만, 전투 등 위급 상황일 때는 네 개를 올리었다.
이러한 봉수대가 산과 성에 곳곳에 있었다.
그렇게 하여 국경에 효율적으로 상황을 알릴 수 있었다.
“그래… 참… 봉수를 보면 폐주가 생각나. 옆에 있을 때 봉화를 거론한 게 폐주였는데…….”
봉수대를 보니, 폐주가 생각나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돌아섰다.
“하아… 이제 내려가세! 우리도 곧 이의민, 박존위가 도착하는 대로 의주에 진을 살펴보며 동북 면을 지나, 개경으로 갈 것이네.”
“아… 예…….”
김존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북면을 지나고 동북면을 지나서 개경으로 간다.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한 번이 아니라, 세 번.
아니, 열 번이고도 계속 국경을 살펴야 하였다.
꿈에서처럼 조위총이 반란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겨우 막을 수 있었다.
만약 그 꿈을 꾸지 않았더라면 똑같은 상황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조위총에게 패하고 정균에게 살해당하고.
꿈속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본 이의방은 한동안 군기감 앞에서 있었다.
* * *
이십일 정도 흘렀다.
살펴볼 건 다 본 후에 돈장은 이의방을 따라다니며 이의방이 보충해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말한 것들은 모두 적었다.
물론 지금도 열심히 붙어 다니며 적어가고 있었다.
“위위경, 찾아 계셨사옵니까.”
고득시가 인사를 하였다.
“그래. 자네에게 시킬 일이 있어.”
“예. 하명 하시옵소서. 위위경.”
“내가 서경에서 출발하여 6주와 각 마을, 진을 살피고 장성을 따라 북계를 지나 남하하여 개경으로 갈 것이니, 안주에서부터는 자네는 주위를 돌고 마을도 쭈욱 돌아보며 내 눈과 귀가 되어주게나.”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시 개경에서 보세.”
“예! 위위경!”
고득시는 고개를 숙이었다.
이의방은 한숨을 내리 쉬며 천천히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다.
이제 곧 이의민이 도착하는 대로 바로 서경을 출발하기 위해서였다.
“위위경!”
그때 한쪽에서 부장이 곧장 달여와 고하였다.
“용호군 대장군, 이의민께서 도착하였사옵니다.”
“그래? 가자!”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곧장 부장들을 대동하고 서경을 떠날 준비를 하였다.
미리 떠날 준비를 마친 상황에 흥위위 군은 모두 북문 밖에 대기하고 있었고, 도착한 이의민 역시 서경으로 군을 데리고 들어와 북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성문을 열어라!”
저 멀리서 이의방과 그의 휘하 장수들이 북문으로 말을 타고 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서경의 부장이 외치었다.
끼이익.
성문을 활짝 열고 북문 앞에서 기다리던 장수들과 이의민 그리고 박존위가 이의방의 모습을 보고는 곧장 달려와 한쪽 무릎을 꿇고 군례를 올렸다.
“위위경!”
“하하하! 이 대장군, 왔는가.”
“예!”
“위위경! 그동안 강녕하셨습니까!”
“오… 그래… 박 장군. 하하하! 자, 이제 다들 일어나게! 우린 서북면으로 갈 것이네!”
“예! 위위경!”
이의방의 말에 두 장수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말 위에 올라타더니, 두 장수가 먼저 앞으로 나가 길을 잡고는 군사를 이끌며 나아갔다.
이에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대장기를 드높여라! 벽상공신 섭대장군이 행군하신다! 위엄을 높여라!”
이의민은 큰소리로 외치며 이의방을 치켜세웠고, 깃수들은 높게 깃발을 들어 올려 이의방임을 알렸다.
“이 대장군과 박 장군이 이렇게 모이니… 정말 옛날 생각나는구먼… 안 그런가 돈장?”
“왜 아니 그렇겠나. 하하하!”
항상 이의방의 옆을 지켰던 5인방이 모두 모인 셈이었다.
다만 서경을 지났으니, 안주부터는 다시 고득시가 군을 이끌고 이의방의 명을 받들어 움직일 것이다.
“안주부터는 서북면병마도사와 함께 장성과 서북면 일대를 살필 것이다.”
“예! 위위경!”
부장들은 이를 미리 알고 있어야 하였기에 이의방은 부장들에게 언질해주었다.
현재 서북면병마도사는 자신의 매제인 우학유가 안주에 머물며 서북면의 군권을 가지고 있었다.
본래 우학유는 무신 출신이지만, 무신정권 이후로 사이가 틀어져 서북면으로 보내 버렸다.
한때는 이고와 함께 우학유를 제거를 해버릴까 생각했었는데 차마 그러지는 못하였다.
매제이자, 누이를 청상과부로 만들 수는 없었던 탓에 결국 제거 계획은 뒤로 미룬 채 거병한 것이었고, 거병이 성공한 뒤에 금오위 상장군이었던 우학유를 서북면으로 보내 버렸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다시 4년 만에 매제를 대면하는 이의방은 마음이 착잡한지 몇 번씩이나 한숨을 내리 쉬었다.
그걸 아는 듯 고득시와 이영령 돈장은 혹시라도 모를 일에 대비하여 검을 꽉 부여잡았다.
서경을 지나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말이다.
* * *
“뭐라…? 이리로 위위경이 온다고?”
“그러하옵니다! 장군!”
전 서북면병마사 송유인 대신 이곳에 온 우학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위위경이 이곳에 온 이유가 궁금하였는지 서경에서 온 전령에게 물었다.
“이유가 무엇인가. 서경에서 왜 위위경이 온다고 소식을 보낸 것인가?”
“서경 유수께오서 위위경이 직접 서북면을 시찰하고 살핀다고 말씀하라 전하라 하셨사옵니다!”
“위위경이……?”
믿지 못하는 우학유였다.
개경에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던 이의방이 무슨 바람이 불어 서북면을 시찰한다는 말인가.
혹여라도 그때 그 일로 꼬투리를 잡아 어떻게 하려고 하는 게 아닌가 두려웠다.
하지만 이미 권력을 잡고 있는 이의방이 굳이 자신을 해코지할 이유는 없을 거라고 생각이 들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알겠다… 전령은 그만 돌아가 보고, 안주 좌 우장은 들으라.”
“예! 장군!”
“개경에서 벽상공신 이의방 섭장군이 오시니, 깍듯이 맞이할 준비를 하라!”
“예! 장군!”
좌 우장과 그 휘하 부장들은 우학유의 명을 받들어 곧장 밖으로 나갔다.
우학유는 자신의 부인 즉, 이의방의 누이를 찾아갔다.
어찌 되었든 이곳 안주로 오니 맞이는 해야 했으니 말이다.
* * *
“뭐라고요!? 누가 온다고요?”
우학유의 부인 이씨도 정말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서경에서 안주까지 온다고 하더라도 빠르면 하루에서 하루 반, 천천히 와도 이틀 거리였다.
하지만 전령을 오는 도중에 보냈으니, 이의방은 이보다 더 일찍 도착할 것이었다.
“부인, 이러고 있을 게 아니오. 전령이 지금 도착하였다면 적어도 오늘 내로 도착할 것이오. 그러니 얼른 상이라도 준비하세요.”
“아… 예…….”
이의방의 누이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고, 우학유는 그대로 관아로 향하였다.
* * *
“잠시만.”
이의방은 안주로 향하다가 한곳에 멈추어 서며 주위를 살피어 보았다.
“왜 그러시옵니까?”
“이곳이 어디쯤인가.”
“아…….”
이 영령은 곧장 품속에서 지도를 꺼내어 살피어 지형을 본 후에 답하였다.
“역수 고개라는 곳이옵니다.”
“그렇구만…….”
“헌데… 왜 그러시는지요.”
“이곳에 서경으로 들어가는 관문 하나 새운다면 아주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네.”
“하하하, 그러시옵니까? 그러시면 개경으로 돌아가셔서 중방에 의논하심이 어떠하신지…….”
“중방이 뭐 필요한가. 서경 유수 아니면 서북면병마사가 직접 지으면 되지… 지어놓고 그다음 보고하면 되지 않나.”
“듣고 보니 그러합니다. 위위경. 하하하!”
“자, 다시 가세!”
“예!”
이영령의 외침에 다시 군이 움직였다.
이의민은 살며시 고개를 숙이고, 박존위와 함께 앞으로 나아가면서 경계하기 시작했다.
태평성세(太平盛世)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산적과 이의방에게 원한을 가진 승려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니, 부장들 역시 경계를 강화하면서 나아갔다.
“이보게. 이영령.”
“예. 위위경.”
“자네가 내 옆에 있은 지 얼마나 되었지?”
“십이 년입니다.”
“벌써 그렇게나 되었나? 하하하!”
여기 있는 부장들은 정말 오랫동안 봐왔던 동생 같은 부장들이었다.
자신이 견룡군의 산원이었을 때, 대장이었던 부장들을 만났고 마지막에 이의민을 만났다.
그렇게 다섯은 마음이 통했는지 매일같이 술 마셨고, 수박(手搏)을 겨뤘고, 병기를 가지고 대련을 하곤 했다.
그때 생각이 나는지 이의방은 미소를 지었다.
“안주에 도착하면 오랜만에 수박이나 겨뤄 볼까… 다들 어떤가!”
“좋습니다! 위위경!”
“하하하! 물론이지요!”
“저희를 당해 내실 수 있으시옵니까!?”
“저놈이……!”
“하하하하하!”
이의방과 부장들은 크게 웃었다.
하지만 이의방은 내심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놈들을 정말 상대할 수 있을까.
지난 4년 동안 권력을 휘두르며 언제 제대로 한번 검을 쥐어본 적이나 있던가.
생존으로 싸우는 것과 대련하는 것은 다르다.
생존하려면 없던 힘까지도 나오는 게 바로 전쟁터이지 않은가.
그러나 이의방은 대련이라고 생각하니 자신이 없는지 우물쭈물하다가 입을 열었다.
“다음에 할까!?”
“아닙니다! 당장 안주에 가서 하시지요!”
“어!?”
이영령은 당장이라도 할 듯이 말하고 거기에 고득시, 돈장이 맞장구를 쳤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위위경의 수박(手搏)은 견룡 중에 최고 아니셨습니까! 안 그런가? 박장군!”
“수박이 최고면 병장기도 못지않았지! 창이면 창! 월도면 월도! 하하하! 아니 그렇습니까? 이 대장군!”
“위위경, 성으로 들어가시는 대로 저와 먼저 겨뤄 주시지요!”
“어…? 어… 그래! 그렇게 하지! 하하하하하!”
이의방은 애써 크게 웃었다.
“아, 그나저나… 개경 소식 좀 물어와 봐. 나와 있으니 개경의 소식도 궁금하구먼.”
“예. 그렇게 하겠사옵니다. 위위경.”
이영령은 고개를 숙이며 답하였다.
쨍그랑.
“꺄아아악!”
지나가는데 주위에서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여인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나자, 장졸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 대장군! 무슨 일이야!”
“위위경! 알아보고 오겠사옵니다! 이랴앗!”
비명이 들리는 곳으로 냅다 말을 달리는 이의민이었다.
“박 장군, 군사들과 함께 가봐!”
“예! 위위경!”
“십은 나를 따르라!”
박존위의 말에 부장 한 명과 군사 십여 명이 박존위를 따라 뛰어나갔다.
이의방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군을 이끌고 이의민이 향한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