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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농사도 잘함-61화 (61/199)

61화 고구려사, 그 전설의 시작(2)

61화 고구려사, 그 전설의 시작(2)

갑옷을 입힌 말을 개마(鎧馬)라고 한다.

천하의 패권을 다툴 때 중장기병의 위력이라는 건 참으로 중요하기에 모두가 개마의 육성에 국력을 기울였다. 나라마다, 종족마다, 세력마다 개마는 각양각색이었다.

그러나 만민에게 하늘 아래 개마의 으뜸을 물으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답했다.

고구려라고.

단 한 명의 열외도 없이 모두 이러했다.

하여, 고구려의 개마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시작은 꽃잎이었다.

말의 아래턱을 자연스레 감싼 금속은 꽃과 같다. 분명 금속이거늘 사람을 홀리는 향을 내었으니 혈향(血香)이었다.

정신을 아득하게 하는 향에 취하여 다가가면 유려하게 몸통을 덮은 찰갑옷이 보였다. 모두가 갑옷이었다.

그렇게 한 걸음 더 다가가면 개마의 눈동자와 만나게 된다. 분명 말이었으나 인지할 수 있는 건 눈동자밖에 없었다.

누구라도

“······.”

개마의 눈동자를 보면 향에서 깨어나게 된다.

만일,

“······.”

누구라도

“······.”

이 찰나와 맞이한다면 보게 된다.

말발굽은 철갑을 두르지 않았다는 걸.

그 순간

“!!!”

수나라 병사의 시야가 확장됐다.

그리고

-퍼억!

말발굽에 깔려 죽었다.

고구려의 개마에게 물러섬은 곧 반역이었다.

미물에 불과했으나 이를 알았다.

하여,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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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은 참으로 물렀다.

그러나 귀하였다.

구하기 힘들기에 귀한 것이 아니었다.

청동이 곧 예와 법도였기에 귀한 것이었다.

갑옷에는 청동으로 만든 단추가 좌우 대칭으로 유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오직 이 청동 단추만이 개마의 말발굽을 통제할 수 있었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력을 보이는 개마였으나 불사는 아니었다.

영원히 나아가고자 하였으나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개마의 주인의 두 발이 땅과 마주하게 된다.

그들의 윗목에서 시작된 목 갑옷은 귀밑까지 보호했다. 가슴과 팔도 단갑이 모두 둘러쌌기에 개마처럼 오직 눈동자만 세상과 만나고 있었다.

바로 이들이 철의 전사였다.

그리고 철의 전사는 피의 규율과 함께했다.

개마와 함께 적을 유린하던 창은 이미 부러졌다. 이후, 그의 손에서 거침없이 적의 피를 세상에 꺼내며 휘둘러지던 환두대도는 누군가의 목을 관통하며 역할을 다하였다.

하여, 빈손이었다.

그러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무리 손에 잡히는 게 없더라도 나아갔다.

고구려의 무예는 늘 빈손으로 상대의 무기를 빼앗기에 공수탈창(空手奪槍)이라고 했다.

그러했기에 무기가 없을지라도 적을 도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또한 버거워질 수가 있다.

몸의 기력이 다할 때였다.

그래서 주먹을 휘둘렀고

“하하하!”

거침없이 발로 걷어찼다.

“내 숨통이 끊어질 때가 싸움의 끝이니라!”

창과 칼의 공격으로 다리를 절었다.

주먹은 찢어지고 다쳐 뼈가 도출됐으나 움직임은 쉬지 않고 이어졌다.

하지만 철의 전사 역시 불사는 아니었다.

숨이 가파르게 차올랐고, 몸의 속도는 더뎌졌다. 늘 가벼웠던 갑옷이 유독 불편했다.

적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던 눈동자는 점차 흐려졌다. 시야가 어두워졌다.

지금 움직일 수 있는 건 오직 본능의 구현이었다.

그때 그의 눈에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아군이 보였다. 아직은 매섭게 창칼을 휘두르고 있었으나 적의 칼이 목을 취하고자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몸을 던졌다.

그 순간

-퍼억!

적군의 칼이 제 몸을 관통했다.

하지만 아직 숨이 붙어 있었기에 온 힘을 다하여 그의 안면을 가격했다.

그리고 외쳤다.

“하하하! 나 먼저 가네!”

호탕한 웃음이었다.

생존자는 돌아보지 않았다.

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그 또한 고구려인이 아니겠는가.

그러기에 있는 힘껏 환두대도를 휘두르며 나아갈 뿐이었다.

오직 최선을 다하는 것이 생명을 지켜준 보답이었다.

하여, 약조했다.

“먼저 가시게! 자네 몫까지 내가 다 죽이고 따라가겠네!”

답변은 들리지 않았다.

머지않아 만날 것이기에 아쉽지 않았다.

그의 손은 거침없이 그리고 유려하게 휘둘러졌다.

무릇, 고구려의 환두대도는 찌르지 않는다.

오직 휘두르며 다수를 제압할 뿐이었다.

다시 적의 목숨을 취하였다.

그러나

-퍼억!

뒤에서 찔러 온 칼이 배를 갈랐다.

하지만

“네놈도 가자!”

고통을 짓누르며 몸을 돌려 적의 목을 베었다.

그 순간

-퍼억!

십수 개의 창이 온몸을 관통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눈이 감겼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상기했다.

십수 개의 창.

이는 십수 명의 적군이라는 걸 의미한다.

하면, 이 또한 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아직 살아남은 철의 전사들에게 마지막을 전해야 한다.

크게 웃으며 외쳤다.

“하하하! 내가 이 창을 모두 가져갈 것이니라!”

마지막은 이래야 한다.

병장기도 이들의 손도 모두 잡아야 한다.

찰나에 불과할지라도.

“하하하! 좋구나!”

오늘 이들은 전설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니, 이들과 개마가 전설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니, 아니었다.

철의 전사와 개마는 이미 전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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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웠다.

홀로 십 수명과 싸웠다.

그런데 한 명이 전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지금 발생하고 있었다.

이는 오직 오직 기세의 문제였다.

두려워 다가가지 못하였고, 본능적으로 창칼을 휘둘렀으나 아군을 베고 말았다.

적의 손에 죽는 이보다 어지럽게 오가던 아군의 손에 죽는 이가 더 많았다.

하여, 두려웠다.

아니,

“하하하!”

질렸다.

“좋구나!”

난전이었다.

창칼이 복잡하게 휘둘러졌고, 피가 튀었고, 팔다리가 잘리는 싸움이었다.

그런데 웃고 있었다.

칼을 휘둘러도 웃었고.

주먹을 휘둘러도 웃었고.

팔이 잘려도 웃었고.

창이 심장을 관통해도 웃었다.

그리고 숨을 거둘 때도 미소를 지었다.

이들 아니 고구려인들은 진정 미친놈들이었다.

그래서 정말 질렸다.

죽이고 있었으나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죽였으나 머릿속이 지배당하는 것만 같았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마찬가지였다.

광기 어린 고구려인들의 웃음이 전장을 휘어잡고 있었다.

다시 적으로 창으로 관통하였다.

그때 눈이 마주쳤다.

보였다.

초승달처럼 휘어지는 상대의 눈동자가.

소름이 끼쳤다.

이를 악물며 말했다.

“우, 웃지마······.”

그러나

“하하하!”

어김없이 들렸다.

고구려군의 심장을 관통하였으나, 저들의 웃음이 귀를 관통하여 머릿속을 흔들었다.

이는 진실로 공포였다.

적의 심장을 관통한 창을 잡은 손에 힘이 빠졌다.

그리고

“······.”

자신 심장이 관통됐다.

고통의 순간 목을 돌려 보았더니 아군이었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웃지 않고, 떨고 있었다.

그의 발걸음은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한걸음 씩.

창을 잡은 손을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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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에서 감정의 동요는 불필요한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가 발생하겠으나 일군을 통제하는 을지문덕은 차가울 정도로 냉정했다.

적과 아군이 뒤섞인 혼전이었다.

정확한 전선을 확인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래서

‘아군이 주도하고 있다.’

승리하고 있었다.

고작 수백에 불과한 중장기병이 적과 뒤섞였다는 건 전장의 흐름을 가져왔다는 걸 의미했다.

‘적은 분명 정예군이다.’

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정예군을 어찌하여 정예군이라고 부르는가.

돌발 상황에도 잘 대처하기에 정예군이 아니다.

백 승을 이루기에 정예군이 아니다.

장수의 통제에 가장 완벽하게 수행하기에 정예군이었다.

모든 병사의 상황 대처는 통제 아래 발생할 뿐이다.

나아가라는 명이 있어야 싸울 수 있으며, 물러서라는 명이 있어야만 일사불란한 퇴각이 가능하다. 그러하기에 정예군이라고 부른다.

하여, 고구려는 승전고를 향하여 다가가고 있었다.

수만의 대군을 향한 수백 기병이 돌격했다.

태산을 옮긴다는 것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공세였다.

그래서 적군은 평소 익힌 대로 대처했을 것이다.

하여, 수나라의 전열은 무너지고 있었다.

을지문덕은 이를 파악했다.

무릇, 장수란 승리를 바라봐야 한다.

불가능한 상황에 불가능과 싸우는 건 졸장의 일이다.

명장은 가능성을 도출해내야 한다.

그리고 을지문덕은 승리의 길을 찾아냈다.

‘풍욱은 수만의 대군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온달의 기병이 돌격하여 격전을 치르고 있었다.

수백에 불과한 규모였기에 전장은 한정적이었다.

수만의 대군이 있다고 할지라도 수백을 상대하는 싸움에 직접적으로 뛰어들 수 있는 인원은 고작 천 단위였다.

그 외의 병력은 후방에서 고함이나 지르고 있었다.

‘아군의 기세에 질린 수나라 병사의 두려움은 점차 번지고 있다.’

사상 초유의 상황이었기에 적은 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결정한다.’

싸움은 온달이 한다.

그러나 전투는 을지문덕이 한다.

하면, 이제 무엇을 하는가.

‘후방의 대열까지 무너뜨린다. 그리하여 적의 군세를 풍욱의 통제에서 멀어지게 한다.’

방법이 있는가.

있다.

과연 무엇인가.

“······.”

을지문덕은 말이 방향을 틀었다.

뒤따르던 경기병도 일제히 방향을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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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에 끝났어야 할 상황이었다.

이미 적장의 수급을 취했어야 한다.

그런데

“······.”

적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고작 수 백기의 중장기병이 전선을 교란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뭔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무리 대군이라고 할지라도 격전을 치를 공간에 돌입하지 못하였기에 그저 둘러싸고 있을 뿐이었다. 시간이 더 흐르면 승리를 거머쥘 수는 있겠으나 패전보다 못한 승전에 불과했다.

그래서 풍욱의 눈동자에는 노여움이 가득했다.

‘이 무슨······.’

아무리 행군하던 때 나타난 적이라고 할지라도.

제대로 된 태세를 갖추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고구려군은 고작 2천에 불과한데 어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자, 장군. 적의 경기병이 우측을 향해서 돌격하고 있습니다.”

격전지를 버리고 우측으로 우회하여 다가오는 게 아닌가.

미친놈들이 또 미친 짓을 했다.

아니, 이는 고구려 중장기병의 공세에 모든 심력이 쏟았기에 발생한 필연이었다.

“하! 그래. 차라리 잘됐다. 당장 우군으로 저들을 도륙하라!”

명령을 하달하였으나 일사불란한 움직임은 없었다.

전장의 분위기가 워낙 어수선했기에 발생한 일이었다.

궁병이나 쇠뇌로 대응하기에는 이미 늦었기에 철저하게 방어 태세를 갖췄다. 그런데도 탈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다가오면 장창으로 적의 말을 찔러 일거에 도륙 내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쏴아아아아아앙!

-쏴아아아아아앙!

-쏴아아아아아앙!

고구려 경기병은 대열을 맞춰 화살을 날릴 뿐이었다.

그렇게 물러나자 분기탱천한 풍욱은 결단을 내렸다.

“우군을 진군하여 고구려군을 쫓아라! 더는 전투를 길게 가져가지 않을 것이다!”

이 이상 조롱당할 수는 없었다.

활에 능한 경기병에 불과하다.

기병과 장창병을 앞세워 뒤쫓으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압박을 가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완벽하게 적을 포위하고, 섬멸해야 했다.

그런데

“······.”

풍욱은 무언가 이상한 걸 느꼈다.

아니, 보았다.

“······.”

물러서던 고구려의 경기병이

“······.”

일제히 상체를 뒤로 돌렸다.

저들은 분명 말에 올라타고 있었는데 상체를 뒤로 돌렸다.

그리고

“뭐······?”

저들의 손에는 활과 화살이 있었다.

“설마······?”

그 순간

-쏴아아아아아앙!

-쏴아아아아아앙!

-쏴아아아아아앙!

-쏴아아아아아앙!

-쏴아아아아아앙!

-쏴아아아아아앙!

화살이 활시위를 떠났다.

“!!!”

풍욱의 눈이 커졌다.

마상에서 상체를 돌려 활을 쏜다는 건 최고의 기량을 가져야만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수행하는 고구려 기병은 한둘이 아니라 천 명이 넘는 기병이었다.

“이, 이게 무슨······.”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퍼어어어어억!

-퍼어어어어억!

-퍼어어어어억!

-퍼어어어어억!

예상조차 하지 못한 수천 개의 화살이 허공을 가르며 전사자가 속출했다.

풍욱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동시에 우군도 흔들렸다.

그렇게 전장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이를 동요(動搖)라고 하였다.

“자, 장군!”

부관의 말에 본능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

전선의 전열이 무너지고 있었다.

한 명이 물러나고, 열 명이 뒷걸음질 쳤고, 백 명이 뒤돌았다.

그렇게 일제히 무너졌다.

무릇 기병은 어떠할 때 가장 위력을 낼 수 있는가.

이는 뒤돌아선 보병을 짓밟을 때였다.

바로 지금처럼.

“저, 전열을 유지해야 한다!”

풍욱이 발악하듯 외쳤으나 통제는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적은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의 외침은 공허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시야가 흐려졌고, 귀가 먹먹했다.

“자, 장군. 일단 물러나서 전열을 재정비해야 합니다. 이미 기세가 꺾였습니다.”

“······.”

대체 언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가늠도 할 수 없었다.

“장군!”

부관의 간절한 외침과 함께 우군의 붕괴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미 패색이 짙었다.

고작 2천 명을 상대했건만 이리된 것이다.

어지러웠다.

풍욱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퇴각하라······.”

몸을 돌리기 전 핏발 선 눈으로 앞을 바라봤다.

아직도 개마 위에서 맹위를 떨치는 100여 기의 중장기병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이 다가왔다.

아직은 멀었으나 분명 다가오고 있었다.

수십 명, 수백 명 아니 수천 명을 돌파했다.

수백 개, 수천 개 아니 수만 개의 창칼을 밀어냈다.

그중 선두에 선 혈향의 개마와 가장 어울리는 청동 단추가 전장을 가로질렀다.

그의 속도가 유독 빨랐다.

나머지 중장기병도 그를 뒷받침할 뿐이었다.

그들이 더 다가왔다.

아주 느렸다.

그리고

“장군!”

부관의 절박한 외침에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들었는데 청동 단추가 보였다.

“······.”

그런데 혈향이 짙어졌다.

참으로 괴이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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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을 고쳐잡을 필요는 없었다.

이대로 휘두르면 되었다.

늘 준비되어 있는 것이니까.

그래서 말했다.

“나는 고구려의 부마······.”

아니다.

부마가 아니다.

온달도 아니다.

정확한 신분을 말해야 했다.

오늘은 그리해야만 했다.

“고구려인이다.”

심장을 찔렀다.

“새기도록.”

고구려인이 이겼다.

“심장에.”

승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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