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헤게모니(1)
16화 헤게모니(1)
다시 일이라는 걸 하려니 우선 고양성이 범한 오류를 잡을 필요가 있었다.
이건 상당히 중요한 것이었는데 애석하게도 나는 경작지로 신진 세력의 육성을 꾀한 적이 없었다. 이게 단지 ‘나는 농사만 지을 거야. 그러니까 너희가 착각한 거야.’ 이런 말이 아니었다.
농업을 장려하고 농지를 챙기려면 쟁기질이나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학자가 필요했다. 그런데 고구려에 있는 학자라면 기존의 귀족 세력에 불과하다.
고양성의 입장에서는 온달을 위시한 평양계를 대거 기용하고 싶겠지만, 이건 잘못 처리했다가는 또 다른 뇌관이 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국내계와 평양계를 모아서 사이좋게 지분을 나누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비대해진 귀족들이 새로운 대립을 시작할 뿐이다. 생각만 해도 소모적이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이 있었다.
고양성의 말은 궁극적으로 새 경작지를 평양계 귀족의 경제적 기반으로 삼자는 것이었다.
귀족이라는 꼬리표는 달고 있으나 경제적 자립을 이루지 못한 신흥 평양계 귀족을 중심으로 말이다.
결국, 그가 말한 신진 세력이라는 건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당연히 나는 이걸 동의해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말이다.
고구려에는 귀족 세력을 제외하고는 ‘관리’가 될 수 있는 존재가 아예 없었다. 그렇다고 새로운 학자층을 육성할 역량도 없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가령, 과거제를 도입한다고 할지라도 근왕 세력의 등용문이 될 가능성이 없다.
왜? 시험에 응시할 능력이 있는 이들이 귀족이다.
그냥 숨만 쉬어도 귀족인데 미치지 않고서야 어렵게 과거 시험을 왜 치르겠는가.
아니, 애초에 이게 제대로 도입될 수가 없다. 지금 있는 관직도 나눠 먹으려니 곡소리가 나는데 한미한 가문의 귀족이나 아랫것들이 학문 좀 익혔다고 겸상하자고 덤비면 그냥 둘 리가 있겠는가.
우리 역사에서 괜히 고려 시대에 이르러서야 과거 시험이 도입된 게 아니었다.
그러면 어찌해야 하는가.
어쩌기는 돌파구를 찾아야지.
역사에서.
“유학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소. 승려 중에서 유학에 능한 이가 있소?”
새로운 경작지를 관할하는 문제는 따로 해결책이 있었다.
이건 그냥 밀고 가면 되는 것이기에 일단 조금 미루고 혜자를 만난 것이다.
“있긴 합니다만 혹시 이유를 알 수 있습니까?”
혜자의 목소리에는 의구심이 넘실거렸다.
당대 최고의 고승이자 불교계의 대표로서 본능적인 경계심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평소 유학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시더니 갑자기 물으시니 의아합니다.”
애석하게도 왕고덕이 그랬다고 한다.
사실 내가 대뜸 유학을 찾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고구려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자니 결국, 사람이 필요했다.
아니, 현재 고구려를 양분하는 귀족 세력이 아닌 아예 새로운 세력이어야 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머리 외국인 느낌으로 새로워야 했다.
그런데 없다.
없으면 어찌해야 하겠는가?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유학이 필요했다.
자고로 일국을 경영하려면 ‘철학’이 필요했다.
이 시절 동아시아에서 일국을 경영할 학문 중 ‘유학’보다 검증된 건 없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1천여 년이나 동아시아를 통치할 학문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물론, 유학도 한계가 있다.
심지어 나는 정치는 민주주의, 경제는 자본주의가 지구를 지배하던 세상에서 살다가 왔다.
그러니 유학이 아닌 다른 학문을 고려하는 것도 방법이긴 했다.
그러니까 더 좋은 거 나오면 그때 생각해보면 된다.
아마도 나오지 않겠지만 말이다.
나는 아니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이 시절에 와서 유학 이상의 통치 철학을 만들 수 없다.
사상이나 철학이라는 건 역사의 흐름과 당대의 기반이 쌓여 있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걸 가져와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고구려에서 유학을 언급하면 ‘그래. 뭐. 옆 동네 이야기 들어보니까 좋다더라.’ 이런 반응이 나오지만, 민주주의를 말하면 ‘자라.’ 이렇게 답변할 게 뻔하다.
선출 권력이니 뭐니 이런 말을 해도 대역죄인 취급도 안 받는다는 것이다. 그냥 자라고 한다.
또한, 역사를 아는 사람이 과거로 돌아갔을 때 가장 무난하게 할 수 있는 건 바로 이긴 역사를 가져오는 것이다.
어떤 말을 하더라도, 무슨 욕을 할지라도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승리의 징표는 ‘유학’이었다. 그 어떤 학문도 유학을 이기지 못하였다.
즉, 내가 유학을 육성하려는 건 승리의 역사를 따라가는 것이다.
이기는 길을 가는 건데 고민할 필요가 없다.
물론, 지금 고구려에서 유학으로 뭔가를 하는 게 쉽지는 않다. 어설프게 ‘유학을 고구려의 통치 철학으로 삼자!’ 이러면 민주주의를 언급했을 때처럼 무시당하는 게 아니라 ‘저 새끼 죽여!’ 이런 반응이 나올 게 뻔했다.
그래서 당장 도입할 생각은 없다.
그냥 씨앗만 뿌릴 것이다.
대체 이게 무슨 효과가 있을까 싶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큰 효과가 있다.
자고로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한다.
그만큼 인내를 가지고 우직하게 나가야 하는 법이다.
모델은 있었다.
이 땅에 있었으나 이제는 없을 수도 있는 조선이라는 나라였다.
그 나라는 정말 특이한 나라였는데, 관리가 학자였고, 학자가 관리였다.
태어나면 공부를 시작했고, 밥 먹고 공부했으며, 자다가도 공부했다.
공부에 미친 사람들의 나라였기에 이 동네, 저 동네마다 공부할 수 있는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었다.
한 마디로 공부하기에 정말 좋은 나라였다.
고구려가 무예 익히기 좋은 나라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도 고구려를 학구열에 불타도록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과목은 당연히 유학이었고.
그리고 내게 백 년이라는 시간은 절대 추상적이지가 않았다.
진짜 백 년이었다.
원 역사를 되돌아볼 때 수나라가 있다가 없어지고, 당나라가 횡포를 부리는 시간.
대략 백 년이었다.
만일 이 세월 동안 내부에서 사대부가 크게 성장한다면 고구려의 역량이 어디까지 번질지 알 수 없다.
심지어 명분만 중시하는 유학자가 아니라 창칼을 휘두르는 상무적 기풍의 고구려에서 무럭무럭 자라날 유학자들이다.
이들이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고구려를 경영할지, 생각만 해도 설렜다.
어쩌면 통일 중국과의 일전에서 우리가 기어이 승리할지도 모른다.
“유학 교육을 장려해볼까 하오.”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그동안 우리 고구려가 꾸준히 유학 교육을 장려했으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귀족들이 글자를 읽다가 갑자기 말을 타러 나가버리거나 서책 들고 칼싸움 놀이나 하는 경우가 허다했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우리 승려 중에서도 유학에 관심이 많은 이가 많습니다. 그들이 더 깊게 익히길 바라시는 거군요.”
“아. 내 말을 오해하셨소. 승려가 유학을 익히라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스승이 되어줄 이를 찾는 것이오.”
“예······?”
“나는 유학자를 대거 양성할 것이오.”
“소승이 잘못 이해한 게 아니라면 귀족이나 승려에게 유학을 익히게 하는 게 아니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유학을 익혔고, 기존 세력에 얽히지 않은 완전한 ‘유학자’를 언급하신 것 같습니다만.”
“정확하오.”
“그러니까 고구려에서 유학 세력을 잉태시키겠다는 겁니까.”
“놀랍도록 정확하오.”
“오. 부처님이시여.”
혜자는 갑자기 눈을 감더니 염주를 마구마구 만지며 염불했다.
나는 흐린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왜 그러오?”
“대인. 귀족은 유학을 익히지 않아도 귀족이기에 고관대작이 됩니다. 해서, 유학을 깊게 익히지 않습니다. 그 시간에 무예를 단련하고 병법을 익히는 게 나으니 말입니다.”
“말 타는 건 호연지기를 키우지만, 공부하는 건 나를 향한 호승심을 느끼게 하긴 하오.
“승려는 그저 유학‘도’ 익히는 것에 불과합니다.”
“여가 생활을 알차게 보내는구려.”
사회 지도층이 예체능만 좋아하니 인문학이 죽는 것이다.
혹은 취미 활동으로만 인지해도 인문학은 죽는다.
고구려에서 유학이 성장할 수 없었던 이유가 여기 있었다.
그래서 전문적으로 유학만 익히는 사대부가 필요했다.
“하면 대체 어디서 잉태시킵니까? 고구려에서 유학을 익힐 수 있는 세력은 귀족과 사찰이 전부이니 말입니다.”
유학이 문제가 아니라 애초 글자를 아는 세력이 귀족과 불교계밖에 없다.
하지만, 둘 다 유학에 진심이 아니었으니 혜자의 반응은 당연했다.
“누구라도 의지만 있다면 다 익히게 할 것이오.”
“안 익힐 겁니다. 의지가 없습니다. 소승이 염주 걸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신분에 무관하게 배우고자 한다면 누구나 다 기회를 줄 것이라는 말이오.”
“예? 아니 그러니까 글자를 아는 백성이 있습니까? 그런 백성이 있으면 소승에게 소개해주십시오.”
“하하하. 대사. 처음부터 글자를 아는 사람이 어디 있소? 배우고 싶다고 하면 천자문부터 다 알려줘야지요. 10년이 걸려도 좋고, 100년이 걸려도 상관없소. 자고로 교육은 다 이러한 것이외다.”
“대인. 먹고 살기도 어려운 백성입니다. 그들이 대체 언제 글자를 익힙니까. 농이 과하십니다.”
사대부의 태동이라는 건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어야 철학과 사상을 공부하지 않겠나?
대한민국도 인문학이 죽어 가는데, 고구려에서는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만일, 지원한다면 일정 기간은 식솔의 생계도 책임져줄 것이외다.”
“······.”
“왜 그리 놀라시오? 아니, 모집한다고 하여 지원자가 천 명이 되겠소? 만 명이 되겠소? 능히 감당할 수 있소.”
수백 명에서 수천 명의 사병을 거느린 귀족이었다.
그중 나는 최상위 포식자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고작 10명 남짓한 사대부 지망생에게 장학금을 주지 못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러니까 결국 대인의 사재로 사대부를 육성하겠다는 겁니까?”
“비슷하긴 한데 꼭 그런 건 아니오.”
“되었습니다. 이게 중요한 건 아니지요. 아니, 대인은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혜자가 제법 격렬하게 반응했다.
개인사가 있을 것이니 이유도 타당할 것이다.
그런데 별로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를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대사. 조금 우습소?”
“무슨 말씀입니까.”
“사찰은 하늘에서 떨어졌소?”
“······.”
“기도하고 절하니까 부처님이 만들어주셨소?”
“······.”
“처음 착공부터 지금의 운영까지. 부처님이 뭐 하셨소?”
“······.”
“그냥 앉아만 계셨소만?”
한 마디로 ‘너희도 나랏돈으로 종교활동 하잖아?’라는 말이었다.
승려의 수가 한두 명도 아닌데 ‘누군가’는 이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그리고 그 누군가 중 가장 큰 손이 바로 나였다.
그러니까 왕고덕이 고구려 불교계의 최대 주주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나는 이래도 되는 사람이었다.
고양성이 아니면 나를 막을 사람도 없다.
아니, 그조차도 내가 폭주하면 어쩔 도리가 없다.
그래서일까?
혜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격렬하게 떨리는 눈동자는 심리적 동요가 크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왜 아무런 말이 없소?”
“······.”
“아.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오?”
“······.”
전문경영인은 실질적인 인사권을 행사하는 최대 주주의 말에 감히 항거할 수 없는 법이다.
사실 혜자를 닦달해서 승려를 사대부로 전직하게 해도 되긴 했다.
그런데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낭비였다.
그냥 있어도 어차피 부릴 수 있는 승려였고, 근왕파다.
이들을 사대부로 전직시키는 건 돌려막기나 다름이 없다.
이건 별로다.
또한, 다른 이유도 있었다.
불교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어차피 이 바닥도 그들의 리그이기에 그러했다.
이 시절 승려라는 건 결국 머리 깎은 귀족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유명한 고승들의 출신이 고위 귀족이나 왕족인 건 절대 우연이 아니다.
애초에 불경을 익힌다는 것 자체가 기득권이라는 걸 의미한다.
부처를 섬기는 게 아니라 부처와 친한 귀족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까지 고구려 유학 교육도 이렇게 운영됐다.
그래서 틀을 아예 뜯어버리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건 공자와 친한 귀족이 아니라 공자를 모시는 사대부라는 새로운 계층이니까.
“대사. 나는 당장 내일 유학으로 뭔가를 하자는 게 아니오.”
“······.”
“천자문을 익히게 하고, 유학을 배우게 할 것이오. 10년이 걸려도 좋고, 100년이 걸려도 좋소. 교육은 이렇게 하는 것이오.”
“······.”
“내가 대사에게 요구하는 건 하나요.”
“······.”
“백성을 가르칠 승려의 차출.”
그리고 당근을 하나 던졌다.
원래 있던 당근이긴 했으나 지금은 효과가 있을 것이다.
“사찰을 향한 후원은 지속할 것이니 우려하지 마시오.”
“소승이 어찌 대인께 반론을 제기하겠습니까. 준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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