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낚시
149화 낚시
미끼를 던졌는데 대어가 찰랑찰랑 낚였다. 그러면 어찌해야겠는가. 최선을 다해서 낚싯대를 당겨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본격적으로 힘을 주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하하하! 보셨소? 이게 실력이외다.”
옆에서 낚시하던 사람에게 미친 듯이 자랑하는 것이었다.
“왜 말이 없소이까. 갑자기 말문이 막혀버린 것이오?”
원래 세상은 이런 맛으로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미친 사람처럼 웃으면서 고정의를 쳐다봤다. 결국, 그는 쥐어짜듯 겨우 말을 꺼냈다.
“음.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소.”
“거. 내가 뭐라고 했소? 차분하게 기다리니 수나라와 같은 대어가 잡혔소. 한데, 고 막리지의 말대로 했다면 고작 백제나 낚았을 것이외다. 이게 말이 되오? 미끼를 그렇게 쓰고 송사리나 잡는 것인데 말이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 생각해도 답답하오.”
“······왕 막리지.”
“아니, 그렇게 안 봤는데 손이 왜 그리 작은 것이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소이다.”
“······이보시오.”
“하하하!”
“······.”
기승전결 완벽한 논리였기에 고정의의 표정은 더 궁색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번은 내가 졌소. 고 막리지의 판단이 정확했소. 그러니 그만하면 참으로 좋을 것 같소.”
고정의는 덜덜 떨면서 패배를 선언했다. 나는 너무나도 흡족하여 더 미친 듯이 웃었다.
나는 너무나도 흡족하여 더 미친 듯이 웃었다.
“하하하. 허심탄회하게 승복하는 건 참으로 좋은 일이 외다.”
“······허.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개구리 잡은 걸 알고 있는데 계속 이리할 생각이시오?”
“큭. 그게 실력이외다.”
“······.”
“고 막리지도 뒷걸음질 잘하는 소를 구하면 되오. 내 말이 틀렸소.”
“······이 일은 내가 다시 한번 더 진심으로 패배를 인정하오.”
“다시 들어도 참으로 기분이 좋소.”
“······계속 이러실 것이오?”
“음?”
“하. 언제까지 시간을 더 허비할 생각이시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소.”
떨림이 느껴지는 고정의의 목소리는 나를 참으로 기분 좋게 했다. 하지만, 여기서 더 보태는 건 과유불급이다. 그래서 그냥 너털웃음이나 터트려줬다.
침울한 표정을 한 고정의를 빤히 쳐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수나라 사신단이 내일 떠나게 되오. 그러니 어찌해야겠소이까. 오늘 밤에 일을 도모해야지요. 안 그렇소?”
“됐소. 이미 나는 모든 준비를 끝냈소. 왕 막리지는 어떻소?”
“허. 고 막리지. 이번 일을 입안한 건 바로 나요. 한데, 부족함이 있을 리가 있겠소?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소이다.”
“······됐소. 그나저나 백성이 크게 동요할 것이오.”
“그건 고 막리지가 알아서 해야지요.”
고정의의 안색이 크게 어두워졌다.
목울대로 무언가가 넘어가는 게 보였다.
혀끝까지 치밀어 오른 욕설을 겨우 삼킨 것으로 추정됐다. 그래서 즐거웠다.
“아니오?”
“참으로 아쉽소. 내가 기획한 대로 일이 진행됐어야 왕 막리지가 악역을 맡았을 것인데.”
“하하하! 그래서 말하지 않았소이까. 이런 게 바로 실력이라고 말이외다.”
“더 말하지 않겠소.”
“그래야지요. 지금부터는 말하지 않고 뛰어다니셔야지요. 나는 여기에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는 것이니까.”
고정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눈으로 나를 욕하고 있었다.
나는 가볍게 손을 내저으며 욕설을 걷어냈다.
“그나저나 백제에서 숨겨둔 쥐새끼들은 어찌 되었소? 그간 그들을 감시했을 것인데 말이오.”
“아직 잘 숨어 있소.”
“목리문차의 사람들이오?”
“그렇소.”
“잘됐군요. 이참에 백제도 제대로 넘길 수 있으니 말이외다.”
고정의는 낮게 한숨을 쉬면서 등을 돌렸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밖에는 무장 병력이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잘 부탁하네.”
그러자
“제대로 감시하라.”
고정의가 툭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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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손람의 온몸이 땀으로 범벅됐다. 숨이 턱까지 올라와서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멈출 수는 없었다. 그러는 순간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뭐하오? 더 빨리 움직이시오. 어두울 때 포구에 당도해야 하오.”
약간의 짜증이 담긴 연자유의 목소리가 들렸다. 장손람은 이를 악물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더 움직였을까.
어느새 포구에 이르렀다.
“음.”
앞서가던 연자유가 몸을 돌렸다.
땀을 닦던 장손람은 고소를 삼켰다. 분명 같은 길을 달려왔건만 지친 기색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힘이 넘치니 허구한 날 약탈이나 하겠지.’
여기까지 오면서 수시로 연자유에게 싫은 말을 들었기에 호의적인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공이 타고 온 수나라의 배는 이미 저들이 치웠소. 하지만, 수군은 평양계가 주도하오. 조만간 우리 군선이 당도할 것이니 타고 떠나시오.”
“대체 어찌 된 이유인지 말해주시오. 새벽에 이 무슨 일이오?”
“본 그대로요. 고정의가 거병했소. 그리고 공도 죽이려고 했소. 아시겠소? 공이 여기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던 건 절대 우연이 아니오.”
“패한 것이오?”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기습적으로 거병한 것이외다. 방비할 방법은 없었소. 다시 말하지만, 공을 살린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소.”
장손람의 머릿속은 너무나도 복잡했다.
“아직도 모르겠소? 우리 평양계는 수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체결하고자 하오. 종종 장성 이남으로 적당하게 약탈하는 게 전부라는 말이오. 한데, 국내계의 생각은 다르오.”
“그래서 그들이 나를 죽이려고 한다는 것이오?”
“사신을 죽이는 것보다 더 확실한 선전포고가 있소?”
상상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서는 호전성이었다. 그러니 장손람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하면, 이제 어찌 되오?”
“하. 지켜봐야지요. 아니, 고구려 역사에 이토록 치졸한 거병은 없었소. 새벽에 기습이라니.”
“······왕 막리지는 어찌 되었소?”
“감금된 걸로 알고 있소.”
“하면, 모든 것은 백지가 되는 게 아니오?”
“이보시오. 내가 이 와중에 평양계의 수장인 왕 막리지를 구하지 않고 공을 탈출시키고 있소. 이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시오?”
연자유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기세에는 살기까지 담겨 있었기에 장손람은 멈칫했다.
‘아직 끝이 아니라는 것인가?’
장손람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넘어갈 때
“아직 끝이 아니오.”
연자유가 이를 갈면서 말했다.
“당장 상황이 어려운 걸 부정하지는 않겠소. 그러나 북평을 점령한 부마는 우리 평양계요. 긴밀하게 연계하고 있소. 게다가 고구려 최고의 무장인 고흘 장군도 요동에 주둔 중이외다. 고정의가 왕도에서 거병할 수 있었던 것도 두 분이 부재했기에 가능한 일이오.”
“하면, 북평과 요동의 대군으로 고정의를 제압할 생각이오?”
“물론이오. 하지만, 이 또한 당장 시행하기는 어렵소.”
“그게 무슨 말이오?”
“이보시오. 섣불리 내전을 일으켰다가는 폐하께서 어찌 되실지 모르오.”
“어차피······!!!”
장손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연자유가 그의 멱살을 잡았다. 기세가 참으로 날카로웠다.
“미치셨소? 감히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오?”
“그, 그게 아니외다. 한데, 잘 생각해보시오. 고정의가 역모를 일으켰는데 폐하를 그냥 두겠소?”
“그리하는 순간 부마와 고흘 장군이 뒤도 안 돌아보고 남하할 것이오. 모르겠소? 고구려를 상징하는 두 무장이 수만의 대군을 이끌고 공세를 펼치면 고정의는 절대 막을 수 없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됐다.
즉, 고정의는 고흘과 온달의 공격을 차단하기 위해서도 고양성을 살려둘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러니 당장은 폐하를 어찌할 수 없소.”
장손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표정은 개운하지 않았다. 의문이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연자유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했다.
“잘 들으시오. 우리 고구려의 태왕은 서토의 황제처럼 갈아 치울 수가 없소.”
“뭐요······.”
“역모를 일으켜서 왕성을 바꿀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외다. 그건 누구도 동의하지 않소. 이 땅을 통치할 수 있는 건 오직 추모왕의 핏줄이오.”
“······.”
“그러니 내전으로 승리하더라도 폐하께서 승리하시면 우리에게는 대안이 없다는 것이오.”
“그건 고정의도 마찬가지가 아니오?”
“그는 다른 이들처럼 왕성을 하사받은 게 아니라 추모왕의 핏줄이오.”
“그 말은······.”
“그렇소. 그는 직접 태왕에 오를 수 있소.”
“허.”
평양계가 철저하게 근왕파로서 역사를 이어온 건 태왕이 될 자격이 없기 때문이었다. 반면, 국내계는 태왕을 대체할 수 있는 가문이 존재했다. 그래서 내전은 국내계가 주도할 것이다.
대체제의 유무.
평양계와 국내계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이것이었다.
장손람은 이제야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더욱이 고정의는 이번 북평 점령까지 주도했기에 전보다 입지가 더 강해졌소. 시간이 더 흐르면 고흘장군이나 부마도 어찌 될지 모르오.”
“그가 태왕이 되면 고구려의 외교가 강경해질 수밖에 없겠구려.”
“그렇소. 비정상적으로 태왕이 되었기에 외부의 위기를 이용하여 왕권을 강화하고자 할 것이오. 하. 이번 북평 점령도 그가 철저하게 기획하지 않았소이까. 거기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 것이었소. 그 의도를 미리 파악하지 못하여 이 사달이 난 것이오.”
연자유는 차분하게 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때가 되면 모두 항복할 것이오.”
“뭐요······?”
“폐하를 폐위하지 않는 조건으로 부마와 고흘 장군을 비롯한 평양계가 모두 고정의에게 항복할 것이오.”
“하면······?”
“그가 대대로에 오르겠지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대대로에 올라서 모든 권력을 장악하면 폐위는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 당장 내전을 차단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는 말이오?”
“그렇소.”
“이렇게 기를 쓰고 나를 살려주는 이유도 명확하구려.”
“그렇소. 수나라의 대군을 출병해주시오. 본국과 전쟁하는 건 고정의가 바라는 상황이오.”
“국내계의 병력이 전선에 집결할 때 일거에 제압하겠다는 것이오?”
“바로 그것이오.”
장손람은 한 가지 의문을 더 제기했다.
“고정의가 대대로가 된다면 자기 사람을 북평과 요동에 보낼 것이오. 하면, 책임자가 바뀌는데 어찌 우리와 소통할 수 있겠소이까.”
“어차피 우리도 고정의에게 최소한의 신뢰를 얻을 시간은 필요하오. 공이 귀국의 황제에게 이 사실을 전하고 상황을 정리한 뒤 대군을 출병할 시간 정도면 충분하오.”
연자유는 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어차피 고정의가 원하는 건 수나라와 싸워 이기는 것이오. 그러자면 부마와 고흘 장군은 무조건 필요하오. 즉, 두 분이 왕도로 오게 될지라도 전쟁이 발생하면 다시 전선으로 가게 될 것이오.”
장손람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이제 모든 의문이 해소됐다.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이오. 그러니 귀국도 반드시 우리의 합을 맞추셔야 하오.”
“좋소.”
연자유도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재밌군.’
물론, 속으로는 조소를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