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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농사도 잘함-13화 (13/199)

13화 이데올로기(3)

13화 이데올로기(3)

강대한 통일 중국과 싸워야 하는 이유가 ‘고구려의 질서’라고 했다. 그런데 이 말은 나로서는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웠다. 가령, 신라도 통일 전쟁을 거쳤으나 당의 질서에 편입되어 역사를 이어갔고,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도 마찬가지였다.

한데, 유독 고구려‘만’ 달라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나라마다 국력의 척도(尺度)가 있습니다. 영토일 수도 있고, 수십만의 대군을 운용하는 역량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고구려는 오직 질서입니다.”

“자네가 생각하는 고구려의 질서는 대체 무엇인가. 동방의 패권이라는 가치인가?”

“궁극적으로는 동방의 패권으로 귀결되겠지요. 이를 고루한 과거의 영광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내가 가진 가장 큰 의문은 역시나 ‘동방의 패권’이라는 모호한 가치였다.

아니, 이건 모호한 게 아니라 그냥 허상이었다.

애초 어떤 패권을 타국으로부터 동의받고, 도장 찍어달라고 요구한단 말인가.

현대사를 보더라도 UN에 다 모여서 ‘미국이 패권국이라는 말에 동의하는 나라는 손 들어주십시오.’라고 투표라도 했던가? 아니다. 그냥 미국이 패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압도적 국가였기에 그러했다. 애초 패권이라는 건 누구의 인정이 필요한 게 아니라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는 것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조선이 병자호란에서 크게 패했으나 청나라를 상대로 뭘 하려고 하지 않았다. 패권이라는 건 바로 이런 것이다.

그러나 무참하게 무너졌던 백제와 신라가 국력을 키워 고구려를 일제히 타격했다. 아니, 장수왕이 남진하던 시기만 해도 신라가 고구려의 질서에서 이탈하여 백제와 연합을 체결하지 않았던가.

왜 이런 일이 발생했겠는가.

그냥 해볼 만하니까 덤빈 것이다.

항거할 수 없는 패권이었다면 그냥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숨만 쉬었을 것이다.

이게 현실이다.

그러나

“고구려는 서토의 나라로부터 동방의 패권을 공인받고자 했습니다. 또한, ‘동방교위’로 책봉되길 바라였습니다.”

고구려는 북위를 비롯한 북중국으로부터 동방의 패권을 ‘공인’ 받는 외교에 열과 성을 다했다. 현실 세계에서 고구려의 국력이 동방을 좌지우지할 수준이었는지는 전혀 의미가 없었다. 오직 ‘도장’이 중요했다.

“하지만 무릎을 꿇은 적은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면 말리지 않겠네. 정신이라도 이겨야 마음이 편하니 말일세.”

“괜한 말이 아닙니다. 북위가 장수태왕을 신하로 인지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북위 내부의 은밀한 일에 불과합니다. 대외적으로 우리에게 번국의 예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확실한 사실은 북위가 장수왕이 죽었을 때 시행한 거예례, 이는 어디까지나 장수왕이라는 걸출한 군주의 사후 발생한 일이긴 했다.

그가 살아 있을 때 대놓고 위계를 언급하지는 않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만일, 그러했다면 어찌 되었겠습니까. 양국은 국운을 걸고 싸웠을 겁니다. 누가 이겼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고구려가 싸웠을 것이라는 걸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왜 싸워야 하나?”

“아니, 왜 싸워야 하느냐가 아니라 북위가 이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그들이 절대로 우리를 향하여 창칼을 겨눌 수 없다는 사실이 현실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굴종하지 않고 담대하게 전장에 나서리라는 걸 알기에 그러한 것이지요.”

고구려와 북위의 국력을 비교하여 누가 더 강성했는가를 따지는 게 아니었다.

현실이 왜 그렇게 흘렀고, 역사는 왜 그러했는지에 대한 고찰이었다.

이는 단지 북위의 주적이 남조였기에 고구려와 전쟁할 수 없다는 도식으로는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건 명백하게 고구려의 판단에 기초한 것이니 말이다.

“우리가 저들에게 동방의 패권을 공인받았습니다. 그런데 저들이 공인할 자격은 누가 주었습니까.”

“······.”

“서토 남쪽의 무리가 우리를 ‘감히’ 공인했습니까? 아니지요. 그들은 그러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가 선택한 건 북쪽이었으니 말입니다.”

내가 어떤 사고를 이어가기 전에 을지문덕의 단호한 말이 이어졌다.

“그러나 번국은 다릅니다.”

“어찌하여 다른가.”

“번국을 요구하는 건 고구려의 패권을 더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걸 의미합니다. 이를 우리가 인정하는 순간 동방은 혼란이 발생할 것이며 고구려의 질서에 편입되어 있던 무리가 일제히 이탈할 겁니다. 때로는 우리의 자리를 위협할지도 모르며 서토에 투항할 수도 있습니다. 작금의 고구려를 구축하는 질서는 우리가 패권을 ‘요구’할 수 있는 국력이 있기에 가능한 겁니다.”

“고구려의 국시는 남진이라고 했네. 하지만, 남쪽의 적인 백제와 신라는 오래전 고구려의 질서에서 벗어났어. 하면, 혼란은 이미 시작된 것이 아닌가?”

“고구려의 국시가 남진인 이유는 그들이 고구려의 질서에 편입된 게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을지문덕의 눈동자를 보며 알 수 있었다.

지금부터가

“고구려의 질서는 저들과는 다릅니다.”

본론이라는 걸.

“대체 무엇이 다른가.”

“말갈은 고구려가 아니었으나 고구려가 된 말갈이 있습니다. 7천여 명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속말부와 백산부는 고구려에 신속하였기에 이제 말갈이 아니라 고구려입니다. 누구도 그들을 말갈‘인’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작금의 천하는 예외 없이 그들을 고구려‘인’이라고 부릅니다.”

“······.”

“각각 3천여 명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백돌부, 안거골부, 불녈부, 호실부는 고구려‘인’은 아니지만 고구려에 속한 말갈입니다. 천하는 이들도 고구려라고 부릅니다.”

“······.”

“그러나 흑수부는 말갈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고구려의 영향을 받지 않기에 말갈입니다. 한데, 대인. 모든 말갈이 처음에는 흑수부와 마찬가지였습니다. 치열하게 다퉜으며 피를 보며 영역을 뺏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국력이 팽창하면서 서서히 고구려인이 된 말갈이 있고, 고구려가 된 말갈이 있으며, 아직도 질서에 들어오지 않은 무리가 있습니다.”

나는 이 말이 가지는 의미를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을지문덕이 말하는 고구려의 질서란

“우리의 질서는 고구려가 아닌 세력이 고구려가 되게 하는 것이며, 고구려가 된 세력의 구성원을 고구려인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고구려‘인’의 세계였다.

조상 대대로 고구려에서 살았던 고구려인이 아니라 고구려라는 국호가 만들어낸 고구려‘인’의 세계였다.

중국은 ‘중화’라는 관념과 ‘중원’이라는 땅이 있기에 땅을 가지면 자연스레 질서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고구려는 동명성왕 고주몽 이래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질서를 세워오고 있었다.

“고구려는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질서’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백제와 신라는 감히 질서를 세울 국력에 이르지 못하였고, 서토의 나라는 질서를 세운 게 아니라 있는 질서에서 흥망성쇠를 거듭할 뿐입니다. 물론, 그들의 선대에 어떤 이가 어떤 나라에서 질서를 세웠을 수는 있지만 이미 역사의 잔재에 불과합니다. 즉, 작금의 천하에서 질서의 역사를 가진 나라는 고구려가 유일합니다.”

“······.”

“과거 북위도 이를 알기에 섣불리 패권을 공인하지 못했을 뿐, 고구려가 패권을 가지지 못한 게 아니었습니다. 고구려의 질서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번국이 된다면 질서를 세우는 시간은 멈출 것이며, 과거가 될 뿐입니다. 이는 무수한 고구려‘인’의 고구려로부터의 이탈을 초래할 겁니다.”

고구려는 중화라는 질서를 가진 중원처럼 폭발적인 힘을 내지 않을 뿐, 오랜 세월 천천히 그리고 입체적으로 질서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는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야말로 전인미답의 길이었다.

“아직 고구려의 질서는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아니,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겁니다. 지금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쉬지 않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 곧 고구려의 역사이니 말입니다.”

그동안 귀에 아플 정도로 들었던 동방의 패권은 을지문덕의 입을 통해서 현실로 구현되고 있었다. 어쩌면 역사가 흐르면 생긴 ‘질서’라는 세계관을 구축하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분명 그러했다.

“지금 우리 고구려의 질서가 향한 곳은 요서 아니 영주입니다.”

“영주라고 하였나?”

“그렇습니다.”

영주가 전략적 요충지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사방팔방으로 뻗어가려면 고구려는 영주에 거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단지 이것만으로 고구려 국력의 척도가 영주라고 할 수 있나?

의아함이 커질 때 을지문덕의 말이 이어졌다.

“영주는 고구려가 거란을 통제할 수 있는 거점입니다. 고막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고구려가 그들을 질서에 포함하는 중이라는 말인가.”

“소인은 그렇게 여기고 있습니다.”

선왕 시절 돌궐이 백암성을 공격했으나 고구려가 잘 방어한 적이 있다.

이를 지켜보던 거란족 1만 명은 고구려에 신속했다.

하나의 전투가 가져올 여러 영향을 파악하며 거취를 정할 정도로 거란족은 갈대 같은 무리였다. 이들을 고구려로 만들고, 고구려인이 되게 하는 과정이라는 말이었다.

“번국이 되면 서토는 우리에게 가장 먼저 영주에서 철수를 요구할 겁니다. 만일, 이리되면 어찌 되겠습니까. 거란은 고구려가 쇠약해졌다고 판단하며 등을 돌릴 겁니다. 그런데 거란만 이러하겠습니까?”

이미 고구려‘인’이 된 무리는 고구려와 역사를 함께 할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인’이 아닌 고구려는 더는 역사를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고구려조차도 아닌 세력은 노골적으로 도발할 것이다.

그러니

“번국이 되는 건 고구려 질서의 붕괴 즉 고구려를 동방의 하나로 전락시키는 일입니다.”

고구려는 싸워야 했다.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과거 북위가 감히 고구려의 영토를 범하지 못했던 국세는 흔적도 없어질 것입니다.”

북위가 고구려의 패권을 공식화하지 않은 이유는 고구려의 질서가 구축되는 걸 최대한 미룬 것이었다. 그렇다고 고구려를 상대로 싸우는 건 너무나도 소모적이었기에 내부의 위기가 닥쳤을 때 부랴부랴 공식 선언을 한 것이었다.

“또한, 앞으로는 절대 저들과 대항할 국력을 갖추지 못할 겁니다. 질서에 포함되어야 마땅한 무리와 반목하고 대립하며 싸우는 역사가 이어질 것인데 어찌 강대한 서토와 싸울 힘을 비축할 수 있겠습니까.”

을지문덕은 동방의 패권이 현실이라는 걸 말하고 있었다.

동방의 패권은 고구려의 핵우산을 차츰 확대하는 것이었고, 사대하는 건 ‘핵’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즉, 동방의 패권은 고구려의 생존과 직결했다.

사실 내게 ‘사대’라는 건 참으로 익숙했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사대’의 역사를 가장 잘 보여준다.

그 사대의 역사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사안은 바로 ‘핵우산’이었다.

중국에 사대하며 조선은 중국의 ‘핵우산’ 아래 들어갈 수 있었기에 강력한 군사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역사는 이렇게 진행되었다. 어차피 중국과 싸울 생각이 없었던 조선이었기에 핵우산은 따뜻하고 평온했다.

그러나 고구려는 사대가 굴종의 문제도 아니었다.

세상이 끝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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