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백성을 위한 나라는 없다(2) >
76화 백성을 위한 나라는 없다(2)
고대원도 백성을 위하고자 했다.
이문진도 백성을 위하고자 한다.
본질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하지만 과정은 전혀 달랐다.
우선 고대원은 고구려의 틀을 유지한다.
반면, 이문진은 변화를 도모한다.
이는 아주 큰 차이였다.
물론, 궁극적으로 이문진이 일궈낼 변화가 고대원이 이끌 고구려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건 훗날의 일이다.
고구려는 아직 오늘을 살고 있으니 어찌 내일 해야 할 일에 힘을 사용할 수 있겠는가.
아직 고구려는 오늘을 살기에도 버겁지 않은가.
모든 건 순서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지금 고구려에서 의술을 보급한 건 입헌군주제를 도입하는 것처럼 독이 되는 짓이다.
최선은 역병에 대처하는 것과 의서를 준비하는 수준에 그쳐야 한다.
하여, 나는 다시 물었다.
“어찌하여 답이 없나? 하늘 아래 백성을 위하는 나라가 있는가?”
이문진은 답하지 못했다.
왜?
없으니까.
내가 억지 논리를 펼치는 게 아니었다.
위계로 누르는 것도 아니었다.
이 시절 동아시아에서 오직 백성만을 바라보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건 절대로 억지가 아니었다. 어쩌면 당연하게 느껴지는 민심을 중시하는 정치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민심은 추상적인 흐름에 불과했고, 정치의 담론이 될 수 없는 시대가 바로 지금이었다.
백성을 구제하고자 나오는 정책은 백성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한 수단이었다.
오직 백성을 바라보는 지고한 가치는 아직 싹틀 수 없는 시절이었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만국이 백성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전쟁을 일으키고 있네.”
“······.”
“위정자는 이를 악물고 백성으로부터 전쟁 물자를 확보하고자 하네.”
“······.”
“선정? 웃기지 말게. 결국, 군비 확보를 위한 통치에 불과하네. 백성의 삶이 질적으로 나아지는 건 통치 행위의 부산물에 불과해. 한데, 고구려는 뭐가 다른가?”
“······.”
나는 농자천하지대본을 부르짖었다.
하면, 이는 어찌 구현되고 있는가.
백성에게 최고의 밥상을 내리고자 질적인 성장을 준비하고 있었나? 아니다. 오직 나라를 살찌우기 위한 수단이었다.
“나는 백성에게 경작지를 내렸으나 수확량의 5할을 조세로 바치라고 했네. 하면, 그들의 형편을 위하여 1할만 내라고 할까?”
“······.”
“어찌하여 계속 대답을 피하는 것인가? 답하게.”
“······.”
설령 내가 백성을 위하여 농자천하지대본을 부르짖더라도 될 수가 없다.
이는 참으로 간단한 이치였다.
이곳에서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한계선과 만날 수밖에 없다. 농업을 아무리 발전시킬지라도 조선의 수준을 넘어설 수는 없다.
농법을 도입한다고 하여 천년의 차이를 넘어설 수 있는 건 아니다. 천년이라는 시간은 사회 전체 기층에서 자욱하게 깔려 있을 백성의 지혜와 지적 수준에 엄청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설령 억지로 온 힘을 다하여 달려도 없다. 애초 내가 도입하는 농법이 전근대의 것인데 어찌 조선보다 더 나아갈 수 있겠는가.
물론, 후대는 다를 것이다.
오늘 내가 집행한 농법은 사후 누군가의 손에서 더 발전할 것이니 고구려는 결국 조선의 생산력을 넘어설 것이다.
그러니까 후대의 일이다.
하면, 냉정하게 작금의 시대를 바라봐야 한다.
딱 하나의 사례면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농민은 가난했다. 하면, 고구려의 백성은 다르겠는가? 질문 자체가 틀려먹은 것이다. 무조건 가난할 것이다.
“조세가 수확량의 1할이면 백성을 부유해질 것이네. 의술? 그래. 도입할 수 있네. 그 정도면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겠지. 어떤가? 이리하면 되겠는가?”
여전히 답변은 없었다.
되도록 이문진의 머릿속에 담긴 여러 생각을 듣고 싶었다. 한데, 쉽사리 입을 열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의 표정에서부터 엄청난 번뇌와 고민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혹은 어떤 의견을 듣지 않아도 되었다. 내가 정확하게 상황을 전하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
“농자천하지대본은 고구려가 부유해지는 것일세. 천하의 패권을 다툴 힘이 되는 것이네.”
나 역시 처음부터 이렇게 여긴 건 아니었다.
농업 자체에 방점을 찍고 농업 혁명을 이루고자 했다. 그러나 고구려의 여러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논하며, 무엇을 먼저 일궈야 하는지 깨닫게 된 것이다.
이 시절 고구려인들의 사고가 단순하고, 무지하여 전쟁을 부르짖는 게 아니었다. 작금의 천하에서 전쟁은 공격이 아니라 생존의 수단이었기에 발생한 현상이었다.
당장 국력을 강화하지 않으면 몰락하는 지독한 시절에 전쟁을 기피하는 건 곧 반역이었다.
“10만 석의 쌀을 더 확보하면 한수 전선을 펼칠 수 있고, 20만 석의 쌀을 더 확보하면 요동 전선이 튼튼해지며, 30만 석의 쌀이 있다면 요서를 확고히 할 수 있네. 농업의 진흥이라는 건 곧 우리의 영역을 팽창하는 것이며, 힘을 가지는 것일세.”
“······.”
“이 길에 백성, 그 자체는 존재할 수 없네.”
후대가 내게 냉정하다고 질타해도 무관했다. 이문진이 나를 어찌 바라보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나는 이 생각을 전혀 굽히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백성의 삶은 고구려의 운명 뒤에나 존재하는 걸세.”
결론을 던졌다.
그러자
“소생은······.”
이문진이 입을 열었다.
“소생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충분히 설명했네만 그 반응은 의외로군. 물론, 듣지 않을 수는 없겠지. 어째서 동의할 수 없다는 건가?”
“백성의 수가 부족하여 서토의 사람을 잡아 오고 있습니다. 틀렸습니까.”
“분명 그러고 있네. 그러니 틀리지 않았네.”
“또한, 대인께서는 분명 10년 뒤, 20년 뒤 고구려의 백성이 수배로 늘어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내가 분명히 그리 말하였네.”
“한데, 병마를 제압하는 건 어찌하여 대계와 어긋난다는 것입니까.”
“······.”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나는 분명 대한민국에서 평범하게 살았거늘 어찌 이토록 지독할 수 있을까. 원래 이 몸의 주인이었던 왕고덕은 온화한 성품이라고 들었거늘 어찌하여 이토록 고약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나와 왕고덕의 자아가 만나면서 이리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명확한 원인을 알 수는 없다.
다만 확실한 건 지금의 나는 참으로
“농사짓고 여러 일을 하던 서토의 사람은 때가 되면 병들어 죽겠지.”
잔인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참으로
“농업 생산력이 늘어나니 새로 태어날 백성이 적어도 굶어 죽는 일은 없겠지. 이들은 고구려가 담보해야지. 안 그런가?”
피도 눈물도 없었다.
인분 시비법의 확대로 백성의 생계가 윤택해진다는 사실 하나로 함박웃음을 짓던 이문진이었다. 나의 몇 마디 말에 그의 눈동자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흔들렸다.
“대인에게 백성은 수단이라는 겁니까.”
“말을 곡해하지 말게.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현실을 말할 뿐이네.”
“그 현실은 결국 고구려의 생존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까.”
“틀렸네.”
“대체 무엇이 틀렸다는 겁니까.”
“만일, 고구려의 생존‘만’을 고려했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지독해질 이유는 없지. 자네 말대로 의술을 널리 보급해도 탈이 없네.”
어떤 나라를 떠올렸다.
그 나라는 생존‘만’을 위하여 참으로 저열하게 역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우리 남쪽에서.
그러나
“우리가 지금 생존만을 도모하고 있나?”
고구려는 다르다.
“진실로 그리해야 한다면 이토록 이를 악물고 달려갈 필요가 없네. 백성의 삶에 모든 걸 집중하면 될 것이네. 그 뒤에는 어찌하면 되겠나? 돌궐에게 머리를 숙이고, 수나라에게 무릎을 꿇으면 되는 것일세.”
“······.”
“하여, 청하는 걸세. ‘황제폐하. 남쪽의 신라가 우리의 국경을 넘보고 있사옵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소수의 군사를 일으켜 신라를 벌하여도 되겠사옵니까.’ 이렇게.”
“어, 억지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하겠군. ‘황제폐하. 남쪽의 신라가 간악하여 우리 국경을 어지럽히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우리 고구려는 힘이 부족하여 어찌할 도리가 없사오니 부디 천자의 위엄을 보이시어 신라를 벌하여 주시옵소서.’이건 어떤가.”
“무, 무슨······.”
“아니라고 말하지 말게. 부정하지도 말게. 힘이 없으면 우리 국경을 짓밟는 적을 벌하고자 대군을 일으키는 것도 허락받아야 하네. 때로는 그 힘조차 없기에 원군을 청하게 되겠지. 비루하게.”
나는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리하면 다 할 수 있네. 국세를 팽창하지 않을 것이니 그 힘을 오롯이 백성에게 사용하면 되는 것이니 말일세.”
그러나
“우리는 생존이 아니라 패권을 바라보고 있네.”
고구려는 천하의 역사를 주도하고자 한다.
지금은 이것이 우선이다.
“의서를 편찬하여 의술을 보급한들 누가 의원의 길을 걸어야 하나? 지금 고구려가 그 정도로 지식인이 형성되어 있나? 총명한 백성에게 글자를 익히게 하여 농법을 집행하게 하는 것도 버거운 상황일세. 한데, 의원이라. 어불성설일세. 냉정하게 말하면 역량 낭비일세.”
의원이 될 사람도 없다.
의서는 그저 기념비적인 존재가 될 뿐이다.
후대에 남겨진다면 ‘현존 최고 의서’라는 식으로 말이다. 지금 우리는 이런 수식어에 집착할 때가 아니다.
백성을 바라보는 정치.
백성을 위하는 정치.
이 지고한 정치는 오직 천하가 태평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외침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때 할 수 있다.
늘 공세를 고려하지 않아야만 가능한 것이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백성을 바라본다는 말은 절대로 추상적인 가치나 정치적 구호가 아니다. 일국의 모든 정책을 오직 백성의 삶이 질적으로 향상될 수 있도록 단행하는 것이기에 그러했다.
조선이 500년 내내 조세 제도의 개편을 두고 실랑이를 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축적된 힘을 오직 백성의 복지에 사용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난세였다면 나올 수 없는 일이다.
쌀이 필요하면 징발해야 할 시대에 어찌 조세 제도나 개편할 것인가.
외세와 싸워야 하는데 기득권을 상대로 한 개혁을 어찌 감행할 것인가.
그런데도 해야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 담론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작금의 천하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여, 백성을 위한 개혁은 고구려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아니, 적어도 지금은 그러했다.
하여, 백성이 본질이 되는 정치는 우리의 시대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지금은 국가가 우선이다.
또한, 이를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백성이 등장할 시대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즐겁게 웃으며 백성만 살찌우면 된다는 말은 남쪽의 신라와 백제를 벌하고, 북방의 돌궐을 제압하며, 서쪽의 수나라를 도모한 이후에나 꺼내게. 우리는 이 중 아직 하나도 해내지 못했으니 말일세.”
“······.”
“백성이라.”
피식 웃었다.
“무려 천년을 난세와 함께 살아온 이 나라 고구려에서 그런 이상은 참으로 무의미한 것일세.”
“······.”
“역병을 방비하는 수준에 국한하게. 또한, 작은 준비만 이뤄내게.”
“······.”
“만일 어긴다면 후회하게 될 것이게.”
쐐기를 박았다.
“내가 누군지 잊지 말게.”
건국 이후 단 하루도 난세로부터 벗어 나지 못한 나라에서 백성은 그저 존재할 뿐이다.
비록 그 시간이 이미 천년에 육박하였을지라도.
고개를 숙인 이문진에게 한 마디를 던졌다.
“좌절하지 말게. 지금은 그저 때가 아닐 뿐이니.”
그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작금의 백년대계는 오직 고구려의 패권을 도모하는 것일세. 여기에 백성이 낄 자리는 없네.”
그러나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겠지.”
때는 올 것이다.
언제라고 기약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