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천하의 주인-9화 (9/159)

009화

개경으로 쳐들어가려고 한 이유가 무엇인가.

선황제를 시해한 역도들을 처단하기 위한 것이 첫 번째 목표.

현 관리들이 북방의 백성들을 심하게 수탈한다는 것이 두 번째 사유였다.

그런데 이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이의방이 직접 서경으로 왔고 자신을 만나서 대놓고 물었다.

그 명분을 이의방에게 설명하며 이의방을 치려 하니, 오히려 자신이 설득당해버린 게 아닌가.

“자, 이제 선택하게. 나를 죽이고 서경을 초토화시킬 것인지. 아니면 내 말대로 할 것인지 말이야.”

“하아…….”

조위총은 한숨을 내리 쉬었다.

“위위경의 뜻에 따르리다. 허나… 그 이의민! 그놈만큼은 용서하지 못하겠소이다. 어떻게… 어떻게! 선황을 어찌 그리 참혹하게…….”

조위총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였다.

폐주는 등뼈가 꺾인 채 죽었다.

듣기로는 폐주가 술을 마시는데 갑자기 이의민이 뒤로 와서는 등뼈를 꺾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두득, 우두득 소리가 날 때마다 키득거리며 웃었다고.

그 상황을 생각만 하면 조위총은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더불어 그렇게 폐주를 살해한 다음, 솥에 담아 저 연못가에 던져 버렸다고 했다.

이 얼마나 끔찍한 최후인가.

아무리 폐주라고 하여도 그렇게까지 죽일 수 있는 건지 조위총은 고개를 저었다.

콰앙!

조위총은 상을 내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이의민의 목을 주시오. 그걸로 선황제의 제를 올릴 것이오. 억울하게 죽은 선황제를 위한 제사 말이오! 그래야 선황제가 눈을 편히 감지 않겠소?”

“…억울? 대체 억울한 게 무엇이오! 폐주는 반역을 꾀하였소. 현재의 금상 폐하께 반기를 든 역적이외다!”

“김보당이 죽일 놈이지 선황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이오! 유배지에서 끌고 나온 김보당 그놈의 일가의 씨를 말려야 하오이다.”

“하아…….”

이의방은 한숨을 내리 쉬었다.

김보당은 폐주를 다시 옹립하기 위해 폐주를 데리고, 섬에서 나와 경주에서 거병하였다.

그렇게 하였다가 김보당은 자신의 수하들에게 최후를 맞이하였다.

그렇게 하여 일단락된 폐주의 반역.

아니, 김보당의 난이다.

물론 난은 무신정권에 의한 반항으로 일으킨 것이지만, 이의방도 생각해보면 정말 초장부터 심하게 망쳐 놓은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이의민은 포기 못 하오. 내가 말하였듯이 이의민은 내 명에 의하여 움직인 것뿐…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보시오. 폐주의 무덤을 만들어 달라면 만들도록 하겠소.”

조위총을 어떻게 해서든 달래 보려는 이의방이었다.

이의민은 자신의 명으로 폐주를 죽인 것으로 이의민이 죄가 있다면 자신의 명을 따른 죄밖에 없기 때문에 차마 이의민을 버릴 수는 없었다.

“선황제를 복위시키시오. 그리하여 릉을 만들고 모든 걸 원칙대로 해주시오.”

“유수! 그리되면 이의민은 죽소이다!”

“나는 이의민이 죽든 말든 상관없소이다!”

조위총은 이의방에게 말을 하고서는 몸을 돌려 섰다.

이의방은 어떻게 해야지 과연 좋은 처사일지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위위경.”

뒤에서 고득시가 이의방의 옆으로 와 작게 말하였다.

“명분을 만들어 내십시오. 폐주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일… 왜 등뼈를 꺾어서 죽여야 했는지… 그 이유를 만들어 내십시오. 그리고 황제였던 이를 맨정신으로 죽이는데 설마 제정신이었겠습니까…….”

고득시의 말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이의방이었다.

“금상 폐하를 향한 충정으로 인해 폐주를 죽인 것입니다. 폐주의 행동은 백성들도 알고 있지 않사옵니까. 잘만하면 쉽게 용호군 대장군 이의민 또한 별일 없을 것이옵니다.”

이의방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수의 말대로 하리다.”

“…….”

이리 쉽게 응할 줄은 몰랐는지 조위총 역시 당황스러운 눈치였다.

“내가 이곳을 나온 이유는 북방을 시찰하고 진을 살피기 위함이었소. 또한 북방의 위협이 되는 것들을 처리하고자 나온 것이니, 일을 모두 처리한 후에 내 조정에 건의하겠소! 내 개경으로 돌아가는 날… 반드시 폐주를 복위시키겠소이다.”

이의방이 큰소리치면서 말하자, 조위총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이의방에게로 다가왔다.

이의방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조위총에게 다가갔다.

“위위경, 나 서경유수 조위총은 위위경을 믿겠소. 폐주가 복귀된다면… 내 경을 도와드리리다.”

조위총의 눈에서 거짓이 보이지 않자,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위총의 두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리하겠네. 폐위된 황제를 복위시키도록 중방의 의견을 모으겠네. 그 누구도 다치지 않게끔 말이야.”

“그 말을 믿을 것입니다. 위위경.”

“믿으시게. 중방은 곧 내가 움켜쥐고 있으니.”

“…….”

현재의 실정을 장악하고 있는 이의방의 말에 조위총은 두 눈을 감았다.

어찌 되었든 현재의 실권자는 이의방이었고, 이의방의 말을 믿고 있을 수밖에는 없었다.

다만 그에게서도 거짓은 느껴지지 않았다.

“사내 대 사내로 약속하는 것이네. 유수는 그저 서경의 모든 백성들을 책임지고, 그들을 대변해주시면 되네. 보다 자세히 그들을 돌보고, 국방을 지켜주시게.”

“알겠소.”

“하하하하하…….”

이의방은 흡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손쉽게 골칫거리는 덜었으니 말이다.

이 얼마나 쉬운 일인가.

더군다나 고득시 덕분에 이렇게 쉽게 끝날 수 있으니.

이의방은 내심 고득시를 생각하였다.

장군으로 계속 있기에는 아까우니 말이다.

그날 저녁.

이의방은 혼자서 달빛을 보며 술잔을 홀로 기울였다.

아직 서경은 안전하지 못하니, 부장들만 따로 서경의 부장들과 술을 먹게 하였다.

자신은 홀로 적당히 술 한 잔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었다.

“거참… 많이도 죽였다… 하하하하…….”

이의방은 4년 전의 일을 돌아보았고, 이곳에 오기 전에 일들을 생각해보았다.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보현사의 일들이 계속해서 새록새록 떠오르며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다시 지나갔다.

“하아…….”

이의방은 술을 들이켰다.

“위위경… 고득시입니다.”

“어. 그래. 들어 오거라.”

덜컹.

방문이 열리면서 고득시가 안으로 들어와 군례를 올리며 위위경에게 다가왔다.

“어인 일로 찾으셨사옵니까.”

“아까 일로 네 덕을 보았다. 개경으로 돌아가면 너에게 큰 상을 내리마.”

“아니옵니다. 위위경을 옆에서 모시는 것이 소장의 임무가 아니옵니까”

“하하하하하.”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이의민에게 소식이 온건 없는가?”

“예. 그러하옵니다. 아직은 없사옵니다.”

“이의민이 도착하는 대로 바로 떠날 것이니, 그리 알 거라.”

“예. 대장군.”

고득시는 고개를 숙인 채 밖으로 나갔고, 이의방은 술잔에 술을 다시 따라 마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개경, 중방에서는 늦게까지 이야기가 오고 가고 있었다.

이의방이 없는 틈을 타서 중방에 모든 원로 장수이자, 대신들이 조정을 어떻게 정리하고 장악할지 의논을 하고 있었다.

문극겸은 이를 바라보며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수상하게도 저 안에는 온건파 즉 정중부 사람밖에 없었다.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문득 걱정되는 문극겸이었다.

“여기서 뭐하시오. 사돈.”

문극겸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이준의가 서 있었다.

“아… 예…….”

“중방에는 아직도 불이 켜져 있습니다… 그런데 왜 안 들어가시고…….”

이준의는 대체 무슨 일인지 궁금하여 중방으로 들어가려 하자, 문극겸은 이준의를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들어가지 말라는 눈치를 주는 문극겸의 표정에 이준의는 의아스러운 얼굴로 문극겸에게 다가왔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심상치가 않아요… 호랑이 없는 굴에 여우가 왕이 되었다 할까…….”

“…예?”

이준의는 바보가 아니었다.

문극겸의 말이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이의방이 북방으로 가고, 이상할 만큼이나 정중부가 조용하였다.

그리고 늘상 중방에 나와 대신들과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의논하고 있었다.

또한 문신들과도 자주 어울리며 자기 집으로 계속해서 한 사람씩 불러들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 행동이 그렇게 문제가 될 게 없어서 그냥 아예 신경을 쓰지 않았었는데 문극겸의 말 한마디에 지금까지의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아니… 그럼 우리가 들어가서…….”

“지금 들어가서 무얼 어찌하려고요?”

“그럼 위위경에게…….”

문극겸은 고개를 저었다.

“저들도 위위경이 돌아왔을 때의 대비를 하고 있을 겁니다. 사람을 보냈다가는 오히려 우리의 목숨이 더 위험해요. 더군다나… 현재 흥위위 빼고 모든 2군 5위가 정중부의 손에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아, 아니… 그럼…….”

이준의는 말을 더듬었다.

정말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해지고 있었다.

“그럼…….”

“위위경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전에 우리가 다칩니다.”

“정중부는 쉽게 우리를 위해 할 수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우리를 옭아매고 계속 감시를 할 것입니다. 황실 또한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응양군 상장군이 있으니까요.”

문극겸의 말에 이준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당분간 저들을 놔두자는 말입니까? 자칫하다가는 위위경이 위험할 터인데.”

“일단은 우리라도 저들의 행동을 주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위위경에게 알려야 하지요.”

“정말 괜찮겠습니까?”

“일단 지켜만 보고 다시 이야기하시지요. 또한… 우리가 함께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저들에게 그렇게 큰 위협은 되지 못할 테니… 당분간 저희 집에서 한 번씩 차와 술 마신다는 계기로 혼자만 오십시오.”

문극겸에 말에 이준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먼저 퇴청합니다.”

“예…….”

두 사람은 서로 인사를 하고 각자 길을 잡았다.

* * *

다음 날 아침.

이의방은 서경을 쭉 둘러보면서 백성들의 삶을 살폈다.

서경 좌장 김존심의 안내에 따라 병기 창고와 군량 그리고 서경에서 운영하는 군기감을 두루 살피었다.

“잘 준비가 되어 있군… 그래.”

병장기들과 갑주 군기감을 살펴본 결과, 말이 필요 없었다.

개경을 향해 달려오려고 했던 반군들이었다.

그들의 무기와 군량미는 넘쳐났고, 장수부터 일개 병졸에 이르기까지 갑옷이며 무기며 어느 낡은 것이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음… 이 정도면 문제없겠구먼. 그래… 계속 이런 상태로 관리를 해야지. 아, 그나저나 서경에 위치한 봉수대는 어찌 관리 되고 있는가?”

“예. 한번 가보시죠. 저 모란봉에 있습니다.”

“가세.”

“예…….”

김존심이 앞장서서 모란봉에 위치에 있는 봉수대로 안내하였다.

얼마 후, 봉수대에 올라서며 봉수 안쪽을 살피었다.

깔끔하게 정리를 해둔 덕에 연기가 피어오르며 막힘없이 잘 올라갈 수 있도록 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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