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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농사도 잘함-159화 (159/199)

159화 비상하는 고구려(2)

159화 비상하는 고구려(2)

그간 세상과 단절된 감금 생활을 한 나와 연자유는 고정의의 말에 큰 흥미를 보이며 귀를 기울였다.

그 역시 어설프게 시간을 끌며 우리를 괴롭히지 않고, 곧장 본론을 꺼냈다.

“고 막리지의 말대로 그간 우리가 겪은 백제의 끈질긴 저항력은 가볍게 여길 수 있는 게 아니외다. 그들은 숨통이 넘어가기 전까지 저항할 것인데 우리의 국세가 팽창했다고 한들 고개를 숙일 일은 없소.”

백제는 참으로 희한한 나라였다.

그들은 아무리 국세가 강력한 대국이라고 할지라도 진심으로 굴복하거나 머리를 조아리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굴종이라는 건 그들의 DNA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한데, 목리문차는 우리의 왕도를 봤소. 하여, 고구려의 변화를 알게 되었소. 이를 바탕으로 수나라와 정면으로 싸워 승리하는 것도 목도하게 될 것이오.”

“해서요?”

“단지, 고구려의 내분이 발생을 예상하여 국력을 강화하자는 주장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소.”

나는 계속 눈을 껌뻑였다. 고정의의 말에도 나의 이성은 전혀 설득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소위가 왜 백제를 다녀갔겠소이까.”

“수나라가 직접 백제로 가서 우리의 후방을······허.”

이런 멍청한 놈을 보았나.

어쩌자고 이렇게 중요한 부분을 놓칠 수 있단 말인가.

나의 깨달음을 본 고정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백제 내부에 친 고구려파를 확보할 수 있소.”

그랬다.

수나라와 모종의 협약을 체결했을 백제다. 그러나 이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상황이다. 물론, 이 사안만으로는 백제 내부를 흔들 수 없다. 하지만, 신라의 분열과 북방 민족의 한강 유역 이주 그리고 기벌포 타격까지 여태껏 진행해온 모든 일이 쌓였을 때 백제 내부는 고구려를 달리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된다.

즉, 고구려와 화친해야 한다는 세력은 무조건 등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단, 1만의 병력이라고 할지라도 남쪽을 경계하게 한다면 백제는 상황을 분명하게 인지할 것이오. 북평 전투의 승리로서 서쪽을 안정시킨 본국이 다시 남쪽을 압박한다고 말이외다.”

“이런. 이런 묘안을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소. 참으로 감탄하였소.”

완벽했다.

여기에 한 가지만 더 보태면 더할 나위 없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백제의 치명적인 패배. 이것이 필요하겠구려.”

“그렇소. 하여, 그들은 무조건 남조 신라로 진군해야 하오.”

그랬다. 우리가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백제의 패배는 남조 신라와 겨뤄 무너지는 것이었다. 절반으로 나눠진 신라에게도 패배할 때 백제의 국력이 적나라하게 나타날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의 지원을 받는 북조 신라가 아니라 남조 신라가 중요한 것이었다.

그간 쌓아온 계책이 이렇게 완성되었으니 크게 감탄할 수밖에 없다.

이러면 가볍게 하나를 더 보태는 게 옳다.

“한수의 제후들과 북조 신라에도 이 사실을 아주 상세하게 전해야겠지요.”

“하하하! 당연한 일이외다. 상국이 수나라와 싸워 이겼다는 건 그들의 심장을 아주 뜨겁게 할 것이니 말이오.”

고정의의 호탕한 웃음을 들으며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고개를 돌려 연자유를 바라봤다.

“이보게. 머지않아 적게는 수만, 많게는 수십만 명의 수나라인이 올 것이네. 그들이 우리 고구려에서 해야 할 일을 아주 짜임새 있게 미리 준비하는 게 옳지 않겠는가?”

연자유는 답하지 않고 미소로 화답했다. 아마 심장이 뜨거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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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연은 목을 긁적이면서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어떻습니까. 소승이 이리된다고 하였지요?”

“대사의 말대로 고구려가 이겼소.”

아파가한 대라편은 진심으로 놀랐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의연의 말에 동의했다.

“이번 전투는 흔한 국지전이 아니었습니다. 수나라 황제가 무려 10만의 정예군을 출병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패배했으니 여파가 걷잡을 수 없이 클 겁니다.”

“음.”

“그리고······.”

의연은 쉬지 않고 계속하여 정세를 언급했다. 정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럴 만도 했다.

‘왕 대인은 나를 죽이려는 게 분명하다.’

돌궐로 온 이후 지속해서 의심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의심이 아니었다. 손목 걸고 확신할 수 있었다.

‘만일, 고구려가 패배했다면 나는 어찌 되었을지 가늠할 수 없다.’

대라편을 설득할 수 있던 가장 큰 근거는 고구려의 승리였다. 물론, 전쟁이 늘 이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문제는 대라편이 의연을 보내주지 않고 잡아뒀다는 것이다. 그러니 의연이 왕고덕을 강하게 불신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살아서 고구려로 간다면 왕 대인을 그냥 두지 않으리라.’

심장에 새긴 맹세였다.

하지만, 고구려가 승리했는데도 상황은 아주 호의적이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의연의 상황이었다. 침을 튀기며 열정적으로 정세를 떠들고 있는데도 눈앞에 있는 대라편이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음.”

대라편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의연을 지그시 바라봤다.

“수나라가 10만의 대군을 출병했다가 대패한 건 알겠소.”

“그렇습니다. 아주 자명한 사실이지요.”

“그런데 말이오. 이를 고구려가 수나라를 압도했다고 봐야 하오?”

“······무슨 말씀입니까.”

“알면서 왜 묻소?”

“······.”

“패배했으나 수나라가 궤멸적 타격을 입은 것도 아니오. 차라리 그들이 요동을 범하여 패한 것이라면 두 번 다시 바라보지 않을지도 모르오. 하지만, 제 나라의 영토가 점령당한 것이니 다시 북진을 감행할 것이오.”

“······.”

“하면, 다음에도 고구려가 승리할 것인가. 나는 이를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하오. 왜? 북평 전투의 승리는 고구려가 수나라를 압도한 것이 아니오. 순수하게 걸출한 무장이 일군 것이기 때문이오. 지난번 기주 전투처럼 말이외다.”

결국, 대라편은 여전히 저울의 추는 수나라를 향해서 기울어진 상태라는 걸 역설한 것이다.

그러자 의연은 썩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불쾌함을 표현하면서 대라편을 지그시 바라봤다.

“아파가한께서는 대체 본국에 무엇을 바라는 겁니까? 아니, 더 솔직히 말해야겠군요. 소승은 참으로 불쾌합니다.”

“뭐요······?”

“어떤 말로 폄훼할지라도 본국은 그간 수나라를 상대로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북평을 중심으로 한 만리장성 이남을 점령하기까지 했지요. 그래서 묻지요. 이 과정에서 무엇을 낮춰볼 수 있습니까?”

“대사. 듣기에 따라서 나를 비아냥거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소만.”

“해서, 소승을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

의연의 강수에 대라편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당황하여 침묵했을 수도 있고,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의연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상황은 급변했다. 현재 천하의 정세를 주도하는 건 고구려다. 더는 아파가한에게 끌려다닐 이유는 없다. 내 뒤에는 고구려가 있다는 걸 분명하게 각인시키면 될 일이다.’

아니다.

애초 태왕의 밀사라고 했건만 겁박하고 무례한 언사를 내뱉었다. 이는 그가 수나라와 손을 잡고 고구려를 등졌다고 할지라도 보일 수 없는 태도다. 그런데 이리 행동하는 건 고구려가 자신의 힘을 간절하게 필요로 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었다.

과거 왕고덕이 한 말이 있었다.

-대국은 외교를 하지 않네.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대국의 외교를 주도하는 이가 가져야 할 유일한 행위는 오직 오만함일세.

이를 떠올렸다.

“가한께서 착각하신 게 있습니다.”

“착각?”

“우리 태왕 폐하의 위상이 가한과 같다고 여기십니까? 아니지요. 돌궐의 대카간이 고구려의 태왕 폐하와 위격이지요. 아닙니까?”

상황을 떠나서 이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태왕과 황제 그리고 대카간은 천하를 지배하는 4명의 강자를 의미하는 절대적인 호칭이었으니 말이다.

만일, 대카간 수하의 여러 가한 중 한 명에 불과한 대라편이 태왕과 어깨를 견주고자 하려면 고구려의 국세가 비루할 정도로 추락했을 때나 힘의 우위로 가능할 뿐이다.

하지만, 작금의 고구려는 천하의 패권을 향해서 날개를 펼치고 있다.

이러한데, 여러 가한 중 한 명에 불과한 대라편의 행동은 질서와 너무나도 동떨어진 것이었다.

대라편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소승이 가한께 예의를 다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더는 본국의 태왕 폐하에 대한 무례로 이어지는 묵과할 수가 없습니다. 아시겠습니까?”

“······.”

“고구려는 동지를 선택할 힘이 있습니다. 한데, 가한께서는 그리하실 수 있습니까?”

“······.”

“고구려가 가한을 선택한 것입니다. 가한이 고구려를 거두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 새기십시오.”

대라편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의연은 알 수 있었다.

왕고덕의 말대로 대국의 사신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바로 오만함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하하하! 대사께서 오해하셨소.”

대라편은 순식간에 태도를 바꿨다.

‘두 분의 막리지께서 타국과의 외교에 임할 때 늘 오만한 태도로 일관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구나. 참으로 놀랍도다.’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알게 됐다. 지금껏 경험하니 웃으며 상황을 맞추니 위계가 무너지는 것이 바로 외교였다. 하지만, 힘으로 압박하니 모든 과정이 순탄했다.

그리고 때로는

“지금껏 있었던 일은 불문에 부치겠습니다.”

너그러움을 보여줄 필요도 있었다.

“나는 다시 대카간에게 갈 겁니다. 그들의 분열을 더 확실하게 만들어야 차후의 일이 더 수월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나는 대사만 믿겠소이다.”

“가한께서 돌궐을 통합하여 대카간에 오르시는 날, 본국과 함께 수나라를 완벽하게 제압하게 될 겁니다. 소승은 그날만 간절하게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그러자 대라편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국경을 넘었으니 수나라에서 물자를 보내왔소. 며칠 내로 당도할 것이오.”

“허.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듣자니 대카간에게 전달할 물자도 함께 오고 있다던데 나는 나눌 생각이 없소.”

“관세음보살께서 이르시길 받은 대로 돌려주라고 했지요. 그들이 먼저 신의를 저버렸으니 가한께서도 똑같이 하시는 게 옳습니다.”

“하하하. 내 말이 그 말이오. 어쨌거나 이 일로 나와 대카간은 완벽하게 척을 지게 될 것이오. 대사께 부탁하오.”

“소승만 믿으십시오.”

이제 돌궐의 대분열은 시간문제였다.

의연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너무나도 벅차올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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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고덕이 보내온 건 서찰이 아니라 서책이었다. 가서일은 몇 번이나 내용을 확인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이 놀라움을 반드시 언어로 꺼내고 싶었기에 기어이 을지문덕을 불렀다.

“문덕. 왕 대인께서 언제 하북에 오신 적이 있나?”

“무슨 말을 하나? 그분은 평양에서 벗어난 적이 별로 없으시네.”

을지문덕은 어처구니없는 말이나 한 가서일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왕 대인께서 가장 멀리 가신 건 한수일 걸세. 그전에는 평양 밖으로 움직이지도 않으셨네. 하물며 하북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지 않겠나?”

“한데, 어찌 이토록 이곳의 사정에 통달하셨다는 말인가.”

가서일은 진심으로 감탄만 했다.

“그 서책을 보고 하는 말인가?”

“그렇다네.”

을지문덕이 손을 내밀어 서책을 살폈다. 신농법을 수록한 서책이었는데 제목이 농상집요였다.

“하북의 농법을 집대성한 농법서일세. 어찌 이를 집필해내실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막리지를 하시는 걸세.”

“음. 그렇군. 내가 거기까지 생각하지는 못했네. 그렇지. 그 정도는 하시니 고구려의 막리지를 역임하고 계시겠지.”

“나는 가끔 자네가 너무 뻔한 말을 해서 너무 두렵네.”

을지문덕은 농상집요를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좀 어떤가. 당장 집행할 수 있나?”

“해야지.”

가서일의 입가에는 호승심이 담겼다.

“문덕. 최대한 많은 포로를 확보할 수 있겠나?”

“어찌할 생각인가.”

“우리도 차별이라는 걸 해보려고 하네.”

그가 말했다.

“이 땅에 이앙법을 집행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네.”

가서일은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이 땅에서 수백만 석의 쌀을 확보하여 고구려 백성이 천하에서 가장 부유하게 만들어내는 것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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