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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농사도 잘함-92화 (92/199)

92화 역사란 무엇인가(3)

92화 역사란 무엇인가(3)

칠중성 포위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충 둥글게 둥글게 둘러싸니 딱 보기 좋게 진영을 구축한 것이다.

자연스레 회담 장소는 우리 진영이었다. 당장 아쉬운 건 신라였으니 군말 없이 여기까지 온 것이다.

신라군 회담 대표는 병부령 김후직이었다.

내심 김백정이 오길 바라였는데 병부령 따위가 와서 크게 실망했다. 별로 중요한 사람은 아니라서.

물론, 나는 이를 굳이 내색했다.

“왕이 올 줄 알았는데······.”

아쉬운 걸 숨기고 살면 속앓이나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매사 사람은 솔직해야 하는 법이다.

뭐. 그래도 전권 대사는 분명하다.

그래서 바로 본론부터 꺼냈다.

“우리의 영토를 공격했네. 전쟁을 원하는가?”

“이보시오. 어찌 외교의 자리에서 하대하시오? 참으로 무례하시오!”

아니, 초면부터 헛소리다.

게다가 여기가 어디라고 눈을 부라리는 건지 모르겠다. 심지어 내가 막리지인데 병부령 따위가 이러고 있다.

대국의 막리지와 겸상하려면 소국은 왕이 와야 말이라도 섞는 법이거늘 병부령 따위가 와도 대화해주는 은혜를 모르고 말이다.

그래서 미간을 와락 찌푸리며 말했다.

“허. 이 대화를 또 해야 하나? 보고 못 받았나? 알이 여섯 개인지, 사람이 여섯 개인지······아. 그런데 이거 결론이 나왔네. 닭알이라고 말일세. 돌아가거늘 왜곡을 인정하고 진실을 수용하게.”

“이보시오! 감히 일국의 건국을 모독하고······.”

“건국?”

나는 황당해서 그의 말을 잘랐다.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언급해주기로 했다.

“말은 바로 하라. 박씨 신라는 닭알이지. 한데, 지금은 김씨 신라가 아닌가? 게다가 김씨 신라의 건국은 우리 광개토태왕께서 내려주신 게 아니었나?”

“!!!”

“하면, 건국은 광개토태왕의 위대한 업적을 기려야지. 어디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나?”

나는 상대를 지그시 쳐다보며 말했다.

“과거 광개토태왕께서 5만의 대군으로 신라의 건국을 윤허하셨다. 한데, 오늘은 우리 태왕께서 5만의 대군을 내리셨다. 그러니 너희 왕의 수급을 취하여 신라의 역사를 끝내면 되는가?”

“감히······!”

“아.”

김후직이 분기탱천하려고 하길래 귀찮아서 손을 내저었다. 내가 신라 병부령 따위의 노여움이나 듣고 있을 이유는 없다.

“감히 너희가 고구려의 영토를 범하였다. 혹시 과거에 하늘이 도와 기적 같은 일이 발생했던 짧은 영광을 기억한 것이라면 진정 미친 것이지.”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길래 그냥 빤히 쳐다봤다.

“지금 앉게. 바로 교전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면.”

김후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입술을 깨물며 얌전히 자리에 앉길래 비웃으며 말을 꺼냈다.

“내가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걸세. 혹시 5만의 병력만 동원되었다고 생각하나? 내일이면 10만, 또 하루가 지나면 15만이 남하할 것이다.”

“······.”

“허. 그 표정은 뭔가? 아니, 생각이라는 걸 하라. 바로 지척에 본국의 왕도가 있다. 한데, 우리가 고작 5만으로 응수할 것이라고 여겼나? 그래.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고작 1만으로 북진을 꾀한 네놈들의 용기가 가상할 뿐이다.”

“······.”

“물론, 온 힘을 모아낸 것이 1만의 병력에 불과하겠지만. 아니, 그러니 주제 파악이라는 걸 좀 하게. 1만으로 뭐하나?”

나의 조롱은 끝을 보이지 않고 이어졌다.

물론, 조롱만 할 수는 없다.

현실도 직시시켜줘야 대화 아니, 나의 기자회견이 원활하니 말이다.

“이 대화의 끝은 우리의 남진이다. 조금 전에 보아하니 돌아가고 싶은 거 같은데 아직 늦지 않았네. 가도 좋으니 알아서 하게.”

“그런······.”

“아. 내 말에 토를 달아도 남진이다.”

“······.”

“그냥 듣기만 하게.”

김후직은 애써 진정했다.

화가 치밀어 올라서 협상을 결렬시킬 때 시키더라도 내용은 들어보고 해야 할 말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말에 어폐가 있소. 고구려가 먼저 우리의 영토를 공격했소.”

“우리가 언제 공격했나?”

“이보시오! 지금 그게 무슨 말이오! 심지어 군왕기까지 목격되었소!”

“군왕기? 고구려의 번국 말갈국의 군왕기를 말하나?”

“뭐요······?”

김후직은 눈을 껌뻑였다.

참으로 표정이 어지러워 보였다.

뭐. 대충 상황은 짐작됐다.

돌지계가 고양성인 줄 알았구나.

그런데 이건 신라 사정이다. 나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게다가 이번 약탈은 고구려가 아니라 번국이 주도한 것이다. 한데, 신라가 발작하여 달려오지 않았나? 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너희도 과거 우리의 속국이었기에 지엄한 북방의 법도를 배우고 익혔을 것이다. 한데, 어찌 이토록 사소한 일에 발작하나?”

“누가 누구의 속국이었다는 말이오!”

“하면, 너희가 우리의 속국이 아니었나?”

역사가 곧 팩트다.

“이 자리에서 역사에 대해 이르기라도 해야 하나? 아니, 병부령이라는 인물이 역사 공부도 안 하나?”

나는 시종일관 김후직을 압박했다.

일국의 병부령에 이른 인물이었으니 절대 무능할 리는 없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압박이 너무나도 거대하고, 나의 언변이 유려하고 논리정연하였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뿐이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묻지. 번국의 일에 우리가 어찌 다 관여하나? 아니, 과거 신라는 시키는 대로 다 했나? 아니지 않나? 한데, 왜 다른 나라에는 말을 잘 들으라고 하나? 참으로 저열하고 어처구니가 없군. 너희부터 잘했어야지 않나? 이런 걸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걸세. 선대 속국이었던 신라가 엉망이니 저들이 뭘 보고 배우겠나? 참으로 답답하군.”

김후직의 안색은 아예 하얗게 변해버렸다. 기가 빨려 나가는 기분일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제대로 가르쳤어야 했다.”

나는 김후직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그때 제대로 길을 들였어야 머리를 들지 못했을 것이니 말일세.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한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네. 아니, 최소한 법도는 제대로 알았어야지.”

“!!!”

“왜 계속 눈을 부릅뜨나? 내 말이 틀렸나? 네놈들의 성세에 자력이 1할이라도 있더냐? 모두 우리가 일러준 것이다.”

이 대화 귀찮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가?”

“······.”

“혹시 그들을 어찌하고 싶나? 한데, 그들의 본거지는 한성일세. 하늘을 가로지르지 않는 이상 본국의 영토를 지나쳐야 하는데 설마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닐 것이다.”

“······.”

“원하면 응해주겠네.”

신라가 전쟁을 피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신라왕 김백정은 우리가 포위한 상태였다. 외부로부터 연락도 차단됐다. 괜한 짓을 했다가 5만의 대병이 진군하면 그들은 ‘일단’ 위기에 봉착한다.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딱 시의적절하게 외교 협상이 열렸으니 성과를 찾고자 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욱한 마음에 전쟁을 언급하는 건 자질이 없는 것이다.

“아니면 그들과 제대로 겨뤄보겠나? 고구려는 빠져주겠네.”

“정말이오?”

“물론일세. 윗물이 강한지, 아랫물이 강한지 견식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서 그러하다네. 아. 정말일세. 고구려는 정말 구경만 하겠네.”

나는 비릿하게 웃으면서 말을 보탰다.

“신라의 병력이 1만 남짓이었나? 그런데 지금 칠중성을 포위하고 있는 5만의 대병이 모두 우리 번국의 병력일세.”

“뭐요······?”

“어떤가? 해볼 수 있겠나?”

김후직의 눈동자는 격하게 흔들렸다.

설마 번국의 병력이 5만을 상회할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사실 국토 개발에 전념하는 고구려가 순식간에 이토록 많은 병력을 동원하는 건 무리였다.

물론, 하려면 못할 건 없지만, 다시 말하지만 그리할 거면 이주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하겠으나 김후직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안색만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쳐다보면서 말했다.

“왜 그러나? 기회를 일렀는데도 싫다고 하면 나는 대체 어찌해야 하나?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군.”

“······.”

“그러니까 애초 백제도 감당하지 못하는 소국이 뭐 하러 친정씩이나 하고 다니나? 대충 있으면 될 것인데.”

더는 듣기 힘들었을까?

김후직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엇을 원하시오.”

그의 말은 바로 이어졌다.

“대체.”

이토록 대놓고 물어볼 줄은 몰랐다.

부끄럽게 말이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물어보니 답해줘야지.

나는 싱그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감히 본국의 영토에 말발굽을 들이밀었네. 이를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않겠나?”

“······.”

“그러니 머리 박게.”

“뭐요······?”

“너희 내물마립간이 했던 것처럼 머리 박으라는 말일세. 우리 태왕 폐하께.”

“!!!”

나는 느긋하게 말했다.

“아니면 싸우게.”

누구와 싸우는가.

“아니, 싸워보지.”

우리와 싸운다.

고구려와.

“본국의 대군도 곧 남하할 것이네.”

여전히 싱그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상상해보게. 10만의 대군이 신라왕을 보겠다며 고함을 지르며 칠중성으로 돌격하는 순간을 말일세.”

물론, 고구려군은 아직 동원할 계획은 없다. 그러나 김후직이 이를 어찌 알겠는가?

그리고 보탰다.

“원군을 기대하지는 말게. 이미 신라의 방어 체계가 얼마나 무용지물인지 우리의 번국이 확실하게 입증했으니까. 아. 농성전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생각도 말게.”

그러면 어찌하면 되는가.

“사실 공격할 생각은 없네. 굶겨 죽일 거니까.”

나는 정주민족이 유목 민족에게 포위당했다가 왕이 머리를 박은 슬픈 전설을 알고 있었다.

미리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대충 할 말을 모두 전하여 회담을 마무리하려고 할 때였다.

“아니! 형제께서 여기 계셨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형제’라는 두 음절이 내 심장을 움직였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진나라의 위정이 함박웃음을 짓고 양팔을 벌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양팔을 벌리고 다가갔다.

“아니! 형제께서는 어찌 오셨소?”

“하하하! 형제를 보러 왔나 보오!”

“하하하! 마음이 통하였소.”

우리는 격하게 포옹하였다.

그나저나 진짜 이 사람이 여기는 왜 있는지 의문이었다. 적당하게 끌어안고 물러선 뒤 눈을 껌뻑이며 쳐다봤다.

위정은 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황명을 수행하고자 신라로 가는 길이었소. 한데, 당도하고 나니 전쟁 중이라고 하지 않소? 대경실색했는데 고구려와 전쟁을 한다기에 냉큼 달려왔소. 과연 형제께서 계셨소.”

“하하하! 참으로 잘 오셨소. 한데, 신라는 어찌하여······?”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끝을 흐렸다.

진나라와 신라가 가까워지는 건 썩 내키지 않는 일이긴 해서였다.

그러나

“하하하! 우리 황상 폐하께서 신라에 엄중히 경고하셨소! 감히 북을 쳐다보지 말고 백제나 경계하며 조용히 살라고 말이외다.”

답변은 환상 그 자체였다.

나는 진심으로 격하게 반겼다.

“이런!”

아주 유효타 제대로였다.

“과연 대진국의 황상 폐하시오! 아주 탁월하시오!”

“하하하! 우리는 형제의 나라인데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지요!”

“하하하!”

나는 진자 미친놈처럼 웃으면서 김후직을 쳐다봤다. 참담하게 일그러진 표정은 그와 신라의 처지를 확실하게 말해주는 것이었다.

진나라가 이 땅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은 행사할 수 없다. 그러나 외교적 압박이라는 건 그 자체로 실효성이 있는 것이다.

나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면서 말했다.

“그런데도 신라의 원군이 올 것이라고 기대하겠지. 그러니 걱정하지 말게. 아마 지금쯤이면 막리지 아회씨가 1만의 기병을 이끌고 남진을 시작했을 것이니 말일세.”

“혀, 협상 중이었소.”

“그러나 전쟁은 진행 중이지 않은가.”

하품하며 말했다.

“뭐 하나? 가보게. 할 말은 다 했으니까.”

역시나 들을 말은 없었다.

이대로 축객령이었다.

그리고 오늘도 명강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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