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고구려(7)
198화 고구려(7)
금의환향이라는 건 바로 나를 위해 존재하는 넉 자가 아니겠는가. 모두가 우려했던 대 북방 정책을 기어이 승리로 귀결시켰으니 나의 위대함은 하늘 아래 우뚝 설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일인지하 만인지상에 오른 대대로 고정의가 나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참으로 고생하셨소.”
“하하하!”
“큰 성과를 일궈내셨소.”
“하하하!”
“······.”
“하하하!”
고정의가 무슨 반응을 보일지라도 나는 호탕하게 웃었다. 이것이야말로 정세를 추동하고 시대를 앞서가는 선각자의 자신감이 아니겠는가.
신나게 웃다 보니 머쓱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이문진이 보였다. 나는 더 크게 웃으며 말했다.
“이게 누군가. 참으로 오랜만일세.”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대인.”
“하하하. 노고라고 할 게 있나? 이미 시작부터 완벽한 상황이었네. 나는 그저 가서 쳐다만 보고 온 게 전부일세.”
“하하하······.”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있었다. 이번 성과를 바탕으로 차후 고구려 정국의 주도권을 확실하게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팽창 정책에 적색 신호를 보내는 이문진의 경고가 의미가 없다거나 이미 대대로가 된 고정의를 무시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을 상대로 내 뜻을 제대로 펼치기 위해서는 확실한 정치적 기반과 이에 상응하는 성과가 필요했다.
이번 원정이야말로 하나부터 열까지 가장 적합한 것이었기에 나는 이리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다 이유가 있었다.
“그나저나 우리 이제 속 깊은 대화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대로 대인.”
“허.”
“자네도 따라오게.”
나는 어깨를 펴고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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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 계산기는 제대로 두들겨야 하는 법이었다. 화장실 들어갈 때 한 계산과 나올 때의 계산이 다를지라도 내게 유리한 방향으로 제대로 해야 하는 법이었다.
“성과가 참으로 미진하지요. 내가 애석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습니다. 대대로 대인.”
“······일찍이 고구려 역사에 이런 성과는 없었소. 왕 막리지가 참으로 겸손하시오.”
“나는 원래 반듯한 사람이라서 그런 말은 별로 중요하게 느낀 적이 없습니다. 아니, 아직도 나를 모릅니까? 대대로 대인?””
“······.”
“휴. 참으로 답답합니다. 만일, 이번 전선에 고구려가 조금만 더 힘을 보탰다면 더 큰 성과가 도출되었을 겁니다.”
당연한 말이었다. 1만 병력보다 10만의 대군이 상대를 압박하기에는 좋다. 또한, 불필요한 협상을 밀어내고 적을 압도할 수도 있다. 여차하면 들이 박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결과론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승리자로서 결과로 말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이 문제를 확실하게 하고 싶습니다. 대대로 대인.”
“휴. 좋소. 이번의 실책은 뼈저리게 인정하겠소.”
당연하지만 고정의가 고구려의 실패를 바란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 이와 같은 대승은 없었기에 수세적인 입장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리된 이유는 이토록 거대한 대승을 거둘만한 지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
이만하면 고정의의 기선을 확실하게 제압한 나는 이문진을 바라봤다.
“이보게. 고구려의 천하관은 이미 바뀌고 있네. 하면, 내정의 정책도 바뀌어야 하지 않겠나?”
“하지만 대인.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하여 갑자기 생산력이 폭증하는 건 아닙니다.”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일일세. 아. 당연히 우리의 세력권이 확장되었기에 유지하는 비용은 늘어날 수밖에 없네. 그러나 어찌 비용만 늘어나겠는가. 확보할 수 있는 재원은 더 늘어나는 것일세. 이를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고 끌어내지 못한다는 건 결국 무능력함을 입증하는 게 아닌가? 내 말이 틀렸는가?”
쉴 틈도 주지 않고 속사포처럼 퍼부었다. 이문진은 궁색한 표정으로 여전히 멋쩍게 웃을 뿐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말을 아끼는 사람은 아니었다.
“대인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러나 농업이라는 건 수년에 걸친 계획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내가 가끔 궁금한 게 있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꺼낸 말일세.”
“무슨 말씀입니까.”
“아니, 자네가 고구려의 농업부를 이끄는 건 사실일세. 한데, 나보다 농업에 대해서 잘 알고 있나?”
“그건······.”
“응?”
“그건 아닙니다. 어찌 소생이 대인보다 농업에 대해서 잘 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간 내가 이문진의 정치적 영역을 확보해주기 위해서 농업부의 일에 입을 대지는 않았다. 그래서 착각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농업하면 나 왕고덕이었고, 왕고덕하면 바로 농업이었다.
현재 고구려 성세의 기초가 된 신농법은 모두 내가 발의한 것이며, 농업의 집행 또한 나의 뛰어난 판단력에서 시작되었다.
이걸 잊으면 무척이나 곤란했다.
나는 지도를 촤르르 펼치면서 말했다.
“우리 왕도에서 돼지를 비롯한 가축이 이미 수만 마리가 있네. 내 말이 맞나?”
“대인의 말씀이 맞습니다.”
“이를 활용하면 우리에게 신속을 청한 돌궐에 큰 도움이 될 것이네.”
“그러나 우리가 얻는 건 무엇입니까.”
“이보게. 이는 그들에게 넘겨주자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역할을 나누자는 것일세. 우리의 왕도보다는 돌궐의 초원이 가축의 사육에 유리하지 않나?”
“그렇긴 합니다.”
“1만 마리를 보내어 2만 마리로 받을 수 있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일이지. 그들의 동의는 걱정하지 말게. 이미 합의가 되었네. 어찌 되었느냐고도 묻지 말게. 지금 그들은 돼지 한 마리가 아쉬운 상황이니 말일세.”
아사나 섭도와 처라후는 경제적으로 상당히 궁핍한 상태였다. 대기근부터 지금까지 제대로 된 생산력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부의 분란이 끝없이 이어진 여파로 내정에 신경을 쓰지 못한 결과였다.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고구려 본토에서 이앙법은 더 무리라는 게 입증되었네. 하면, 어찌해야겠나. 우리가 확보한 북평에 총력을 기울여서 2배의 생산력을 확보할 수 있네. 이미 안정된 영토이기에 불가능은 없네.”
“대인. 예상하는 성과에 불과합니다. 어찌 확신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전혀 걱정하지 말게. 그 성과가 눈앞에 펼쳐지기 전에는 팽창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네. 그런데 불가능하겠나? 아니지. 무조건 가능하네.”
내가 알고 있는 고대 농법의 다수는 중국 화북 지방을 기반으로 했다. 즉, 내가 곧 중국의 농신이 될 수 있는 것이었으니 이문진의 걱정은 기우였다.
물론, 이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역량이 필요했다. 지금껏 이리하지 못한 이유는 수나라의 위협이 존재하는 최전선이었기에 계속 미뤘을 뿐이었다.
“문진. 요동부터 북평까지 총력을 기울여 개간하면 몇 배의 성과를 낼 수 있네. 확보할 수 있는 생산량은 적은 데 많은 인력이 필요한 산지의 농업은 축소하고 넓은 대지에서 더 큰 생산력 확보를 위해서 역량을 투입하자는 말일세. 자네는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을 것이네.”
“왕 막리지. 그 말은 본토의 발전을 미루자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지금은 이게 맞습니다.”
내가 입안한 건 척박한 고구려 본토가 아니라 넓고 풍요로운 평야에 역량을 집중하자는 것이었다. 어쩌면 대규모 사민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리하는 게 옳았다. 동일 노동력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으니 당연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고정의와 이문진은 썩 내켜 하지 않는 것 같았다. 특히 이문진은 고집스럽게 입가를 꽉 깨물고 있었다. 이유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여전히 불안하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본토의 역량이 부족한데 새로운 영토가 지나치게 발전하면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소.”
“그런 불균형을 고구려 내부의 문제로 인식해야 합니다. 본토와 외부 영토로 규정하는 순간 우리는 무너지는 겁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수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라고 장담할 수는 없소. 또한, 돌궐이라고 하여 또 다르겠소? 그들이 가축을 돌려주지 않을 수도 있소이다.”
“그러니 우리가 더 확실하게 힘을 보여줘야지요.”
“힘을 보여주다니요?”
“수나라 2황자 양광이 기주를 점령하기로 했습니다.”
“······.”
고정의가 미친놈을 보듯이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본론을 말할 때는 절대 기죽어서는 안 되는 법이었다.
“차후 아군이 힘을 보태고 양광을 앞세운 뒤······.”
기주에 우리의 제후국을 수립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말하자 고정의는 눈을 껌뻑였다. 그의 사고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파격적이고 시대를 앞서간 정책이었으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오?”
“물론입니다. 또 그래서 우리는 팽창을 멈추는 게 아니라 쉬는 것이며 고구려의 힘을 더 키워낼 수 있는 팽창을 또 준비하는 겁니다.”
“대인. 고구려가 휘청일 겁니다.”
“그래서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휘청이지 않도록 내가 잘해보겠다고 말일세.”
나는 호언장담했다. 갈수록 흐려지는 이문진의 안색은 안타까운 일이었으나 너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얼마나 보낼 생각입니까.”
“10만 호는 보내야지.”
“대인. 말도 안 됩니다.”
“문진. 정치는 말일세. 늘 성과로 말해야 하는 것이네. 만일 이번에 내가 적당한 성공을 가져왔다면 자네와 대대로 대인의 말을 들었을 것이네. 하지만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번에는 내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이네. 그렇지 않습니까? 대대로 대인.”
“휴.”
고정의는 쓴 미소를 지으며 이문진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문진. 이건 왕 막리지의 말이 맞네. 이번에 우리는 근본부터 반대할 명분이 없네. 자네와 나의 반대가 아니었다면 정말 우리 고구려가 돌궐의 절반에 깃발을 꽂았을 수도 있네. 지금처럼 어설픈 신속이 아니라.”
“가장 정확한 분석이지요.”
이문진의 안색은 더 흐려졌으나 더 나설 수는 없었다. 신념은 있었으나 이는 이제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왔기 때문이었다.
“한데, 10만 호를 보내면 본토는 상당히 위축될 것이오. 이에 대한 대비도 있어야 하오.”
“무슨 말씀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또한 차츰 대비해야지요. 당장 어찌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이번에 이주할 10만 호는 요동에서 북평까지 고구려의 최전선에서 경작할 겁니다. 지금은 여기에 집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휴.”
도무지 꺾을 의지를 보이지 않는 나의 고집에 고정의도 낮게 한숨을 쉬면서 이문진을 바라봤다.
“준비하게.”
이문진은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되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정의를 바라봤다.
“남쪽의 정세는 어떻습니까.”
“큰 폭의 변화는 없네. 정말 의외로 남북조 신라는 아직도 유혈 충돌이 없네. 아마 한 번의 패배가 기둥을 흔들 것이라는 걸 서로 알고 있으니 몸 사리는 것 같네.”
“그건 좋은 일이지요.”
“그렇지.”
분열된 한반도의 남부는 고구려의 팽창에 아주 좋은 거름이 될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