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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농사도 잘함-155화 (155/199)

155화 북평 전투(4)

155화 북평 전투(4)

이연의 반응은 무언가 이상했다. 평소에도 협조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완강하게 반대하고 나설 이유는 없었다.

장손람의 머릿속은 복잡했으나 확실한 점이 한 가지 있었다.

‘이연에게 다른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이연이 다른 마음을 품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의 위치에 이르렀는데 지금 고구려와 철저하게 손을 잡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재 고구려의 공세로 황도가 함락되기 직전도 아니지 않은가.

문제는 정확한 사정을 파악하는 게 어렵다는 점이었다.

‘이연이 부마 온달과 따로 접선하고 있을 수도 있다. 다행인 건 을지문덕이 온달의 전향을 눈치챈 것이로다.’

이는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당장 복잡한 상황을 파악할 시간도 있다. 아직 급하지 않았다.

“됐소. 뜻대로 하시오.”

장손람이 이대로 물러나자 이연의 눈이 가늘어졌다. 황명을 앞세워 강하게 압박할 줄 알았기에 이는 전혀 뜻밖의 일이었다.

‘장손람은 을지문덕의 전향을 모른다.’

냉정하게 수나라의 입장만 고려할 때 고구려의 내전에서 국내계와 평양계 중 누가 이기더라도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러나 두 세력 중 만리장성을 넘어 전쟁을 일으키자는 세력은 반드시 경계하는 게 옳았다.

그리고 현재 북평을 공격한 건 명백하게 평양계였다. 장손람은 이를 반대로 알고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를 공개하여 갈등을 말끔하게 해소하는 게 옳다. 어차피 지금 장손람이 공격을 주장하는 건 상황을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이다. 즉, 북평의 고구려군이 모두 한 마음 한뜻이라고 알기에 발생한 일이다.

하지만, 이연으로서는 이를 최대한 활용하여 자신의 군공을 더 위대하게 만들어내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그러겠소.”

홀로 알고 있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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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일은 계속 입맛을 다셨다. 아쉬움을 숨기지 못한 표정이었다. 을지문덕은 슬쩍 쳐다봤으나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자

“자네는 사람을 왜 이리 배려할 줄 모르나?”

가서일이 툭 던지듯 핀잔을 줬다.

을지문덕은 빤히 쳐다보면서 눈만 껌뻑였다. 그 모습에 가서일은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물론, 눈동자가 보이지는 않았다.

“허. 문덕. 됐네. 가겠네.”

“하하하. 그래. 좀 어떤가?”

“그 말을 먼저 꺼내는 게 그렇게 어렵나?”

“쉽지는 않은 일이었네.”

두 사람은 가볍게 티격태격하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솔직히 말하자면 참으로 좋은 땅일세. 인근의 농지 말일세. 이런 옥토를 본 적이 없네.”

“그렇지. 넓고 풍요로운 땅이 분명하지. 그렇지 않아도 왕 대인께서 서찰을 보냈다고 들었네.”

“음. 당장은 어찌할 수 없으니 현상을 유지하라고 하시더군.”

“허. 어째서 그런 결론이 나온 것인가? 누가 보더라도 풍요로운 땅일세. 바로 이곳에 왕 대인의 농법을 도입할 수만 있다면 실로 엄청난 효과를 낼 거라는 건 자명한 일이네.”

“그게 문제일세.”

“자세히 말해보게.”

가서일의 표정과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할 수만 있다면 왕고덕의 방침을 어기고 싶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무리 정세가 호의적이라고 할지라도 이곳이 교전 지역이라는 건 사실이지 않은가.”

“혹시라도 아군이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걸 염두에 두시는 거군.”

“그렇지. 농업의 일이기에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전해지는 건 어쩔 수 없네. 그러나 섣불리 북평의 농지에 신농법을 도입했다가 아군이 패배하면 걷잡을 수 없는 결과가 초래할까 우려하시는 걸세. 부담스럽긴 한 일이지.”

을지문덕이라고 할지라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문제였다. 전장에서 확고한 승리를 자신하는 것과 왕도에서 통치를 고려하는 건 아예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아쉽군.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는 우리의 권한을 넘어서는 일일세.”

전장이기에 지휘관의 판단은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오랜 세월 전쟁과 함께 역사를 이어온 고구려였기에 이를 아주 중시했다. 하지만, 통치의 방침은 왕도의 방침을 절대로 어길 수 없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하는 일이었다. 더욱이 고구려의 국세를 좌지우지할 신농법과 관련한 일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끙. 그래도 목화 농사는 미리 준비하라고 하시더군.”

“음?”

“이곳은 목화 재배가 적합하고 크게 시행할 수 있으니 기본적인 준비만 하라고 하셨네.”

그렇다고 해서 바로 집행하는 건 아니었다. 말 그대로 파악만 하고 있으라는 의미였다.

“그래도 기존 농법으로 잘 경작하면 엄청난 수량의 쌀을 확보할 수 있네. 장담하는데 고구려 본토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네.”

“잘됐군.”

“그러니 이번 전투를 반드시 이겨야 하네.”

가서일의 눈동자는 이글이글 불탔다. 기어이 이곳에 신농법을 도입하여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뤄내겠다는 각오와 결심을 강렬하게 표출하는 것이었다.

벗의 열의에 을지문덕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말게. 전투라고 부를만한 일이 발생할지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호의적인 정세이니 말일세.”

“자네가 그리 말하면 되었네. 거는 기대가 크다네.”

“됐네. 목화 재배나 파악하게. 아. 그나저나 대형께서는 요즘 어찌 지내시나?”

“평소와 다르지 않으시다네. 늘 열광하며 씨름을 지내고 계시지.”

그 말에 을지문덕의 목울대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그러나 애써 참는 듯 주먹을 꽉 쥐면서 심신을 안정시켰다.

“통치에도 도움이 되고, 작전상 행하는 일이긴 한데, 왜 이리 기분이 언짢은지 모르겠군. 서일. 내가 이상한 건가?”

“정상일세.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니까. 지금 대형께서는 지독할 정도로 즐기고 계시는 중일세.”

“휴. 대형께 전하게. 본격적으로 대전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일세.”

“음? 조금 전에 전투라고 부를만한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나?”

“생각이 조금 바뀌었네.”

“설마 대형께서 씨름하시는 일로 마음이 상한 건가? 음.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네만.”

“······.”

을지문덕은 멈칫하더니 잠시 뒤 쥐어짜듯 말을 꺼냈다.

“오해하지 말게. 자네가 이 땅에 신농법을 하루라도 빨리 보급하고 싶어 하기에 전투를 빠르게 매듭지으려는 것일세.”

“음. 전혀 신뢰할 수 없긴 한데,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한데, 어찌하려고 하나?”

“장손람과 이연을 완벽하게 흔들 것이네. 튀어나오지 않고는 버틸 수 없을 정도로.”

가서일이 눈을 껌뻑거렸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대형께서 씨름을 멈추셔야겠군. 아마 크게 노하실 것이네.”

“그걸 자네가 말해야 하는 걸세.”

“문덕. 작전의 입안자는 자네인데 독배는 왜 내가 들어야 하나?”

“내가 작전의 입안자이니 자네에게 분공을 내리는 걸세.”

“······.”

너무 맞는 말이었기에 가서일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새 을지문덕의 유들유들한 목소리가 들렸다.

“관리들의 동태는 파악했나?”

“대략적으로 추스르긴 했네.”

“잘됐군.”

을지문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작하겠네.”

말을 보탰다.

“지금 바로.”

가서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기겁하며 대형께 달려가겠네.”

“당장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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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과 장손람의 표정에는 의구심이 가득했다. 북평의 관리 십 수명이 엉망이 된 몰골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먼저 나선 건 장손람이었다.

“대체 무슨······.”

“어찌 된 일인가.”

그러나 이연이 말을 자르며 나섰다. 장손람의 표정이 굳었으나 누구도 신경 쓰지는 않았다. 말 그대로 찰나에 불과한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을지문덕이 병력을 일으켜 부마 온달을 죽였습니다.”

“뭐라······?”

“자세히 말해보라.”

이연이 당황하여 말문이 막혔을 때 장손람이 끼어들었다. 관리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곧장 말을 꺼냈다.

“정확한 사정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두 사람이 최근 갈등이 심하긴 했습니다.”

“갈등?”

“예. 북평 점령 이후 부마 온달은 허구한 날 술을 먹고 씨름이나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에 을지문덕의 불만이 상당했습니다. 군권을 가진 온달과 전략을 수립하는 을지문덕이 가벼운 대화조차 하지 않았으니 어느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장손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온달의 전향이 공론화된 건 아니군. 그랬다면 대외적으로 공포했을 건데 이들은 전혀 모른다. 하면, 을지문덕이 때를 보고 거병한 것이다.’

상황은 급박하게 움직였다.

이연 역시 심각한 표정으로 수염을 쓰다듬었다.

‘시일을 기다려야 한다던 을지문덕이 거병했다? 이는 온달이 눈치를 챘기에 선수를 점한 게 분명하다.’

변수였다.

관리들의 말만 들으면 당장 진군하는 게 옳았다. 하지만, 석연치 않은 점도 있었다.

“한데, 자네들은 어떻게 북평을 나올 수 있었나?”

“예?”

“을지문덕이 거병했다면 경계가 강화되었을 것이다. 한데, 한두 명도 아니고 십 수명이 성을 벗어나지 않았는가.”

“그, 그것이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 좋았다?”

“예. 혼란이 커질 때 소인들을 감시하던 인력에 공백이 발생했습니다. 이때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이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회가 있으면 탈출할 수도 있다는 걸 파악했으니 감시까지 했을 것이다. 이는 고구려군이 철두철미하게 북평을 통치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어차피 북평성을 넘기고자 하는 을지문덕이 주도했을 리가 없다. 결국, 일이 다 끝나면 이들은 수나라의 관리로서 살아가게 될 것이니 말이다.

또한, 죽이지도 않고 감시만 했다는 건 영구적인 통치를 위한 밑그림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부마 온달이 시행한 것이었다. 그래서 상황이 이상했다.

“자네들을 철두철미하게 감시한 온달이 을지문덕의 거병을 사전에 제압하지 못했다는 건가?”

“대, 대인. 소인들이 그것까지는 알지 못합니다.”

“자네들이 알지 못해서 그런지 나는 이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네. 그래서 다시 묻지. 북평성에서 변고가 발생한 건 사실인가?”

“대, 대인. 설마 소인들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묻는 말에 답하게. 아니지. 이렇게 묻지. 부마 온달이 죽은 걸 확실하게 봤나?”

“······.”

누구도 답하지 않자 이연의 눈이 가늘어졌다. 날카로운 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면, 온달이 죽었다는 걸 자네들이 어찌 아나?”

“그, 그것이 성문을 빠져나올 때 들린 말이었습니다.”

“······.”

그렇다면 확실한 건 하나도 없었다. 만일 정말로 군사 충돌이 발생했다고 할지라도 을지문덕이 승리했다고 확신할 수도 없었다. 온달이 마지막에 상황을 뒤엎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대체 이들을 왜 핍박하는 것이오?”

장손람이 강력하게 따지듯 말했다.

이연은 헛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핍박이라고 하셨소? 나는 군권을 가진 사람으로서 상황을 정확하게 하는 것이외다.”

“그렇소? 한데, 고구려에 내분이 발생했다면 우리로서는 호재가 아니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공은 다른가 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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